안은미, 실천하는 춤
다시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사실 진로라는 개념보단 좋아서 한 거지. 그러다 무용반 언니들이 대학을 간다 길래 왜 가냐 물으니 무용과가 좋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도 춤을 직업으로 삼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학에선 그녀가 추고 싶은 춤을 가르치는 이가 없었다. 안은미는 학교 밖에서, 그리고 무용 밖에서 답을 찾았다. "학점을 따야 하니 학점 받을 만큼은 하고, 저녁에는 내 것을 했다. 내 마음대로 했다. 그리고 무용계에 있는 사람보단 미술하는 사람들과 많이 놀았다. 최정화나 이불, 이영주, 이수경 등 새로운 관점을 찾고자 하는 작가들을 만나서 뭔가 해보자면서." 실제로 그녀는 미술작가 최정화의 작업물과 무용을 잇는 탈경계적인 작업을 해내기도 했다. 그녀에게 춤이란 보여주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언어였다. "무용이 추상적인 언어 같지만 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막연히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연의 균형감각을 삶에 투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안은미는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국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져 균형을 잡아보고자 했다. "내 몸에 충격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걸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1992년에 한국을 떠나 뉴욕에 당도했다.
안은미는 뉴욕에서 서서히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30대 무용수는 뉴욕을 근거지로 안은미라는 이름을 각인시켜 나갔다. 맨하튼 예술재단의 안무가 상을 받고, 뉴욕 예술재단의 아티스트 펠로십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뉴욕은 그런 영광으로 점철된 영토가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재미있게 살았다. 1년에 한번 공연하고, 영어 배우고, <뉴욕 타임스> 읽고, 아메리카노 마시다가 '방세 언제 내지?' 생각이 들면 나가서 일하고. 그렇게 방세 내고 나면 또 놀고. 그렇게 10년을 뉴욕에서 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10년이 짧다는 걸 알았다. 서두르지 말자. 가만히 있어도 10년은 다 내 것이 된다. 아득바득 살 필요 없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냥 가는 거지." 한국에서도 안은미는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무용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를 압도하는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안은미는 2000년 대구시무용단에서 단장직 제안을 받아들이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안은미 컴퍼니에 무용수가 10명 있는데 아마 내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을 만나러 왔구나 싶다. 우리 팀은 신선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헌신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닿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어느 정도 넘어서면 다들 경이롭게 본다. 외국으로 투어를 나가도 이런 팀워크가 없다." 지난 몇 년 사이 안은미 컴퍼니는 유럽 등지를 돌며 춤을 춰왔다. 한국 할머니들의 막춤을 무대에 올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비롯해 여고생과 아저씨가 등장하는 <사심 없는 댄스>,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댄스>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덕분이다. 그녀가 이런 막춤을 무대에 올리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무용수들과 형식적인 작업을 해오다 보니 안무가로서 만족하면서도 색다른 시각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몸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나갔고, 한달 만에 270명을 찍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시각을 얻었다. 할머니들 춤을 막춤이라 부르지 않나. 쉬운 춤이라 생각했는데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본 몸에 놀라운 힘이 있더라. 살아오면서 축적된 정서, 배경, 성격 등이 함축된 몸을 흔드는 거다." 막춤 안에 깃든 세월과 세상과 인생을 보았다. 그래서 무대에 올리길 결심했다. 학생들과 아저씨들을 무대에 올린 것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을 기록하다 다른 세대가 궁금해졌다. 같은 질문을 애들한테 하면 어떨지, 아저씨들한테 하면 어떨지. 애들은 무조건 아이돌 댄스를 춘다. 그리고 아저씨라고 불리는 걸 싫어하는 한국 남자들은 춤추는 걸 부끄러워한다. 그 부끄러움 역시 역사이고, 객관적인 시점이니 그런 몸을 기록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1부와 할머니가 등장하는 20분짜리 영상을 보여주는 2부 그리고 그 영상 속의 할머니가 무대 위로 올라와 막춤을 추는 3부로 구성된다. 그리고 피날레에선 공연을 보던 관객들까지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춘다. "무대는 아티스트의 영역, 객석은 관객의 영역, 이런 틀을 없앴다. 그런데 우리가 봐도 놀라운 정도로, 관객들이 해일이 밀려오는 것처럼 무대로 뛰어올라온다. 그리곤 할머니들과 무용수들과 같이 춤을 춘다. 나이든 국적이든 상관 없다. 언어보다 더 센 표현이 터지는 거다." 춤의 장을 넘어 삶의 장으로 변모한 무대, 그것이 안은미가 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리고 춤을 통해 자신을 살리는 방식이다. "예술 하는 사람은 안정감을 가지면 안 된다. 자신을 코너에 세우고 긴장감 있게 살아야 한다. 작가가 결과물을 못 내면 창피한 거잖아. 지구를 떠나야지. 그러니 매일 내 자신을 코너에 밀어 넣는다." 마치 영원히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사람 같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의 춤도 멈출 것이다. 달나라로 가는 판타지에도 마지막 장은 있을 것이다. 안은미는 말했다. "아마 방전되는 날, 그날 갈 거다. 우주선 타고. 상상만 해도 귀엽지 않나?" 이보다 유쾌할 순 없다.
about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심 없는 댄스>,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댄스>로 유럽 등지를 열광시킨 안은미는 동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다. 안은미 컴퍼니 소속 무용수들과 함께 세계를 돌며 무대에 오르는 그녀는 파격보단 자유를 추구하며 행복하게 춤을 추고 있다.
(동방유행 July 2016 VOL.10 '유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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