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FREAKS
이민기와 김고은은 ‘괴물들이 사는 세상’을 지나왔다.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과 내밀한 표정을 품은 채 서로를 응시한다. 피할 수 없는 예감 속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남녀가 만났다. 비극적인 예감 앞에서도 필연적인 이끌림으로 마주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저주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파멸적인 운명으로 한 발을 딛기 시작한 누아르의 연인처럼 이민기와 김고은을 떠올렸다. 두 사람과 마주한 건 저물어 가는 해를 타고 내려오는 어둠이 제 낯빛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오는 3월 13일에 개봉하는 영화 <몬스터>의 제작보고회를 마치고 몇 개의 방송 인터뷰 일정을 소화한 뒤라고 했다. 두 사람은 지금 각기 새로운 출연작의 막바지 촬영에 매진 중이다. <몬스터>의 촬영이 끝난 건 작년 7월이었다. 그들에게도 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기억이다. 하지만 결코 흐릿해질 수 없는, 강렬한 통증이자 선명한 흉터처럼 남아있다. 아프고 흉한 기억이란 말이 아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지울 수 없다.
이민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남자를 연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김고은은 그 남자를 죽이겠다고 쫓는 소녀를 연기했다고 했다. 그야말로 ‘괴물들이 사는 세상’을 지나왔다. 그래서 제목도 <몬스터>인가 보다. 그 남자의 얼굴을 대신한 건 이민기라고 했다. 그 소녀의 얼굴을 대신한 건 김고은이라고 했다. 궁금해졌다. 이민기는 언제나 철없는 소년처럼 웃고 울었다. 하지만 <몬스터>에서 이민기는 웃고 우는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찌르고 내리친다. 그에게 살인이란 그저 12시가 되면 먹어야 하는 점심 같은 것이다. 김고은은 호기심 많은 소녀처럼 해맑고 섬세했다. 단 한번의 등장만으로도 넓은 파문을 남겼다. 하지만 <몬스터>에서 김고은은 해맑고 섬세한 대신 우악스럽고 강인한 얼굴로 내달리고 악을 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충돌한다. 괴물과 괴물이 만난다. 이민기의 ‘변신’과 김고은의 ‘도전’만으로도 <몬스터>는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몬스터>를 지나온 이민기에게선 왠지 모를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체중을 급격하게 불린 후 감량했다고 했다. 체중은 여전했지만 근육의 밀도가 달라졌다. 눈빛의 밀도도 달라진 것 같다. 날카롭지만 예민하지 않았다.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열했다.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언어 같았다. <몬스터>를 지나온 김고은에게선 여전히 호기심이 느껴졌다. 두 번째 작품이니만큼 처음보단 잘해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고 했다. 감각은 여전했지만 경험의 질량이 달라졌다. 생각의 질량도 달라진 것 같다. 무겁진 않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거침없지만 선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던져냈다. 탄탄한 활시위로 쏘아 올린 언어 같았다. 그리고 각자의 언어를 남긴 두 사람은 저마다 선명해진 어둠의 낯빛 너머로 사라졌다. 해가 저문 지는 오래였다.
이민기, ACTOR INSIDE ME
<몬스터>를 준비하면서 체중을 급격히 늘리고 줄였다던데, 평소 체중은?
67kg 안팎이다. 사실 체중 자체엔 큰 변화가 없었다. 80kg까지 찌웠다가 다시 고스란히 뺐으니까. 다만 체지방량이 달라졌다. 예전엔 15% 정도였던 체지방량을 4%까지 낮췄으니까. 체질을 바꾼다는 개념이었지. 그래선지 입맛도 변했다. 원래 단 거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베이글에 크림이나 잼 발라먹고 그런다.
살이 안 찌는 체질 같은데.
어릴 땐 숨만 쉬어도 살 빠진다고 하더라(웃음). 20대 초반엔 공기밥 세 그릇씩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는데 신진대사가 줄어든 건지 어느 순간부터 먹으면 찐다.
올해 서른이다. 특별한 기분이라도?
20대 후반으로 오면서 조바심이 들더라. 20대 초반엔 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더 많이 보고, 만나고, 느끼고, 배우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좀 식상해지고 지치더라. 그러다가 20대 후반 즈음엔 시간을 쉽게 보내기가 아까워졌다. 20대도 초, 중, 후반이 다른데 30대도 마찬가지일 거 같다. 그때마다 할 수 있는 작품도 다를 거다. 그래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작품들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런 강한 캐릭터를 선택한 것일까?
단순히 싸이코패스 살인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면 하지 않았을 거다. 단순히 연쇄 살인마라고 했다면 근육이나 날카로운 인상도 필요하진 않았을 테고. 히스테릭한 성격의 배 나온 살인마도 있겠지. 일단 <몬스터>의 태수에겐 보기 좋은 근육이 아니라 연약해 보이지 않는 탄탄한 몸이 필요했다. 액션신도 좀 있었고.
‘악’ 그 자체에 대한 흥미는 없을까?
그런 캐릭터라면 그런 영화여야 한다. <악마를 보았다>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몬스터>에선 그런 단면적인 살인마라면 의미가 없다. 단지 무서운 분위기가 필요한 게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은 톤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불안하진 않았나.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역할은 없었다. 계속 배우로 살아야 하니까 부딪혀 보는 거다. 만약 실패해서 욕먹는다면 그걸 계기로 열심히 해보거나 내 재능을 고민해야지,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건 자세가 아닌 거 같다.
원래 생각이 많은 편인가?
연기를 한 뒤로 생각이 많아졌다. 내게 집중하게 됐다고 할까.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이나 상황을 비롯해서 나를 관찰하게 됐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생각이겠지만 그로 인해 생긴 깊이가 있을 것도 같다.
캐릭터로서의 이미지를 벗겨낸 이민기라는 사람의 실체는 잘 모르겠더라. 드러난 게 없다고 할까.
내 자신이 세상에 노출되는 걸 꺼린다. 캐릭터로 나오는 건 괜찮아도 실제로 드러나는 건 별로다. 인터뷰라는 게 대본이나 상황, 감정이 없는 것이라 힘들 때가 있다. 영화를 위한 제작발표회 같은 자리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되니까 괜찮은데 간혹 사적인 질문을 받게 되면 좀 힘들다.
의외로 진지하다는 말 들어본 적 없나?
아무래도 (그렇다). 그 ‘의외로’라는 건 역할이 준 이미지 때문이겠지.
<몬스터>에서 연기한 태수는 자신을 위장하고 사는 인간이다. 배우도 자신을 위장할 필요가 있지 않나?
어떤 감정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나 자신을 억제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참아야 되고, 눌러야 되고, 감춰야 되는 입장이라서 그런 건지, 원래의 나도 그런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궁금했다. 물론 그런 고민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아무래도 ‘소년’ 같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변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될 거다.
사실 그래서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다. ‘그 아이가 이 역할을?’ 이러면서. 나도 마냥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다른 곳으로 발을 디뎌보는 느낌이었지. 직간접으로도 가늠하기엔 무리가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했다.
살인마라는 캐릭터는 강렬하면서도 식상해지기 쉽다.
악인이라 해도 스크린 안에 있는 인물은 어느 부분에서든 매력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싫은 비호감 캐릭터를 두 시간 동안 따라올 수 있는 관객이 과연 있을까? 어쨌든 살인마라고 해서 하루 종일 살인만 하는 건 아니다. 살인이란 것이 이 인물의 인생에 있어서 한 부분이고, 그 인물의 표현 방식이 살인이 되는 셈이지. 연기가 내 인생의 한 부분인 것처럼. 다만 살인이 너무 비인간적인 행동인 거다. 그러니까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공감대가 결핍된 인간인 거다. 이거 잘못 말하면 살인자를 옹호라는 거냐고 비난 받으려나(웃음)? 어쨌든 영화는 영화니까. 그리고 살인이란 건 분명히 이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자체가 괴물 같은 상황이다. 그런 얘기를 이 영화도 하고 있다. 그저 긴장감을 즐기다가 끝날 영화는 아닐 거다.
참고한 작품은 없었나?
음, 캐릭터를 준비하기 위해서 봤던 건 아닌데 그 당시에 재미있게 본 책이 한 권 있었다. <좀비-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책인데 정말 기발했다. 책이 좋은 건 영화와 달리 그 상황과 공간감을 내가 상상하고 그릴 수 있다는 거다. 어쨌든 시간되면 꼭 봐라.
모델 활동 시절엔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던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차비와 밥값 정도만 들고 왔기 때문에 계속 일하면서 벌어먹고 살아야 했다. 사실 고시원에서 살 땐 마음은 편했다. 짐도 없고, 공과금 낼 필요 없이 월세만 내면 되고, 들어와서 자고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고, 그러면 되니까. 그 이후에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집을 구해서 숙소처럼 쓰기 시작하면서 TV 수신료에 각종 공과금에, 신경 쓰이는 게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가 생기더라(웃음). 소유한다는 게 꼭 그렇게 매력적인 일만은 아닌 거 같다.
소유욕이란 게 없진 않을 텐데.
누구나 불안정한 걸 싫어하듯이 나 역시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 다만 정도를 벗어난 소유욕은 어깨의 짐과 다를 바 없는 거 같다. 내가 집착하지 않을 정도의 소유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면 결혼을 생각해봤을 수도 있는데.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과연 내가 결혼 생활을 책임질만한 그릇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경력적인 선택을 이야기할 땐 과감해 보이는데 일상적인 선택을 이야기할 땐 조심스러워 보인다.
아무래도 작품은 언젠가 끝나는 거라서 뒤를 돌아볼 필요 없이 달려갔다가 빠져나오면 되는데 삶이란 그렇지 않으니까.
작품을 선택하고 후회해본 적은?
없었다. 싫어서 한적은 없었다. 단순히 일이라는 생각으로 임해본 적도 없었다. 그랬다면 후회가 남았을 거다. 어떤 식으로든 다 남는 게 있었다. <몬스터> 역시 내가 선택한 영화고 그만큼 욕심이 났던 작품이었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까? 혹은 상대배우는?
살다 보면 계속 엇나가고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는 있다. 하지만 호흡이 맞지 않았던 상대 배우는 없었다. 사실 <몬스터>에선 (김)고은 씨와 함께 촬영한 신이 별로 없었다. 일주일 정도? 각자 서로를 추격하다가 결국 막판에 맞닥뜨리니까. 그게 좋기도 했다. <연애의 온도>에선 김민희 선배랑 연애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호흡이 중요했지만 <몬스터>에선 감정이 살짝 어긋나더라도 용인될 수 있는 상황이라서 편했다. 나도 물러설 필요가 없고.
점점 선배라고 불리는 일이 많아질 텐데.
책임감이란 게 생긴다. 아마 <퀵>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이 영화에서 제일 처음 걸렸던 거 같은데 너무 긴장되더라. 하지만 현장에선 책임감보단 동료애가 생긴다. 서로 잘해보자고 하는 거니까.
김고은, SECOND COMING
요즘에도 강남 교보문고를 자주 찾나.
시간될 때마다.
최근에 읽은 책은?
부끄럽지만, 없다(웃음). 책을 쌓아놓는 타입이다. ‘언젠가 읽겠지’ 하면서. 책을 사면 지식이 들어오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서점엔 음반점도 있고. 아, 큰 서점엔 문구점도 있다. 필기구 사는 걸 좋아한다. 칠칠치 못해서 하나씩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거든.
필기구를 꼭 갖고 다니나.
습관이다.
기록하는 습관이라도?
다이어리를 쓰는 걸 좋아한다. 일기도 쓰고 그때마다의 감정을 적기도 한다. 2007년에 썼던 것부터 모아놨다.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던 해였다. 자주 다시 보는데 볼 때마다 웃긴다.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이 있더라.
다이어리로 보는 자신은 어떤 사람 같던가?
독특한 애 같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지 않나? 아마 자기 자신이 들여다 보면 일반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제일 슬프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고. 아닌가(웃음)?
<몬스터>의 복순이는 살인마를 추적하는 소녀다. 말이 되나 싶었는데 예고편을 보니까 그럴만한 애 같더라(웃음).
어딜 가나 내성적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듯이 범상치 않은 사람도 생각에 따라선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쨌든 나는 복순이를 연기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사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예고편을 보니까 잘 뛰더라.
원래 운동 신경이 좋다(웃음).
액션신도 많고, 육체적으로 고된 촬영이 많았다던데.
너무 힘들었다. 살인마와 맞붙는 장면도 힘들었지만 계속 뛰고, 구르고, 소리지르다 보니까 체력이 소진됐다.
정신지체장애를 지닌 인물을 표현하면서도 감정적인 폭발을 보여준다는 점에선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동시에 밟아야 하는 느낌이다.
어느 지점부터 단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복잡하게 생각할수록 계속 수렁에 빠지는 느낌인 거다. 그래서 그냥 이 친구를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나이는 먹었지만 하는 짓은 애인 거다. 당장 할 일이 있어도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되고, 다리가 아프면 쉬어야 되고, 졸리면 자야 된다. 마치 장난감 안 사준다고 바닥에 누워서 떼쓰듯이.
두 번째 작품치곤 대단한 관심을 얻고 있다.
배우로서 감사한 일이지만 그 관심에 부응하려고 하면 어려워질 거 같다. 게다가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몬스터>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아직 20대 초반이니까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안전한 작품만 선택할 거라면 <은교>를 할 이유도 없었다. 배우로 살고 싶단 지향점이 뚜렷했기 때문에 <은교>를 선택했던 거니까. 물론 관객들의 반응이 걱정은 된다. 하지만 <몬스터>를 통해서 분명히 성장하는 바가 있었다고 믿는다.
<은교>를 선택할 때 아버지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몬스터>에 대해선 뭐라 하시던가?
시나리오나 캐릭터가 재미있다면서 좋아하셨다. 그런데 포스터를 보시곤 속상해하시더라. 예쁜 역할 좀 했으면 좋겠다고. 배우로 봤다가 딸로 봤다가 오락가락하셨다(웃음).
<은교> 이후로 2년만이다. 두 번재 작품이라 신중했던 건가.
사실 <몬스터>는 <은교> 이후로 처음 받은 시나리오다. 다들 많은 제의를 받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자연히 쉬게 되니까 견디기 힘들어서 복학도 했다. 공부가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웃음). 공연을 하고 싶었다. 단편영화도 찍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기를 배운 뒤론 쉬어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항상 공연을 했고,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 연습을 했기 때문에 잠깐의 휴식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몬스터>를 만난 거다.
학교에서 하는 공연이 시시하게 느껴지진 않던가?
언제나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사람들과의 작업이다. 지금 잘해야만 다음도 있다. 만약 학교에서의 공연이 훈련이고 연습이라 생각한다면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니까. 이 사람들에게 이건 실전이고 나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오랜만에 공연하니까 나 역시 흥분되고 좋았다.
무대에서의 긴장감을 즐기는 편인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진 떨리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늘 그 떨림이 희열로 변한다. 물론 촬영현장과 무대는 다르다. 영화는 계속 컷으로 나눠서 촬영하니까 긴장을 조금씩 유지하면서 연기해야 한다.
<은교>에선 감정의 내밀함이 중요했다면 <몬스터>에선 감정의 폭발이 중요해 보인다.
은교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복순이는 겉으로 다 보이는 친구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히려 복순이의 내면이 뭘까 더 궁금했다. 은교는 표현을 하지 않아도 어떤 심리인지 다 이해를 하고 가는데 복순이는 표현을 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빨간 조끼를 입는 건 본인 아이디어였다던데.
여러 착장을 상의하다가 한 착장 정도엔 꼭 저 빨간 조끼를 입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게 감독님 보시기에 좋았는지 매착장마다 입게 됐다.
신인 배우가 당돌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나도 오해할 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하지만 화를 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 얘기를 명확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 같다. 신인으로서 긴장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긴장하면서도 노력하는 거다.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진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캐릭터가 돼있는 부분들이 있다. 현장에 갔을 때 만들어내야 하는 부분을 최대한 없애는 거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생각하면서 연기하다 보면 자의식이 가득한 연기가 나오기도 하고, 이래저래 연기가 어렵다. 아직 짧은 경험이지만 경험상 그랬다. <몬스터>도 아무 생각 없이 촬영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다.
욕을 정말 찰지게 잘했다던데.
감독님께서 점점 제지하셨다(웃음). 편집할 때 많이 빠졌다고도 하더라. 그런데 욕을 어색하게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어색하게 욕하는 건 그냥 내숭 같은데. 평상시에 입에 달고 살지 않더라도 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자기 방식으로 잘 할 수 있지 않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을 때는?
참는 성격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참는 편은 아닌 거 같다.
두 번째이기 때문에 달랐던 건?
<은교> 때는 내 연기만 보기 바빴지만 다들 내게 맞춰줬다. 처음이라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몬스터> 때는 카메라에 대해선 당연히 알아야 되는 것이었고, 처음보단 잘 해내야 할 것들 것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사실 리허설을 할 때 연기를 못했었다. 슛이 들어가지 않은 이상 부끄럽더라. 그런데 그게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이었음을 알게 됐다. 결국 내가 리허설을 망치는 거니까. 그렇게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보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다들 무엇을 하는지 깨닫는 과정이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을 거 같다.
간혹 있지만 달려들진 않는다. 내가 아이돌은 아니니까(웃음). 내가 의식하지 않으니까 사람들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거 같더라.
지금 촬영 중인 <협녀: 칼의 기억>이 크랭크업되고, <몬스터> 홍보까지 끝나면 하고 싶은 건?
여행가고 싶다. 지치거나 뭔가를 꾸역꾸역 채웠다는 느낌이 들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돌아다니고 싶진 않고 안전하게 머물만한 낯선 곳을 찾아가고 싶다.
(ELLE KOREA 2014 3월호 NO.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