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림을 지키기 위해 당장 자금이 필요한 만화가 정배(이선균), 성인잡지의 칼럼을 대필하며 푼돈을 버는 실업자인 탓에 동생의 집에 얹혀 사는 다림(최강희)은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성인만화 글로벌 프로젝트 공모전을 위해 손을 잡는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티격태격하던 남녀 사이에 점차 예기치 않았던 감정이 무르익는다. 계약적인 동료 관계가 어느새 감정적인 연인 관계로 거듭난다.
<쩨쩨한 로맨스>라는 제목의 의미는 이 두 커플이 보이는 연애양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서로에게 ‘쩨쩨’해질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연애를 겨냥한 비유에 가깝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서로에 대한 구속적 욕망이 높아지고 점차 갈등을 빚게 되는 연애의 양상이란 자연스레 쩨쩨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직접적인 물음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의심도 무언의 심통을 통해 확인하려 들기에 갈등으로 번져나갈 뿐이다. 그 과정이 거듭될 수록 진심은 휘발되어 나가고 감정은 통증으로 변모한다.
<쩨쩨한 로맨스>는 기초적으로 서로를 잘 모르던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갈등하며 위기를 건넌 뒤, 얻게 되는 관계의 성숙을 다룬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과 다를 바 없는 작품이다. 그 빤한 연애담을 품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들이 저마다 차별화된 소재를 발굴하며 관계맺기에 새로운 경로를 설정함으로써 독자적인 재미를 어필하려 들듯이 이 영화 역시도 두 사람의 빤한 관계를 수식하는 특별한 소재의 차용을 통해 개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쩨쩨한 로맨스>는 ‘성인만화’라는 소재를 통해 풋풋할 수 밖에 없는 로맨스의 출발점을 좀 더 농밀하게 치장한다.
특히 중간중간 만화의 이미지를 빌려 ‘야한’ 묘사를 끼워 넣는 아이디어가 <쩨쩨한 로맨스>에 ‘성인용’이라는 수식어를 첨가하도록 허한다. 만화적 이미지를 빌려 묘사한 에로틱한 이미지들의 액자구성 방식은 두 인물의 관계적 진전에 대한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동시에 감상자에게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영화의 형식적 측면에 주목할 만한 특이점을 불어 넣고 감상 자체를 자극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실 <쩨쩨한 로맨스>는 서사적으로 유연한 작품이 아니다. 서로 각자의 사정을 지닌 남녀가 만나 같은 지점의 목표를 합의하는 과정은 일목요연하지만 이야기투르기의 기승전결을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인상이 드는 대목도 여럿 발견된다. 긴장과 위기를 뛰어넘는 결말부 역시 영화가 벌려 놓은 이야기들을 다소 안이하게 봉합해버리는 인상을 느끼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기승전결에서 전환점을 이루는 대목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 내리기 보단 인위적으로 조작된 상황처럼 이해된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이루는, 근원적으로 배우들의 화학작용에서 비롯되는 앙상블은 <쩨쩨한 로맨스>를 구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강희와 이선균의 어울림은 이 영화에서 가장 주요한 자원이나 다름없다. 언제나 그렇듯 ‘좀 떠 있는’ 최강희가 ‘눌러주는’ 이선균과 어울리며 캐릭터의 합을 이루는 과정은 <쩨쩨한 로맨스>를 보는 관객에게 분명 쏠쏠한 재미를 안기는 지점이다. 동시에 그 주변부에 놓인 조연 캐릭터들은 두 주인공이 이루는 화학작용을 탁월하게 촉매한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배우와 캐릭터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증명하는 대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쩨쩨한 로맨스>는 이야기를 읽는 재미는 떨어지지만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