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도 최초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한강 홀로 쌓은 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거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 5월 17일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언컨대 한반도에서 맨부커상의 존재 자체를 아는 한국인은 출판 관계자를 제외한다면 굉장히
드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맨부커상이 전국적인 화제가 된 건 이 상이 정말 대단한 상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언론의 헌신적인 보도 덕분이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인들에게
맨부커상이 노벨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히는 것이라고 주지되는 순간 한강은 이미 메시아 같은
존재가 됐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문장이니라. 그런데
말입니다. 한강은 어떻게 맨부커상을 수상했을까?
한강이 수상한 맨부커상은 본래 영국의 연방국가에서 출판된 영어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이었다. 한강이 수상한 부문은 2005년에 신설된 인터내셔널 부문인데 영국의
비연방국가에서 출판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소설을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수상작을 가린다. 그러니까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변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의미다. 그리고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원작자와 번역자가 모두 수상자로 호명된다.
소설을 번역한다는 것을 그저 언어의 형태를 바꾸는 수준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언어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결과물로서 원작을 집필하는
것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평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국의 정서를 자국의 언어로 이해시키는 작업이란
점에서 번역된 소설은 제2의 창작에 가깝다. 맨부커상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사실 맨부커상을 수상하거나 말거나, 한강은 이미 뛰어난 작가였다. 그래서 한강에게 몰리는 찬사란 새삼스럽지만 이처럼 훌륭한 작가를 제대로 조명할 기회가 왔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걸리는 건 열광의 기저에 놓인 어떤 심리들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 10월 30일에 발표된 소설이다. 출간 당시엔 그 주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출판사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맨부커상 수상 직전까지 8년 7개월 동안 대략 6만권의 책이 팔렸다고 한다. 3월에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타전된 이후 4만부
이상이 판매됐으니 실질적으로 맨부커상과는 무관한 판매량은 2만권 정도인 셈이다. 해외에서 상을 타기 전후의 상황이 극명하게 갈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하루 독서시간은 6분에 불과하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이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매년마다 한국인 작가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물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활기가 될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신작소설 <종의 기원>을
발표한 작가 정유정을 인터뷰로 만났을 때 그녀는 이와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문학으론 변방국가나
다름 없는데 한강 작가가 기회를 열어준 셈이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작가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러니까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이 해외에 번역돼 있는 한국소설을 주목하게 만들거나 한국소설을 번역하고자 하는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 덕분에 독자들이 소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정유정의 말 역시 유효하다. 최근 서점가에선 전년 대비
소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소설에 대한 관심이 소설을 읽는 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얼마나 긴 지구력을 안고 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누군가가
어느 대단한 상을 수상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이 국제적으로 문학계의
변방국가로 분류된다는 것보다도 한국 안에서 문학 자체가 변방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누고 한 신문에선 '맨부커상이 K픽션의 문을 열었다'는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선 모든 분야의 앞머리에 K라는 성씨를 붙이면
해외진출이 가능하다는 미신이 생긴 것 같다. 혹은 이뤄졌다는 착시를 느끼는 것 같다. 어느 개인의 노력으로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얻겠다는 심리가 읽힌다. 사실
K픽션은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생소한 말이다. 데보라 스미스는 '소주'나 '만화'를 '코리안 보드카'나 '코리안 망가'로 표현하자는
편집자의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한 국가의 문화를 다른 국가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 대목에서 ‘K픽션’은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라고 명명하는 행위와 유사하게 보이지 않는가? 실체가
없는 K픽션은 과연 한국문학을 대변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영국소설을 E픽션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럴 리가.
어쨌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대단한 성취다. 게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라는 점에서도 이는 분명 대단한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맨부커상 수상이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은 한강의 또 다른 수작 소설 <소년이 온다>를 더불어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날은 5월 17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시작했다.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 드린다." 그리고 다음날 잠에서 깬 한국에서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어느 뉴스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한국 문학의 쾌거."
그렇게 한국은 한강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얻게 됐다. 진정한 한강의 기적이다.
말해주고 싶었다. 읽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출판사는 팟캐스트를 열었다. 거기 독자가 있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진행하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영화가 아니라 책에 관한 팟캐스트다. 소설가 김중혁 작가가 항상 고정 게스트로서 옆자리를 지킨다. 평론가와
작가가 진행하는 책에 관한 방송이라고 하니 진지하고 엄숙할 것만 같지만 유쾌하고 엉뚱한 만담이 귀를 잡아 끈다.
본질적으론 책에 대한 성실한 탐구와 지적인 관점과 뚜렷한 성찰이 마음을 붙잡는다. 2년
전에 시작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스타 평론가와
인기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고, 2년 동안 전체 팟캐스트 순위에서 상위권을
지켜왔다. 인기를 모으는 대부분의 팟캐스트가 시사나 정치, 섹스에
대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을 상기했을 땐 놀라운 선전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라는 사실이다.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출판사는 위즈덤하우스뿐만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하는 ‘문학동네’의 <문학이야기>, 소설가 황정은과 김두식 교수가 진행하는
‘창작과 비평’의 <라디오
책다방>이 대표적이다. 출판사가 팟캐스트를 기획하는
상황을 보도하는 다수의 언론에선 출판 시장의 불황으로 인한 현상과 연관해서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일까. 만약 출판 시장의 불황을 타파하기 위한
의도를 앞장세운 기획이었다면 어떻게든 해당 출판사의 도서를 홍보하는 마케팅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선 언젠가부터 자사 출판사의 도서를
홍보하는 광고성 코너를 짧게 삽입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진 출판사와의 연관성에 대한 어떠한 암시조차 없었기 때문에 출판사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임을
모르고 듣는 청취자도 많았다. 게다가 90회 이상을 업로드한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위즈덤하우스의 도서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건 윤태호 작가의 <미생>뿐이다. 그렇다면 위즈덤하우스에선 대체 왜 팟캐스트를 운영한 것일까.
“출판시장이
많이 축소됐지만 아직도 독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질의 책을 가이드해줄 수 있는 경로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사실 방송을 비롯한 기존의 매체가 지닌 영향력이 줄어들고 책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독자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데 팟캐스트 청취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서 새로운 형태의 매체에서
책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도 있었다. 아마 다른 출판사들도 비슷한 의도에서 팟캐스트를 기획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기획한
위즈덤하우스의 김은주 분사장의 말이다. 한 달에 두 번 업로드되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매주마다 나름의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어울리는 책을
소개한다. 신작보다도 구작이 대부분이다. 진행자인 이동진이
선정하는 도서들이 그 대상이 된다. 위즈덤하우스는 그저 멍석만 깔았다.
완벽하게 진행자의 역량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이는 앞에서 소개한 다른 팟캐스트도
마찬가지다. 신형철이 진행하는 <문학이야기>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해설과 철학적 접근에 집중하고자 하는 진행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존중한다. 어지간한 농담이나 유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성을 염두에
둔 기획이라고 말할 여지조차 없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역시 대단한 야심에서 출발한 기획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질의
정보’를 생산해내겠다는 의도는 존재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진행자의 섭외가 관건이었다. 그 자체로 브랜드일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인지도 있는 평론가와 작가가 팟캐스트를 통해 책을 말하게 된 건 그래서다. 이는
기성 미디어에선 시도하기 힘든 기획이었다. 책이라는 컨텐츠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 책을 소재로 한 양질의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저조한 야심한 시간에 편성되기 일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청취가 가능한 팟캐스트는
출판사 입장에선 매력적인 플랫폼일수밖에 없다.
“아마 책이 잘 팔리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출판계의 위기를 고려한 돌파구일수도 있지만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심리가 작동했다고 본다.” 교보문고 콘텐츠 사업팀의 윤태진 PD의 말이다. 그는 올해 초 소설가 정이현과 문학평론가 허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낭만서점>을 기획했다. 대형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라지만
역시 진행자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건 앞서 소개한 출판사의 팟캐스트와 유사하다. 다만 서점이라는 광장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메리트가 있다. 서점은 본래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책의 광장이다. 북콘서트라던지, 낭독회 등의 도서 관련 행사가 서점에서 열리는 건
본래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명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이란 형식성을 생각했을 때 교보문고라는 광장의
활용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타이틀 자체로 브랜드가 된 <이동진의
빨간 책방> 또한 광장을 얻었다. 상수동에 생긴 카페
‘빨간 책방’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운영하지만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위한 공간이다. 이동진이 팟캐스트에서 선정해 소개한 책들을 판매하기도 하고, 팟캐스트
녹음 혹은 공개방송을 위한 광장 노릇을 한다. 2주년을 기념하는 공개방송 당시엔 50개의 객석이 가득 채워졌다. 온라인에서 확인한 인지도를 오프라인을
통해서 확신하게 된다. 적극적인 출판사만큼이나 적극적인 독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지난 8월에 오픈한 웹사이트 ‘소설리스트’는 소설가 김중혁과 김연수, 서평가 금정연 등이 운영하는, 소설 전문 매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신간에 묻혀 사라지는 좋은 소설을 발굴하자는 취지를 안고 문을 열었다. 영화에 별점을 매기듯 문학에 별점을 매긴다. 소설가가 직접 소설을
평한다. 새로운 시도다. 시기적절한 기획이다. 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론을 통해서 기대 이상의 대중성을 확보한 팟캐스트의 성과는 분명 출판사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고무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새로운 바람이다.
물론
‘불황’이란 단어를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기류를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시도는 존재해야 한다. 팟캐스트는
출판계의 새로운 날개다. 디지털식 방법론이 아날로그 시장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상적인 조합이다.
문자의 발전에 기여한 건 종이와 활자였다. 궁극적으로 종이와 활자의 발명은 책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책의 출판은 결국 문자의 보급을 의미한다. 언어가 기록되고 유통됐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는 대신 읽었다. 수많은 정보들이 귀가 아닌 눈을 통해 입력되고 입이 아닌 손을 통해 출력됐다. 기독교의 전세계적 확산이 가능했던 것도 문자의 보급 덕분이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성서가 출간되고 보급될 수 없었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언어와 달리 문자의 수명은 길다. 보존이 가능하다. 책은 언어를 축적하는 창고다. 종이로 구성된 칸마다 언어를 차곡차곡 쌓아 넣는다. 강산이 변하는 10년 동안 기록된 언어는 파기되지 않는 이상 변치 않는다. 역사와 문학, 종교, 과학, 모든 언어들이 종이를 타고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파된다. 언어의 유람은 책을 통해 가능해졌다.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미국 경제학자의 전문서를 대한민국에 앉아서 볼 수 있다. 책은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다. 그 다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불황의 그림자가 서점가에 드리운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 텍스트가 흔들린다.
출판
출판을 하기 위해선 저자가 필요하다. 출판사와 저자의 접촉은 쌍방향의 형태로 이뤄진다. 저자가 출판사에 접촉하기도 하고, 출판사가 작가에게 글을 의뢰하기도 한다. 작가의 이름값에 출판사가 움직이기도 있다. 기획되는 책의 방향에 따라 작가가 선정되기도 한다. 원고의 수급형태도 다르다. 일정금액을 저자에게 지급하고 원고의 판권을 출판사에서 사들이는 매절이 있고, 책값의 일정 퍼센트(%)를 판매실적만큼 챙겨가는 인세가 있다. 선택에 따른 대가가 다르다. 판매량이 어느 정도 기대되는 작가라면 후자가 유리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돈방석에 앉게 된다.
편집자, 즉 에디터(editor)는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출판 배포하는 단계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에디터는 출판사의 자산과 같다. 저자와 출판사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책의 기획을 총괄하는 전략가다. 에디터의 역량이 책의 가능성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텍스트로 채워진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는 창조적 기획자다. 저자, 즉 라이터(writer)가 1차 생산자라면 에디터는 2차 생산자다. 디자인과 교정과 같은 후반작업을 외주 프리랜서에게 맡겨도 편집자를 내부직원으로 채용하는 건 그런 중요성 때문이다. 에디터는 책의 프로듀서다. 기획부터 인쇄, 납본의 단계까지 에디터가 함께 한다.
불황
최근 한 메이저 출판사는 에디터 전직원을 비정규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다들 황당해 했지만 상황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인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시장의 여건을 알기에 목소리를 낼만한 여력이 없었다.”이에 관계된 한 에디터의 말이 시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경제난에 따른 정리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으로 에디터를 고용하는 임프린트 방식은 대형출판사를 중심으로 업계 내의 추세가 되고 있다. 능력적 성과에 따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창의적인 기획의 경쟁을 통해 우월한 컨텐츠를 아웃소싱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셈이다. 일종의 성과급 계약에 가깝다. 고용자라기 보단 하청업체에 가깝다. 갑과 을의 관계다. 에디터 군마다 제작비용을 책정하고, 기획 방향을 건의한다. 책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가격경쟁이 시작되고 시장 상황에 대한 예지력이 요구된다. 시장상황이 악화될수록 기획 경향도 보폭을 줄이기 마련이다. 창조적인 마인드보단 실리적인 시야확보가 요청된다. 가능성 있는 모험보단 안정적인 적응력이 우선시된다. 시장의 위축과 함께 문자의 가능성도 위축된다.
대한민국 서점 1번지라 할 수 있는 교보문고의 발표에 따르면 2003년부터 작년까지 해마다 평균 18%가량씩 증가했던 입고 도서 수가 올해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15.2%가 감소했다. 시중에 출판되는 도서의 수가 현격하게 줄었다. 출판사들은 경제위기와 함께 최대한 몸을 사리는 중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심상찮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종이값이 50%가까이 올랐다. 인쇄와 제본에 들어가는 비용도 마찬가지다. 현정권의 고환율 정책이 금융위기를 뒤집어 쓰면서 이례적인 환율 폭등까지 맞이했다. 덕분에 외국작가들에 대한 로열티 부담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소비자 심리마저 위축됐다. 한국출판연구소에서 국내 출판사 188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 출판업계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무려 73% 가까이 감소된 것으로 집계된다. 도서판매량의 감소는 신작의 출간기회를 저하시켰다. 최대한 상업적으로 검증된 컨텐츠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극단적인 긴축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심지어 책 한 권 내지 않는 출판사도 생겼다. 모험을 하기보단 상태유지라도 해야겠다는 심산이다. 책을 찍어내는 자금이라도 최대한 아껴서 시간을 벌고 있다. 집안의 가구를 뜯어다가 불을 때고 있다. 얼어붙은 시장엔 좀처럼 자금이 돌지 않았다. 총알이 부족하니 공격력이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자본의 위기가 출판의 위기를 부채질했다. 모회사가 미국에 있는 한 국내 메이저 출판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 매매 의사가 전혀 없어 그냥 방치 중이라는 소문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매년마다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던 출판의 위기란 말이 더욱 실감난다. 회복될 기미 없이 돌고 돌던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2008년 도서시장은 병세가 최악이었다. 영세한 동네서점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음반 시장이 그랬듯 도서 시장도 다를 게 없다. 이젠 지방 군소 서점들의 차례다. IMF외환위기 당시, 보문당이나 종로서적과 같은 업계 최고를 다투던 거대 도매상과 서점이 도산을 맞이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양상의 차이는 있다. 외환위기 당시의 도산은 업계를 이끌던 거대 도매상의 몰락이 지방까지 확산된 것이라면 현재 경제위기 속에서 지방 도소매상이 어려움을 겪는 건 파이의 문제다. 전자가 도소매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과부하라면 후자는 파이의 상실에 따른 아사에 가깝다. 책이 팔리지 않는데 서점이 버틸 수 없는 노릇이다. 올해 부산의 대형서점 몇 곳이 문을 닫았다. 판매실적은 저하되고 이윤은 그만큼 낮아지는데 유지비는 나날이 오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동
온라인 서점은 오래 전부터 시장을 장악해왔다. 유형의 시장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무형의 시장이 파이를 확장해왔다. 특히 큰 폭의 할인율을 통한 공격적 방식으로 고객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매년마다 30~4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출판계의 불황 가운데서도 승전을 거듭했다. 거대한 매장이 필요 없고, 그만큼 인건비의 부담이 덜한 인터넷 서점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했다. 온라인 시장이 권력을 잡았다. 인터파크나 예스24와 같은 온라인 서점이 도서 마케팅의 새로운 고지가 됐다. 온라인 판매 순위 상위권을 쟁탈하기 위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이 온라인 서점 몇 곳에 책정됐다. 광고가 집중되고 판촉을 위한 이벤트가 동원됐다. 대형할인마트가 경쟁하듯 최저가가격을 통한 견제가 심화됐다.
단행본 판매 시장 규모는 대략 2조 5천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온라인 서점 상위 5곳의 매출액은 1조원에 이른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판매성과를 무기로 출판사에 덤핑 요구를 해오기도 한다. 온라인 서점은 하나같이 최저가를 영업의 기치로 내건다. 오프라인에 대한 경쟁력을 상대적인 가격 정책에서 찾았다.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된다. 구입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고액의 경품을 제공한다. 도서의 단가가 내려가고, 이벤트가 활성화될수록 온라인 서점의 파이는 커진다. 하지만 단가의 하락은 출판사의 마진을 떨어뜨렸다. 온라인 소매상이 부유해지는 반면, 저작자와 출판자는 마이너스를 감수한다. 책값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서슴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 시장 상황이 아쉽기 때문에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 있다.”한 중견 출판사의 마케터가 말했다. 덫에 걸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서점은 오프라인의 불황을 견제할만한 대안이었다. 갑을 관계가 역전됐다.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이 책의 흥망을 좌우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시장의 형세가 완연히 달라졌다. 오프라인 시장이 몰락을 거듭하는 사이 온라인 시장은 새로운 대세로 한 축을 차지했다. 비단 온라인 서점뿐만이 아니다. 대형 포털사이트도 공룡이 됐다. 온라인 시장은 단지 판매와 선전을 위한 선택적 방편이 아니라 일차적 포석이 됐다. 마케팅의 포화가 온라인에 집중된다. 대형출판사들은 대규모 자본을 소모하며 책을 판다.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많을수록 잘 팔리는 책이 된다. 온라인 서점의 초기화면에서 소개되는 책은 그렇지 못한 책에 비해 판매부수가 뛰었다. 특히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책은 삽시간에 판매량이 급증했다. 방송에 출연한 몇몇 작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차지했다. 물론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외수나 황석영은 원래부터 유명한 작가였다. 이미 일정한 판매량이 기대되는 작가였다. 하지만 방송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외수의 ‘하악하악’은 올해 도서판매량 2위에 올랐다. 이외수는 유명작가에서 완전한 스타로 거듭났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역시 방송 이후 베스트셀러 순위가 19위에서 1위로 수직 상승한 뒤 2주간 정상을 지켰다. 작가가 이슈의 중심에 서니 날개 돋친 듯 책이 팔려나갔다.
검증
올해 전체적인 도서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 한국문학을 위시한 소설의 판매가 늘었다. 지난 몇 년 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했던 자기계발서나 재테크 관련서적이 경제불황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빈자리를 메운 건 문학도서와 경제서적이었다. 몇 년간 침체됐던 문학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몇몇 작가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책으로 출간되기 전 네이버를 통해 먼저 선보였다. 포털사이트에서 소설이 연재된다. 이미 작년 박범신의 ‘촐라체’를 연재하며 주목 받았던 네이버가 다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을 예전과 같이 블로그 형식으로 연재했다. 블로그의 방문자 수는 200만 명이 넘었다. 네이버가 블로그 형태로 작가의 개인적인 공간을 마련했다면 다음은 좀 더 적극적인 포지셔닝을 구축했다. ‘문학 속 세상’이라는 섹션을 할애하며 공지영의 ‘도가니’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를 연재 중이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협업까지 도모했다. 시인 함민복의 에세이가 준비 중이며 한국대표시인 70명의 시를 연재한다. 그 밖에 교보문고나 예스24같은 온라인 서점의 블로그를 통해 정이현과 박민규, 백영옥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다.
과거에도 하이텔이나 천리안 같은 PC통신에 글을 연재하며 인기를 끌던 작가들의 작품이 책으로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전례는 있었다. 특히 이우혁의 ‘퇴마록’은 PC통신 연재 당시 클릭수가 무려 2억 3천만 번을 넘었을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후에 책으로 출간된 뒤에도 큰 인기가 지속됐다. 하이틴 소설로 10대들의 인기를 얻은 귀여니도 경우는 다르지만 비슷한 케이스다. 이름없는 신진작가들을 배출하고 장르문학과 같은 특수한 분야의 창작력이 빛을 보던 과거와 현재는 양상이 다르다. 최근 온라인 소설에는 기성 문단의 유명 작가들이 포진했다. 본격문학이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고 있다. 마치 과거 일간지 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것과 유사하다. 지면에서 상실된 소설의 영토가 웹에서 복구되고 있다. 소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소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젊은 세대에게 기성문단의 인터넷 연재는 신선한 자극이 됐다. 박범신의 ‘촐라체’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연재된 후, 각각 출판을 거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온라인 연재를 통한 텍스트의 가능성이 검증됐다. 특히 온라인의 연재는 독자와 저자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블로그에 연재되고 포털사이트 메인에 전시되면 하루에도 수 만개의 댓글이 달리곤 한다. 반응이 삽시간에 확인된다.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한 황석영의 블로그는 방문자수가 2백만 명을 넘겼다. 현재 ‘개밥바라기별’의 판매부수는 35만 부를 돌파했다. 온라인의 인기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랠리포인트가 생겼다. 다음이 발 빠르게 ‘문학 속 세상’이란 섹션을 신설해 작가를 섭외하고 소설을 연재했다. 시장이 검증된 만큼 지체할 이유가 없다. 출판의 위기도 이에 기여했다. 도서시장의 경직은 기성문단의 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추어를 위한 기회의 장이 됐던 과거와 달리 프로들의 새로운 영토가 개척됐다. 온라인은 그들에게 약속의 땅이다.
과거 온라인 소설이 검증되지 못한 작가들의 도전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현재 온라인 소설은 검증된 작가들을 모시기 좋은 공간이다. 소설보다도 먼저 작가가 보인다. 익명성에서 비롯된 새로운 얼굴이 발굴될 기회보단 익숙한 얼굴의 안정성이 추구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문학에 대한 관심을 유명작가들의 작품으로부터 발생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존재한다. 문학을 독자에게 소개시킬 수 있는 채널이 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대형 작가 몇 명의 성적을 토대로 거대한 성과를 자랑하기는 이르다.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가 가중된다. 일부 작가에게 기회가 편중될 가능성이 짙어진다. 불황 속에서 검증되지 못한 문장에 기회를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한번이라도 얼굴이나 이름이 팔린 작가일수록 홍보도 쉽다. 문학이 자본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자본에 의해 텍스트의 가치가 검열당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이 늘어나는 추세다. 2005년 국내 개정판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최근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한 덕분이다. 새로운 표지가 제작됐다. 영화 포스터가 책 표지에 옮겨졌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비롯해 최근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된 작품들도 관심을 얻었다. 원작의 인기가 높을수록 각색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상승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올해 개봉했던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은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인 이지형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였다. 이 작품은 영화의 개봉과 함께 영화와 같은 ‘모던보이’란 제목을 달고 재 출간됐다. 영화를 통해 원작소설이 주목 받았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이 활발하다. 마케팅의 전술도 그에 발맞춰 나아간다. 최근엔 영화나 드라마를 위한 판권으로 팔기 위한 소설을 기획하는 형태도 많아졌다. 맞춤형 문장들이 기회를 노린다.
생존
관심을 얻지 못한 책들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반품되는 추세다. 시장의 악화와 함께 시장 맞춤형 기획이 도모된다. 팔릴만한 기획들만 살아남아 시장으로 나온다. 대형출판사로 자본이 몰리고 거액의 마케팅이 동원되어 베스트셀러가 이뤄진다. 마진이 오르는 만큼 판매부수에 간절해진다. 2008년, 온라인 서점의 성장률은 10%대에 그쳤다. 시장의 불황이 이만큼 극심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례일지도 모르지만 온라인 서점에 몰리던 과열이 누그러진 결과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입고되는 신간의 양이 줄면서 광고와 매출이 동반 감소했다. 그에 따라 베스트셀러와 함께 스테디셀러의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새로운 활자의 공백을 묵은 활자로 대체하고 있다. 반값으로 세일을 해서라도 마진을 채우려 한다. 팔리지 못한 책들이 헐값에 넘어간다. 유효기간이 지난 물건처럼 텍스트들이 도매금으로 팔려간다.
유명 작가들은 온라인에 글을 게재한 뒤, 오프라인으로 활자를 옮긴다. 텍스트의 고유 공간이 사라진다. 종이가 아닌 모니터로 텍스트를 소비한다. 소설마저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온 마당에 더 이상 문자와 종이는 천생연분이 아니다. 문자는 새로운 동거인을 만났다. 신문과 잡지는 일찌감치 온라인에 주도를 뺏겼다. 실시간으로 정보가 넘쳐나는 온라인에서 활자는 찰나처럼 밀려오고 밀려나간다. 중요성과 상관없이 모든 정보가 천원샵의 물건처럼 동일하게 진열된다. 버라이어티 쇼의 자막들은 웃음을 활성화시킨다. 단순히 상황을 설명하는 첨언이 아니라 상황에 개입해 감정을 양성하는 시각적 효과를 거둔다. 텍스트를 브라운관에 디자인한다. 문자는 더 이상 가지런히 행과 열을 맞춘 문장처럼 차분히 머무르지 않는다. 웃음을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덕지덕지 붙어서 나열된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다. 글을 쓰는 사람은 늘었지만 책의 소비는 줄었다. 문자를 만드는 사람은 많은데 문자를 읽는 사람은 드물다. 찰나를 위한 텍스트들이 쏟아지고 또 사라진다. 영원을 위한 텍스트들이 살아남지 못한다. 인터넷도 언어를 보관한다. 하지만 그 방대한 가상 공간 속엔 안정감이 없다. 언어를 음미할 시간이 부족하다. 스크롤의 압박이 심하다.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세상이 책을 기피하게 만든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할 수록 책과 멀어진다. 초등학교부터 입시준비에 매달리는 아이들이나 과업과 철야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의 세상에서 텍스트의 간격을 음미하라 권하긴 힘든 노릇이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책을 권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이 각박하다. 사람들의 마음이 차가워진다. 문장의 감성은 다른 세상의 언어 같다. 인터넷 뉴스의 신랄한 악플이 차라리 이 시대의 솔직한 언어가 됐다. 텍스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거를 시작했지만 정작 사람들은 한 손으로 텍스트를 소비한다. 클릭만 할 뿐,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살아남은 텍스트들이 앙상하게 말라간다. 알게 모르게 위기로 흘러간다.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텍스트가 살아남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