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작가 욘 A. 린드크비스트의 동명원작을 영화화한 매트 리브스의 <렛미인>은 이에 앞서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바 있는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 미 인>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홍보에 따르면) <렛미인>은 <렛 미 인>의 리메이크작이 아닌, 동일한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렛미인>은 분명 <렛 미 인>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는, 비교군의 운명을 타고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스웨덴의 적막한 설원을 배경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페이소스와 은밀하게 새어 나오는 서스펜스가 공존하는 <렛 미 인>은 한 소년의 성장드라마이자 잔혹한 멜로이며 특이한 기질을 자랑하는 장르물이기도 하다. <렛미인> 역시 이런 범주의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장르적 특성에 보다 접근한 결과물이라 말할 수는 있지만 매트 리브스의 <렛미인>은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 미 인>으로부터 크게 차별화된 이미지를 그리려 노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되레 잔혹한 결말부는 원작보다도 스웨덴 버전의 작품으로부터 얻은 영향력을 감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렛미인>은 <렛 미 인>과 분명히 다른 작품이다. 스웨덴을 배경으로 둔 <렛 미 인>의 정적인 감수성은 뉴멕시코를 배경으로 둔 <렛미인>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두 정서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렛 미 인>이 반투명한 유리 너머의 이미지와 같이 불투명한 감정을 매개로 신비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라면 <렛미인>은 보다 뚜렷한 단선을 지닌 채 보다 감정을 위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보다 확실한 점을 찍어내는 영화에 가깝다.
이는 어린 배우들의 표현력과 기시감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감상자가 얻을 수 있는 간접적인 정보의 수집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감상을 완성해가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동원함으로써 영화의 의도를 보다 단단하게 전달한다. 이는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해석적 차이를 좁히고 이를 통해 보다 확실한 형태의 감정으로 관객을 지배한다. 결과적으로 <렛 미 인>의 기준에서 <렛미인>은 보다 친절한 영화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협소한 결과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렛미인>을 보다 폄하하게 만드는 요소로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렛미인>은 나름의 성취를 품은 영화다. 무엇보다도 뉴멕시코를 배경으로 둔 <렛미인>은 <렛 미 인>에 비해 보다 정치적인 텍스트를 삽입하고 있다. <렛 미 인>이 감수성과 연동되는 이미지의 활용이 돋보이는 영화였던 것과 달리 <렛미인>은 보다 직설적으로 풍경 자체를 시대적 배경과 연동하며 영화의 해석적 방향성을 변화시킨다. 도입부부터 레이건의 연설을 비추고 이를 중간중간 삽입해나가는 모습은 <렛미인>이 서정적인 뱀파이어물로서의 특이성에서 벗어나 간접적인 정치적 메타포를 웅변하는 작품이란 사실을 예감하게 만든다. 물론 서사적 나열의 차이는 두 영화에서 가장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리감일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두 영화의 정서적 차이에 한 몫을 거드는 요인이다. 특히 뱀파이어 소녀 애비를 연기하는 클로이 모레츠는 소녀와 여인의 경계를 오가듯 성숙한 감정을 전달하며 영화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다. 이 역시도 스웨덴 버전과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결과인데, <렛 미 인>의 감정적 중심이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에게 놓인 영화였다면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 애비에게 보다 많은 감정적 이입을 하게 되는 영화다. 이는 캐릭터로부터 드러나는 집중력의 차이에서 기인된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렛미인>은 <렛 미 인>과 많이 다른 영화는 아니지만 두 영화의 차이는 분명 유효하다. 그리고 두 작품은 감상의 고지를 선점한 작품을 뛰어넘을 만큼의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차기작을 완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가를 체감하게 만드는 좋은 비교군이기도 하다.
<렛미인>을 통해 굳이 <렛 미 인>과의 우월성을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렛미인>은 <렛 미 인>만큼이나 나름의 결정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다만 토마스 알프레드슨에 앞서서 매트 리브스의 <렛미인>을 먼저 봤다면, 혹은 이 영화가 보다 앞서서 제작됐다면 감상은 얼마나 달라졌을지에 대한 의문은 어쩔 수 없겠지만.
칼을 빼든 소년은 허공을 위협한다. 그곳엔 대상이 없다. 소년은 강해지고 싶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허공을 대상으로 협박해봐야 증명되는 것은 없다. 사실 소년은 매일같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다. 소년의 칼은 소년의 두려움을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도구다. 소년은 낮마다 괴롭힘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홀로 윽박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옆집에 누군가가 이사 온다. 창문을 가린 방이 특이하다. 어느 밤, 소년은 또 한번 나무를 상대로 칼을 뽑아 들고 위협을 시작한다. 인기척을 알 수 없게 소년의 등뒤에서 나타난 소녀가 소년의 행동을 기이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소년, 소녀를 만나다.
<렛 미 인>은, 궁극적으로 원제인 ‘Let the right one in’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소녀를 초대하는 주문이다. 이는 영화를 본다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말 그대로의 감정적 의미다. 소녀가 소년에게 듣고픈, 혹은 소년이 소녀에게 전하고픈 진심의 언어다. 그것은 투명하게, 때론 창백하게 느껴지는 스크린의 중의적 질감과 무관하지 않다. 눈빛에 반사된 자연광처럼 투명한 광량을 보존하던 스크린은 때때로 핏기 없이 창백한 안색처럼 질겁한 인상으로 돌변하곤 한다. <렛 미 인>은 단순히 정의하자면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과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의 플라토닉 러브 스토리다. 그러나 맥락의 평면성은 특별한 장치적 소재 하나로 입체적 양상을 띤다. 동심에서 비롯된 순수한 로맨스는 귀엽고 천진난만하지만 그 관계의 배후엔 경악할만한 비밀이 숨어 있다.
그 비밀이란 이엘리 스스로의 말처럼 그녀가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란 점에 있다. 다시 한번 이엘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녀는 낮에 죽어있고, 밤에 살아나는 존재, 즉 뱀파이어다.-스포일러라고 판단하지 말 것. 어차피 영화는 이런 정보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이미 이 정도의 정보는 이 영화의 홍보상에서 배포되는 실정이다.- 그녀의 존재는 <렛 미 인>에서 역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호러 장르의 제스처를 안고 간다는 점을 암시하게 만드는데 그에 따라 영화상에서도 잔혹한 방식의 호러적 장면들이 연출되거나 등장하곤 한다. 또한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소년과 소녀의 러브스토리의 지속적 한계를 예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감정을 자극한다.
이 영화는 기이한 방식으로 양면성을 획득한다. 별개의 지점에 놓인 두 감정을 관객에게 성공적으로 소통시킨다. 동시에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스웨덴의 평화롭고 적막한 풍광이다. 다소 이색적이긴 하나 끔찍한 상황에서는 항상 기이하게도 유머가 발생한다. 풍경에서 발생하는 역설적 태도가 부자연스러운 인물의 태도와 함께 기이한 슬랩스틱을 발생시킨다. 자연이 잘 보존된 그곳의 평화로운 풍경은 한없이 너그럽지만 한편으로 그 적막함이 모종의 살인을 기획하기 좋은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장소에 대한 모순이 공포와 유희를 동시에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투명한 채광이 창백하게 돌변할 때 정서적인 긴장감만큼이나 어떤 적막한 고립감이 동시에 발생한다. 그 적막한 풍경 속에 홀로 선 오스칼의 모습도 외롭기 짝이 없다. 심지어 친구들이 소변기에 버린 바지를 봉지에 주워담고 체육복 반바지를 입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엔 한겨울의 한기만큼이나 외로움이 담담하게 서린다. 오스칼은 친구가 없는 외로운 소년이다.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동병상련의 상대이자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은신처다. 처지가 비슷한 건 이엘리도 마찬가지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갈망한다.
오스칼이 어떤 괴로움을 겪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소년에게 세상은 무심하고 창백한 곳이다. 이엘리와 오스칼은 서로에게 일종의 구원이자 은총이다.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자 절대적인 신뢰가 가능한 상대다. 그 은밀한 연대는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감정을 투명하게 보존한다. <렛 미 인>은 초자연적인 소재를 통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러브 스토리를 황홀하게 완성한다. 간혹 무덤덤하게 접근하는 긴장감에 심박이 뛰지만 <렛 미 인>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동심이 진지하게 반짝이는 애틋한 멜로다. 괴로움이 직면한 낮에 창백하기만 하던 소년은 소녀가 살아나는 밤을 기다리며 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사랑은 소년을 한 뼘 성장시키고 소녀를 살아가게 만든다. 소년의 밤은 누군가의 낮보다 아름답다. 그 밤엔 소년이 사랑하는 소녀가 있으므로, 소년은 빛난다. 무엇보다도 <렛 미 인>은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깃든 악의적 관성을 천진난만하게 막아선다. 비범한 재능으로 완성된 판타스틱한 러브스토리는 실로 경악할만한 로맨스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