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가 나타났다. 여고 앞이 아니라 TV에서. 응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어차피 당신도 변태니까.
JTBC의 <마녀사냥>에 특별 게스트로 배우 정경호가 출연했다. 좋아하는 할리우드 배우를 이야기하던 중 정경호가 “줄리아 로버츠”라고 답하자 신동엽이 다시 물었다. “입 큰 여자 좋아하나 봐요?” 정경호가 답했다. “예.” 그러자 음흉한 표정으로 신동엽이 말했다. “은근히 크다고 자랑하네.”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정경호를 제외하고 스튜디오의 모든 이들은 파안대소했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은 정관장 혹은 산수유 같은 존재다.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선다. 이미 <SNL 코리아>에서 절정의 ‘섹드립’을 선보이며 변태적인 유머 코드를 대중적으로 삽입하는데 성공한 신동엽이였다. 이영돈 PD의 유명한 멘트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를 음담패설처럼 비틀어버리는 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다. <SNL 코리아>가 신동엽의 출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신동엽의 존재감이 <SNL 코리아>의 ‘섹드립’ 본능을 일깨우고 프로그램의 ‘성’ 정체성마저 각성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사실 <마녀사냥>은 <SNL 코리아>와 같이 섹스를 마음껏 희화화하는 성격의 콩트 프로그램이 아니다. <마녀사냥>은 섹스에 대한 솔직하고 자유로운 담론을 펼치는, 음담패설을 겸비한 토크쇼에 가깝다. 같은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두 프로그램에 신동엽이 발을 걸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렇다. 섹스라는 주제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눙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빛을 보는 캐릭터들도 생겨나고 있다. 일찍이 ‘감성변태’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희열은 <SNL 코리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고,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의 섹드립을 발군의 만담으로 이끌어내는 성시경의 솔직한 입담은 그야말로 재발견이다.
‘변태’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섹스 어필한 소재가 예능의 저변으로 확대된다는 건 섹스를 저속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섹스를 하면서도 누구도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섹스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과 암술로 꽃가루라도 교환해서 번식하는 종족처럼 행세한다. 공공장소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했다가는 고해성사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섹스라는 단어를 단순히 야한 것이고 저속한 행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하다. 올해 처음으로 집행된 콘돔 광고에 대한 갑론을박은 밑바닥에 놓여있던 이런 의식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이들도 보는 TV에서 콘돔 광고를 하면서 섹스를 조장하는 것이냐’라는 반대 여론과 ‘오히려 감출수록 부작용이 더 크다’는 찬성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콘돔만 있으면 섹스가 가능하나? 콘돔이랑 섹스한다는 말인가? 콘돔 광고가 섹스를 조장하는 것이라면 냄비 광고도 비만 환자가 급증에 일조하고 있다는, 맥주잔이 음주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논쟁 자체는 긍정적이다. 누구나 섹스한다. 콘돔도 쓰고, 피임도 한다. 콘돔도 피임약도 소비재다. 소비를 촉진하고자 광고를 집행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21세기가 돼서야 광고가 집행된 건 콘돔의 소비가 민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섹스는 건강한 행위다. 건강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섹스를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부재한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는 순진한 질문에 당장 상세한 브리핑을 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평생 속이며 산다는 건 문제다. 만약 청소년들의 성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면? 농담이 아니다. 지난 해 성폭력상담소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성문화를 접하는 경로의 1순위가 인터넷이란 조사결과가 나왔다. 역시 인터넷 강국이다. 훗날 섹스를 인터넷으로 다운 받은 포르노로 배웠다는 자식의 고백을 듣기라도 한다면 기분 좋을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섹스에 대한 의식이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도 건강할 수 없다. 콘돔 광고가 성관계를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어떤 기성세대들의 주장은 인터넷으로 성문화를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대다수라는 설문조사 결과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변태적인 유희의 소비는 차라리 좋은 변화다. 우리가 금기시했던 편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다. 남들이 들을까 무서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를 테면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와, 손을 잡고 다니든, 부비부비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광장에서 섹스를 하면 범죄다. 하지만 섹스는 침실에서 일어나는 사생활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당사자만의 문제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섹스를 말해도 되듯이 동성애도 말할 수 있다. 남녀가 손잡고 걷듯이 ‘남남’이 손잡고 걸을 수 있다. 당사자들에게 일말의 지분도 없는 이들이 참견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기회다. 갈등이나 충돌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날 수 없다면 어떠한 변화 자체도 존재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불경한 짓이냐고 기도하고 불공을 드리거나 말거나 이건 대단히 건강한 변화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국 섹스한다. 하지만 섹스를 ‘말하면’ 변태가 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 사회에선 모두가 변태다. 그러니 솔직해져야 한다. 우린 변태가 아니라 그 섹스로 잉태된 존재니까. 자기 존재의 근원을 부끄러워할 수 있겠나.
언제부턴가 케이블과 종편 채널에서 공중파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전파의 주체들은 누구인가. 궁금하다면 채널, 아니, 페이지 고정할 것.
‘빠’들의 힘, <SNL 코리아>
TVN의 <SNL 코리아>는 미국의 간판 라이브쇼 <SNL>의 한국 버전이다. 안상휘 CP가 <SNL>의 국내 도입을 건의했고 일단 8회 정도를 해보고 판단하자는 내부 의견을 얻었다. “1회가 별로였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다. 1회 호스트였던 김주혁이 잘해줘서 할만해졌다.” 안상휘 CP에 따르면 시즌1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호스트에 따라서 기복이 심했다. 시즌 2의 양동근 편부터 감을 잡았다. 19금 개그를 본격적으로 건드리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신동엽의 호스트 출연은 <SNL 코리아>의 뇌관을 건드렸다. 잠재력이 폭발했다. 시즌 3에 신동엽을 영입한 건 <SNL 코리아>의 전후를 구분하는 신의 한 수였다. 크루들의 캐릭터가 확실해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우리 사회에서 음성화된 19금 소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능수능란하게 주무르고 과감한 정치 풍자와 위트 있는 시사 만평까지 도맡으며 파격적인 포복절도를 선사했다. 그리고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지금까지 <SNL 코리아>는 토요일 11시마다 생방송됐다.
“스튜디오 콩트를 4~5개 정도 준비하고, 야외 촬영되는 뮤직비디오도 2개 정도를 확보하고 오프닝 스테이지와 ‘위크엔드 업데이트’까지 대략 11개 코너를 정리해야 한다. 매주마다 그만한 아이디어를 짜고 대본 작업을 하며 생방송을 대비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도 한 주 내내 생방송을 준비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호스트와 크루들의 리딩과 리허설, 생방송은 토요일 하루 동안만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크루들이 스타가 된 만큼 <SNL 코리아>에만 집중해야 한다면 결국 이탈할 수밖에 없을 거다.” 크루 한 사람 한 사람이 <SNL 코리아>의 저력임을 알고 있다. 오전에 대본을 리딩하고, 점심 이후로 무대 리허설을 가진 뒤, 6시 즈음엔 실전에 가까운 ‘런 스루(Run Through)’를 통해서 모든 동선과 진행을 체크하고, 8시 반에 진짜 관객들을 대상으로 1차 공연을 한다. 이 때 안상휘 CP는 직접 객석에서 관객 반응을 체크한다. 이전까지의 리허설이 섀도우 복싱이라면 1차 공연은 최종 스파링이다. 생방송의 컨디션을 짐작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 이는 콩트의 리액션을 살피는 것인 동시에 과감한 표현이나 연기가 불쾌함으로 인식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생방송 이전의 마지막 기회다. “센 걸로 먹히면 더 센 것을 보여줘야 된다. 수위로 승부하면 안된다. 결국 아이디어로 허를 찔러야 한다.”
리딩부터 1차 공연까지 깨알 같은 대본이 수정되고 콩트의 설정도 변하며 캐릭터 자체가 뒤바뀌기도 한다. 신동엽을 위시한 크루들은 서로에게 화기애애한 ‘지적질’을 불사한다. “막내 작가와 선배 작가가 20년 차이가 나는데도 똑같이 대본을 놓고 비교한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낸다. 초기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선배 작가들이 많이 나갔다. 지금은 정착이 된 거다.” 어쩌면 그만큼 치열하다는 말이다. 좋은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분위기에선 그만큼 적극적일 수밖에. 결국 <SNL 코리아>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빠’들의 방송이란 말이다. “시작할 때부터 크루의 힘이 강한 쇼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지금의 크루 진영에 90% 이상 만족한다. 다만 캐릭터들이 확실해지다 보니까 콩트의 성격도 그 안에 갇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확고한 위치를 점한 만큼 새로운 고민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 고민이 <SNL 코리아>의 비전일 것이다. “언젠가 마지막회가 끝나면 방송에 못 나간 자료들을 모아서 <시네마 천국>처럼 상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안상휘 CP의 기약할 수 없는 바람이다.
목소리를 찾아서, <히든 싱어>
JTBC의 <히든 싱어>는 가수들이 도플갱어 같은 성대를 지닌 모창 가수들과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 가수들이 아마추어 실력자들 앞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승욱 PD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궁리하던 중 한 작가로부터 아이디어를 들었다. ‘진짜 가수와 모창 가수가 한 무대에 서면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것이 <히든 싱어>였다. 일단 연말특집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2회 정도 제작해보고 반응을 살피기로 했다. 일단 가수 섭외만큼이나 모창 출연자들을 찾는 것도 난관이었다. 모창을 잘해도 방송 무대에 적합한 실력자를 걸러내고 트레이닝까지 시켜서 무대에 올리는 건 그 자체로 강행군이었다. “사실 그 두 편 이후로 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규물 편성은 어렵고 시즌제로 진행할 순 있을 것 같았다.” 결국 1월 초에 편성이 확정됐고, 팀이 꾸려졌다. 2달 간의 준비 끝에 3월부터 시즌1이 전파를 탔다.
<히든 싱어>의 첫 번째 고민은 룰의 보완이었다. 2편의 파일럿 제작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결국 중요한 자산이었다. 1회 박정현 편에서 1라운드부터 모창 출연자를 공개했던 걸 2회 김경호 편에서 2라운드로 미뤘다. 모창 출연자들의 얼굴 공개 시점이 빠를수록 관객들의 적응력도 빨라져서 게임의 흥미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판단 떄문이었다. 시즌1 중간에는 2라운드에선 목소리를 가린 채 얼굴만 공개해서 목소리와 얼굴의 매칭에 혼선을 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시즌1 역시 섭외와의 전쟁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모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가수의 섭외도 난관이었지만 모창 가수들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건모 씨는 1월부터 예심을 했는데 섭외가 오케이된 건 4월 중순 즈음이었다. 미리 모창 출연자를 축적해놔야 했다.”
이름도 없는 프로그램인 탓에 참가자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작가들은 유투브, 음악 관련 커뮤니티의 동영상을 뒤지거나 보컬 학원이나 대학교 실용음악과로 발품을 팔며 모창의 귀재들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찾은 지원자들 가운데 1차 예심으로 8명 가량을 뽑은 뒤, 2차 예심 때 무대에 오를 5명을 확정한다. 그런데 예심 때만 해도 놀라운 실력을 자랑하던 참가자가 녹화 때 무대 위에선 극심한 긴장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진짜 실력자를 가리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중요했다. 프로 가수와 진검 승부를 벌인 준우승자들의 ‘왕중왕전’을 끝으로 시즌1을 마감한 <히든 싱어>가 남긴 아쉬움은 가수를 꺾고 1천만원의 상금을 거머쥔 모창 출연자가 없었다는 사실. “ 적어도 한 번은 나올 줄 알았는데 어렵더라. 하지만 이룰 게 있으니까 다음 시즌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시즌2는 오는 9월 무렵에 전파를 탈 계획이다.
입심의 파괴력, <썰전>
JTBC의 <썰전>은 제목 그대로 ‘썰의 전쟁’이다. 흔히 ‘썰을 푼다’고 했을 때의 그 ‘썰’ 말이다. 김수아 PD와 정다운 작가가 <썰전>을 기획했을 당시만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한주간의 이슈를 토크로 푼다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라디오 스타> 같은 정치 토크’라고 하면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김수아) 동아줄을 내려준 것은 유일하게 호감을 표한 여운혁 CP였다. 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썰전>은 빛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일단 방송 후 반응을 보자는 분위기는 <썰전>이 전파를 탄 뒤 호의적인 물살을 탔다. 예능국뿐만 아니라 보도국에서도 흥미를 보였다. 일찍이 <썰전>의 자산은 김구라였다. <라디오 스타>의 작가시절부터 김구라의 토크 감각에 익숙했던 정다운 작가는 일찍이 김구라를 위시한 토크쇼를 구상했다. 김구라가 운전대를 잡은 <썰전>을 굴려줄 단단한 바퀴가 될 고정 게스트들이 관건이었다. “처음부터 섭외가 반이라고 생각했다. 달변도 중요하지만 결코 기가 꺾이지 않고 끝까지 말할 사람들을 구성하는 게 최고의 과제였다.”(김수아)
1부와 2부의 외피는 정치와 문화란 점에서 확연히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결국 썰을 푼다는 것. 방송을 통해서 묻지 않았던, 사실은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고위공직자들의 인명을 앞에 두고 던지는 질문이 이런 식이다. “그 중 뭐가 ‘땡보’직인데?” <라디오 스타>를 벤치마킹했다는 토크쇼답게 <썰전>의 파격이란 바로 그 솔직함 자체에 있다. 이는 정치 문외한인 예능 작가들 덕분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이 재래시장 살리기를 한다고 보라카이로 연수를 갔다고 하면, ‘거기서 뭘 배워서 오죠?’ 이런 리액션이 가능하니까. 보통의 인간사에서 일어날만한 일이 근엄해 보이는 정치계에서도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면 웃기더라.”(정다운) 토크 주제가 잡히면 관련 자료를 게스트들에게 보내주고 작가들이 직접 통화하면서 게스트들의 의견을 대본에 반영한다. 하지만 뉴스는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법. 정해졌던 주제 대신 새 이슈로 갈아타는 건 다반사다. 드라마로 치면 ‘쪽대본’을 쓰는 셈. 개개인의 입담이 좌우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특별한 리허설도 없다. 방송 전에 간단하게 당일의 토크 주제의 흐름과 중점을 정리한 뒤 안부나 묻는 수준이다. 썰을 풀 준비가 된 고정 게스트들이 준비된 덕분이다.
사실 월요일에 녹화해서 목요일에 송출하는 방식은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에선 상상할 수 없다. <썰전>의 평균 녹화시간은 4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4시간 동안 쉴새 없이 말하는 게스트들의 입담’을 걸러내기에 이틀은 생각보다 버겁다. 하지만 뜨거운 뉴스를 뜨거운 타이밍에 썰로 푼다는 건 <썰전>만의 강점이다. 그리고 녹화일과 방송일의 간극을 줄이는 건 <썰전>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궁극의 해법이다. 김수아 PD와 정다운 작가는 <썰전>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한다. “콘텐츠가 좋으면 결국 사람들이 본다.” 그래서 밥 먹을 때 엠넷을 봤던 정다운 작가는 이젠 YTN을 보고, 김수아 PD는 <9시 뉴스>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요즘 욕을 자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욕을 해댈수록 주가가 상승하는 <SNL 코리아>의 헤로인 김슬기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장기는 욕이 아니다. 배우 김슬기의 연기가 제대로 먹혔다는 말이다.
<SNL 코리아>(이하: <SNL>)에 출연한지 1년이 넘었다.
첫 생방송 당시엔 너무 떨려서 헛구역질이 다 났다. 그때는 토요일 생방송을 위해서 일주일씩 준비했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크루’들이 대본 좀 빨리 보내달라고 건의했다.
지금은?
이젠 방송 전날에 리딩하면 왜 당일에 하지 않고 전날하냐고 농담이 나올 정도다. 다들 마음이 편해졌다.
생방송이라서 종종 웃음을 참는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지는데 그게 은근히 웃기다.
신동엽 선배님의 캐릭터가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도 조금씩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웃음이 터졌을 때 누군가가 정색했다면 아무도 시작하지 못했을 거다. 일종의 노련한 스킬이랄까.
오픈 스튜디오의 라이브쇼란 점에서 연극 무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적응하기 편했다. 연극 무대로 조금 먼저 데뷔했으니까.
데뷔한 계기는?
학교 선배님이었던 장진 감독님이 학교 동아리의 큰 공연을 장진 감독님이 연출자였다. 그때 감독님께서 내 연기를 좋게 봐주셨는지 몇 개월 뒤에 부르셔서 연극이랑 <SNL>을 함께 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리턴 투 햄릿>에선 복수할 때 쓰는 칼 역할이었다는데, 이름이 칼은 아닌 것 같은데(웃음).
장진 감독님이 <매직타임>이란 연극을 <리턴 투 햄릿>이라는 연극으로 재구성했는데 중간에 마당극 형식이 변한다. 그때 햄릿을 증언하기 위해서 칼이 등장하는데 내가 커다란 칼 모양 탈을 쓰고 등장하는 식이었다.
뒤집어 쓰는 것과 인연이 있나 보다(웃음).
탈쓸 때만 예뻐 보인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웃음).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미지로 인해서 지나치게 희화화될지 모른다는 경계심은 없었나?
다른 곳은 몰라도 <SNL>이기 때문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한테 큰 머리와 뚱뚱한 옷, 짧은 다리가 너무 잘 어울리더라(웃음).
크루들의 사이가 좋아 보인다. 꽤나 즐거워 보인다.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사실 <무한도전>처럼 <SNL>도 장수하고 나 역시 대표 크루로 장수해서 오랫동안 이것만 하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다는 거지.
평소에 욕해달라는 사람은 없나?
일상이다. 그런 얘길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니까. 나를 좋아해주는 분들은 대부분 내가 하는 욕도 좋아해주는 분들 같다. 싸인할 때조차 욕 좀 해달라는 분들이 많더라.
고민되는 부분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다. 이런 캐릭터를 하는 것도 행복하고, 이런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의 나도 좋아하니까. 연기할 때는 그런 캐릭터를 끌어내기 쉽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분들을 만날 때 조금 힘든 건 있다.
실제 본인의 성격은?
에너지를 금방 소모해서 충전과 방전이 반복된다. 그러니까 충전할 때의 나를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김슬기가 원래 저런가?’ 사실 조금 더 차분한 편이기도 하고.
TV 속의 김슬기와 TV 밖의 김슬기의 차이를 확인한 사람들의 반응이란?
내게 다양한 모습이 있음을 좋게 봐주는 분도 있는 반면 자기가 원했던 TV 속의 김슬기가 아니라서 실망하는 분들도 있다. 나를 보는 분들이 저마다 다른 만큼 반응도 다양한 것 같다.
자신의 다양성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나 보다.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신기하다. 누구에게나 뒷면이 있지 않나. 착한 사람도 나쁜 생각을 할 수 있고, 차분한 사람도 흥분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다양한 면이 있는 사람 같다. 그래서 배우를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고.
긍정적인 편인가.
낙천적일지도.
<SNL>은 보수적인 사람들 입장에선 불편한 방송일지도 모른다.
나도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수영장에 한번도 가본 적 없다.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기분이랄까(웃음). <SNL 코리아>에 출연하기 이전까진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SNL>을 선택했을까?
처음엔 19금 프로그램이 아니라 15금 정도였다. 19금 프로그램이 된 이후로도 힘든 부분은 없었다. 시즌2 초반에 잠시 섹시 컨셉트를 연기했지만 특별히 힘들진 않았다. 노출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반응은?
경상도 분들이라 표현이 어색하다. ‘잘했다. 챙겨봤다. 못 봤다. 바쁘냐?’ 이게 다다(웃음).
고향이?
부산이다. 스무 살에 대학 진학 때문에 상경했다.
졸업했나.
휴학 중이다.
당연히 연기 전공인가?
연기학과 뮤지컬 전공이다.
뮤지컬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노래도 하고 싶고, 춤도 추고 싶고, 연기도 하고 싶었다. 내 욕심에 하나만 하기엔 뭔가 아쉽더라. 그런데 뮤지컬이란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럼 뮤지컬 배우가 돼야겠다고 막연하게 접근했다. 사실 부산에선 뮤지컬을 볼 기회도 없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꾼 시점은?
고등학교 시절,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그 이전에 초등학생 시절부터 예술 분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 쓰는 싸인도 초등학교 때 만든 거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언제 알았나?
중학생 때 친구 따라서 가요제에 나갔는데 내가 상을 탔다. 그때부터 기회가 되면 가요제란 가요제는 다 나갔다.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가수만 하기엔 아쉽다고 생각했고 좀더 특별한 걸 찾다가 뮤지컬 배우를 찾았다, 뮤지컬 배우가 된다면 언제든 가수나 배우로 방향을 틀어도 될 거라 생각했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로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는 없을까?
그런 기대들이 많아서 너무 부담스럽다. <무서운 이야기 2>의 출연배우는 8명인데 저마다 다 주연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기대만큼 크진 않다. 일단 이번엔 김슬기가 영화도 하는구나 정도를 보여주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촬영 과정은 어땠나.
너무 춥고 힘들었다.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영화를 찍는 시기가 하필 그 얼마 안된 시기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첫 영화이니 신경 써서 하고 싶었지만 2주간 잠도 못 자고 촬영하다 보니 체력도 딸리고 너무 추웠다. 개인적으론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을 겪었다는 의의가 있었다.
6월부터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으로 무대에 오른다. 비로소 그토록 바라던 첫 뮤지컬 무대다.
어렸을 땐 조정석 선배님이나 김무열 선배님처럼 무대에서 인정 받은 뒤에 방송으로 나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방송으로 데뷔하기란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 좋게 방송으로 데뷔했고 오히려 언제쯤 뮤지컬에 도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점점 부족함을 느끼면서 내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회가 와서 생각보다 빨리 도전하게 됐다. 배우로서 욕심이 있다 보니 놓치긴 싫더라.
언젠가 욕심나는 작품의 스케줄로 인해서 <SNL> 출연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고민해본 적 있나?
<SNL>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종종 고민한다. 어떻게든 <SNL>의 스케줄을 끌고 갈 수 없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언제나 미궁 같은 고민이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