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특유의 동화적인 낭만을 품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사랑스럽다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시킨다.
<겨울왕국>은 동화적인 세계관을 빌려서 특유의 낭만적인 해피엔딩을 구축하는데 능한 디즈니의 장기가 여실히 반영된 애니메이션입니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모티프로 둔 작품이죠. 하지만 원작과 기본적인 설정 자체가 다르며 이야기 양상도 완전히 판이한 작품입니다. 일종의 ‘참고작’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겨울왕국>에선 사악한 ‘눈의 여왕’이 등장하지도 않고, 남매에 가까운 소년과 소녀 대신 자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어둡고 우울한 원작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죠. 디즈니 특유의 낙관적인 낭만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사실 선악의 구별이 뚜렷하고 결말에 대한 예감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이야기적인 흥미가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고 스크린을 채우는 이미지의 완성도가 그런 결점을 보완해주고 있죠. 특히 살아있는 눈사람 캐릭터인 올라프의 등장은 <겨울왕국>이란 작품을 보다 훌륭하게 이끌어내는
. 개인적으론 최근작 중에선 <겨울왕국>보다 <라푼젤>이 보다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라푼젤>보다 <겨울왕국>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훌륭한 뮤지컬 넘버를 만들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디즈니의 저력을 보여주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말이죠. <겨울왕국>의 OST는 역대 디즈니 클래식의 사운드트랙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만한 수작으로 회자될 겁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에서 초록 마녀 역을 맡은 이디나 멘젤의 킬링 넘버 ‘ Let It Go’는 이 작품이 지닌 최고의 자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이지요.
무엇보다도 <겨울왕국>에서 흥미로웠던 건 디즈니가 자신의 세계관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공주와 개구리>(2009)부터 <라푼젤>(2011) 그리고 <겨울왕국>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물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지난 몇 년간의 디즈니는 낙천적인 해피엔딩의 강박을 넘어서 ‘지금’이라는 시제에 어울리는 감각과 철학을 반영한 작품들을 거듭 발표하고 있죠. 어쩌면 디즈니가 인수한 픽사의 브레인이었던 존 래세터를 디즈니의 총괄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겨울왕국>은 익히 예상되는 왕자와 공주의 러브스토리로 극을 밀고 가지 않습니다. 특히 눈에 빤히 보인다고 믿었던 결말을 아주 살짝 비틀면서 대단히 참신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죠. 디즈니 특유의 낭만적인 정서를 배반하지도 않고요. 자신의 세계를 참신하게 보존해냅니다. 그래서 <겨울왕국>의 결말은 정말 좋은 작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공주와 개구리> 이후로 디즈니에선 대단히 운명에 함몰되지 않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 21세기의 디즈니가 찾은 마법의 비결은 여성이 아닐까 싶어요. 공주가 아니라 말이죠.
저는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시절에 극장에서 <라이온 킹>을 봤던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제 손을 잡고 직접 극장에 데려가셨죠. 아마도 어린 아들에게 보여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셨나 보죠. 그래서 만약 지금 저에게 어린 아들이나 딸이 있었다면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겨울왕국>을 보러 갔을 겁니다.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분명 좋은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착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요. <겨울왕국>만큼 사랑스러운 결정을 지닌 작품을 아이들과 함께 볼 기회도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