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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happiness), 기쁨(pleasure), 슬픔(sorrow), 사랑(love). <내가 숨쉬는 공기>에서의 공기(air)란 기화된 원소의 질량을 가늠하기 위한 명명이라기 보단 부피로서 상정되는 공간성에 대한 공유를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가늠할 수 없는 동선의 접촉으로 이뤄지는 타인간의 관계 맺기. 일정한 시공간의 공유로 인해 교차되는 동선의 필연적인 접촉은 활성화된 원소들의 충돌이 이루는 개인의 삶이 지닌 질량을 재기 위한 것과도 같다.

네 가지 감정의 문구들로 경계를 정한 뒤, 제 각각의 동선을 배회하는 <내가 숨쉬는 공기>는 은밀한 접점을 이루는 옴니버스 형식의 에피소드를 통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시작에서 명명되는 테마에 맞는 이야기를 수행하는데 그에 따라 이야기의 중심 인물도 각각 달라진다. 미묘하게 맞닥뜨리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인물들의 개연성은 적당한 이해심을 동반한다면 그만큼의 설득력을 지닐 만큼은 된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숨쉬는 공기>는 스토리텔링으로 보자면 옴니버스라는 분절된 형식에서 일관된 맥락을 놓치지 않는 어리석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역량이 충분한 배우들이 포진한 만큼 그들을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감상을 부를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각각의 사연이 담고 있는 테마는 이야기의 내면에 비해 과잉의 인상을 부른다. 말 그대로 행복이라 부르기 애매한 것을 행복처럼 위장하는 전술처럼 <내가 숨쉬는 공기>는 자신이 내건 테마에 이야기의 구색을 맞추거나 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게끔 유도한다. 구체적인 주제 의식에 비해서 모호한 의미로 여운을 남기는 각각의 이야기는 결론에 이르러 명확한 상을 남기지만 그만큼이나 전자의 주제들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인지 애매하게 만든다. 그건 아무래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겉멋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숨쉬는 공기>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러로서의 이지호 감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만든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걸출한 배우들을 총동원하게 만들었다는 그의 시나리오가 궁금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필연을 가장한 우연을 통해 개연성을 확보하는 이야기를 특정한 주제의식으로 엮어 넣으려는 의도는 다분히 무리수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녹록하지 않은 연기를 지켜보는 것으로 상쇄되지 않는 싱거운 뒷맛은 아무래도 이 때문이다.

(씨네서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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