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그러하나.

도화지 2008. 11. 27. 07:25

3일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난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 애를 밀어내고 있었다.

비로소 알았다. 크게 싸우지도 않았고, 성낸 적도 없으며, 딱히 주고 받은 상처도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난 내가 믿는 대로 행동했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에게 이래도 되리라 믿었다.

예전에도 문득 알았었나. 지난 번 관성처럼 행동하는 내 자신을 깨달았다.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때도 몰랐다. 여전히 이 정도는 되겠지. 방심했다. 넌 언제나 내 편이리라, 내가 서는 쪽에 서주리라, 그저 믿고 있었다.

가는 만큼 오는 법이리라. 그 아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 홀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난 나름대로 충분한 햇살을 비춰주고 있다고 믿었다. 오산이었나. 그 아이는 시들었다. 그러다 결국 돌아누웠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가 아니라 미안해요, 라고 말하곤 돌아누웠다.

그냥 흔들어서 달래면 다시 돌아누워줄 줄 알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은 가능했다. 다시 돌아누웠다. 진실로 깨달았다고 믿었다. 그 아이는 착하게도 다시 돌아누웠다. 그리고 잠시 안도했다. 어느 새 햇살이 약해졌다. 다시 불쑥 그 아이를 할퀴었다. 그 아이는 돌아눕더니 이내 일어나서 내려앉았다. 등을 돌렸다. 쉽사리 팔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살짝 멀어졌다.

난 빛을 내리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내 빛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아이로 인해 난 빛이 났다. 그 아이의 빛이 날 비췄다. 광채가 났다. 스스로 항상 당당했다. 나 이런 아이한테 사랑 받고 있어요. 어깨가 으쓱했다. 그럼에도 몰랐다. 그 아이는 홀로 시들어가고 있음을.

참 예쁜 아이였다. 진심으로 날 이해해주고, 항상 존중했다. 난 이 아이가 마냥 내가 좋아서 그러려니 했나 보다. 덕분에 외로워졌다. 처량하다. 울고 또 울어도 그 아이는 내게 들어오는 문턱 밖에서 서성인다. 나만큼이나 미련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미련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나와 달리 그 아이는 미련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이것이 이별일까. 난 아직도 헤매고 있다. 실감이 안나. 꼬집어보면 아픈데도 현실이 아닌 것마냥 아파.

영원을 꿈꿨다. 어떤 연인들이 그러하듯 영원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여전히 끝은 아닐거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있지만 그것이 부질없는 집착일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기 힘들다. 머리로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가슴으로 밀어내고 있다. , 이것이 진정 그건가. 사랑은 그냥 사랑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이별은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했지. 이별의 문턱에 섰다. 이미 넘었을까. 아직 발 하나를 빼지 못하게 안간힘을 써보려 한다. 무력하더라도 부여잡고 서서 그렇게 버티고 있다.

웃음이 눈물로 흐르고, 기쁨이 슬픔으로 넘칠 때, 사랑도 그렇게 식어갈 수 있음을 체감한다. 누군들 사랑하지 않았나. 세상에 이별하는 연인은 한없이 많다. 우리도 그 중 하나일 뿐일까. 우린 특별하다는 믿음. 그 모든 것이 덧없는 백일몽이었나. 넌 여전히 내게 특별한 한 사람인데 난 그냥 평범해졌나. 그렇게 사랑이 끝나려나. 그렇게 우리도 너와 나로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야 하나. 난 여전히 어떤 확신도,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처럼 뒤만 돌아보고 있다. 하지만 넌 이미 저 앞으로 가고 있나. 우린 멀어졌나. 그런가. 정녕 이렇게 남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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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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