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인텔의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진짜 존재감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그는 언제나 틈나는 대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가 정해놓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생의 쾌감을 좇아갔다. 그런 어느 날처럼 그는 무작정 유타주의 블루존 캐넌으로 도보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예기치 않게 동행을 만나 자신만의 루트 안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쾌감을 안긴 뒤, 또 다른 영역으로 혼자 떠나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던 그 사내는 위풍당당하게 협곡을 건너기 위해 틈새에 놓인 바위 위에 발을 내디딘다. 순간 발을 지탱하던 바위가 떨어졌고 그는 협곡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오른손이 협곡 사이에 끼인 바위 틈새로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통증보다도 경악스러운 건 결코 손을 뺄 수 없다는 것. 누구도 찾지 않는 깊은 협곡 속에서 오른팔을 볼모로 남자는 갇힌다. 그리고 결국 그 남자는 127시간을 버티다 자신의 괴사된 오른팔을 잘라내고 사막을 걸어 나와서 비로소 구조된다. 이는 실화다. 아론 랠스톤이 바로 그다.
15분. <127시간>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은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의 타이틀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잊어버렸을 즈음에서나 떠오른다. <127시간>은 거기서 시작되는 영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스타일리스트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시 새롭게 구축해내는데 성공한 대니 보일은 <127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시에 서사적 구조의 운용력을 탁월하게 검증해낸다. 실화에 바탕을 둔 <127시간>은 그 사연만으로도, 오른팔을 잘라내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냈다는 어떤 남자의 진짜 사연만으로도 특별해질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대니 보일의, 그리고 제임스 프랭코가 연기한 <127시간>은 단지 그 사연을 재현한 영화라는 것으로만 언급될 작품이 아니다. 혹은 대니 보일의 스타일리쉬한 영상, 제임스 프랭코의 괄목할만한 연기, A.R.라만의 탁월한 음악도 주인공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그 남자의 생이 증명한 무언가를 위한 것이다.
오른팔이 협곡과 바위 사이에 끼인 채, 협곡에 갇힌 남자가 탈출하기까지 견뎌야 했던 127시간의 여정을 90여분의 러닝 타임 내에 녹여낸 <127시간>은 사실 어느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매우 심심해 보이는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 개봉된 <베리드>와 비교되기도 하는 -대조가 아닌- 이 작품은 하나의 공간에 놓여 있으나 그 공간적인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내는, 어쩌면 그것을 통해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보다 확고하게 구축하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 여기던 사내가 좁은 협곡에 갇힌 채 자신의 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야금야금 좀먹어 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오른팔을 버리는 자해에 가까운 탈출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생을 구원하게 된다는 과정을 재현하는 <127시간>은 단지 아론 랠스톤이라는 실화적 인물을 위한 장이 아니다.
<127시간>은 단지 어느 한 인물의 극한에 다다르는 자기 극복의 체험기가 아닌, 극한의 위기 속에서 생의 끝에 다다를 수도 있었던 어느 한 인간의 승리를 전 인류적인 승리로 승화시키는 작품이다. 협곡과 바위 사이에 끼인 자신의 오른팔을 빼내고자 안간힘을 쓰던 아론이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리며 버티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당연하다 여기던 햇살 한줌의 은혜와 가족이라는 존재의 위안을 깨닫다 결국 생을 위해 자신의 오른팔을 버리고 지상으로 올라와 누군가의 도움으로 생을 되찾고 그 이상의 생을 깨닫게 되는 여정이란 그 참담했던 지난 날만큼이나 아름답고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자신의 팔을 자르는 남자의 모습이 처참하기 보단 통쾌함으로 느껴진다는 건 <127시간>이 그만큼 인간의 한계, 즉 자기 육체의 일부를 포기하고서도 생의 전부를 놓을 수 없다는 인간의 집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쾌감 덕분일 것이다. 이는 육체의 일부를 상실하고도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는 것과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완전한 삶을 이루는 기본적인 조건에서 벗어나서도 결과적으로 삶은 가능한 것이라는 일종의 완전성에 대한 해방감이 전달된다. <127시간>은 그 실화 자체가 주는 일종의 경이감을 보다 현실적인 체험 혹은 체감으로 전달하는 진정한 인생실용서라 해도 좋을 것이다.
대니 보일의 스타일리시한 감각은 <127시간>에서도 빼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분할컷으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중간중간 다각도의 시점으로 상황을 묘사해내는 연출력은 <127시간>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화에 역동적인 인상을 부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뛰어난 자질이다. 또한 홀로 협곡 속에 갇힌 채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감정적 변화를 겪은 실존인물을 대신해 그런 과정을 생생하게 대변해낸 제임스 프랭코의 연기 또한 탁월하다. 하지만 <127시간>을 이루는 모든 훌륭한 요소들은 하나 같이 어떤 하나의 의미를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들에 가깝다. 그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식상하고 지루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127시간>은 그 심플한 사연을 이토록 거대한 가치로 승화시키는 영화다. 놀라운 실화의 의미를 넘어선 그 의미를 재발견하고 보다 쉽게 이해시킨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실화다. 적어도 당신을 감동시키기 위해 조작된 사연이 아니다. 그러니 깨달아야 한다. 당신의 오른팔을 내주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건 바로 지금 당신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