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단평

cinemania 2009. 11. 5. 01:52

땅이 꺼진다. 화산이 폭발한다. 쓰나미가 밀려온다. 지구 전체가 요동을 친다. 사람이 발붙일 곳은 없다. <2012>는 해볼 만큼 해보다 못해 끝장을 보는 재앙 블록버스터다. 아마 지구에서 재앙이라고 할만한 이미지들은 죄다 나올 거다. 그것도 전세계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시원하고 화끈하게 파괴적 장관들을 그려낸다. 마치 큰 스크린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 훈수 두는 것마냥 그렇다. <2012>가 그려내는 무지막지한 이미지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엄청난 볼거리다. 그럼에도 그것이 심심함을 느끼게 만드는 이유는 <2012>가 규모 외에 내세울 것이 없다는 상대적 초라함 덕분이다. 사실상 <2012>에서 드라마란 거대한 이미지를 이어나가기 위한 교각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교각이 부실해 다음 이미지로 건너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점이다. 재앙의 주변부에 놓인 캐릭터들은 생존적 리얼리티보다도 휴머니즘을 구현하겠다는 연기적 일념으로 충만하듯 인위적 상황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그 파괴적인 장관들은 볼거리 이상의 긴장감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보게 만들 뿐,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 서스펜스에 대한 연출적 감각이 부재하다. 물론 인류의 멸망적 위기를 관람한다는 건 묘하게 침통한 감상을 부른다. 그건 <2012>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를 묘사하는 이미지의 우월함 덕분이다. 말 그대로 <2012>CG팀의 공헌도가 팔 할인 영화다. 딱히 롤랜드 에머리히를 칭찬할 구석은 많지 않다. 마치 부모 잘 만난 자식의 사치를 보는 것 같다. 돈 있는 할리우드나 되니까 이 정도로 무모한 짓도 가능하단 말이다. 그만큼 그 막대한 자본을 좀 더 현명한 곳에 쓸 수 없었을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딱히 2시간 40여분에 육박해야 할 만큼 필연성이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는 명백한 필름 낭비다. 다 떠나서 (어차피 볼 당신이) 큰 화면에서 봐야 한다는 건 진리다.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