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하지만 요즘 극장은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영화 이상의 체험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다. 극장부터 골랐다. 코엑스 메가박스에 새로 단장한 프리미엄 상영관 ‘부티크 M’을 찾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예매사이트에 접속해서 영화를 고르고, 두 좌석을 선택한 후 결제를 했다. 5만원이 결제됐다. 그러니까 영화 티켓 두 장의 가격이 무려 5만원이다. 티켓을 금으로 만들었나? 종이였다.
상영관 이름이 스위트룸이라고 했다. 흔한 극장 상영관처럼
1관이라고 부르는 대신 101호라고 했다. 상영관이
아니라 호텔룸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호텔식 서비스를 지향했다.
넓고 편안한 리클라이너 체어에서 다리를 쭉 뻗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에비앙 생수를 웰컴 드링크로 제공한다. 입구에서 무릎담요를 나눠주고 자리엔 슬리퍼도 놓여있다. 룸서비스도 가능하다. 영화 시작 전에 좌석 측면에 있는 벨을 누르면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팝콘이나 나초 대신 피자를 주문했다. 화덕에서
구운 조각피자로 유명한 ‘피자리움’이 입점해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와인도 판다. 그뿐만이 아니다. 홍대 부근의 유명한 커피 전문점인 앤트러사이트를 비롯해 타발론 티, 오설록
아이스크림도 상시 판매한다. 어쨌든 2시간 30분에 달하는 영화를 보면서 리클라이너 체어의 안락함을 실감했지만 동시에 영화가 재미없다면 숙면을 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있었고,
잠들 일은 없었다.
부티크 M과 같은 상영관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유사한 형태의 프리미엄 상영관은 존재해 있었으니까. CGV 골드클래스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CGV에선 일찍이 식사와 영화관람을 연동해서 즐길 수 있는 ‘시네 드 셰프’와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 롯데시네마 역시 샤롯데라는 프리미엄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메가박스
부티크 M은 후발주자다. 이미 존재하는 프리미엄 상영관 시장에
뛰어든 건 지금의 시장에서 유효한 기획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메가박스에선 지난해부터
다양한 형태의 상영관을 기획해왔다. 과거의 자동차 극장을 연상시키는 드라이브 M과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텐트와 캠핑 의자에 앉아 야외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글램핑 상영관인 오픈 M이 눈에 띈다. 둘 다 영화 관람 외적인 경험을 서비스한다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특히 가족 단위 관객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띄는데 어린 유아가 있는 부부가 쉽게 극장을
찾지 못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유용한 서비스처럼 보인다. 바비큐나 와인, 맥주와 함께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전통적인 영화관의 관습에서
벗어나 영화 관람과 동반할 수 있는 체험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21세기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입맛을 돋우는
음악처럼, 영화 또한 감각적 소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CGV에선 멀티플렉스 대신 컬처플렉스란 언어를 동원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했다. 컬쳐플렉스는 영화뿐만 아니라 외식이나 쇼핑, 문화체험
등 영화 외적인 다양한 경험과 연계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성의 연계나 확장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CGV청담시네시티엔 다양한 식당과 커피 전문점,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
층층마다 자리해있다. 기존의 골드클래스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더
프라이빗 시네마’와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 형태로 제작된 커플석만으로 상영관 좌석을 채운 ‘스윗박스 프리미엄’과 같은 상영관은 영화 관람에서 서비스의 형태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롯데시네마 역시 새롭게 문을 연 롯데월드몰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 ‘시네
파크’라는 광장 형태의 공간을 마련했는데 이는 영화 이외의 문화적 체험을 전달하려는 다른 극장들의 정책과
유사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체험적 다양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흐름은 극장산업의 화두인 셈이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볼 것인가라는 선택권이 넓어졌고, 관객들은 기꺼이 고민하고 선택하며 기다린다. 이를 테면 최근에 화제가 된 <인터스텔라>의 아이맥스 열풍이 그렇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길 고집하는 배경엔 ‘좀 더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 ‘두 영화를 관람하는 최적의 관람 방식이
아이맥스 상영관이기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영화가 주는 감각적 체험을 최대한 극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영화관람이란 행위를 엔터테인먼트적인 체험으로서
보다 확실하게 소비하길 원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D 상영 방식의 일반화 또한 궤를 같이
하는 사례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의 전세계적인 흥행 이후로 디지털 상영관이 확대되고 3D 상영이
영화 상영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착해 버린 건 어떤 체험을 계기로 관객들의 감각적 경험이 확장되고 정착된 덕분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 감각에 대한 수요는 새로운 체험적 방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체험의 확장을 통해 훈련된 감각을 고스란히 체감하길 바라는 관객의 정착이 극장 상영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입체적인 사운드로 청각적 체험을 극대화시킨 돌비 애트모스 음향 시스템도 장착된 상영관을 선호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개인 좌석마다 설치된 헤드셋을 통해서 영화 사운드를 홀로 독점하는 상영관이 출현한 것도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통한 학습효과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음향에 따라서 좌석의 진동을 체감하도록 하는 비트박스관과 오감을
자극하는 4D 상영관의 공감각적 체험 또한 다르지 않다. 특히
4D는 기존의 영화관람 형태를 롤러코스터적인 감각적 엔터테인먼트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영화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 다양한 감각적 체험이 가능하다는
학습효과를 얻었고, 그런 시장의 수요를 파악한 극장은 진화하고 있다.
21세기의 극장들은 영화의 관람방식을 다양하게 세분화하고, 영화 관람 외적인 서비스의 확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극장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서 역할을 견인해왔다. 동일한 티켓 가격으로 각기 제작비가
다른 영화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이기도 했다. 그만큼
극장 산업이란 대중의 기호에 민감한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 극장문화의 변화란 결국 대중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과거와 달리 이제 영화는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됐다. 또한 IPTV를 통해서 한동안 부재했던 영화의 2차 판권 그러니까 홈 씨어터 시장이 순식간에 정착됐다. 영화란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됐다. 그만큼 극장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 건 필연적이다. 커다란 스크린만으로 극장의 경쟁력을 논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관객들은
이제 보다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영화 그 이상의 영화관을.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 하지만 상영하는 곳이 없다. 개봉한지 한 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지난 2월 27일,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대에 오른 장 뒤자르댕(Jean Dujardin)의 탭댄스가 생중계됐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게리 올드만과 같은 할리우드의 초신성급 배우들을 제치고 헬리 혜성처럼 나타난 장 뒤자르댕은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스타들은 무대에 오르는 낯선 프랑스 배우의 뒷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냈다. 21세기에 등장한 무성영화 <아티스트>의 출현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지난 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아티스트>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의 주요부문을 휩쓸며 아카데미 5관왕에 올랐다.
이 소식은 한국 관객들의 호기심마저 당겼다. <아티스트>가 재미있다고? 그러나 상영관을 찾기가 힘들다. <아티스트>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온 건 28일 오전이었다. 전국 58관의 상영관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개봉 당시에는 90관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사이트에 명시된 국내 총 상영관은 2312관이다. 스크린 점유율 약 1.6%. 물론 아카데미의 지원사격으로 <아티스트>는 좀 더 국내상영관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9일 경 95관으로 확대 개봉됐고, 3월 7일 경에는 100여 관 안팎을 오갔다. 개봉 이후, 한 달이 지난 3월 16일에는 29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아티스트>의 북미 개봉일은 2011년 11월 25일이었다. 미국 내 전체 상영관은 36000여 관 정도로 추산된다. 4개관에서 개봉됐다. 점유율로 보자면 한국보다 더욱 심각한 셈.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에서 개봉 네 달에 다다르는 3월 15일경, <아티스트>는 150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개봉작의 상영관 확보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와 리미티드(limited). 대규모 단위로 상영관을 확보하는 와이드 릴리즈는 거액을 들여 제작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단기간에 최대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 상영관을 대거 포섭해 관객의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리미티드는 그 반대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들은 많은 상영관을 확보할 수도 없고, 한 편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 영화를 배급한다는 건 상영관에서 영사될 필름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필름을 제작하는 것도 자본의 소요다. 저예산 영화들의 수익구조 안에서 필름 제작에 자본을 소모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리미티드 방식의 배급은 불합리라기 보단 효율적인 선택이다.
한국과 미국은 배급사와 극장주의 수익 배분 구조도 다르다. 한국은 제작사와 극장주가 정확히 반반으로 나눈다. 공평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극장이 온전히 절반을 먹는다면, 제작에 관여한 제작사와 배급사 휘하의 모든 이들이 그 절반을 나눠먹는 구조인 셈이다. 제작사를 도매상으로 보자면 폭리를 취하는 소매상을 만난 격이다. 미국에서는 수익 구조가 유동적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극장들은 흥행이 기대되는 영화에게 80% 가량의 지분을 준다. 블록버스터들이 이에 해당된다. 반대의 경우, 상황은 역전된다. 극장이 8을, 제작사가 2를 가져간다. 흥행 여부가 불확실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주의 입장을 안배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영화가 높은 수익을 올린다면? 상황은 다시 변한다. 수익 배분 구조 또한 역전된다. 2를 가져가던 영화사가 8을 가져가는 구조로 변한다. 그리고 흥행성이 확인된 영화의 상영관 또한 늘어난다. 리미티드에서 와이드 릴리즈로 전환된다. <아티스트>가 그랬다. 1월 20일, <아티스트>는 미국 내 662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와이드 릴리즈됐다. 미국의 영화시장은 한국 못지 않게 대자본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하지만 시장의 영향력도 그만큼 막강하다. 영화의 제작과 배급의 구조가 분리된 덕분이다. 국내 상황이 이와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고 극장까지 소유한 대기업의 지배 상황이 공고한 까닭이다. 극장을 소유한 제작배급사의 위력은 2차 판권 시장이 초토화된 국내 시장에서 더더욱 강력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제작사 대표는 말했다. “만약 DVD 같은 2차 판권 시장이 존재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합리한 배급 구조가 이뤄지진 않았을 거다.”
국내에서 영화는 개봉주에 흥행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서 완벽하게 명암이 뒤바뀐다. 2차 판권에 대한 이익이 미비한 국내 영화 시장의 상황 속에서 제작사들은 상영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극장을 소유한 제작배급사들이 저마다의 파이를 꽉 쥐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의 다양성이 확보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전국 곳곳에 극장 체인망을 확보한 제작배급사는 스크린 점유율이 낮은 영화를 장기상영하며 관객의 입장을 유도하고 경쟁 영화들을 교차상영 방식으로 밀어낸다. 가뜩이나 설 자리가 비좁은 작은 영화들은 자연히 도태된다. 한때 독립상영관이 대안의 형태로 제시됐으나 몇 년 사이 수많은 독립상영관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대부분의 작은 영화들은 집을 잃었다. 시장 구조의 몰락이 가져온 결과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소비할 수 있는 권리를 잃었다. 어쩌면 그런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건 대자본을 쥔 영화사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스템을 단순 비교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다. 이건 기형적인 시장과 시장 규모의 문제이다. 시장이 넓어야 투자한 자본을 거둬들일 수 있는 경로의 확보도 보다 쉬워진다. 티켓을 살 관객은 모자라고, 흥행을 바라는 영화는 넘친다. 그야말로 바늘구멍에 낙타를 집어넣기. 그런 상황에서 일주일 단위로 영화의 성패가 결정되는 극장에서 제작비의 대부분을 회수해야 하는 수익구조는 심각한 문제다. 극장에서 내려간 영화는 갈 곳이 없다. 어쩌면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그게 내 입장에서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장 당신이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당신이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을 때, 상황은 명확해진다. 그러니까 대체 <아티스트>를 상영하는 극장이 왜 이리 없단 말인가? 영화가 별로라서? 아니다. 그건 정작 당신이 찾기 쉬운 극장에서 딱히 당기지도 않는 영화가 상영하는 것을 별 생각 없이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영관을 찾아 발품을 파는 수고를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가 없을 때, 당신의 취향이 존중될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그저 손쉽게 클릭 한번으로 영화를 소유하는데 만족하는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손쉽게 영화를 소유하는 재미에 탐닉한다면, 그 영화들조차 존재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가끔 극장에서 팝콘 먹는 소리가 거슬려서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궁금한 건 어째서 팝콘 먹는 사람에게 신경질을 내느냐는 말이다. 물론 자신이 팝콘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상영관 내의 모두에게 알리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격렬한 턱운동을 불사하는 이라면 자제 요망이겠지만, 그게 아니라 단지 그 소리 자체에 대한 불쾌함을 토로한다면 공격 대상을 바꿔야 할 게다. 정당하게 제 돈을 내고 상영관 안에서 팝콘을 먹는 이에게 팝콘을 먹을 때 데시벨 기준이라도 마련해줘야 한단 말일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팝콘을 비롯한, 먹을 거리를 상영관 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면 모를까. 결국 그건 극장에게 따질 일이다. 버젓이 팝콘 팔아먹고 돈은 극장이 다 버는데, 정당하게 소비하는 소비자 개인이 욕을 먹는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모여 앉은 상영관 내의 누군가가 팝콘 씹는 소리 정도를 참아낼 수 없는 이가 극장을 찾지 않는 게 맞는 논리 아닐까. 적당한 에티켓은 필수지만 지나친 결벽주의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 영화를 마치 종교와 착각한 듯한, 그들의 결벽한 감상 논리가 난 팝콘 먹는 소리보다도 종종 더 거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