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냉정하다. 태건호(정재영)는 유능한 채권추심원이다. 그물을 던지듯 추심 대상자들을 포획하고 그들로부터 걷을 돈을 확실하게 건져낸다. 그가 냉정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채권추심원이 되어 남의 빚을 대신 받아내며 자신의 빚을 청산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빚보다도 무거운 간암 진단이 떨어진다. 누군가의 간을 기증받아야만 그는 삶을 연장할 수 있다. 채권을 추심하듯 간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희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찾는다. 한 여인이 그의 목숨을 덧댈 수 있는 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다. 차하연(전도연)은 정재계의 거물들을 상대로 한 탕을 노리는 지능적인 팜므파탈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교도소에서 출감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출감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그녀의 간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를 노리는 적들을 대신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녀도 믿을 수 없다. 그 여자 위험하다.
<카운트다운>은 수궁가 같은 스릴러물이다. 간을 얻고자 생명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가 그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한 여자와 얽히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쫓아간다. 남자나 여자나 시간이 없긴 매한가지다. 남자는 당장 간이 급하고, 여자는 당장 돈이 급하다. 우직한 거북이처럼 목표에 접근하는 남자와 달리 날렵한 토끼처럼 임기응변에 강한 여자는 언제나 달아날 길을 찾는다. 잡으려는 자와 달아나는 자의 입장은 확연하고, 그 명확한 관계를 수식하는 주변의 관계가 꼬리를 물고 흥미를 더한다. 그리고 그 명료한 관계는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을 담보로 융통된 것이다. 대출과 입양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을 대변하는 문제적 소재들이 복잡한 관계의 인과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장르적인 리듬감을 환기시킨다.
기본적으로 두 인물을 중심에 두고 가지를 뻗어나간 듯한 영화다. 태건호와 차하연이라는 두 인물은 <카운트다운>의 심장을 구성하는 심방과 심실과 같다. 태건호가 일종의 들숨이라면 차하연은 날숨과 같다. 정재영이 영화의 균형추라면, 전도연은 흔들림을 낳는 무게추에 가깝다. 그만큼 두 배우의 연기가 이 영화를 저울질하는 핵심이라는 것. 그리고 이미 이름값만으로도 기대를 모을 만한 두 배우는 신뢰할만한 연기력을 선사한다. 우직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정재영은 전반적인 영화를 관통하는 밑그림을 완성하고, 전도연은 능수능란한 리듬으로 영화를 채색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로 다시 만난 두 배우의 호흡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전도연의 연기는 대단하다. 클리셰에 가까운 팜므파탈로 분하는 전도연은 자신의 캐릭터에게 그 어떤 팜므파탈 캐릭터보다도 프로페셔널한 설득력을 얹는다. 단지 관능적인 매력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능력적으로 뛰어난 프로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신뢰를 더한다.
중후반부에 다다르기까지 영화에 특별한 흠은 없어 보인다. 플래쉬백의 사용도 그 흐름의 측면에서 과하지 않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나치게 감상적인 결말은 다소 의외다. 간단하게 말해서 과하다. 흡사 앞선 부분까지 다른 영화를 봤나 싶은 결말부는 맥락 안에서 사족처럼 머물러 있다. 과잉의 감정과 과욕의 설명, 이미 상황 자체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직접 필요 이상으로 떠먹이다 보니 거북한 감상이 밀려온다. 물론 결말을 맺는 방식이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앞서서 축적된 감상의 리듬을 완전히 와해시켜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신파적인 결말의 여운은 수긍할만하다. 단지 그 여운을 강요하는 인상이 안쓰럽다는 의미다.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며 점차 자신의 리듬을 확보해내던 영화가 스스로 감정을 방전시키고 정체되는 듯한 결말로 다다른다는 건 가히 미스터리다. 성공적인 롱레이스 끝에 다다른 결승선 앞에서 머뭇거리는 선수를 보는 심정과 같이 맥이 빠진다.
지난 출연작들이 개봉할 때와 기분 자체가 다르지 않나?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어느 작품에 애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너무나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준비했던 작품이 개봉하는 시기라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자신의 얼굴이 걸린 포스터를 보는 기분은 어떤가?
그냥 그걸 보면 개인적으로 좀 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지지 않나 싶다. 아, 진짜 내 영화가 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 사실 영화라는 게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소개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처음 촬영하는 순간의 설렘이나 미뤄져 있던 내 기억 덕분에 영화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힘들거나 위험해 보이는 신이 많더라. 특히 차 지붕에 매달려서 가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던데.
실제로 진짜 고속도로에서 찍은 장면인데 그 차가 봉고라 스틱이었기 때문에 덜컹덜컹할 때마다 움찔했다. (웃음) 그 장면뿐만 아니라 스키점프에서 점프하는 신 빼고는 배우들이 직접 모든 걸 거의 다 했으니까.
스크린으로 봐도 스키점프 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장면은 아찔하더라. 직접 그 위에 선 사람의 입장이 궁금해질 만큼.
진짜로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거 같다. 좀 높아서 무섭겠지, 정도가 아니다. 수직 높이가 50~70m 정도 되는데 스키장비를 착용하고 그 나무 바에 앉아서 몸을 지탱하고 있으면 내 마음대로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와이어를 달고 있지만 만의 하나 사고로 내려가게 된다면 그냥 무조건 뛰어야 된다. 사실 그냥 뛰면 되지, 이건 아니잖아. (웃음)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할까.
훈련과정은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배우들이 훈련받는 것 같더라. 단지 연기로서 훈련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진짜 훈련이나 다름없는 장면이었다.
나 같은 경우, 거의 쉬지 않고 계속해서 2년 정도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국가대표>를 위해 합숙훈련을 시작했을 땐 늘 불규칙적인 생활과 적은 운동량에 몸이 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3개월 동안 하루 종일 운동만 해야 되는 생활을 겪다 보니까 처음엔 몸이 체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오히려 그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촬영 때는 훈련을 통해 우리가 익혀오고 몸으로 기억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한 훈련들을 계속 했다. 훈련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건 3개월 동안 땀 흘린 합숙기간 덕분에 좀 수월했지.
혈기왕성한 남자끼리 모여서 땀 흘려가며 찍었던 만큼 얻게 된 추억도 많을 것 같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할만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성동일 선배와 하정우 형, 두분. 늘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재미있는 얘기를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늘 현장에서 지치고 힘들 때 동생들과 같이 장난도 치고, 덕분에 으쌰으쌰 하면서 힘도 내게 되고.
연기적으로 의지가 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굉장히 많았지. 사실 성동일 선배나 하정우 형은 워낙 많은 작품을 해오신 분들이고 연기력이야 이미 검증된 분들이니까, 사실 우리 동생들만 잘 하면 되는 거였다. 근데 전혀 그런 부담감은 갖지 않고 촬영했다. 같이 즐기고 같이 호흡하면서 작업했고 그렇게 그분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따라가다 보니까 우리가 못할 거란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 에너지를 많이 받은 덕분에 좋은 장면이 나오고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함께 고생했던 만큼 전우애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뭔가 해보자는 기분도 들었을 거 같고.
그 긴 시간 동안 그런 게 없었다면 아마 마지막까지 이렇게 즐겁게 촬영하기 힘들었을 거다. 단순히 촬영 기간이 긴 걸 떠나서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칠만한 촬영이 많았다.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촬영하면서 계속해서 끝까지 으쌰으쌰 할 수 있었던 건 비슷한 또래 남자들끼리 워낙 마음이 잘 맞아서가 아니었을까.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됐고.
최근 흥철처럼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캐릭터를 자주 연기하는 것 같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자뻑 하림이나 <오감도>의 지운도 그랬고.
그러니까 그런 모습들이 분명히 나한테도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기본적인 생활 패턴이라던가 어떤 모습에선 차이가 있다. 작업 현장에서는 장난도 치고 말도 많이 하기도 하다가 기본적인 생활 자체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으니까.
왜 자신을 캐스팅했는지 김용화 감독에게 물어본 적 있나?
안 물어봤다. 그러니까 갑자기 물어보고 싶네. (웃음) 글쎄, 그냥 나에게서 흥철이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어떤 공통점을 찾으셨을까. (웃음)
자신의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맡아오고 있다. 최근 <오감도>에선 아예 고등학생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흥철도 20대 초반의 나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안인 덕분이겠지만, (웃음) 오히려 그 덕분에 생긴 콤플렉스는 없나?
연기를 시작하기 전엔 동안인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오히려 연기를 시작하면서 많이 줄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커프>의 하림이도 있을 수 있었고, 얻은 게 많으니까. 동안이란 소릴 들을 수 있을 때 많이 듣고 싶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웃음)
그렇다면 왜 과거엔 그게 콤플렉스였을까?
남자들하고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그렇게 약간 마초적인 성격이 강했던 거 같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 같다.
사실 어릴 땐 조금 나이 들어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나도 어느 누구처럼 그랬던 거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부에 진학했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진로를 염두에 두고 학업에 접근했다는 의미 같은데.
사실 입시 준비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웃음) 진짜 잘 몰랐다. 우리 학교가 가진 전문적인 커리큘럼이나 학교가 가진 특성 자체를 잘 몰랐다. 연기 분야로 입시를 준비하는데 그 당시 우리 학교에 가장 먼저 입시가 있었다. 게다가 국립대라 등록금도 싸고, 단지 그 이유로. (웃음)
그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간 학생이 듣게 된다면 부아가 치밀지도 모를 대답인데. (웃음)
진짜 그만큼 내가 이 학교에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우리 학교 입시를 목표로 그에 맞춘 준비만 했기 때문에 그땐 너무 가고 싶었다.
한예종은 입시에서부터 실기를 굉장히 중시하는 편이다.
실기를 굉장히 많이 보고 연기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것들을 본다. 이건 그냥 나중 얘기지만, 만약에 이 학교를 떨어졌다면 아마 나는 대학을 못 갔을 거다. 모든 걸 그냥 이 학교 기준에 맞춰서 준비했었기 때문에 이 학교 못 들어가면 난 다른 데 못 들어가겠구나, 할 정도로 그 기간 동안 모든 걸 올인해서 준비했으니까. 다행히 천만다행이었지.
그 순간만큼은 연기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해도 될 거 같은데. (웃음) 결국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기를 선택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지금 연기자로서 살고 있다. 진짜 연기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고 느낀 건 언제부터인가?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설립 목표가 연극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배우는 연기를 비롯해서 모든 작업 자체가 연극을 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 학교를 들어가서는 그냥 연극 배우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동기부여가 늦었던 만큼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나 욕심이 생기고 진짜 한번 제대로 배우라는 말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2년 정도 학교를 다니게 됐을 때부터인 거 같다. 그 전에 거의 1년 반 정도는 학교에 들어가서 고민을 많이 했다. 연기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실력도 없고, 재능도 없는 거 같고, 그래서 진짜 실제로 이걸 그만 두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학교를 잠깐 떠나있다가 다시 학교에 돌아오게 되면서 그때부터 제대로 평생 여기에 올인하자고 마음먹었다.
작품마다 얻어지는 감흥이 다를 것 같다. 특히 <커피프린스 1호점>은 본인에게 특별한 작품이 아닐까. 처음으로 자신에게 캐릭터라는 걸 부여한 작품이니까.
나한테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 전작들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들도 역시 너무 하고 싶고 욕심나는 작품들이었지만 작품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노력했던 것과 기대했던 것만큼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커프>는 그런 점에서 맞물린 만족감을 준 작품이다. 하고 싶다는 욕심과 진짜 재미있을 거 같다는 기대감, 그리고 작품이 가진 힘과 대중적 관심이 너무나 잘 맞물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림이라는 캐릭터로 기억될 수 있었던 거 같고. 그걸 통해서 좀 더 많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기회도 많이 제공됐고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굉장히 특별한 작품이다. 하나의 큰 재산을 얻었다고 할까. 사실 선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드라마는 3개월이라고, 3개월 지나면 어차피 다 잊혀진다고, 그만큼 관심도 수그러들 거고 새로운 뭔가를 또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고. 그런데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하림이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아직 내가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기억될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내가 맡았던 캐릭터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하나의 큰 재산을 얻은 게 아닐까. 소위 흥행했다고 말하는 영화라 해도 그 작품의 제목과 배우는 기억해도 그 배우가 했던 역할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한다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내 이름은 몰라도 캐릭터 이름을 알고 불러주는 게 서운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이미 3년이나 지난 하림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기억해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서 바리스타가 됐다면, <국가대표>에선 스키점프 선수가 됐다. 연기 이전에 어떤 특정한 분야의 전문성을 몸에 익힐 필요가 요구될 필요가 있었다. <국가대표>는 육체적 완숙도를 보여주는 전문스포츠 선수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분명한 준비 단계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시나리오를 받고 영화를 준비하기까진 스키점프 자체가 생소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 동안 긴장을 풀지 않고 몰입해서 훈련한 덕분에 뭔가 많은 걸 습득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훈련했다면 그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긴장이 풀어지면서 나태해지거나 소홀해져서 몸으로 기억하고 체득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영화상에서 진짜 어설프게 선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준비된 상태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진짜 선수 같은 수준에 도달해야 했다. 준비된 상태에서 어설픈 건 할 수 있지만 어설픈데 준비된 상태를 보여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코치나 선수들 모두 3개월 동안 굉장히 긴장하고 몰입해서 훈련했다. 그래서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몸에 체득한 걸 바로 영화에 적용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
흥철이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되는 건 방 코치의 딸 수연에게 첫눈에 반한 탓이다. 흥철에겐 멜로 라인이 있다. (웃음) 사실 그것이 영화에서 급작스러운 감정적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기하는 당사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사실 영화로 보여지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건 흥철이가 수연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커져서 절실해진다는 설명들이 많은 부분 생략된 탓이다. 근데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하고 얘기하면서 찾아나간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느꼈다. 사실 영화에서도 찾아보면 흥철이 그렇게 사랑에 빠져서 절박해질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거든.
어떤?
음, 일단 흥철이란 인물 자체가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고 좋고 싫음에 있어서 단순하다. 그런 인물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어, 너무나 좋아. 그런데 밥이라는 장애물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 절박해지고 욕심이 날 수 밖에 없다. 사실 실제로도 그럴 때가 많거든. 그런 문제없이 너네 둘이 잘 만나봐, 그래서 둘이 매일 만나고, 사랑하고, 좋기만 하면 오히려 다른 생각도 들고, 사랑이 주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군가 자꾸 너네 만나면 안돼, 방해하거나 내가 소홀하면 다른 사람과 잘 될 거 같은 기분이 든다면 사람은 더 절실해지고 절박해질 수 밖에 없거든. 빨리 내 여자로 만들어야 될 거 같고. 실제로 밥이라는 인물이 중간에서 흥철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어주고, 끊임없이 그런 요소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랑에 빠져, 그래도 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순진하진 않지만 그만큼 솔직한 인물이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다. 너무 놓치고 싶지 않고 절실한 사랑을 만났기 때문에 그만큼 거침없이 표현하고 싶고, 그런 게 흥철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고.
스키점프 신은 <국가대표>에서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사실 CG의 공헌도가 큰 신이기도 한데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완성된 화면에 대한 궁금증이 크진 않았을까? 물론 어떻게 만들어질지, 100% 완성된 결과가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장면에서의 CG는 경기장 사이드의 배경이나 관중들에게 쓴 게 전부다. 나머지는 다 우리가 직접 만든 것이라서 사실 실제로 찍은 점프 영상들을 보는 게 우리에겐 더 감동적이고 짜릿한 흥분을 전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게 어떻게 보여질까, CG가 어떻게 잘 입혀질까, 그런 걱정을 했는데 진짜 좋은 영상이 나온 거 같다. 사실 우리도 그 장면에서 들어가는 CG를 보면서 어떤 게 CG인지 헷갈렸다. (웃음) 어디까지가 CG고 어디까지가 실사지? 막 그랬다.
한번쯤 진짜 점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어떨 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웃음) 그 느낌이 뭔지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운 거다. 우린 너무 무섭고 공포가 장난 아닌데, 어떻게 이런 까마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려서 맨몸으로 하늘을 느끼는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정말 너무 궁금했다. 15m부터 시작해서 30m, 60m, 이렇게 점프대가 많은데, 우리가 계속 훈련했을 때 아마 다들 15m나 30m에서는 뛸 수는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됐을 거다. 코치님도 그랬었으니까. 만약 직접 뛰었다면 아마 한 30m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선수들이 부러웠다. 정말. (웃음)
만의 하나 사고가 생기면 정말 큰일이니까, 아무리 실력이 있었다 해도 결코 뛰어선 안 되는 일이었을 거다.
영화가 그냥 끝나버리니까. 재수없으면 살짝 다친 걸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원래 스키는 탈 줄 알았나?
나랑 재환이랑 재응이는 스키 자체를 처음 타봤다.
그럼 올 겨울엔 스키장에 꼭 가야겠다.
스키에 대한 재미나마 마저 느껴야지. (웃음)
저마다의 삶 안에서 난관 속에 놓여있던 청년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점프를 한다. 배우로서 좀처럼 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난관을 극복함으로써 더더욱 주목 받을 기회가 늘지 않을까.
배우로서 계속 점프하고 싶다.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도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프를 해왔고, 그 가운데 점점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끊임없이 계속 점프하고 있다. 계속 점프를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 한번 뛰어내릴 때마다 넘어지냐, 착지하냐, 에 연연하기 보단 계속해서 뛰고 점프하다 보면 더 나은 자세로 날고 착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길 거 같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뛰면서 좀 더 멋지고 아름답게 날고 착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희망을 이어나가고 싶다.
활강, 도약, 비행, 착지로 이뤄지는 스키점프의 과정은 기승전결의 과정이다. 높은 스키점프 대를 신속하게 미끄러져 내려온 뒤, 하늘로 붕 떠올라 멀리까지 날아가서 사뿐히 내려앉는 스키점프는 그 짧은 과정만으로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국가대표>는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실화로부터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추출하는 영화다. 동계올림픽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서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일궈낸 현실을 발판으로 삼아 허구를 도약시킨다.
유년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밥(하정우)은 ‘알파인 스키’미국국가대표 자격을 버리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방송을 통해서까지 어머니를 수소문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밥에게 그의 전력을 아는 방 코치(성동일)가 찾아와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 자리를 제안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나를 미국에 삼천만 원에 팔아 넘겼다”고 말하는 밥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방 코치의 답변이 정곡을 찌른다. “너도 이용하라고, 대한민국.”밥의 마음이 움직인다. 비로소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단이 위용(?)을 갖추기 시작한다.
밥과 함께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구성하게 되는 나머지 4명의 청년들은 저마다 굴곡이 깊은 사연을 품고 있다. 학창시절, 도 대표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약하며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지만 약물복용사실이 발각되어 수상 자격을 박탈당한 흥철(김동욱)과고깃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권위에서억눌리듯 살아가지만흥철의 팀 동료로서그와 함께 메달을 박탈당했던 알파인 스키 선수 출신재복(최재환)이 선수단에 참여한다. 그리고나이든 할머니와 정신지체 증상이 있는 동생 봉구(이재응)를 돌보며 힘겹게 살아가지만 입영 날짜를받아들고 고민하는청년 가장 칠구(김지석)가 선수단에합류한다. 청년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두고 방 코치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군대를 면제받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기 위해서,심지어 한 눈에 반한 여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국가대표를 허락(?)한다.
스키점프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로 발탁된 5명의 선수들은 세계와 맞서기 전에 열악한 국내 실정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노리는 무주의 스키점프 시설 공사장 주변에서 먼지를 마시며 러닝을 하거나 폐쇄된 놀이공원 후룸라이드를 스키점프대로 직접 개조하면서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은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 고생스럽다.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멤버들의팀워크를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개개인 간의 갈등이 도출되고 내분이 발생하며, 심지어외부에서 돌출된 알력으로 선수단이 와해될 위기를 연출하기까지 하는 국가대표단의 상황은 오리무중의 연속이라 구차하기 짝이 없다.
지나치게 쉽게 진전된다는 인상을 부여하는서사 속에서 헐거운 이음새를 종종 노출하곤 하는 <국가대표>가 뛰어난 이야기적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선수들의 개별적인 사연들은 지극히 상투적인 드라마의 개연성 위에 각자 자리를 잡은 채 계산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마다 착지하고자 하는 감정적 목표가 확실한 영화 속 사연들은 때때로 개연성을 보장할만한 경사각을 구축하지 못한 채 무리수를 두고 단독질주를 감행하며 각기 미끄러져 내려가는 탓에 전체적인 호흡을 어지럽힌다.결국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연들이 각자 내달리는 탓에 각자의 사연이 저마다의 지점에서 선전하지만 궁극적으로 총합적인 이야기의 스코어를 깎아먹는다. 그럼에도 그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건 상투적인 예감에 미묘한 오차범위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유머의 순발력과 실화라는 원천적 동력이다. 지극히 계산적인 진지함을 연출하곤 하는 사연을 유연하게 중화시키는 입담이 구사되고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끼워 넣는 배반적 설정이 상투성을 둘러싼 사건을 순발력 있게 대체한다.
가장 확실한 밑천은 실화다. 실화를 밑그림으로 허구를 덧칠함으로써 가산점을 획득하고 감점을 얻었지만 사실상 현실이라는 원색이 환기되는 결말부에 다다라 그 모든 스코어는 무의미해진다. 비인기종목의 서러움과 지정학적 편견, 열악한 제반 조건을 이겨내고 올림픽 무대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낸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압축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절대적 질량이 현실적 기반 위로 부피를 확보한 드라마의 허구보다도 효과적인 페이소스를 발생시킨다. 대한민국이라는 열악한 현실 자체가 품고 있는 페이소스의 자질이 스포츠 영화로서의 쾌감에 정당한 상승을 부여하며 허구에 가속력을 부여한다. 특히 <국가대표>는 스포츠 영화로서 앞선 어떤 전례보다도 탁월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스키점프 신은 앞서 덜컹거리던 드라마의 단점을 잊게 만들 만큼 압권의 쾌감을 선사하고 성기게 진전되는 허구 속에서도 서서히 숙성되던 마이너리티적 감수성을 일거에 폭발시킨다. 마치 스크린을 통해 스키점프 경기를 단체관람하고 있다는 착각을 부를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는 스키점프 신은 직선으로 내리 뻗은 스키점프 대를 타고 내리는 활강의 속도감과 도약의 쾌감, 그리고 비행의 체공감과 착지의 성취감을 고스란히 이미지로 구현한다. 스키점프 신의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 감정적 오르내림을 선사하는 기승전결의 압축적 이미지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들의 고군분투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신이란 점에서도 매끄러운 인과 관계가 발견된다. 서사와 묘사의 연동이 매끄럽다.
실화라는 질량을 유지한 채 허구의 부피를 늘려나가고 그 가운데 느슨해지는 드라마의 밀도가 발견되지만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질량을 보존하는 실화의 묵직함이 영화적 감수성을 보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랬듯, <킹콩을 들다>가 그것을 복기했듯, <국가대표> 역시 실화에 밑진 영화다. 유머가 적절히 곁들어진 신파를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나열해도 궁극적으로 현실을 대변하는 자막 한 줄의 위력에 닿지 못한다. 여전히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5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엔딩의 한 줄 자막이 <국가대표>가 부지한 2시간 여의 러닝타임보다도 위력적인 울림을 전한다. 헝그리 복서에 대한 기억이 낡았을 뿐, 대한민국은 여전히 촌스러운 마이너리티의 신파가 산재하는 세상이다. 경제적 지표를 자랑스럽게 전시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에 촌스럽게 매달리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스포츠 루저들을 양산하고 영화는 이를 착취한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루저들을 ‘자랑스럽고 무궁한 영광’에 도매금처럼 팔아먹지 않는 <국가대표>는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공정한 스포츠 신파라 인정할만하다.
관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노출뿐이라 생각한다면 빈곤한 상상력을 탓할 필요가 있다. 직관적인 이미지는 자극의 잠재적 성과를 되레 반감시킨다. 선명한 이미지의 관찰보다도 불투명한 실루엣이 발생시키는 상상력이 감상적 욕구를 자극하곤 한다. 이미지가 발생시키는 자극의 충만보다도 잠재적인 욕구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매혹적이다. 여인의 나신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관능적인 티저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는 <오감도>는 분명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에로티시즘의 상상을 예상케 한다.
변혁의 <his concern>, 허진호의 <나 여기 있어요>, 유영식의 <33번째 남자>, 민규동의 <시작과 끝>, 오기환의 <순간을 믿어요>까지, 에로스라는 주제에 차례로 내걸린 다섯 개의 시선을 내건 옴니버스 <오감도>는 분명 적확한 기대감을 부르는 기획영화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한 여인에게 이끌린 남자, 섹스리스의 일상 속에서 비극적 예감을 참아내는 부부, 서투른 신인배우와 관록 있는 중견배우의 충돌과 이를 조율하는 명감독의 기이한 삼각관계, 남편의 부음과 외도 사실을 함께 알아버린 아내의 미스터리한 동거, 발랄한 10대들의 속을 알 수 없는 파트너 체인지. 다섯 편의 작품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장르적 탈을 쓰고 에로스의 수위를 오르고 내린다.
로맨틱코미디, 멜로, B급호러, 미스터리, 하이틴로맨스, 각기 다른 장르의 탈을 쓴 <오감도>는 저마다 야심적인 방식으로 개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오감도>는 작품을 거쳐나갈수록 방식의 차이에 따른 자극적 성취를 선보이기보다 권태를 축적해나간다. 옴니버스라는 형식으로 내걸린 다섯 편의 작품은 분명 에로스라는 관능을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공유하고 있으나 다섯 편의 작품은 어느 하나도 이를 관통하지 못한다. 차분한 1인칭 내레이션을 통해 캐릭터의 심리적 흐름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에피타이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등장하는 작품들은 저마다 다양한 장르적 욕망을 선보일 뿐, 결과적으로 권태를 쌓아나간다. 저마다 좀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키지 못하는 결과물이 연속적으로 전시된다.
옴니버스는 다양한 시선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발견한다는 귀납적 묘미와 하나의 주제로 다채로운 해석을 만끽할 수 있다는 연역적 묘미가 가능할 때 흥미로운 감상이 가능해진다. <오감도>는 옴니버스의 다양성을 악재로 몰고 나가는 두서 없는 기획이다.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동시에 저마다 하나같이 피곤한 감상적 결과를 부른다. 에로티시즘에 대한 기대감은 파격이란 단어를 낯설게 만드는 이미지와 창의적 해석과 무관하게 장르적 과욕에 사로잡힌 스토리텔링의 거듭된 난국 속에서 빠른 속도로 낡아간다. 도전적이라기 보단 과욕적이며 창의적이라기 보단 자만에 가깝다. 짧은 단편들이 마치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암담해진다. <오감도>는 에로티시즘이 증발된 에로스의 만찬이다.차린 건 많아 보여도 좀처럼 잡히는 게 없다. 그저 티끌처럼 쌓여나가는 권태가 끝내 태산처럼 쌓여 식욕을 감퇴시킬 따름이다.
에로스에 대한 다섯 개의 시선. 과감하고도 감각적인 누드 이미지를 내건 티저포스터는 <오감도>가 구사할 에로티시즘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 영화는 포스터가 주는 모종의 기대감과 동떨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오감도>는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옴니버스이자 기획에 따른 기대감을 배반하는 결과물이다. 창의적인 해석력도, 과감한 묘사력도 선보이지 못한다. 도전적이라기 보단 과욕에 가깝고, 창의적이라기 보단 자만에 가깝다. 에피소드를 통과할수록 티끌과 같은 권태가 쌓여나간다. 또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축적된 권태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고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