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1인 미디어란 언어 그대로 1인이 미디어가 된 것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파워블로거 같은 것이다. 웹을 통해 전지역적인 네트워크가
개설되고 편집과 제작이 용이한 개인 블로그 플랫폼 툴이 제공되면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띄워 보낼 수 있게 됐다. 세상을 망라한 식견을 쥐고 있다면 충분히 털어낼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젠 자신을 영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대다. 유투브, 아프리카 TV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영상을 찍고,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전화 기능은 옵션 중
하나가 된지 오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핸드폰 광고는 높은 산에서, 먼 바다에서 통화가 잘 터지는가를 강조했다. 요즘의 스마트폰 광고는 대부분 카메라 화소가 얼마나 좋은지, 데이터가
얼마나 잘 잡히는지에 방점을 찍는다. 결국 잘 찍히는가 그리고 잘 볼 수 있는가가 지금 스마트폰을 고르는
기준이다. 결국 음성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이 스마트폰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란 말이다.
1995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를 사람들은 ‘귀가시계’라 불렀다. 사람들이 <모래시계> 방영 시간을 맞춰서 집으로 귀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면 방송을 보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보고자 했던 방송을 찾아서
볼 수 있다. 재방송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결국 정확한
시간대에 TV 앞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TV의 대안이 아니다. 그들에겐
리모콘으로 채널을 고르는 것보다 액정을 터치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게 더욱 익숙하다. 그곳엔 엄마, 아빠가 보던 TV채널과 다른 것이 있다. 먹방, 겜방, 톡방 등
개인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한다. 자신이란
콘텐츠를 세상에 전파한다.
이들을 콘텐츠 크리에이터라 명명하는데 그들 중에선 연예인만큼이나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올해 <동상이몽>에 출연한 BJ 대도서관은 자신의 월 수익이 오천만원이라고 밝혔다. 대도서관은 자신이 게임을 하는 영상을 중계하고, 그 영상을 보는
이들과 대화하듯 말한다. 즉각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실시간적인
콘텐츠 플레이가 가능하다. 채널에 소속된 개인이 아니라 개인 자체가 채널이 된다는 것, 이는 전통적인 TV 방송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다.
연예인에게 매니저가 있듯이 대단한 팬덤을 지닌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도 매니저가 생겼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의 배급과 관리를 담당하는 신종 사업인데 이를 멀티 채널 네트워크(Multi Channel Network), 즉 MCN이라고 한다. MCN 산업은 1인 미디어의 시대를 통해서 새로운 미디어의 흐름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1인 미디어를 위한 매니지먼트이면서도 수많은 1인
미디어를 거느린 방송국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트레저 헌터나 다이아TV, 메이크어스 등 1인 미디어 혹은 중소 규모의 제작자 집단을 거느린 MCN 산업을 전개하는 움직임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결국 폭넓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범대중적인 영향력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시장성과 휘발되는 재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콘텐츠의 질적인 성숙 여부도 향후 MCN 산업의
청사진을 가늠하는 키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이 1인 미디어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다. 흥미 있는 콘텐츠는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발 빠르게 전파된다. 1인 미디어 시대란 결국 스마트폰이란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발견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개인 창작자들의 서부시대다. 그 중에서도 영상 콘텐츠는 1인
미디어 시대의 패권을 가늠할 알파요, 오메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연히 주목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핸드폰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고, TV를 보거나 노래도 듣는다. 심지어 인터넷을 하기도 한다. 핸드폰으로 전화만 한다면 촌스런 사람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더 이상 통화가 잘되는가 따위는 좋은 핸드폰의 기준이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시대가 그만큼 좋아졌다. 그리고 그만큼 문제가 발생한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때때로 그 안에 은밀한 개인정보라도 담겨 있다면 심각한 문제로 발전한다. <핸드폰>은 그 심각한 문제를 파고든다.
떠오르는 신인 연기자의 매니저 오승민(엄태웅)이 그 문제의 핸드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핸드폰을 줍게 된 임자가 심각한 질환을 품은 자아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핸드폰>은 작은 해프닝이 아니라 심각한 스릴러가 된다. 분실한 사람과 습득한 사람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은 다름 아닌 핸드폰의 기능 덕분이다. 그 좋은 기능들이 되려 핸드폰을 잃어버린 자의 심리를 옥죄고 누른다. 물론 영화의 본론은 그 핸드폰에 적중할 것 같지만 핸드폰은 <핸드폰>에서 그저 하나의 거대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회의 심리적 기저를 살피는 일종의 프리즘과 같다. 그 물건에 깃든 사회적 세태를 펼쳐내는 작은 수단이 된다.
핸드폰에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는 관객의 맹점을 만드는 수단이다. 단지 핸드폰에 담긴 중요한 동영상에 발목을 잡혔다고 믿는 오승민에게 정이규(박용우)는 파렴치한 거래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더욱 심각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승민은 억세게 재수없는 사람이다. 차라리 그 표면적인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핸드폰>은 단순한 구조의 해프닝에 얽힌 스릴러가 됐겠지만 실상 영화의 의도는 그보다 넓고 깊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되찾으려는 자의 오해와 돌려주려는 자의 욕망이 기이하게 뒤엉키고 엇갈려 나갈 때 <핸드폰>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사연으로 뻗어나간다. 단순히 어떤 물건을 둘러싼 거래가 아니라 사회의 병적인 문제들이 그 사소한 사연에 끼어들며 스토리를 예측 불가능한 궤도로 밀고 나간다.
서비스업에 대한 계급적 멸시가 횡행한 사회적 풍토와 함께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서민의 심리적 공황이 신경질적으로 결합해 스릴러의 심리를 완성한다. 동시에 이를 추적해나가는 오승민의 무례한 태도가 어지럽게 엉킨 상황을 연출하는데 일조하며 이야기의 흥미를 자아낸다.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병렬 구조로 배치돼야 마땅할 것 같은 사연들이 차례차례 직렬로 이어지며 진행 과정의 온도차가 발생한다. 게임의 구조로 마주섰던 인물간의 대립이 본격적인 대결 구도로 이어질 때 즈음엔 일방적인 추격으로 변질되고 종래엔 드라마가 엉겨 붙어 불가피한 감정을 요구한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서 문제라기 보단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각자의 주체성을 고수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어지럽힌다. 조합을 이루지 못하고 순열처럼 늘어서있다. 흡사 여러 사람과의 통화가 혼선된 기분이다. 결말에 다다르면 전반부의 사연이 깡그리 잊혀진다. 핸드폰은 하나의 맥거핀에 불과하다. 물론 교훈 하나는 확실하다. 핸드폰 잃어버리지 말 것. 특히나 당신에게 핸드폰이 은밀한 비밀을 담는 도구라면 결코 잃어버려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뼈저리게 체감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