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부팅’ 그러니까 컴퓨터를 다시 켠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러니까 영화를 리부트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부트는 그 대상이 되는 원작이 깔아놓은 철로에 개량된 열차를 올려놓는 작업이 아니다. 열차뿐만 아니라 철로를 싹 갈아엎고 비행장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변주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 시리즈의 정체성만은 유지한다. <배트맨 비긴즈>(2005)엔 배트맨이 있고, <맨 오브 스틸>(2013)엔 슈퍼맨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없는 <007>시리즈가 존재할 리 없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리즈의 미래를 보장하는 뿌리이자 줄기이며 잎이자 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엔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다.
언젠가 한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건 필연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면 더욱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이든,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한결 같이 ‘태생의
비밀’을 안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부분의 리부트
영화들이 ‘프리퀄 무비’로 시작되는 건 다분히 전략적인 셈이다. 리부트의 대상이 되는 기존의 작품으로부터 해방돼서 새롭게 설계된 이야기 위에서 자유로운 전개가 가능하다. 이를 테면 <007: 카지노 로얄>(2006)이나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과 같은 작품은 프리퀄의 형식을 빌려서
시리즈의 리부트를 시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서사의 발판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성을 탐색하고 구축한 뒤, 나아가버린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노력보다도 손쉽게
검증된 이야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방법론이다. 게다가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물들이 증명한 것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의 너비란 그야말로
우주처럼 넓고 광활하다. CG의 발달을 위시한 영상 기술의 발달도 리부트를 부채질한다. 과거의 기술력으론 표현할 수 없었던 이미지의 구현이 완벽하게 가능해진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화적 이미지들을 놀라운 볼거리로 발바꿈시키는 것만으로도 리부트의 가능성은 보다 무궁무진해진다. 리부트
열풍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확장될 것이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수많은 인기 프랜차이즈들이 리부트의 대열에 합류 중이다.
리부트 열풍은 영화계를 넘어서 TV시리즈까지 강타하고 있다. 내년에 방영될 예정인 <히어로즈> 시즌 5는 이미 기존의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방향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또한 고전 시리즈로서 인기를 모았던 슈퍼히어로물인
<플래쉬>도 새롭게 리부트될 예정이다. 또한
리부트 열풍은 영화와 미드의 경계를 넘어선 스핀오프 기획으로 진화 중이다. <어벤져스>의 성공에 힘입은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기획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고든 경감을 주인공으로 둔 또 다른 <배트맨> 프리퀄 시리즈가 미드로 제작 중이다. 스크린과 TV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리부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계에 불시착한 사람들. 그 세계에서의 탈출을 고대하며 행동에 옮기던 그들은 자신이 발 디딘 땅의 정체를 알아버린 뒤, 자신의 안식을 위해줄 영토가 없음을 절실하게 체감한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블의 원작을 영화화한 <혹성탈출>의 충격적인 결말은 인간사와 지구사를 동일시해온 인류에게 있어서 경종을 울릴만한 사건이었다. 1968년, <혹성탈출>이 첫 작품의 상영 이후로 여섯 편에 달하는 시리즈로 진전된 것도 그런 반향이 만들어낸 추진력 덕분이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시초가 된 첫 작품 이후로 팀 버튼의 리메이크작을 포함한 어떤 것도 그 이상의 흥미를 자아낸 것은 아니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진화의 시작>)에 대한 흥미와 의심의 눈길이 모이는 것도 그런 전례에서 기인한다.
<진화의 시작>과 팀 버튼의 <혹성탈출>이 지닌 공통점은 두 작품이 과거의 오리지널보다도 진화된 영상 기술을 담보로 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진화의 시작>은 수작업으로 완성된 침팬지의 탈을 쓰고 연기하던 과거의 시리즈물에 비해서 모션 캡처 퍼포먼스를 활용한 디지털 캐릭터로 보다 사실적인 묘사력을 얻어냈다. <진화의 시작>에서 사실적인 묘사란 영화를 위한 수식어가 아니라 필수적 요소처럼 보인다. 팀 버튼의 그것을 포함해서 과거의 시리즈가 가상적인 메타포의 세계관처럼 보이는 탓에 퇴보적인 VFX의 요소가 되레 그 가상성에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 것과 달리 <진화의 시작>은 영화 밖의 현실을 영화로부터 환기시켜야 될 만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미지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의 시작>은 오늘날의 진화한 디지털 비주얼을 통해 현실화된 프로젝트라 할만하다.
<스타워즈>의 프리퀄 3부작이나 J.J. 에이브람스의 <스타 트렉>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리지널 프랜차이즈보다도 앞선 근본을 그린 프리퀄 무비가 그 기원보다도 나은 영상 기술로 구현된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화의 시작>도 그렇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새로운 예감을 품게 만든다. <진화의 시작>은 1968년의 그것을 이루는 세계관이 어디서 출발했는가를 되짚는, 보다 정확하게는 그 기원의 역사를 뒤늦게 기획해낸 <혹성탈출>의 프리퀄이다. 하지만 <진화의 시작>과 <혹성탈출>은 분리된 세계관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단순히 프리퀄이라고만 정의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 있다. 시리즈의 원류가 된 <혹성탈출>을 통해서 설명하자면 <진화의 시작>은 우리가 목격한 그 디스토피아의 원류를 그리는 프리퀄이다. 동시에 <진화의 시작>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도 상관없는 시리즈의 리부트라 논해도 좋을 작품이다.
현시대의 풍경으로부터 멀리 나아간 과거의 시리즈와 달리 <진화의 시작>이 작금의 풍경을 그릇 삼아 영화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이 작품 이후에 이어질 (가능성이 충만해진) 새로운 시리즈의 이미지가 보다 현실적인 환경 안에서 세워질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낸 셈이다. <진화의 시작>은 화석 같던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동시에 그 모든 이미지들을 새롭게 단장해낸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건 결국 <진화의 시작>이 그럴 만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작>은 과거의 시리즈에 대한 경험 유무와 관계 없이 저마다의 흥미를 얻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끝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 <진화의 시작>이 단순히 자신이 봤던 그 작품의 원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에 가깝다. <혹성탈출> 속에서 그려지는 인류의 처참한 상황은 <진화의 시작> 속의 침팬지가 처한 상황과 일 대 일로 조응한다. <진화의 시작>은 <혹성탈출>의 메타포가 된 현실을 영화에 담아내는 동시에 그 메타포를 영화적 모티프처럼 응용해낸다. <혹성탈출>이 인간과 유인원들의 역전된 관계를 그리며 오늘날의 인류가 유인원(, 그리고 여타의 동물들)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에서 메타포를 얻은 우화임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프리퀄의 서사를 통해서 그 세계관이 우화의 수준을 넘어서 현실적인 세계관으로 안착시킨다.
(<혹성탈출>을 아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진화의 시작>은 유인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인간의 몰락이 어디서 시작됐는가에 관한 영화다.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인해 우연 같은 필연으로 지능을 얻게 된 침팬지가 인류를 제압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인간에 의해서 의학적 실험 대상으로 유린 당하는 침팬지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 개발된 의학적 산물로 인해서 진화적인 사고를 얻게 되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과정을 논리적인 인과로서 설득해낸다. 동시에 진화한 유인원들이 인류의 주도권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세계를 건설해내는 과정이 생략된 덕분에 현실의 메타포로 머무르던 <혹성탈출>의 세계관에 완전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진화의 시작>은 단순히 침팬지들의 진화로 인한 세계의 전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능으로 인해서 스스로 몰락하게 되는 인류의 과정을 그린다. 단순히 시리즈의 서사적 빈칸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서 그 논리적인 공백을 메워버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프리퀄인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떠한 인물들보다도 매력적인 캐릭터 시저는 프로그래밍된 가상의 눈동자를 통해서 어느 인간보다도 진실된 감정을 전달해낸다. 탄탄한 서사가 <진화의 시작>을 이루는 육체라면, 앤디 서키스가 연기하는 디지털 캐릭터 침팬지 시저를 비롯한 유인원 캐릭터들은 영화를 밀고 나가는 심장이다. 노예 해방 운동에 가까운 계급적인 투쟁처럼 발전해나가는 침팬지들의 반인류적인 활약은 그것을 지켜보는 인간 관객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큼 뜨거운 감정을 전하는 동시에 흥분할만한 긴장감을 전한다. 민첩하고 유연한 움직임을 지닌 침팬지들이 주변의 환경을 이용해서 인간의 공격에 맞서고 되레 역습을 가하는 이미지는 탁월한 묘사력 자체만으로도 역설적인 경고인 셈이다. 특히 클라이맥스라 할만한 금문교 전투 신은 실로 압권이다. 카리스마가 대단한 리더로 진화한 시저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유인원들의 활약은 심장의 박동처럼 경쾌하고, 그 사이에서 희생을 결심하고 서로를 고무시키는 그들의 소통 방식은 그 자체로 마음을 달군다. 특히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객석마저 장악하는 시저의 포효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명장면이다.
<진화의 시작>은 유명 시리즈의 프리퀄 수준을 넘어서 동물적인 감각과 이성적인 사고를 배합해낸 진화적인 블록버스터다. 이미 그 이후를 알고 있음에도 흥미를 사로잡는 시작은 소름 돋는 전율로 다다라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도 발달된 CG기술의 남용을 전시하는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 광풍 속에서도 <진화의 시작>과 같은 작품은 그 기술적인 가치의 활용성을 설득시키고도 남는다. 그리고 <진화의 시작>을 통해서 <혹성탈출>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진화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