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익혀도 과거에 응시할 수 없고, 무예를 익혀도 나라를 훔칠 수 없는 신분. 인조반정의 피바람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락한 자손으로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지만 시대는 그를 무기력하게 억누른다. 학문도 무예도 남이(박해일)에게는 덧없는 미망과 같다. 그래도 하나뿐인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아끼는 그에게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의 아들인 서군(김무열)이 결혼을 허락해달라 간청한다. 그리고 여동생의 결혼과 함께 먼 길을 떠나려던 그에게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밀려든 청의 대군 앞에서 성문은 손쉽게 열리고, 평화롭던 마을이 삽시간에 비극의 불길로 타오른다.
시대적 배경은 병자호란, 공간적 배경은 만주, <최종병기 활>은 탈한반도 지형의 액션물이다. 나라로부터 버림 받은 역적의 아들이 청의 군사들에게 포로로 끌려갔으나 나라가 구해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서 압록강 국경을 건너 만주 벌판으로 나아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활을 들고 청나라 병사들과 맞선다. 스토리의 구조가 시공간의 묘와 맞아떨어진다. 국가라는 대의의 명예보다도 중요한 건 사적인 생사에 있다. 조선이라는 보수적 세계관 안에서 도드라지는 진보적 가치관이 개개인의 현실 안에서 설득력 있게 맞붙는다. 이야기적인 설정의 묘가 시공간의 성격과 맞아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비극에 함몰된 인물이 타국으로 끌려간 여동생을 찾고자 국경을 넘는 남이의 의지를 설득력 있는 서사로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나가는 과정도 자연스럽다. 사실과 허구의 배합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도 <최종병기 활>은 어떠한 인물보다도 제목에서도 등장하는 활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다. 검과 창이 아닌, 활과 활의 대결을 그린다는 건 결국 서로 거리를 둔 채 활시위를 당기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심리를 얼마나 긴박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최종병기 활>은 그 거리감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인물과 인물 사이의 심리적 긴장감을 끊임없이 당기고 놓는다. 검과 창을 맞부딪히는 묵직한 백병전 대신 잠복과 엄폐를 통해 위치를 점하고 상대를 겨냥하는 남이의 게릴라전과 이를 뒤쫓는 청군의 추격전을 통해서 영화의 심박수를 조절해나간다. 거리를 둔 채 활시위를 당기는 인물 간의 간격이 팽팽한 서스펜스로 당겨진 뒤,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재빠르게 튕겨져 나간다. 활의 기동성을 통해서 형성되는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은 <최종병기 활>이 지닌 영화의 ‘최종병기’다.
무엇보다도 대립각을 펼치는 양쪽의 인물들이 선악의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고 저마다에게 적당한 명분을 쥐어주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특정 인물의 행위에 감정을 쏟아 넣기 보다는 중립적인 시각에서 캐릭터들의 행위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격전의 묘미가 보다 생생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탁월한 호연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그 배우들의 호연에 멍석을 깔아준 캐릭터 설계 또한 준수하다. 단단한 드라마를 활처럼 세운 뒤, 탄력 있는 연출력을 활시위처럼 매달고, 화살처럼 잘 깎인 캐릭터들을 얹혀서 튕겨 날리니 쾌감과 감동이 적중한다. 단단한 드라마, 팽팽한 연출력, 날렵한 배우들, <최종병기 활>은 당기고 놓는 법을 잘 아는 영화다. 큰 무리수 없이 흐르는 스토리를 줄기 삼아서 주렁주렁 열린 액션들이 즐기기 좋은, 이 정도면 확실한 웰메이드 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