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음악이 길이 되고, 생이 됐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새로운 삶을 만난다. 그리고 이 세계보다도 넓은 음악적 여정을 꿈꾼다.
‘내가 이 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20년 전, 파리 유학 중 우연히 지나가던 샤틀레 극장 앞에서, 나윤선은 생각했다. 그리고 2013년 나윤선은 샤틀레 극장에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서있었다. 1600석이 넘는 좌석을 빈틈 없이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노래했다. “놀랍게도 꿈이 실현됐으니 그때 제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죠. 그것도 전석 매진이 되는 상황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습니다.” 1860년에 지어진 파리의 샤틀레 극장은 파리의 예술가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나윤선은 그렇게 꿈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재즈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뉴욕의 ‘블루노트’로부터 초청을 받아 이틀 동안 네 차례의 공연을 펼쳤다. 재즈의 본고장 미국 안에서도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을 배출한 재즈의 산실 블루노트에서 말이다. “재즈 뮤지션에게 미국 시장은 언제나 숙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미국 활동에 할애하려 해요. 어쨌든 미국에서의 첫 숙제는 비교적 잘 마친듯해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간절함과 절실함만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주치게 되는 운명의 좌표가 등장한다. 뒤늦게야 그것이 마냥 지나치던 일상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리키던 지표의 연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린 그걸 재능이라고 부른다. 재능은 삶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윤선이 재즈 보컬리스트가 된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패션회사에 지원했어요. 입사 경쟁률이 높은 회사였고, 합격해서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회사를 그만 뒀을 무렵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 역을 맡게 됐죠.” 혹시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이 있었던 것일까?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어요. 당시 음악을 하던 친구가 제 노래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뮤지컬 연출자인 김민기 선생님께 들려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경험이 일천한 저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셨어요. 그 뒤로 두 편의 뮤지컬에 더 출연했어요. 정말 우연의 극치죠.” 하지만 그 ‘우연의 극치’가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란 미래를 발굴한 셈이다.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은 나윤선의 유전자에 잠재된 재능을 흔들어 깨웠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클래식 합창단 지휘자인 아버지와 뮤지컬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나윤선은 ‘공연장의 백스테이지가 놀이터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녀에게 음악이란 매일같이 열고 닫는 방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문턱을 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워보고자 결심했다. 다만 그것이 재즈여야 했던 이유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무언가를 배우기엔 이른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클래식을 공부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았고, 친구의 권유로 재즈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아닌 프랑스 유학을 선택한 건 제 전공이 불문학이었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샹송을 매우 좋아하기도 했고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그렇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실 나윤선의 공연에선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일관성보단 다채로운 음악적 영향력이 감지된다. 나윤선의 무대는 록과 팝, 일렉트로니카, 포크, 국악 등 다양한 음악적 자장을 재즈로 흡수해버리는 장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재즈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 관심이 있어요.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들도 저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재즈는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하는데 적합한 음악이거든요.” 어쩌면 그건 그녀의 곁에 좋은 음악적 동지들이 존재하는 덕분일지도 모른다. 벌써 7년째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는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최정상급의 연주자다. 그리고 아코디어니스트 뱅상 뻬라니와 콘트라베이시스트인 씨몽 따이유도 재능을 인정 받는 연주자다. 이처럼 재능 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나윤선 콰르텟’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건 나윤선에게 그들을 매혹시킬만한 실력이 있다는, 역설적 증명이다.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같아요. 그런 면에서 지금 함께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정말 제게 최고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겠죠.”
나윤선은 1년 동안 전세계를 돌며 100회 정도의 공연을 소화한다.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 앞에 서고 노래한다.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뮤지션에겐 큰 행운이에요. 같은 레퍼토리를 공연해도 관객에 따라 그 느낌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고되고 힘든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윤선은 아직도 그 여정을 통해 얻게 될 무언가를 기대한다. “어느 유명 연주자가 인터뷰에서 ‘당신은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에 ‘호텔에서 살아요’라고 답한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실제로 연주 여행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나 호텔에서 보내게 되니까요. 녹록한 일이 아닌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항상 설레는 마음이 있죠. 저는 항상 제 음악적 여정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여행을 하며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게 되고요.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생경한 풍경과 사람들도 제겐 때로 큰 영감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항상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라는 설렘으로 비행기에 올라요.”
이미 잘 알겠지만 나윤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재즈 보컬리스트다.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닿길 염원하는 팬들이 전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한류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나윤선은 세계를 누볐다. 그런 그녀에게 한국의 무대에 선다는 건 지금 어떤 의미일까. “모든 무대가 소중해요. 하지만 한국에서 공연할 땐 조금 다른 느낌이 있죠. 공연 시작 전엔 좀 더 긴장이 되는데 막상 시작하면 해외에서보다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래도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이 좀 더 크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여정이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되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으로 보다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나윤선은 모든 공연의 끝에서 ‘아리랑’을 부른다. 그 무대의 끝에서 자신이 돌아올 곳을 되돌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보다 세계에서 더 유명한 뮤지션’이란 수사도 그녀에겐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겐 보다 넓은 세상이 있고, 더 큰 음악이 있다. “음악 활동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연습할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다.’ 어느 80대 원로 연주자가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인데 저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항상 새롭고 젊은 음악을 하는 게 제 음악적 목표에요. 아직 저 앞에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윤선은 젊은 뮤지션이다. 아직 서야할 무대가 많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중하고 큰 의미를 되새길 때가 왔다. 오는 12월, 한국에서의 공연을 앞둔 나윤선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안도감과 정서적 공감을 확인하고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할 계획이다. 내년 3월엔 다시 프랑스 샤틀레 극장의 무대에 선다. 세계보다도 더 넓은 음악적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ASIANA December 2014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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