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집을 운영하는 거위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뚱뚱한 팬더 포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던 용의 전사로 간택되어 세계의 평화를 지켜냈다는, <쿵푸팬더>는 쿵푸와 팬더라는 중화적 요소들을 결합시켜 이뤄낸 드림웍스의 새로운 성과였다. 그리고 <쿵푸팬더>의 성공을 이끈, 슈렉 이후로 가장 성공적인 드림웍스 프랜차이즈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 쿵푸팬더포를 앞세운 속편 제작은 불 보듯 빤한 일이었다. <쿵푸팬더 2>는 포복절도할 만한 재미로 무장한 전편의 기시감으로 인해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언제나 속편으로 거듭해 들어갈수록 전편의 아성을 거침없이 깎아 먹어온 드림웍스의 전례를 생각했을 때 우려 또한 쉽게 거둘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드림웍스를 지탱하던 <슈렉> <마다가스카>의 기력이 쇠퇴한 마당에서 새롭게 부흥한 <쿵푸팬더> <드래곤 길들이기>와 같은 프랜차이즈의 싹을 가꿔나가는 것이 중요해진 드림웍스에 있어서 <쿵푸팬더 2>는 그들의 비전을 제시할 새로운 출발선이란 점에서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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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움직임이 구사되지 않는, 타격감이 없는 성룡영화라니 생소하다. 액션 장면은 있다. 하지만 그 액션 장면에서 성룡은 우리가 아는 성룡이 아니다. 그냥 마구 휘두르고 얻어 맞기도 한다. 액션 활극이 아닌 사실적인 느와르 안에서 성룡의 위트는 전혀 구사되지 않는다. 그 진지함만큼이나 진중함도 대단하다. <신주쿠 사건>은 살벌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도쿄의 비정한 정서를 온전히 체감하는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의 도쿄 생존기다.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한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넘치던 90년대 도쿄 신주쿠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희망과 절망을 가로지르는 불법이민자들의 저항과 애환을 핏빛으로 투영한다. 성룡과 판빙빙을 비롯한 중화권 배우들과 타케나카 나오토를 비롯한 일어권 배우들은 제 역량을 다함과 동시에 그 조화가 자연스럽다. 사실적인 신체훼손 장면이 연출되는 등 폭력의 수위가 높지만 그 무거운 정서가 캐릭터의 공포와 분노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활극적 액션을 연출하지 않고 온전히 표정만으로 승부하는 성룡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륜과 관록이 넘치는 성룡의 표정은 비정한 느와르의 내면을 탁월하게 대변하는 창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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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을 쓴 팬더가 날렵하게 날아올라 적들을 제압한다. 다양한 초식에서 비롯되는 일격필살에 벌떼처럼 날아들던 적들이 죄다 꼬꾸라진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묵직한 팬더의 현란한 몸놀림. 하지만 그것은 팬더의 백일몽에 불과하다.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깬 팬더는 비좁은 방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뒤뚱거릴 따름이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어울리지 않게 작은 앞치마를 몸에 두르고 대를 걸쳐 이어온 아버지의 국수가게에서 국수를 나르고 배달한다. 그렇게 몸은 국수를 말고 있지만 마음은 쿵푸에 꽂힌 팬더는 결국 아버지의 희망을 배반하고 쿵푸대회가 열리는 시합장으로 계단을 오른다.

<쿵푸팬더>의 스토리텔링은 명백하게 상투적이다. 권선징악과 성장스토리의 데코레이션을 얹은 비만팬더의 쿵푸 도전기는 분명 지극히 상투적이라 지적할만한 내러티브를 지녔음에도 그것을 간과하게 만든다. 복부비만(?)으로 계단조차 힘겹게 오르는 팬더 포(잭 블랙)가 전설적인 쿵푸 후계자로 선정되어 그토록 갈망하던 쿵푸를 익히게 된다는 설정이 작위적인 우연에 기대고 있음에도 이는 <쿵푸팬더>를 폄하하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쿵푸팬더>가 관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 동원한 전략적 방점은 캐릭터와 설정의 묘미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쿵푸팬더>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를 훌륭한 창조력으로 돌파하며 유희적인 소임을 다한다. 살집만큼이나 넉살이 풍부한 포를 비롯해 동물을 응용한 쿵푸 초식-호권, 후(원숭이)권, 사권, 학권, 당랑권-을 상징적 캐릭터로 배양한 직설적인 캐릭터 등 외모부터 성격까지 다양하고 뚜렷한 캐릭터들은 단순한 이야기에 풍부한 감성을 주입한다. 무엇보다도 경쾌하고 귀여운 위트로 무장한 비만팬더의 포는 <쿵푸팬더>의 유희 그 자체를 온몸으로 작동시킨다. 그저 표정만 봐도 희극을 기대하게 만드는 팬더 포의 미워할 수 없는 능청스러움은 잭 블랙의 탁월한 목소리 연기와 맞붙어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킨다. 특히 식탐이 강한 포가 <스타워즈>시리즈의 요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너구리 쿵푸스승 시푸(더스틴 호프만)의 만두 수련(?)을 거치는 장면은 캐릭터의 대비를 극대화시키고 그 성격까지 영리하게 반영시킨 시퀀스를 연출함으로써 명백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나 슬로 모션을 응용한 몇몇 장면은 특별한 웃음을 제공한다.

권선징악으로 치장한 무한도전 성공담은 닳고 닳은 초식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쿵푸팬더>는 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배우 안 부럽다는 애니메이션의 기본기가 단단하다. 쿵푸팬더 포를 비롯한 창조적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성의 이미지를 확보하고, 이로부터 유희의 절대적 내공을 끌어내는 <쿵푸팬더>는 단연 신나고 군더더기 없이 즐거운 오락적 묘미를 제공한다. 게다가 제 각각의 캐릭터와 절묘하게 부합되는 이미지의 배우들이 목소리를 통해 생동감을 더하며 캐릭터적 이미지에 설득력까지 더한다. 이는 뛰어난 세공력을 바탕으로 실사와 다를 바 없는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만화적으로 재생산해내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단출하면서도 뛰어난 아이디어와 창조적 마인드가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지를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다가올 베이징 올림픽에 발맞춰 쿵푸와 팬더를 결합한 드림웍스의 전략은 그 자체로 속물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쿵푸팬더>는 그런 의심 따위는 거둬도 될 만큼 시종일관 유쾌하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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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기서 중 하나로 꼽히는 오승은의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포비든 킹덤>이 원작으로부터 취한 것은 영화적 각색의 동기부여에 불과하다. ‘서유기’의 연유가 되는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히게 된 연유에 변주를 가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포비든 킹덤>은 원작의 허구를 밑천으로 영화적 허구를 재생산한다. 전설적인 고전은 <포비든 킹덤>을 위한 모티브이자 허구 속에 또 다른 전설이 됐다.

원작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는 대비적 설정으로서 원작을 다시 비춘다. 서역으로 향하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는 <포비든 킹덤>에서 오행산으로 향하는 4인조, LA뒷골목에서 손오공 전설로 소환된 소년 제이슨(마이클 안가리노)을 비롯해 그를 오행산으로 이끄는 루얀(성룡)과 란(이연걸), 스패로우(유역비)로 대비되고 서역의 천축국(인도)을 향한 원작의 여정은 <포비든 킹덤>에서 본래 여정이 시작되던 오행산을 향한 여정으로 착안됐지만 원작의 일행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는 것처럼 영화 속 그들도 사막을 건넌다.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히게 된 연유에 변주를 가함으로써 원작과 판이한 영화적 허구를 창작했으나 기본적인 설정의 큰 틀을 원작에서 고스란히 따온 <포비든 킹덤>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원작의 소스를 고스란히 영화에 재활용하는 효율적인 창의력을 구사한다.

쿵푸를 동경하는 서양소년이 차이나타운의 골동품 가게에서 여의봉을 발견한 뒤, 전설 속 왕국으로 소환된다는 유약한 설정은 <포비든 킹덤>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가리키는 바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포비든 킹덤>이 <라이온 킹>과 <스튜어트 리틀>을 만든 롭 민코프 감독의 작품이란 점을 안다면 그 의도는 더욱 자명해진다. 어드벤처와 판타지, 거기에 무협 액션을 두른 <포비든 킹덤>의 다양한 초식이 내뻗는 궁극적인 한 수는 소년의 성장드라마다. 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부터 <트랜스포머>와 같은 버라이어티한 오락영화들이 지향하는 가족적 관람의 묘미이기도 하다. 특히 ‘서유기’를 모태로 한 동양적 세계관은 서양인들에겐 둘도 없는 판타지로 비춰지기 적당하고 현란한 쿵푸의 몸놀림은 단연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포비든 킹덤>이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제작될 수 있었던 수지타산의 근거는 이처럼 분명하다.

하지만 <포비든 킹덤>의 성장드라마는 큰 감흥을 줄만한 거리는 못 된다. 그것은 우격다짐에 가까운 도입부의 설정만큼이나 제이슨의 성장드라마가 성인을 만족시킬만한 풍만한 수준의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포비든 킹덤>이 가장 큰 밑천은 영화포스터가 말해주듯 마이클 안가라노가 아니라 성룡과 이연걸이다. 마치 성룡과 이연걸의 풍모를 고스란히 캐릭터로 반영한 듯한 <포비든 킹덤>의 루얀과 란은 그들의 동시출격만으로도 단연 흥미를 부른다. 어드벤처와 판타지, 그리고 성장드라마의 모든 장르적 기교가 동원됐음에도 무협고수들의 현란한 몸놀림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어 보인다. 특히 중반부에서 (원화평의 합에 맞춰) 이연걸과 성룡이 자웅을 겨루는 대결씬은 근래 보기 드문 무협영화로서의 현란한 재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포비든 킹덤>은 무협에 열광하는 미국소년의 특별한 취향처럼 할리우드 자본이 무협영화에 바치는 이색적인 오마주처럼 보인다. <포비든 킹덤>에 구미를 당길만한 관객이 누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도 그것이다. 그건 마이클 안가라노에게 눈길이 가지 않아도 성룡과 이연걸을 바라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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