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키드먼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키드먼을 ‘떡잎부터 알아본’ 제작자들은 그녀를 발 빠르게 할리우드로 인도했다. 일찍이 할리우드의 뮤즈 자리를 수성한 그녀는 여전히 가지를 뻗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키드먼은 호주 출신의 부모와 함께 시드니로 건너가 유년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던 키드먼은 발레를 배우고자 찾은 호주 유소년 씨어터에서 연기에 관심을 얻게 된다. 175cm에 달하는 장신이었던 열네 살 무렵, 영화 데뷔를 이룬 그녀는 우월한 유전자만큼이나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1987년에 방영된 TV미니시리즈 <베트남>으로 호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키드먼은 <죽음의 항해>(1989)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길을 끈다.
일본의 한 영화제에 참석 중이던 키드먼은 톰 크루즈의 측근으로부터 차기작 계획을 묻는 전화를 받는다. 토니 스콧의 <탑 건>(1986)으로 할리우드의 큰손이 된 크루즈는 <폭풍의 질주>(1990)로 심기일전을 다짐하던 차였다. LA로 키드먼을 초대한 그는 그녀와 출연 계획을 상의한다. 이는 키드먼의 할리우드 진출에 관한 이야기이자 세기의 커플이었던 키드먼과 크루즈의 인연에 관한 서두이기도 하다.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부 서약을 맺은 두 사람은 론 하워드의 <파 앤드 어웨이>(1992)에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춘다. 아일랜드의 보수적인 귀족 집안에서 자란 진보적인 여인이 자립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뒤, 한 남자의 야심에 동참하는 과정은 키드먼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톰 크루즈의 아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구스 반 산트의 <투 다이 포>(1995)는 키드먼을 위한 영화였다. 수잔 역을 얻기 위해 구스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건 키드먼은 그에게 말했다. “<드러그스토어 카우보이>(1989)를 봤어요. 당신과의 작업을 간절히 원해요.” 수잔은 섹슈얼한 매력을 이용해 남자를 물건처럼 이용하는 팜므 파탈이다. 이는 키드먼이 연기한, 강인하고 순정적인 여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그녀를 통해 키드먼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19세기 말, 보수적인 영국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제인 캠피온의 고전 로맨스물 <여인의 초상>(1996)에서 지적이며 당돌한, 미모의 여인 이사벨을 연기한 키드먼은 자신이 그려왔던 도전적인 여인들의 면모에 보다 깊은 감수성을 이입해낸다. 진보적인 여인의 초상에 세심한 심연의 갈등을 새겨 넣으며 자신의 연기적 깊이를 증명해냈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1999)과 함께 키드먼은 내외적인 고난에 직면한다. 크루즈와 함께 부부로 출연한 이 작품은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혼돈을 그리고 있으며 키드먼은 전신 노출까지 불사하는, 헌신적 열연을 펼쳤다. 큐브릭에 대한 깊은 애정은 부부의 공동출연으로 이어졌지만 이로 인한 세간의 지독한 관심은 두 사람의 관계에 치명타를 입혔다. 오랜 제작기간이 소요된 이 작품은 급기야 최종편집이 끝나기 전에 찾아온 큐브릭의 죽음으로 기로에 선다. 결국 영화의 불완전한 완성과 함께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1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각자 퇴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 뒤로 키드먼은 다시 '힐을 신을 수 있'었지만 '삶이 붕괴되는'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해에 키드먼의 경력은 보다 반짝이기 시작했다. 환락가의 여신 사틴 역을 맡은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다이아몬드와 같이 반짝이는 미모를 자랑한 키드먼은 빼어난 가창력과 안무까지 뽐내며 관객들을 현혹시켰다. 톰 크루즈가 기획자로 참여한 호러 <디 아더스>가 공개된 것도 같은 해였다. 이듬해, 이 두 작품으로 각각 골든글로브 두 개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키드먼은 <물랑루즈>로 두 번째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얻게 된다.
영국의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에 얽힌 세 여인의 삶을 그린 <디 아워스>(2002)에서 메릴 스트립, 줄리언 무어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한 키드먼은 버지니아 그녀를 연기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예민하고 우울한 예술가의 생을 연기해내야 했던 키드먼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모형 코를 달고 그녀를 연기한다. 자신을 잊은 채 온전히 버지니아라는 인물로 빠져들었다. 이는 여전히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혼에 대한 아픔을 지울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경력에 정점이 됐다. 2년 연속 골든글로브 수상을 이어간 그녀는 수상자 신분으로 오스카 단상에 오르는 첫 영광을 차지한다.
할리우드의 주류배우로 꼽히는 키드먼은 독립영화에서 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자주 동원되는 건 예민한 심성과 불안한 정서다. 독립적인 여성의 의지를 강인하게 피력하던 그녀는 점차 히스테리한 여인으로서 존재감을 피력해왔다. 돌발적으로 공기를 불안하게 잠식하는 그녀의 캐릭터들은 극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로 영화에 기여해왔다. 연극적인 무대를 날것처럼 카메라에 담아낸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이 17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온전히 그녀의 연기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2004)과 <인터프리터>(2005)에서도 이는 유효하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죽은 옛 연인임을 자칭하는 소년을 만나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국제적인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는 한 여인의 정체적 모호함에서 비롯되는 서스펜스는 키드먼의 존재감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미국의 여류 사진가 디앤 아버스의 삶을 모티프 삼은 <퍼>(2006)는 한 여인의 자립을 그린, 잉태적 삶에 관한 이야기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에서 특유의 예민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불안과 설렘의 경계를 부유하던 한 여류 사진가의 거짓말 같은 생에 사실적인 감정을 부여한다. 보다 현실적인 일상에 근접한 <마고 앳 더 웨딩>(2007)이나 <래빗 홀>(2010)에서도 이런 특성은 발견된다. 우연히도 두 작품에서 남편과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여동생과의 반목을 거듭하는 누이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각각의 영화에서 부풀어 가는 불화를 찔러 터트릴 것마냥 날이 선 심성을 휘두르는 불안 그 자체다. 롭 마샬의 <나인>(2009)은 키드먼이 여전히 빛나는 외모를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여신 자리에서 내려설 생각이 없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키드먼의 마이너한 감성은 그녀를 메이저 배우로 인식하길 방해하거나 거부하도록 만든다. “나는 영감을 주거나 강박적인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한다.”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할리우드의 뮤즈,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미완의 초상이다.
자신의 재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들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그 재능이란 실로 부러운 것임에 틀림없지만 단지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만든 세상을 보라. 그리고 즐겨라.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 재능이 당신을 풍요롭게 만들 지이니.
찰리 채플린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은 희극지왕
찰리 채플린을 그저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의 달인 즈음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히치콕이 서스펜스의 창시자라면 찰리 채플린은 코미디의 개척자다. 채플린은 단순히 움직이는 영상 즈음으로 여겨지던 무성영화에 예술의 의미를 새겨 넣었다. 삼류 연극 배우였던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란 채플린은 가난하고 불우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들을 희극으로 전복시키며 세상의 비애를 돌봤다. 자신의 경험을 필름에 투영한 기념비적인 장편 데뷔작 <키드> 이후로 채플린은 <황금광 시대>나 <서커스>를 통해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을 역설적인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부조리한 세상을 겨눈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등의 작품을 통해 코미디를 저항적 유희로 끌어올렸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채플린은 삶이야말로 진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한 희극지왕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슬픔을 어루만지는 진심이자 불의를 향한 강력한 저항으로서 여전히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인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같이 시대를 앞서 나간 작품들은 되레 동시대인의 공격을 얻곤 한다. 스탠리 큐브릭은 아마 이 방면에서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공개될 당시 저명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온전히 기술에 심취해 버린 껍데기처럼 취급해 버렸다. 하지만 오늘날 큐브릭의 작품들은 창작자의 직관과 도전이 이룬 독창적인 성과로서 인정받았다. 큐브릭은 기술로서 시대를 선도하는 테크니션이었지만 일찍이 씨네필이었던 그는 단지 기술적 실험의 매체로서 필름을 남용하지 않은, 기술의 미학적 가능성을 제시한 필름 장인이었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그를 작가적 반열에 올린 건 SF의 고전으로 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와 같은 작품이었다. 특히 폭력적이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그린 <시계태엽 오렌지>는 당시 런던에서 영화가 개봉되면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얻을 정도의 문제작이었지만 이 작품은 영화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걸작으로서 큐브릭에게 영생을 부여했다.
레오 까락스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시네아스트
프랑스가 전세계 영화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누벨바그는 영화의 비현실성을 하나의 표현 양식으로 끌어올린 ‘새로운 흐름’그 자체였다. 그리고 누벨바그의 포스트 세대라 할 수 있는 누벨 이마주는 영화를 이미지의 예술로 승화시킨 또 다른 사조였다. 그 누벨 이마주의 중심에 레오 까락스가 있었다. 레오 까락스의 영화는 시퀀스의 이미지 혹은 단 한 컷만으로도 깊은 인장을 남긴다. 물론 그는 단순한 비주얼리스트가 아니다. 그가 구현하는 영화적 이미지는 그 찰나만으로 영원을 설득할 수 있을 낭만이나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비범한 광기가 서려 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통해 유려하면서도 심오한 시네아스트로서의 재능을 선보인 그는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을 통해 고통과 절망적인 세계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꿈틀대는 사랑을 무언으로 설득한다. “도시의 어디에나 내 사랑이 있다.”까락스의 영화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이 한 줄의 대사는 자신의 영화처럼 좀처럼 말이 없는 까락스의 절망이 진정한 사랑을 위한 통과의례임을 깨닫게 만든다.
쿠엔틴 타란티노 – B급으로 위장한 컬트의 수집가
일명 B급 영화라고 국내에서 통칭되는 ‘B무비’는 동시상영관을 의미하는 ‘그라인드하우스’에서 떠리처럼 상영되던 삼류영화들을 지칭하는 언어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이 B급 영화들이 컬트의 영역으로 승격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남자의 공이 8할이다. ‘키치’라는 용어를 훈장처럼 미화시킨 주범이기도 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유년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드나들며 다양한 영화적 형식을 목격하고 그 모든 취향을 제 것으로 섭렵해낸다. 이는 결국 그의 창작적 뿌리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B급 영화의 경박한 완성도 속에 자리한 통렬한 쾌감을 포착해내고 이를 하나의 위장된 영화적 트릭으로 활용하는데 성공한 재간꾼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즐겼던 다양한 영화들, 즉 필름 누아르부터, 웨스턴 무비,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쿵푸영화, 일본 사무라이 영화 등 자신을 흥분시켰던 다양한 영화적 이미지들을 재현하고 탁월하게 조립하며 자신의 영화로서 재창조해낸다. 영화광이었던 소년은 스스로를 B급으로 무장하며 그렇게 컬트의 중심에 섰다.
크리스토퍼 놀란 –역설의 경계를 지배하는 야심가
<메멘토>의 망각과 기억, <인썸니아>의 수면과 각성, <프레스티지>의 환상과 트릭, 크리스토퍼 놀란은 언제나 대조적인 관념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오가는 인물의 혼돈과 착시를 설득시키고야 마는 야심가다. 등을 돌리듯 맞선 두 세계의 대조적인 단면을 의식과 무의식의 대칭적인 구조로 설계하고 이를 통해 두 세계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킴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명료하게 설득해낸다.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호흡정지 진단이 내린 히어로 시리즈의 생명연장을 이룬 놀란은 <다크 나이트>에 이르러 블록버스터를 거대한 철학적 명제의 장으로 끌어올리며 전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거대한 스케일을 반도체적인 세심함으로 완성해낸 <다크 나이트>는 작은 결점조차 허락하지 않는 놀란의 이성적 두뇌가 총 집약된 야심작이다. 그리고 <인셉션>은 놀란이라는 작가의 뇌구조를 대변하는 총아적인 단서나 다름없다. 꿈과 현실을 넘나 드는 인물들의 분투는 <다크 나이트>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새삼 각인시키며 전세계를 ‘꿈의 해석’으로 끌어들였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 드는 듯한 놀란의 꿈은 상업주의와 작가주의의 경계를 지배하는 야심으로서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