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뒤늦은 <노예 12년> 관람기. 스티브 맥퀸의 영화답게 적절하게 가학적인 영화다. 하지만 남북 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에서의 흑인 노예를 소재로 둔 영화라는 점에선 생각보단 물리적인 가학성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나치게 감정을 싣지 않고 적절하게 고통을 묘사한다. 물론 적절하다고 말하기엔 물리적으론 끔찍하지만 그 시대적인 예상 안에서 정확히 머무르는 인상이랄까. 인물이 짊어진 고통을 영화가 끌어올려 대변하는 느낌이 전혀 없다. 어떤 면에선 역시 지독한 중립성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한 치의 과부족이 없는 시대의 공기를 포착해낸다.
2. 육체적인 끔찍함을 넘어서 전체적인 풍경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참담함을 느끼게 해줄만한 신들이 더러 있는데 특히 중반부에서 신... 한복판에 절대절명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을 제시한 뒤 점차 주변부의 풍경을 스케이프로 확 펼쳐놓는 광경은 마치 <만종>과 같은 평온함 사이에 갇힌 개인의 지옥을 너무나 사실적인 화풍에 담아 그리듯 전하는 인상이라 입을 벌리고 본 것 같다. 공감이나 이해라는 단어를 동원할 수 없는 그 시대적인 절망감이 한순간에 밀려오는데 이건 내가 어떤 식으로든 이렇다, 저렇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라는 압도적인 살풍경이었다. 단언컨대 손에 꼽힐만한 명장면이었다. <헝거>와 <셰임>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스티브 맥퀸이 놀라울 만큼 명확한 시선을 지닌 동시에 광각의 시야를 조망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노예 12년>을 압축하는 하나의 신이라고 생각한다.
3. 치웨텔 에지오포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손색이 없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정말 끔찍했다. 영화가 끌어 안아야 할 서스펜스를 잘 해결해준다는 면에서 <노예 12년>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띌 때마다 조마조마했던 폴 다노도 물론. 개인적으론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릭터가 기능적으로 중요했다고 본다. 그 시대적인 관성 안에서 '착한' 주인을 묘사함으로서 시대적인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캐릭터랄까. 결말부 즈음에 짤막하게 등장해서 일장연설을 하는 브래드 피트는 왠지 제작자 찬스를 쓴 느낌.
4. 이 정도면 회자될만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걸작으로서의 울림과 무관하게 관객에게 호감을 남길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 여부를 짐작하는 게 아니다. 흑인 감독이 그린 흑인 노예에 관한 영화가 이리도 냉정한 거리감을 둘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노예 12년>은 감정적인 이입을 거부한 채 명확하게 그 시대성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그 환기가 관객 입장에선 시리거나 쓰리거나 무거울 거다. 그래서 관람을 권하고 싶다. 통증을 공감하는 것 이상으로 통증 그 자체를 목도하는 것도 때론 중요하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긴 시간 무명의 세월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증발했다. 패스벤더는 지금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그동안 스스로 의무감을 지니고 있었던 ‘전면 누드’를 대신해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지 클루니의 수상 소감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패스벤더는 지난해 <셰임>으로 과감한 전면 노출을 선보였다. 클루니는 자신과 함께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패스벤더의 연기를, 그간 ‘섹시한 배우’로 언급되던 자신에 빗대 질투심 담은 장난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클루니가 패스벤더에게 자극을 받았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사실 패스벤더는 아직 낯선 배우다. 현재 그는 정점으로 올라서고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출신인 패스벤더는 두 살 무렵,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 남서부 도시 킬라니로 이사했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연기 수업을 받게 된 그는 영국과 미국의 영화들을 섭렵해나가며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졸업 후, 연기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간 패스벤더는 학업을 중단하고 극단의 투어에 동참한다. 그의 자리는 무대 위가 아니었다. 극이 끝난 뒤, 무대를 정리하고 짐을 옮기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배역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바텐더 일을 하면서 오디션장을 전전한 건 그 무렵이었다.
“그저 본능에 충실했다.” 캐릭터 선택에 관한 패스벤더의 답변이다. 그런 본능이 쓸모 있는 것임을 증명한 건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한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생생하게 그린 이 작품은 패스벤더가 내세울 만한 첫 경력이었다. TV시리즈를 비롯해서 갖은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300>(2006)에서 선명한 식스팩을 자랑하는 스파르타 전사의 일부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크린 속의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로, 기억을 채울 만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차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당시까진 그랬다. 영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랑수아 오종의 <엔젤>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건 그 다음 해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패스벤더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좌우할만한 첫 번째 전환점을 만난다.
스티브 맥퀸의 문제적인 단편 연출작 <헝거>(2008)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IRA 단원 바비 샌즈의 옥중 투쟁 실화를 스크린에 재현한 작품이다. 아이랜드의 독립투사인 마이클 콜린스의 피를 물려받은 패스벤더가 이를 연기한 건 어쩌면 운명이었다. 물론 만만한 역할은 아니었다. 단식 투쟁을 전개하고 끝내 목숨을 잃을 때까지도 이를 멈추지 않았던 바비 샌즈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굶주림을 견뎌내는 수밖게 없었다. 그리고 패스벤더는 이런 가혹한 방식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켰다. “나는 약 14kg을 감량했고 결국 59kg까지 빠졌다. 그것이 (내 연기가) 설득력을 얻고자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런 노력은 칸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이라 불리는 황금카메라상 수상 등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패스벤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의 여류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피쉬 탱크>(2009)에 출연하며 또 한번 칸 레드 카펫을 밟았다. 아놀드에게 또 한번 칸 심사위원상을 안겨준 이 작품에서 패스벤더는 쉽게 뭇 여성들의 호감을 얻을 만큼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남성으로 등장한다. 고행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던 <헝거>와 달리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런 평범한 캐릭터에 감춰진 추악한 단면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그에게서 새로운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헝거>와 <피쉬 탱크>는 패스벤더가 연기적 긴장과 이완의 너비가 넓은 배우임을 드러내는, 극단의 스펙트럼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나 다름없었다.
패스벤더는 일찍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을 연극 형태로 기획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 출연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독일 출신인 그가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한 미국 군인으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농담이자 유머였다. 제9군단에 관한 전설적인 실화를 각본화한 닐 마샬의 <센츄리온>(2010)은 혹평을 얻었지만 로마의 백인대장을 연기한 패스벤더에겐 터프하고 진중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선보이는 기회로서 손색이 없었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타운 크릭>(2008)이나 <조나 헥스>(2010)와 같이, 작품 자체가 어떠한 인상을 주지 못한 범작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2011년은 패스벤더의 경력에 방점을 찍은 한 해다. <제인 에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데인저러스 메소드> 그리고 <셰임>까지, 지난 한 해 그는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경력을 쌓아 올렸다. 샬롯 브론테의 동명 고전을 중후한 고딕 로맨스물로 완성한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를 연기한 패스벤더는 완고하면서도 로맨틱한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여심을 자극할 만한 연민을 지닌 남성으로 자신을 각인시킨다. 한편 패스벤더의 인지도를 수직 상승시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그는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다혈질적인 분로를 발산하는 매그니토를 연기하며 캐릭터의 매력적인 기원을 선사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심리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칼 융, 그리고 융이 치료한 신경증 환자 사비나, 이 세 사람의 의문스러운 관계를 살핀다. 무엇보다도 키이라 나이틀리의 열연이 눈에 띄는 이 영화에서 패스벤더는 기품 있는 태도를 견지하던 융이 음흉한 심리를 드러내는 순간의 이중성, 즉 희열과 절망의 아이러니를 표현해냄으로써 극적인 의도에 완벽하게 복무한다. 맥퀸의 새로운 연출작이자 클루니의 질투마저 유발한 패스벤더의 <셰임>은 그의 경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파멸적인 쾌락을 즐기는 남자와 함께 고통스러운 과거를 공유한 여동생, 그 남매의 흔들리는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셰임>으로 패스벤더는 제68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명예까지 얻었다. “그는 한 세대 안에서 허락된 단 하나의 배우다. 남자 중의 남자이나 여성성과 나약함도 드러낸다. 그런 점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패스벤더에 대한 맥퀸의 찬사다.
올해에도 패스벤더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스티븐 소더버그의 액션물 <헤이와이어>로 한 해를 시작한 패스벤더는 오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에이리언>(1979)의 프리퀄로 잘 알려진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따. “알다시피, 나는 많은 시간을 날려먹었다. 이제 태양이 떴으니 건초를 만들어야지.” 기다리던 태양처럼, 지금 마이클 패스벤더가 빛나고 있다.
라이언 고슬링은 할리우드의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였다. 각기 다른 세 편의 작품으로 관객 앞에 나선 그의 2011년은 일종의 선언과 같았다. 그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그의 시간이 온 것이다.
201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2011)는 궁극적으로 유령 같은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말수도 없다. 딱히 정체를 아는 이도 없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 확실한 건 그가 운전 하나는 기똥차게 잘한다는 것. 낮에는 카체이싱 전문 스턴트맨으로, 밤이면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운반책으로, 그는 살아간다. 핸들과 기어가 그의 두뇌이자 심장인 것마냥. 그런 그가 이웃의 한 여자에게 마음을 준다. 그로 인해 예기치 않게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 몰리지만 그는 결코 핸들을 꺾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녀에 대한 순정으로 엑셀을 밟아 직진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라이언 고슬링이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고슬링의 연기가 할리우드에서 1960년대 배경의 전통적인 이름 없는 영웅들을 연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알랭 들롱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그리고 <블리트>(1968)의 스티브 맥퀸까지 언급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과묵했고, 차가웠지만, 순정적이었다. <드라이브>에서 고슬링은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눈빛, 제스처만으로 극명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기적 스타일이 전통적인 고전 배우들의 레퍼런스를 동원하게 만든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로 꼽혀왔다. 그리고 지난 해, 고슬링은 성공적인 한 해를 채웠다.
캐나다 출신의 고슬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2세 무렵이었다. ‘우주비행사나 경찰 아니면 소방관이나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던 소년에게 새로운 삶을 부추긴 건 신문의 디즈니 채널 어린이 TV쇼 <미키 마우스 클럽>의 공개 오디션 공고였다. 그는 갔고, 참여했고, 합격했다. 댄서 지망생이었던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여전히 우정을 자랑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타고난 끼를 과시하던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고슬링은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촬영하는 동안 나는 그저 디즈니랜드에서 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물론 이것이 의미 없는 경력은 아니었다.
그 후, 몇 편의 아동용 TV시리즈에 출연했던 고슬링은 학업을 중단하고 LA로 건너가 폭스 키즈 채널의 <영 헤라클레스>를 촬영하던 중, 마음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더 많은 시간을 캐릭터와 함께 하고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시도할 수 있도록, 영화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지. ‘TV는 이제 됐어.’” <리멤버 타이탄>(2000)으로 스크린에 입문한 그는 바로 다음해 배우로서의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빌리버>(2001)에서 고슬링은 광기에 가까운 극단적 신앙을 지닌 네오 나치 청년을 연기했다. 비록 미국 내 극장 상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평단은 대부분 그의 연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고슬링은 변화를 자각했다. “내게 변화가 왔다. 마치 나의 내면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할리우드와 인디 신을 오가던 고슬링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달아준 건 순정적인 멜로 <노트북>(2004)이었다. 전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그 성공 이후로 로맨스물 출연 섭외가 이어졌지만 그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진가는 인디펜던트 신에서 보다 확고하게 드러났다. <하프 넬슨>(2006)에서 약물중독자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 고슬링은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부문 노미네이트를 비롯해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수상자로 단상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촬영 한 달 전, 브룩클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림자처럼 교사의 특성을 관찰했다. 이는 그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천거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인간의 형태와 흡사한 ‘리얼돌’을 사랑한 한 남자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실제 인형을 감정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트에서 실제로 인형과 함께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사람들은 줄거리를 듣고 웃겠지만 나는 <노트북>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인형을 진짜 연인처럼 대하는 남자의 웃지 못할 광경은 진전되는 극 안에서 진실된 감동의 결정을 만들어낸다.
“목적지로 가는 백만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연기할 대상을 위한 진짜 참고사항이 없을 때, 그건 도전이다.” 고슬링은 메소드 연기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 단순히 캐릭터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의 상호적인 교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연기하는 캐릭터를 사랑하고 증오해야만 한다. 그들은 사람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물론 시행착오도 존재한다. 안소니 홉킨스와 함께 출연한 법정 스릴러 <프랙처>(2007)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고슬링은 고백했다. “안소니의 연기와 그의 재능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코 할 수 없었지.” 연기 집념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으로 외도한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2010)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경제적인 난관으로 권태기에 이른 한 부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룬 이 작품에서 고슬링은 미셸 윌리엄스와 탁월한 호흡을 선보였다. “이 업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두 사람은 그들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다. 그들이 함께 한 연기를 본다는 건 일종의 스릴이다.” <뉴욕> 매거진의 평이다. 성공적인 복귀 이후, 고슬링은 2011년 최고의 경력을 나열했다. <드라이브>를 비롯해서 <피플>지로부터, “오스카 수상의 가치가 있는 배우가 단지 재미를 주고자 굉장히 섹시한 역할을 맡았다”는 평을 얻은 코미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와 조지 클루니의 네 번째 연출작인 정치물 <디 아이즈 오브 마치>가 그것이다.
다작 배우가 아닌 고슬링이 각기 장르가 다른 세 편의 영화로 한 해를 채우며 증명해낸 건,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나는 테스트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지금 그가 기다릴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테런스 맬릭과 윈딩 레픈을 비롯해서 그를 원하는 감독들이 줄을 서있다.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 해가 지났다. 그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잠재력은 여전히 폭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