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설리의 화보에
관한 뉴스를 발견했다. 무심코 클릭했다. 의외였다. 숱하게 연예인 화보를 진행하는 에디터로 밥벌이를 했던 경험을 반추했을 때 일반적인 여성 아이돌 화보에서 이렇게
도발적인 콘셉트를 허해줄 확률은 대부분 0으로 수렴된다. 노란
티셔츠와 숏팬츠를 입고 나른한 자세와 야릇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설리의 눈은 마치 입과 같았다. 무언가
말을 거는 듯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느낌. 여느 걸그룹 아이돌
화보와는 공기가 달랐다. 그런데 이는 설리의 인스타그램으로 공개된 컷이라 했다. 특정 매체의 화보임을 명시하는 로고도 없었다. 그리고 기사에서 개인적으로
친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미소녀 전문 포토그래퍼'로
알려진 로타 씨가 촬영한 화보 5컷"이라니! 궁금해서 로타 형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설리와의 화보컷에 왜 매체명이
없어요? "설리 씨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어. 개인작업을
진행하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헐.
설리가 궁금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아이돌 스타로서 대중이 바라는 예쁜
모습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과감히 전시하는 설리의 행보가 파격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중의 취향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는 건 다음 문제다. 하지만
화보컷 공개는 일종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지난 4월 9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설리의 이름이 떠올랐다. 박병호와 이대호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나란히 홈런을 치며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시간에 말이다. 설리도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쳤나? 그럴 리가. 그날 설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평범한 셀카는 아니었다. 침대에 함께 누워 얼굴을
마주보고 입을 맞추는 모습.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너머의 연인은 그렇게 만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된 온갖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져 나왔다. 포털사이트에선
설리를 검색하면 '설리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설리 인스타 논란', '설리 최자'
그리고 '설리 생크림' 등의 자동검색어가 제공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향한 관심이 풍년이다.
흥미로운 건 설리의 태도다. 어느 날 설리는 입 안 가득 생크림을
들이붓고 꿀꺽 삼키는 영상을 올렸다. 그 아래로 누군가는 강한 혐오를,
누군가는 열렬한 애정을 댓글로 남겼다. 솔직히 설리가 생크림을 삼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게 엇갈린다. 하지만 설리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듭 전시한다. 게임의 룰을 지배한다. 아이돌 스타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나라하게 꺼내 보인다. 놀랍지 않은가. 솔직히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아이돌 스타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해 본 적이
없다. 마치 김연아의 트리플 컴비네이션 점프를 보는 것만 같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올라 차분하게 착지한다. 그리곤 뒤돌아 보지 않고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설왕설래하거나 말거나 자기 일상을 마음대로 전시할 권리를 충실히 이행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꼭 알아야 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고, 설리에게 그것을 해명할 의무도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떠들어대는
세간의 태도와 대조되는 설리의 전지적 방관은 상당히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까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돌, 아니, 연예인을 목격해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가 예상하는 전형적인 아이돌 스타에 대한 관습적 기대감을 완벽하게 부수고 자신의 행복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강한 욕망을 가릴 것 없이 드러내는 당당함. 자신의 사랑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 거짓말처럼 툭 하고 나타난 판타지스타랄까. 계속
설리를,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싶다. 이토록 매력적인
당당함과 자신감을 계속 팔로우하고 싶다. 설리라는 건강한 욕망을.
(GRAZIA KOREA MAY FIRST ISSUE 2016 '10 HOT ATORIES')
이준에게 있어서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는
이제 철 지난 풍문 같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무용도 하고, 아이돌도
됐던 이준은 이제 연기만 한다. 드디어 배우가 됐다.
<밀회>를 낳은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의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는 주연과 조연을 막론한, 배우들을 위한 발견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준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절대권력을 주무르고, 집안에서도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
한정호의 슬하에서 희대의 반역을 선도하는 아들 한인상을 연기한 그는 ‘아이돌 출신 배우’에서 ‘배우’로, 자신의 수식어를 더욱 간결하게 매만지는데 성공한 인상이다. 사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수식어는 낙인과 같다. 팬덤을 등에 업고 손쉽게 기회를 얻어냈다는 혐의와 연기력에
대한 의심이 뒤엉킨 편견이 형성된다. 결국 배우 스스로 가능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편견의 중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준은 <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무중력 상태로 띄워 올렸다. 중력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졌다. 스스로에게조차 발견이나 다름없는 성과였다. “처음엔
의아했다. 한인상은 순수하고, 모범적이면서도 억압된 캐릭터인데
나는 자유분방하고 ‘날티’가 나 보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나를 발전시켜보자고, 성공하면 나로선 굉장한
이익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그만큼 배우로서의 욕심도 자라났다. “항상 욕심은 많았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 <풍문>에서보단 더 잘하고 싶다.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진 몰라도 최소한 퇴보하는 모습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 많이 경험하고, 더욱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준은 오래 전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극영화과가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길 희망했다. “연극영화과를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진학상담 선생님의 면박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당장 진학이 가능한 건 무용과 정도뿐이었다. 그래서 무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춤을 추면서 어울렸기 때문에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서울예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서울예고에 연극영화과는 없었다. 그래서
계속 무용을 했다. 그리고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로 진학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학교를 휴학했다.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나 싶어졌다. 내가
원래 하나에 깊게 빠지는 편인데 무용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4년이 지났더라.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게 그때 기억났다. 그래서 당장 휴학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해가 안가는 짓이다(웃음). 담보 하나 없이 중단한 거니까.” 그렇게 이준은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틈틈이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낙방을 거듭했다.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비를 만났고, 비와 함께 할리우드로 갔다. <닌자 어쌔신>에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서 연기 데뷔작을 찍게 될 것이라곤 이준
스스로도 예감하지 못했다.
“급하게 과외를 받았다. 연기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을 붙여서 개인 교습을 받았는데 내가 영어는 못했지만 발음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주입식 교육을 시키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웃음).” 쉽게
말하면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이준이 6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과한 비결이 단순히 좋은 영어 발음일 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할리우드가 그렇게 만만한 곳일 리도
없다. <풍문>을 보다 입체적인 드라마로 만들어준
건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조연배우들이었다. 그들은 이준의 연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 연기를 배우지 않은 애처럼 연기하는 구나. 그런데 그
안에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게 네 장점일 거야.” 스스로
‘연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준에겐 기본적인 끼,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는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용할 때에도
무용엔 답이 없다고 느꼈다. 연기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아직까지
연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관객에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배우라고 할까?” 사실 이준은 일찌감치 연기를 공감대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연기의
‘연’ 자도 모르지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던 이준은 ‘따라하기’를 통해 자신만의 연기적 훈련을 매진했다. 대단한 건 아니다. 인터넷으로 대본을 찾아서 나름대로 실감나게 따라
읽는 것 그리고 배우의 감정을 의심하는 것. “지금 기분이 괜찮은데 어떻게 기분 나쁘게 화를 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혼자서 막 화를 내기도 하고, 좀
이상하지만(웃음).” 뛰어난 기교를 익힐 수 있는 훈련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배우가 구사하는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공감대 정도는 일찍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준은 최소한 배우는 자세가 된 배우였다.
“작품을 끝내면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보다 오랫동안
남는다. 결국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실 어렸을 땐 생각이 없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다시 단순해질 수 있을 것도 같다. 자동차에서도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더라(웃음).” 해석하자면 배우로서
보다 욕심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그럴만하다. 사실 이준이
처음 배우로서 주목을 받은 건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갑동이>를 통해 배우로서의 궤도를 찾았다. 그리고 <풍문>은 이준이라는 배우가 지닌 가능성의 뒷면을 드러낸
작품이다. 과장된 세기로 치장한 캐릭터가 아닌 일상적인 평범함도 어울리는 배우라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그건 그 누구도 아닌 이준이 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계산하지 않고, 매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계산하게 되면 피곤해질 거다. 사실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라서(웃음). 그리고 본래 나는 뭔가를 할 때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지금 당장 모든 에너지를 쏟는 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작품을 할 때도 매 신마다 가진 에너지를 다 투자한다. 그러려고 한다. 그래야만 뭔가를 해낸 거 같다.” 피해가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피해가지 않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어쩌면 그렇게 에둘러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빠른 길을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풍문> 현장에서
이준은 안판석 감독에게서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어서 그랬다기 보단 현장 분위기가 항상 긴장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긴장하지 않으면 연기도 이상해진다. 항상
정신 차리고 긴장의 끈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긴장을 요구하는 건 단순히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이 직업이 항상 잘될지 알 수 없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남의 탓을 하기보단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거 같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거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니까 그에
따른 책임도 내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걸 잘 아는 게 중요하다.” 아무튼 이준은 그렇게 배우로서 방금
막 첫 장을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타이밍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직하고 명확하게.
누군가에 기대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이란 결국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씨스타는 자신들이 꿈꾸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당당하게 떠올랐다. 그 누구의 뮤즈가 아닌 씨스타로서.
백지 같았던 스튜디오가 유쾌한 활기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씨스타의 멤버들이 들이닥친(!) 스튜디오는 곧 깔깔거리는 웃음과 왁자지껄한 대화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패션매거진에 관심이 남다르다는 소유를 비롯한 씨스타의 멤버들은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을 모티프로 둔 콘셉트를 재확인하며 ‘시도해보지 못했던 콘셉트에 대한 설렘과 걱정’을 표하면서도 유쾌하게 떠들어댔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씨스타를 잘 몰랐다. 유행하던 몇몇 노래를 듣고 흥얼거린 적은 있어도 크게 관심을 갖고 찾아 듣진 못했다. 자랑이라서 떠드는 게 아니다. 언어 그대로 그랬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중음악 시장이 아이돌 댄스뮤직 일색으로 변모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는데 소홀해졌던 탓이다. 하지만 종종 TV를 통해서 본 씨스타를 통해서 바비인형처럼 메마르기만 한 여타의 아이돌 걸그룹들과 차별되는 매력을 발견했던 적은 있었다고 말해두고 싶다.
솔직히 아이돌로 분류되는 어린 가수들은 대부분 재미가 없다.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나이가 든 탓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소속사로부터 길들여져서 지나치게 착하기만 하다.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 착함이 천편일률적이고 빤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탁월한 군무처럼 무대 밖에서도 자신을 가리고 그룹의 멤버 중 하나로서 복무한다. 예상 밖의 무언가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실제로 만난 씨스타의 멤버들에게는 뜻밖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개성이 뚜렷한 멤버들의 에너지가 보인다. 자신들을 포장하거나 가리지 않는 솔직한 매력이 있었다. 그랬다. 씨스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피말리는 아이돌 그룹들의 스타덤 경쟁에서 살아남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있었던 것이다.
지난 6월 11일, 정규 2집 앨범 <Give it to me>를 발매하며 1년여 만에 활동을 재개한 씨스타는 이제 정상급 아이돌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얻어냈다. 2010년, 데뷔 때만 해도 씨스타는 아이돌 홍수 속에서 기획된 그저 그런 걸그룹 중의 하나 즈음으로 여겨졌다. 데뷔곡 ‘Push Push’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20위권 순위에 오르는 무난한 성적표를 받았으니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걸그룹보다 나은 점도 없었다. 심지어 흉흉한 ‘일진’ 루머까지 나돌며 이미지에 타격까지 입었다. 하지만 그대로 추락하지 않았다. 씨스타는 점점 누군가의 아류가 아닌 씨스타만의 퍼포먼스를 찾기 시작했고, 히트 넘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씨스타만의 정체성을 어필한 건 2012년에 발매된 미니앨범에 수록된 ‘나혼자’를 통해서였다.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가사에 호소력 있는 가창력이 더해지고, 옆으로 살짝 트인 원피스를 입고 상체보단 미니멀한 하체의 움직임을 강조한 안무로 몸매를 언뜻 드러내는 방식은 대단히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군바리’ 혹은 아저씨들을 넘어서 적지 않는 여성팬까지 호감을 갖고 주목하도록 만들 정도였다. ‘나혼자’는 그야말로 씨스타가 지닌 디바로서의 가능성과 마른 몸매가 아니라 군살 없이 건강한 보디라인만의 섹시함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 씨스타만의 재능이 폭발한 무대였다. 직후에 이어진 ‘Loving U’는 그 반대로 씨스타만의 발랄함을 잘 표현한 무대였다. 디바로서의 재능과 멤버들의 개성을 살린 퍼포먼스를 깨달은 것 같았다.
최근 2집 앨범으로 돌아온 씨스타는 소위 말하듯, 가요계를 평정했다. 타이틀곡 ‘Give it to me’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록곡이 각종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장악한 것은 물론 다양한 채널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숱하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10년 데뷔 이후로 다양한 히트곡들을 양산하며 ‘뷰티풀 몬스터’라 불렸던 그 이전까지의 인기와도 격차가 느껴질 정도로 이번 2집 활동은 씨스타의 성장을 확인하고 체감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덕분에 보라는 “이만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해서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고, 다솜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다. 게다가 아직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해외 팬들이 생긴 것도 놀라운 발견이라고 한다. “방송이나 공연을 위해서 처음 가본 도시에서 씨스타 노래를 따라 불러주시는데 정말 놀랐다.”(보라) 전세계적인 대세가 된 K팝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는 말인 동시에 씨스타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게 만드는 말이다.
1년여 만에 씨스타로서 활동을 재개하는 멤버들은 저마다의 설렘과 긴장을 안고 있었다. 그 사이에 ‘씨스타 19’라는 이름으로 유닛 활동을 했던 효린과 보라보다도 1년여 만에 씨스타로서 무대에 올랐던 다솜과 소유의 심정이 더 궁금했다. “2집 활동으로 얻게 될 반응이 궁금했다. 1년 만에 함께 하는 무대였기 때문에 팬들만큼이나 우리도 많이 기다렸다.”(다솜) “기대보단 부담이 컸다. 올 초에 언니들이 유닛 활동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넷이서 함께하는 무대는 그보다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소유) 동생들만큼이나 언니들도 설레고 떨렸다. “타이틀곡 외에도 좋은 노래들이 많기 때문에 수록곡들도 많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효린)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색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다.”(보라)
데뷔 이래로 씨스타에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씨스타와 함께 20대의 문턱을 넘으며 보다 성숙해지는 변화를 체감하게 된 다솜처럼 사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씨스타로서의 변화가 멤버들에겐 보다 크게 와닿는다. “알아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긴 만큼 무대에 임하는 각오가 달라졌다.” 효린의 말처럼 씨스타라는 이름 안에서 느낀 팬들의 사랑이 점점 커가는 것을 보며 하나같이 더 많은 ‘책임감’를 안고 무대에 오르게 됐다. 효린이 매일 같이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것도 그래서다. “씨스타의 무대와 노래를 어떻게 보고 들어주시는지 공부하기 위해서 모니터한다.”(효린)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만큼 그 관심의 방향을 살피고 새로운 방향에 대한 기대를 품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댓글을 보면 몸매에 대한 칭찬이 많은 편인데, 물론 기분은 좋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발견했을 때 더 기분이 좋다.”(소유) 소유 개인으로서가 아닌 씨스타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에서 씨스타의 긍정적인 내일이 예감된다.
성격상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효린과 우연히 만나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꿈꾼다는 다솜이 다르듯이, 씨스타의 네 멤버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성격과 취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스터(sister)’와 발음이 유사한 씨스타의 네 멤버들은 친자매처럼 살갑고 돈독하다. “저희 넷은 화합이 잘되는 편이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갈등이 전혀 없다.”(효린)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데뷔 초반엔 의견 차이도 있었다. 지금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의견 조율도 쉽고, 다들 털털하고 쿨한 성격이라 잘 맞는 거 같다.”(다솜) 어쩌면 씨스타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인 네 멤버들이 하나의 방향을 바라보며 지난 4년여의 시간을 건너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른 멤버들의 매력을 하나씩 꼽으며 부럽다고 토로하는 네 멤버들을 보면서 씨스타의 새로운 성장을 예감했다. 하나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효린, 보라, 소유, 다솜 그리고 씨스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통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 아직 20대 초반인 만큼 얼마든지 새로운 꿈을 꿔도 좋을 나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키웠던 강아지가 눈을 감아서 메이크업이 다 지워지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던 효린은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동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상상한다. 지난 2월까지 시트콤 <패밀리>에 출연했던 다솜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길’ 희망한다. “아직 구체적인 생각이 없다”는 보라도 ‘서른 즈음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길’ 바란다. 언젠가 그녀들은 씨스타가 아닌 효린으로서, 보라로서, 소유로서, 다솜으로서 자신만의 무대에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 씨스타로서 무대에 올랐던 그때처럼 새로운 기대와 불안을 안고. 하지만 씨스타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꿈은 계속된다. 아직 꿈은 그 무대에 있다.
유년시절부터 ‘랄프로렌’이나 ‘갭’과 같은 의류 브랜드를 비롯해서 ‘버버리’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는 ‘훈남’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건 딱히 놀라운 사연이 아니다. 하지만 알렉스 페티퍼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엿보인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나 <해리포터>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래프가 그러하듯이,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젊은 배우들은 대부분 특정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태어난다. 페티퍼는 올해 초에 차례로 개봉된, <아이 엠 넘버 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계인 초능력자로 분한 뒤, <비스틀리>에서 잘생긴 외모를 되찾고자 사랑을 갈구하는 추남으로 변신한 페티퍼는 혜성과 같은 등장을 뛰어넘어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신예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SF스릴러물 <나우>(2011)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이름을 올린 페티퍼는 올해 또 한번 새로운 면모를 과시할 전망이다. 어메이징한 영 건, 알렉스 페티퍼를 기억하라.
<뉴문>을 보기 위해선 전제가 있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뉴문>의 전편인 <트와일라잇>은 분명한 취향의 호불호를 체감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누군가는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등마저 굽어버릴 판인데 어느 누군가는 잘도 깔깔거리며 마냥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적 만듦새에 대한 불평이 좀처럼 합당하게 먹힐 구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뉴문>이 보고 싶은 이라면 그에 따른 명확한 취향의 확신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셈이다.
전형적인 뱀파이어 영화를 상상했다간 화들짝 놀라다 못해 십자가를 그을 만큼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는 정통 팬들에게 불순하다 못해 이단적인 존재나 다름없다. 여기서 뱀파이어란 단지 10대 취향 팬픽의 비범한 주인공에 가깝다. 태양빛을 받으면 온몸이 반짝거린다는 스와로브스키 협찬 태생의 뱀파이어들과 이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황홀한 시선엔 환상이 어른거린다. 뱀파이어라고 쓰고 아이돌이라 읽어야 한다. 단지 뱀파이어는 거들 뿐, 중요한 건 사랑이고 로맨스다. 그러니까 결국 뱀파이어란 존재는 태생이 다른 인간과의 로맨스에 난관을 부여하기 위해 마련된 이종교배의 삼부능선인 셈이다.
초반부터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읊조리는 <뉴문>은 이윽고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와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치환한다. 자신이 곁에 있을수록 벨라가 위험해진다는 판단을 내린 에드워드가 결국 벨라를 떠나게 되고 이를 견디지 못한 벨라가 탈선을 시도하고 자살마저 결심한다. 그 지난한 여정에 동원되는 건 삼각관계다. 남몰래 벨라를 사모하던 제이콥(테일러 로트너)은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내며 자신의 마음을 종종 어필하지만 에드워드를 향한 벨라는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벨라는 제이콥의 비밀을 알게 되고 벨라도 모르는 위기가 다가온다.
사실상 <뉴문>은 진지하게 눈뜨고 볼 수 없는 영화다. 만약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라는 소재에 이끌려 상영관을 찾은 관객이라면 팔자를 탓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귀여니 소설을 읽고 헥토파스칼 킥이라도 얻어맞은 듯한 개념적 충격을 체감했다면 <뉴문>을 보는 130분 간 자기성찰을 하다 못해 득도라도 할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건 이 영화의 태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뉴문>은 유아적인 환상으로 점철된 원작 텍스트의 태도를 온전히 이미지로 재생하고 있는 영화다. 열광과 혐오의 기준도 그 지점에 있다. 그러니까 이성적 판단으로서 좌우될 수 없는 취향의 현상인 셈이다.
확실한 건 <트와일라잇>을 보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을 견딜 수 없었다면 <뉴문>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그 반대로 반짝이는 뱀파이어에 도취됐거나 그 오그라듦을 하나의 개그 장르로 이해해버렸던 당신이라면 조만간 티켓을 손에 쥘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뱀파이어고, 늑대인간이고, 로맨스고, 멜로고, 다 해당사항 없다. 그 절실한 대사와 그윽한 눈빛을 의도적인 개그로서 즐길 수 있던가, 슈퍼스타적인 뱀파이어의 외모에 매혹당하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130분을 견딜 재간이 없을 게다. 물론 여자친구 손이라도 잡고 보게 될 남자라면 극장 문을 박차고 나와서 그 지난한 시간에 대해 불평하는 건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반짝이는 뱀파이어에 도취된 여자 친구의 상향평준화된 눈높이를 고려해본다면 조만간 찾아올 크리스마스에 TV리모컨이나 붙잡게 될 확률이 커질 테니까.
크랭크업 이후로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영화가 개봉됐는데 기다려지지 않았나?
촬영하는 동안 감독님께서 모니터를 많이 못 보게 하셨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너무 궁금증이 커진 상태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새로운 면도 보이고 저 때는 내가 저런 감정으로 연기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선하더라.
제목부터 의미에 대한 호기심을 부르는 작품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어떤 감상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일단 색다른 이야기라 이걸 감독님이 과연 어떻게 표현해내실지, 그리고 만약 내가 메이를 연기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궁금증으로 시작했다. 항상 내게 들어왔던 시나리오와 너무 다른 류의 영화였고 기존에 내가 해왔던 캐릭터와 상반된 면도 있어서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주지홍 감독은 연기적인 요구가 많은 편이었나?
시나리오 상에는 디테일한 설정이 많았지만 일단 현장에 나오시면 어떤 게 편하냐고 물어보시곤 했다. 배우들에게 가장 편안한 현장에서 가장 솔직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하셨다.
한국에 온 메이는 고모에게 자신을 왜 미국으로 보냈냐며 따진다. 단순히 메이가 미국으로 보내진 것에 대한 불만을 고모에게 토로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미국 생활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런 억울함이 발생한 게 아닌가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선 메이의 미국 생활에 관해서 결코 묘사하지 않는다. 배우로선 조금 답답할 수도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시나리오 읽으면서 감독님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부분이 그 고모와의 대화였다. 일단 감독님은 메이 스스로 그게 고모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단지 고모에 대한 원망의 표출이 아니라 그 동안 쌓여왔던 아픔을 세상에 표출하는 것이라 하시더라. 그게 고모에 대한 원망으로 그려져선 안되니까 뻔한 오열 같은 신파적 표현이 동원돼서도 안됐다. 그런 감정을 잘 절제해서 보여주는 게 내 숙제였지. 그래서 이 신을 찍고 나서 다시 찍어보고 싶다고 얘길 드리니까 감독님은 이게 좋다고, 100%라고 하시는 거다. 그때 조금 아쉬웠는데 나중에 편집된 걸 보니까 감독님께서 만족하신 그 선이 맞았다는 걸 느꼈다. 메이가 미국에서 겪은 삶이나 양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감독님께 여쭤봤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아닐지라도 학대나 홀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아닌, 보통 가정의 평범한 유년을 보낸 아이지만 항상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지닌 채 한국에 살아있을 부모를 생각하는 아이라고 말씀해주시더라. 남들과 다른 아픔 때문에 항상 스스로가 벽을 만들고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는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메이는 상당히 히스테릭한 캐릭터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만들어나간다 해도 그 정서에 스스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그렇게 히스테릭한 부분도 그렇지만 메이가 항상 가지고 있는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메이가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답답함을 한국에 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어떤 해결책이나 돌파구가 없다는 답답한 느낌이 연기를 하면서 점점 더 나에게도 전이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가끔씩은 촬영이 끝나고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그 기분이 해소되지 않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있었을 텐데.
3일 동안 세트장에서 대사가 한마디도 없어서 말 한마디 안하고 계속 답답한 기분으로 연기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너무 답답하더라. 어둡고 침침한 세트장에 있다 보니 밖은 햇살이 비치는 낮이라는 걸 망각할 정도로 메이의 감정에 빠져 있다 보니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졌다. 그래서 세트장 문을 박차고 햇빛 아래에서 30분 정도 앉아서 마음을 다스린 적이 있다. (웃음)
큰 사건들이 펼쳐지기 보단 두 남녀의 감정적 충돌과 교감이 중요한 영화였으니까 장혁 씨와의 호흡이 중요했을 것 같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지 않았나? 나름대로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회사가 같아서 오고 가면서 인사하는 사이이긴 했지만 그 전에 내게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던 거 같다. 감성적인 부분보단 이성적인 부분이 강할 것 같다는 느낌? 마초적인 느낌도 강하다 생각했고. 그런데 실제로 함께 연기를 해보니까 감수성이 예민하고 작품에 대한 열의도 강하시더라. 초반엔 감독님이 장혁 씨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얘기해서, (웃음) 처음엔 되게 어색한 사이였다. 그런데 영화의 흐름처럼 점점 더 친해지다 보니까 내가 몰랐던 매력들이 하나씩 발견됐다. 개인적으론 장혁 씨의 재발견?
스스로가 장혁 씨에 대한 선입견을 지녔다 말한 것처럼 당신의 선입견을 지닌 누군가도 있을 거다. 특히 아이돌 가수 출신 연기자들에게 대중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 <무릎팍도사>에서 눈물을 보인 것도 그런 배경에서 얻은 상처란 생각이 든다. 대중들의 손가락질이 거셀수록 스스로 연기를 잘해나가야 한다는 책임이나 강박도 커질 거다.
예전엔 나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기가 정말 좋아지고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 자체에 감사를 느끼게 됐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날 보시는 분들도 약간 변화된 느낌이 보인다고 하시는 것 같다. 그 동안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이런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방영했던 <태양을 삼켜라>가 본인의 8번째 드라마 출연작이었다. 주연 캐릭터를 거듭 맡아오고 있는데 작품의 얼굴로서 전면에 부각되는 게 부담될 때는 없었나?
처음엔 처음이기 때문에 봐주는 게 있지만 한 작품씩 해나가면서부터 대중들의 비판도 더 날카롭고 냉정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것 같다. 특히 작품마다 6~70명 정도 인원들의 노고가 담기는데 나 하나 때문에 그 노고가 퇴색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
그 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엔 익숙해졌겠지만 스크린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생소할 수도 있었을 거다.
일단 감독님께서 미묘한 감정선을 원하셨는데 아무래도 브라운관 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그런 연기는 뭔가 부족하거나 심심한 거 같고, 이 정도 표현으로 관객들이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약간 들었다. TV같은 경우 마음에 안 들면 채널을 돌릴 수도 있고 이런 저런 다른 일을 하면서 볼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일단 스크린 크기도 그렇고 모든 관객들이 스크린에 집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잖아. 그래서 그런 미묘한 감정선도 캐치가 되고 느껴지는 것 같더라. 감독님께서 왜 나에게 저런 밋밋하다 느낄만한 감정선을 요구하셨는지 스크린을 보니까 알게 됐다.
드라마로 배우 경력을 쌓아왔으니 영화 현장은 처음이었다. 준비기간을 비롯해서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었을 텐데 어땠나?
일단 드라마는 엔딩을 모르고, 심지어 다음 회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찍어야 되는 경우가 많아서 놓치고 가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대중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라 배우입장에선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걸 철저히 준비하고 계산한 상태에서 들어갈 수 있어서 배우에겐 보다 친절한 작업 현장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내 스스로도 자신감이나 안정감이 있었던 거 같고, 다음 그림을 그리면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더 좋았다.
드라마는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타이트하다. 반면 영화는 좀 더 여유롭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좀 더 안정된 느낌이 있었을 것 같다.
일단 스태프 분들의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배우가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 의무적이라기 보단 당연시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일에 대한 프로의식과 열정을 지닌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존경하고 본받을만한 점이라 느꼈다.
사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부터 본인도 프로로 대중 앞에 섰다. 그렇지만 바로 프로로서의 자각이 생겼던 건 아니었을 것 같다. 일단 나는 처음부터 대중들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그런 책임감을 가질 순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수가 자신의 무대를 즐기지 못하고 연기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정말 프로답지 못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책임감이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앞서 있었던 거 같아서 그 어린 마음을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다.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해야 했던 부분도 많다. 뒤늦게 남는 아쉬움은 없나?
그 당시엔 그게 너무 익숙했고 당연했다. 겁도 많았고, 그냥 당연히 지나가는 게 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놓치고 간 부분이 많다고 느껴져서 마음이 아픈 순간이 있다. 평범한 삶을 조금 더 즐기고 이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하고. 연기자로서도 그런 경험을 남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토끼와 리저드>는 운명적 관계를 되새겨 나가는 남녀의 여정을 그린 영화다. 과거 가수로서 데뷔했고 현재 배우로 활동하는 본인의 인생 속에서 뒤늦게 스스로 운명적이었다 느낄 수 있는 계기나 과정의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그 삶에서 얻은 상처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됐을지도 모른다.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랑보단 상처가 익숙했던 그들,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연기가 내게 상처가 되기 시작했고 나의 아킬레스건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연기의 참 맛이나 기쁨을 알게 된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여전히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밟아나가면 어느 순간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이런 과정이 힘들다기 보단 오히려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면이 더 많아진 거 같다.
“왜 내가 네 손을 잡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는 은설의 대사처럼 운명이란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배우로서 살아가는 것도 결과론적으로 본인의 운명인 셈인데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목표의식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에게 연기가 어떤 것이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연기는 나에게 운명과도 같은 존재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정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다가왔고 이로 인해 이런 저런 시련을 받았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벗어날 수 없게끔 상황이 이어졌다. 이젠 그 어떤 것보다 연기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된 것 같아서 이런 게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기에 대한 기쁨을 알고 내 길이란 확신이 생긴 만큼 내 스스로 연기를 즐기면서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인기라는 건 마치 때때로 버거워서 버리고 싶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메이의 짐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데뷔 초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던 만큼 그 인기의 허와 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너무 어린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인기를 얻어서 그런지 그런 인기에 대한 허와 실을 너무 빨리 알게 됐다. 그게 물론 나에게 중요한 건 안다. 다만 그게 삶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 나한테 따라와주면 좋지만 따라와주지 못해도 너무 낙심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는데 원래부터 염두에 둔 선택이었나, 아니면 입시적 진로를 앞두고 결정한 문제였나.
솔직히 그 당시엔 학교에서 그때 내가 하던 것과 다른 부분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다른 분야를 배우는 건 쉬운 게 아니니까 연극영화과를 선택하게 됐다. 그런데 사실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체계적인 공부도 하지 못했고 그런 부분을 놓치고 가야 했던 건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얻은 경험이 본인에게 실질적인 연기적 수업이 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만큼의 시행착오도 겪어왔을 텐데,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설 때 기분은 어땠나?
아마 카메라에 대한 공포가 없고 오히려 친밀감이 있다는 게 가수 출신 연기자의 장점이 아닐까. 반대로 우리 식구든, 멤버든, 매니저든,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왔던 내가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수십 명의 스태프들과 몇 달간 동거 동락하듯 지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생기는 다양한 트러블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낯설고 힘들었다. 게다가 짧은 순간의 무대 공연에 익숙해 있던 내게 긴 호흡의 연기는 낯설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무대에선 짧은 순간에 에너지를 폭발시키면 되지만 현장에서는 에너지를 배분해서 끊임없이 방전과 충전을 거듭해야 한다.
가수가 무대에 서는 게 100m 달리기라면 연기는 마라톤 같은 느낌이다. 그땐 에너지를 배분하는 법에 익숙하지도 못했고 서툴렀다. 그래서 연기적으로도 들쑥날쑥 하고 논란의 여지가 생긴 거 같다. 기존에 그런 걸 배우고 어느 정도 인지가 된 상태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던 만큼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보니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핑클’ 시절 덕분에 여전히 ‘요정’소리를 많이 들을 것 같다. (웃음) 그런 말이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나?
그 당시에 우리가 그렇게 불려졌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련한 추억이 되는 거 같다. 재미있다, 그냥. (웃음)
‘핑클’은 이제 당신의 삶에서 과거형이다. 그럼에도 당신의 현재를 말할 땐 항상 핑클이라는 과거에서 시작된다.
‘핑클’이 큰 존재였구나, 라는 걸 알게 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사실 예전에는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지만 지금은 ‘핑클’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덕분에 이제 ‘핑클’ 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픈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수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활동을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핑클 활동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고, 가수 출신 연기자로서 끊임없이 비난을 받을 때마다 그런 고비가 있었다.
대중들의 비난에 항상 대응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는 것도 간혹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무릎팍도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 어쩌면 본인에게 비난을 던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 중 그 영상을 통해 미안함을 품었던 이들도 있을 거다. 일일이 항변하거나 변명할 순 없지만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때때론 좋은 소통 방식이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내가 아는 지인 분에게 이런 얘기들에 대해서 다 해명하고 싶다, 그랬더니 그 분이 저에게 말씀해주시더라. “이 직업을 가진 이상,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이슈가 되거나,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살아야 한다. 그런 오해와 구설수와 각종 루머에 대해서 네가 모두 하나하나 해명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 시작해라. 그러나 네가 해명하지 못한 그런 루머나 오해들은 사실이 돼버린다. 어떤 것을 선택할 거냐.” 내게 온 국민의 오해와 루머를 하나하나 해명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하는 법도 배워야 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실은 분명 밝혀지는 것 같다. 만약 기회가 돼서 해명할 기회가 되면 해명할 수도 있고. 그리고 이젠 그런 지혜가 약간 생긴 것 같다.
‘핑클’ 시절 함께 활동했던 다른 멤버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제각각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함께 활동을 시작했던 시절로부터 10년 정도 세월이 지났는데 지금 어떤 감회라 할만한 게 있을까?
항상 넷이었다가 혼자가 됐을 때는 각자 본인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저마다 본인의 분야를 즐길 줄 아는 여유가 보이는 것 같고, 각자 분야에서 다들 인정받고 있는 거 같아서 좋다. 내가 제일 어려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자매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언니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잘 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요즘 새로운 10대 아이돌 그룹이 많은데 그런 후배들을 보면서 예전 생각을 할 때는 없나?
나는 그 당시에 우리 팬들이 우리 노래나 이미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를 좋아한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그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단지 어리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예쁜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각자 개성도 뚜렷하고 재능도 뛰어나지만 그 나이 또래들만 누릴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에 저런 모습이었을까, 생각하게 되면 새롭고 신기하고 그렇다. (웃음)
<토끼와 리저드>는 뒤늦게 찾은 운명적 상대에 대한 멜로다. 이제 데뷔 초에 비해 사랑에 대한 관념도 보다 깊어질 나이로 들어섰는데 운명적인 대상을 찾을 것까진 없겠지만, (웃음) 연애나 결혼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 볼만한 나이가 됐다.
어릴 때부터 너무 특수한 환경 속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평범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만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그런 소망이 있다.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차태현 씨와 호흡을 맞췄다. <토끼와 리저드>에서도 차태현 씨가 출연하는데 본인과 호흡을 맞추는 신이 없어서 마주칠만한 일도 적었을 것 같다.
사실 포장마차 신에서 같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은설과 메이의 감정에 몰입하고 싶으시다고 편집하셨다. (웃음)
지난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를 새로운 작품에서 만나는 건 본인에게 몇 안 되는 경험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만났다는 점도 특별한 감상을 주지 않던가?
20대 중반의 내가 만난 태현 오빠와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태현 오빠는 참 많이 다른 사람 같더라. 그리고 태현 오빠도 이제 결혼했고 아이도 있는 만큼 보다 성숙한 느낌이 드니까 새롭기도 하고 그만큼 정감도 갔다.
방금 말한 대로 서른을 앞둔 나이인데 그만큼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할 것 같다.
일단 20대엔 이런 저런 갈등이나 시련이 많았고 내 스스로 내 자신의 중심을 잘 세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20대 때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목표가 생기고 중심이 잡힌다고 느껴지니까 오히려 30대가 좀 더 기대된다. 그 목표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이랄까.
최근에 한 다른 인터뷰에서 장혁 씨가 성유리 씨를 교양 있는 여자라고 했더라.
(웃음) 워낙 장혁 씨가 교양이 있으셔서 나도 거기 발 맞추어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동적인 부분보단 정적인 부분이 많이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사실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 발랄하고 활발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의외란 말을 많이 듣게 되진 않았을까.
요즘 인터뷰하면서 많이 느끼는 건 내가 되게 발랄하고 활발한 이미지로 많이 생각된다는 점이다. 내 스스로는 내가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는 점이 새로웠다.
메이의 히스테릭한 모습만 걷어내면 본인과 많이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감정이라 오히려 편하게 봤는데 보신 분들은 색다르게 보시더라. 이런 부분이 내겐 강점이 될 수 있겠구나 느꼈다.
<쾌도 홍길동>이나 몇몇 드라마에서 백치미적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 부분도 많을 거다. 어쩌면 정작 자신과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캐릭터들을 연기한 셈인데 자신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기분은 어떤가?
그런데 내 안에 분명히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은 그런 캐릭터들이 평소 생각하는 나와 닮았다는 얘기도 하더라. 상대적으로 어떤 성격이 부각되느냐 차이인 거 같다. 이런 저런 역할을 하다 보면 나도 잊고 있었던 성격들이 나온다. 결국 스스로의 재발견이랄까.
때때로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을 테고.
어제 영화를 세 번째로 봤는데 눈 모양이 신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게 보였다. 각도에 따라서, 아니면 조명에 따라서 그렇기도 하고, 어떨 땐 조금 올라간 눈이 되거나 반대로 내려간 눈이 되기도 하고. 나도 몰랐던 그런 부분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저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좀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데 쉽겠구나, 이런 것도 알게 되고.
10년여 동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런 관심 속에서 짓눌리지 않고 살아남는 건 말 그대로 그 삶을 즐길 줄 알 때 가능할 것 같다. 그 삶 자체가 일종의 도피처가 되는 거랄까.
예전엔 사생활을 구속 당하는 느낌이 싫다는 막연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사생활이라 할만한 게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상 속의 내 삶은 딱히 스펙터클하지 않고 재미있다기 보단 지루하다. 그런데 연기를 통해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는 인생의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이젠 기꺼이 다른 부분의 희생을 받아들일 의향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까지 지켜내고 싶은 사생활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는 노하우도 생긴 것 같아서 그 일상을 절충하는 게 가능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