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다섯 군대 전투>를 축약하자면 점입가경이라 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통해 한차례 증명된 바 있지만 피터 잭슨이 물리력을 총동원해서 전투신을 뽑아냈을 때의 스펙터클은 볼거리 중의 볼거리다.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아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여러 종족이 엮어서 발생하는 공명심과 이기심의 복마전과 물리력의 차이를 바탕에 둔 전투적 정황의 다양성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입체적인 감상 구조를 제공하고, 켜켜이 틈이 없는 감상적 지층을 만들어내는 덕분에 딱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롤러코스터. 어떤 식으로든 아이맥스에서 보시란 말밖에 할 수가 없다. 피터 잭슨이 다시 중간계로 끌려 들어가 <호빗> 트릴로지, 심지어 원전에도 없는 내용을 확장해 가며 3부작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살짝 혀를 차는 입장이었는데 이 세 번째 작품으로 다시 한번 갈무리된 트릴로지를 봤을 땐 대사업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스타워즈>의 살짝 민망한 3부작 프리퀄과 대조적으로 언급될 만한 프리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올 겨울에 이만한 볼거리는 없다. 무조건 극장에서, 이왕이면 아이맥스다.
<호빗> 시리즈를 이끄는 건 <반지의 제왕>으로 익숙한 피터 잭슨이다. 불가피한 이유로 길예르모 델 토로에게서 메가폰을 넘겨 받았다 해도 <호빗>은 끊임없이 <반지의 제왕>과 비교당할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란 것이다. 그리고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새로운 트릴로지를 받치는 허리이자 전후를 잇는 다리 역할에 충실해야 할 두 번째 속편이다. 본격적인 서사의 진전이 이뤄진다. 트릴로지의 성패를 쥐고 있는 분수령이 되는 작품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속편 역시 초당 48프레임을 영사하는 하이 프레임 레이트(HFR) 방식으로 제작됐다. 사실 전작인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HFR은 과욕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서사의 시동을 거는 첫 작품에서 이 특수한 기술이 효율적으로 활용됐다고 말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서사의 주행을 위해서 진로를 설계하는 목적이 강했던 첫 작품에선 액션신의 비중도 적었던 만큼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부여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역동적인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서 공간 전반을 활용하는 몇몇 액션신에선 확실히 HFR의 장점이 부각되는 인상이었다. 스펙터클한 액션신과 이미지의 비중이 늘어난 이번 작품에선 HFR의 장점이 보다 뚜렷해 보인다. 특히 다이내믹한 카메라의 이동과 전방위적인 공간 활용이 빛을 발하는 협곡에서의 추격신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원작자인 J.R.R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 세계관의 자궁 역할을 한 <호빗>의 일부 설정을 수정했다. 피터 잭슨이 톨킨의 <호빗>을 바탕으로 원작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건 이와 비슷하다. <반지의 제왕>은 톨킨의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지만 <호빗>은 오히려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로서의 목적에 충실하고자 원작을 적극적으로 인큐베이팅해낸다. 원작과의 연관성에 관대해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훌륭한 각색물이자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로서의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는 작품이다. 어떤 면에선 <반지의 제왕>보다도 피터 잭슨의 인장이 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기술적 시도와 서사적 의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성공적인 트릴로지의 완결이 기대된다.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탄환의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찢이길 폭탄 위에 서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라크 한복판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가운데서도 EOD(폭발물 전담 제거반)는 모든 생의 조건을 내걸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직책이다. 정체가 불확실한 폭발물이 발견된 현장에서 그들은 생존에 대한 갈망마저도 잠시 내려놓듯 숨을 죽이고 눈 앞에 놓인 공포와 매일 같이 대면해야 한다. 긴박한 임무의 연속 안에서 감각은 무뎌지고, 되레 공포는 잦아드든 것 같지만 종종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터져나오는 실전 상황을 대면하다 보면 잠자듯 죽은 공포가 자신의 온 몸을 지배한지 오래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최근 개봉된 <그린 존>의 핸드헬드가 현장감의 간접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쾌감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허트 로커>의 핸드헬드는 불안에서 야기되는 심리적 통증의 끊임없는 주입에 목적을 두고 있다. <허트 로커>의 핸드헬드는 <클로버필드>의 그것과 동일하다. 보이지 않는 실체를 찾아 두서 없이 고개를 흔들어 대는 카메라는 끊임없이 불안한 심리를 수집해 낸다. 그 불안한 심리는 참혹한 현상의 목격을 대면할 것이라는 불안의 징후를 파편처럼 쏟아낸다. 폭발물을 처리하는 EOD대원들의 동선을 따라 좇는 그 영상을 끊임없이 목격해야 할 관객들은 그 영상을 통해 통증과도 같은 긴장을 대면해야 한다. 현장감의 재현은 (어쩔 수 없이) 체험적인 쾌감을 동반한다. <허트 로커>의 현장감 또한 그 쾌감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최대한 쾌감에서 거리를 둔, 끝없는 통증의 환기라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의미가 확보된다.
거친 질감의 입자가 떠도는 스크린의 핸드헬드 영상은 이라크 바그다드의 풍경을 흔들며 영화로 들어선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며 잡담을 나누는 미군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시내 한가운데 매설된 폭발물을 해체하러 온 폭발물 전담 제거반이다. 이런 현장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롭게 농담을 나누지만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새어나온다.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 부풀어 오른 긴장감이 도처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 시야에 포착되는 모든 상들은 의심스런 징후로 포착된다. 긴장을 감춘 표정으로 농담을 나누지만 주변의 작은 움직임 앞에서도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역력한 긴장감이 새어 나온다. 예감은 현실이 된다. 비극에 대한 의심은 곧 목격으로 돌변한다. 터져나간 폭탄은 선혈이 가득한 주검을 남기고, 여유를 위장하던 대화는 절규로 변질된다. <허트 로커>는 바로 그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 놓인 덕분에 자신이 유지할 수 있는 생의 너비를 확신하지 못하고 탈출을 꿈꾸거나 그 의식에 매몰된 인간들의 심리를 첨예하게 파고 든다.
‘포스트 9.11’ 시대를 맞이한 미국영화들은 그 날의 테러리즘으로부터 잉태된 공포의 성장과 전이를 끊임없이 주시해 왔다. 뉴욕에서 폭발한 테러리즘의 불씨는 전쟁으로 번져 나간 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도 이라크의 도처에 살아남아 타오르고 있다. 이라크는 화약고 같은 땅이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에게도 그곳은 위협이 매설된 공포의 지뢰밭이다. <허트 로커>는 이라크를 점령했다 말하는 미 정부의 발표와 달리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미군 병사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들에게 이라크는 주둔지라기 보단 감옥이다. 그들은 항상 자신이 당장 보고 있는 풍경이 생의 마지막 목격이 될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위협에 시달린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그 통증은 곧 잊을 수 없는 쾌감으로 변질된다. 마치 체내에 흡수된 뒤, 축적될 뿐 배출되지 않는 중독성 물질처럼 전장에서의 긴장감이 생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삶을 꿰찬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시무시한 불행이다. 영원히 그 현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포 속을 떠도는 유령의 삶으로서 개인은 철저히 속박된다.
공포는 마음으로 감지되는 통증이다. 뇌를 통한 사고적 판단 이전에 감각을 통해 전이되며 감각적으로 반응된다. 뇌의 판단이나 신경의 전달보다도 빠른 육체의 떨림과 경직으로 예감되는 긴장을 통해 본능적으로 환기된다. 지각과 사고로서 전달되는 전기 신호이기 이전에 자율신경의 반응이다. 전쟁은 공포다. 인간은 명분을 걸고 전쟁을 수행하지만 그 현장에 놓인 인간은 끝없는 공포와 싸우며 생존에 대한 욕구를 되새김질한다. 실리나 정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전쟁을 결정하는 자와 전쟁을 수행하는 자 사이에는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통증의 간극이 자리한다.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생의 시계는 움직임을 보류한다. 그리고 그 공포에 노출된 이들은 서서히 잠식당하듯, 그 공포에 무뎌짐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 그 긴장의 역치 상태에 중독된다.
거대한 폭력의 목격과 체험을 통해 개인의 모든 삶이 파괴되고 증발되며 남은 것은 결국 공포 속에서 거듭 분비된 아드레날린의 과잉적 효과에 예속돼버린 어느 개인들의 삶이다.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상, 그 중독도 결코 멈출 수 없다. 그렇게 개인들은 체제가 만들어낸 거대한 음모적 현실 안에서 자각조차 잊은 채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나간다. <허트 로커>는 여전히 달궈지고 있는 화약고와 같은 위태로운 현실을 겨냥하며 그 현실 위에서 파편 같은 긴장 속을 통증처럼 받아들이는 누군가의 삶을 주시한다. 죽을 수 없지만 사는 것도 아닌, 살아있는 시체들의 땅 위에서 진짜 진실을 목격하기 위해 카메라는 쉼없이 흔들리고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