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웹툰은 만화와는 또 다른 것으로 진화해왔다. 영화계가 웹툰을 주목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영화들이 기대 이하의 결과물로 완성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지금까지 영화화된 웹툰은 총 일곱 편이다. 그 중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제외하면 사실상 ‘강풀 작가의 웹툰’만이 영화화됐다. 강풀은 2003년 무렵에 <일상다반사>라는 일상적인 개그 만화를 통해서 인지도를 얻었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하다 스포츠신문의 지면에 자리를 얻었던 이 작품은 포탈사이트의 웹툰 코너로 유입됐다. 초창기 웹툰의 형태란 대부분 그런 것이었다. 양영순의 <아색기가>, 곽백수의 <트라우마> 등과 같이 일상적이거나 엽기적인 유머에 초점을 맞춘 단편적인 에피소드 형식의 연재 만화들이 웹툰이란 이름 아래 수집됐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나 번뜩이는 유머 감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당시 기성 출판만화계에선 이런 웹툰을 일회용품 정도로 폄하하고 있었다. 출판만화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독자를 웃길 줄만 아는 아마추어들이 웹을 통해서 득세한다는 인식도 자자했다. 무료로 유통되는 저질 콘텐츠가 출판시장을 괴리시킨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웹툰은 죽지 않았다. 독자의 인내력 덕분이 아니다.
대표적인 1세대 웹툰 작가로 꼽히는 강풀은 호러와 미스터리, 멜로, 시대물을 오가며 장르적인 창작을 거듭했고 웹툰의 진화를 주도했다. 일회성 유머로 소비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단행본으로,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영화로, 유형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건너갔다. 모세처럼 웹툰이란 망망대해에 길을 열었다. 웹툰이란 콘텐츠의 소비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입증하며 플랫폼을 정착시켰다. 영화화된 일곱 편의 웹툰엔 영화적인 요소들이 다분하다. 웹툰의 한 컷은 일반적인 만화의 한 컷과는 다르다. 좌우 상하로 눈을 돌려가며 읽는 만화책과 달리 웹툰은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마우스의 스크롤로 화면을 수직 하강시킨다. 스크롤을 내리고 싶은 욕망을 부추겨야 하니 그만큼 호기심을 당길만한 서사의 흐름이 요구된다. 스크롤의 속도감은 영화의 필름 영사 방식을 닮았다. 필름 롤이 돌아가며 분할된 컷을 하나의 신으로 이어나가는 영화처럼 웹툰 역시 마우스의 스크롤을 내릴 때 분절된 컷과 컷이 역동적으로 이어져 영화처럼 연속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기도 한다. 기존의 출판만화의 문법에선 당연히 불가능한 효과다.
윤태호의 <이끼>에선 일정한 공간을 고정된 카메라의 샷으로 관찰하는 롱 테이크 기법과 유사한 컷들도 등장한다. 고정된 프레임으로 반복되는 컷 안에서 인물의 행위나 위치 변화가 연속적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컷의 크기도 와이드하다. 만화책의 컷에 비해서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개별 컷의 이미지 하나하나마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영화화된 일곱 편의 웹툰들은 이런 요구를 충족한다. 스토리텔링의 완결성과 비주얼의 완성도를 높이고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이는 대중적인 인지도로 이어졌다. 흥행성이 기대된다. 시나리오로 작업할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하고, 콘티로 인용할만한 컷들도 충분하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선 입맛이 당길 수밖에. 게다가 최근의 몇몇 웹툰들은 웹이라는 환경의 가능성을 활용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미스터리 연작 <연>은 극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곁들이며 작품의 감정선을 고조시킨다. 지난 해 큰 반향을 일으킨 단편 호러 <옥수동 귀신>은 플래시 동영상을 활용한 컷으로 독자들을 까무러치게 만들었고, 이런 현상은 보도까지 됐다. 웹이라는 환경에서 가능한 것들이 시도되고 있다. 만화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사실 웹툰 원작 영화들은 대부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본래 원작이 있는 영화들이 원작과의 비교를 감내해야 하는 건 타고난 팔자다. 하지만 유독 웹툰 원작 영화들에선 그런 반응이 더하다. 이유가 있다. 웹에 접속만 하면 누구나 웹툰을 볼 수 있다. 접근성이 용이하다. 너무 많이 본 독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영화를 본다. 원작의 인기가 높을수록 영화에 대한 주목도 높아지고 평가는 더욱 치열해진다. 대부분 아비만한 자식이 없기 마련이다. 지난 11월 29일에 개봉되어 개봉 3주차에 250만 관객을 동원한 <26년>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럼에도 웹툰의 영화화는 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제 ‘강풀의 웹툰’만이 영화화되는 게 아니다.
최근 <이끼>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은 <주먹의 전설> 촬영을 마쳤다. 동명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 또한 <만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손으로 영화화된다. 배우 김수현이 캐스팅된 <은밀하게 위대하게> 또한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사실 영화화된다, 영화화된다더라, 지지부진하다가 끝내 증발한 기획들은 적잖다. 그저 영화의 프레임에 구겨 넣어서 될 문제가 아님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웹툰은 영화의 보험이 아니다. 지난 10년 사이 웹툰 작가들은 다양한 장르의 가능성을 개척했다. 재능 있는 아마추어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설 수 있는 채널도 마련했다.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원석이 불쑥 머리를 내밀어도 이상하지 않은 신이 됐다. 그만큼 빛나는 원석을 값진 보석으로 가공할 줄 아는 장인이 필요하다. 영화는 영화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