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내음이 날 것처럼 푸른 잔디밭으로 꾸며진 무대 위엔 의자에 앉은 한 여자가 있다. 이윽고 뒤편에서 꽃을 든 한 남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돌아보고 남자는 다가선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대화가 아니다. 여자와 남자는 각각 언어를 내뱉지만 실상 그 언어는 대화로 엉키지 못하고 비켜 나가 증발해버린다. 아내와 남편임이 분명한 남녀는 서로를 향하되 마주하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지만 남자는 여자를 응시하지 못한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고 여자는 남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남자를 향해 소리치지만 남자는 빈자리를 향해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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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물밀듯이 쏟아지는 조폭코미디가 한국영화계를 장악하던 호시절이 있었다.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등 희화화된 조폭 캐릭터를 통해 코믹한 설정을 이어가던 조폭코미디는 흥행가도를 달렸다. 그 뒤로 시리즈가 양산되면서 설정의 질적 묘미보단 가공된 웃음의 양적 팽창이 극대화됐고 그만큼 관객은 점점 식상해 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프랜차이즈를 유지하던 조폭코미디는 끝내 한동안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관객은 조폭코미디를 소비하면서도 때때로 그것을 충무로 영화를 비난하는 질적 표준으로 손가락질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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