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부팅’ 그러니까 컴퓨터를 다시 켠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러니까 영화를 리부트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부트는 그 대상이 되는 원작이 깔아놓은 철로에 개량된 열차를 올려놓는 작업이 아니다. 열차뿐만 아니라 철로를 싹 갈아엎고 비행장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변주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 시리즈의 정체성만은 유지한다. <배트맨 비긴즈>(2005)엔 배트맨이 있고, <맨 오브 스틸>(2013)엔 슈퍼맨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없는 <007>시리즈가 존재할 리 없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리즈의 미래를 보장하는 뿌리이자 줄기이며 잎이자 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엔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다.
언젠가 한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건 필연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면 더욱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이든,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한결 같이 ‘태생의
비밀’을 안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부분의 리부트
영화들이 ‘프리퀄 무비’로 시작되는 건 다분히 전략적인 셈이다. 리부트의 대상이 되는 기존의 작품으로부터 해방돼서 새롭게 설계된 이야기 위에서 자유로운 전개가 가능하다. 이를 테면 <007: 카지노 로얄>(2006)이나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과 같은 작품은 프리퀄의 형식을 빌려서
시리즈의 리부트를 시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서사의 발판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성을 탐색하고 구축한 뒤, 나아가버린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노력보다도 손쉽게
검증된 이야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방법론이다. 게다가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물들이 증명한 것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의 너비란 그야말로
우주처럼 넓고 광활하다. CG의 발달을 위시한 영상 기술의 발달도 리부트를 부채질한다. 과거의 기술력으론 표현할 수 없었던 이미지의 구현이 완벽하게 가능해진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화적 이미지들을 놀라운 볼거리로 발바꿈시키는 것만으로도 리부트의 가능성은 보다 무궁무진해진다. 리부트
열풍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확장될 것이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수많은 인기 프랜차이즈들이 리부트의 대열에 합류 중이다.
리부트 열풍은 영화계를 넘어서 TV시리즈까지 강타하고 있다. 내년에 방영될 예정인 <히어로즈> 시즌 5는 이미 기존의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방향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또한 고전 시리즈로서 인기를 모았던 슈퍼히어로물인
<플래쉬>도 새롭게 리부트될 예정이다. 또한
리부트 열풍은 영화와 미드의 경계를 넘어선 스핀오프 기획으로 진화 중이다. <어벤져스>의 성공에 힘입은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기획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고든 경감을 주인공으로 둔 또 다른 <배트맨> 프리퀄 시리즈가 미드로 제작 중이다. 스크린과 TV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리부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호빗> 시리즈를 이끄는 건 <반지의 제왕>으로 익숙한 피터 잭슨이다. 불가피한 이유로 길예르모 델 토로에게서 메가폰을 넘겨 받았다 해도 <호빗>은 끊임없이 <반지의 제왕>과 비교당할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란 것이다. 그리고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새로운 트릴로지를 받치는 허리이자 전후를 잇는 다리 역할에 충실해야 할 두 번째 속편이다. 본격적인 서사의 진전이 이뤄진다. 트릴로지의 성패를 쥐고 있는 분수령이 되는 작품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속편 역시 초당 48프레임을 영사하는 하이 프레임 레이트(HFR) 방식으로 제작됐다. 사실 전작인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HFR은 과욕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서사의 시동을 거는 첫 작품에서 이 특수한 기술이 효율적으로 활용됐다고 말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서사의 주행을 위해서 진로를 설계하는 목적이 강했던 첫 작품에선 액션신의 비중도 적었던 만큼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부여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역동적인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서 공간 전반을 활용하는 몇몇 액션신에선 확실히 HFR의 장점이 부각되는 인상이었다. 스펙터클한 액션신과 이미지의 비중이 늘어난 이번 작품에선 HFR의 장점이 보다 뚜렷해 보인다. 특히 다이내믹한 카메라의 이동과 전방위적인 공간 활용이 빛을 발하는 협곡에서의 추격신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원작자인 J.R.R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 세계관의 자궁 역할을 한 <호빗>의 일부 설정을 수정했다. 피터 잭슨이 톨킨의 <호빗>을 바탕으로 원작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건 이와 비슷하다. <반지의 제왕>은 톨킨의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지만 <호빗>은 오히려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로서의 목적에 충실하고자 원작을 적극적으로 인큐베이팅해낸다. 원작과의 연관성에 관대해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훌륭한 각색물이자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로서의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는 작품이다. 어떤 면에선 <반지의 제왕>보다도 피터 잭슨의 인장이 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기술적 시도와 서사적 의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성공적인 트릴로지의 완결이 기대된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계에 불시착한 사람들. 그 세계에서의 탈출을 고대하며 행동에 옮기던 그들은 자신이 발 디딘 땅의 정체를 알아버린 뒤, 자신의 안식을 위해줄 영토가 없음을 절실하게 체감한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블의 원작을 영화화한 <혹성탈출>의 충격적인 결말은 인간사와 지구사를 동일시해온 인류에게 있어서 경종을 울릴만한 사건이었다. 1968년, <혹성탈출>이 첫 작품의 상영 이후로 여섯 편에 달하는 시리즈로 진전된 것도 그런 반향이 만들어낸 추진력 덕분이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시초가 된 첫 작품 이후로 팀 버튼의 리메이크작을 포함한 어떤 것도 그 이상의 흥미를 자아낸 것은 아니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진화의 시작>)에 대한 흥미와 의심의 눈길이 모이는 것도 그런 전례에서 기인한다.
<진화의 시작>과 팀 버튼의 <혹성탈출>이 지닌 공통점은 두 작품이 과거의 오리지널보다도 진화된 영상 기술을 담보로 보다 세련된 이미지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진화의 시작>은 수작업으로 완성된 침팬지의 탈을 쓰고 연기하던 과거의 시리즈물에 비해서 모션 캡처 퍼포먼스를 활용한 디지털 캐릭터로 보다 사실적인 묘사력을 얻어냈다. <진화의 시작>에서 사실적인 묘사란 영화를 위한 수식어가 아니라 필수적 요소처럼 보인다. 팀 버튼의 그것을 포함해서 과거의 시리즈가 가상적인 메타포의 세계관처럼 보이는 탓에 퇴보적인 VFX의 요소가 되레 그 가상성에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 것과 달리 <진화의 시작>은 영화 밖의 현실을 영화로부터 환기시켜야 될 만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미지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의 시작>은 오늘날의 진화한 디지털 비주얼을 통해 현실화된 프로젝트라 할만하다.
<스타워즈>의 프리퀄 3부작이나 J.J. 에이브람스의 <스타 트렉>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리지널 프랜차이즈보다도 앞선 근본을 그린 프리퀄 무비가 그 기원보다도 나은 영상 기술로 구현된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화의 시작>도 그렇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새로운 예감을 품게 만든다. <진화의 시작>은 1968년의 그것을 이루는 세계관이 어디서 출발했는가를 되짚는, 보다 정확하게는 그 기원의 역사를 뒤늦게 기획해낸 <혹성탈출>의 프리퀄이다. 하지만 <진화의 시작>과 <혹성탈출>은 분리된 세계관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단순히 프리퀄이라고만 정의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 있다. 시리즈의 원류가 된 <혹성탈출>을 통해서 설명하자면 <진화의 시작>은 우리가 목격한 그 디스토피아의 원류를 그리는 프리퀄이다. 동시에 <진화의 시작>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도 상관없는 시리즈의 리부트라 논해도 좋을 작품이다.
현시대의 풍경으로부터 멀리 나아간 과거의 시리즈와 달리 <진화의 시작>이 작금의 풍경을 그릇 삼아 영화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이 작품 이후에 이어질 (가능성이 충만해진) 새로운 시리즈의 이미지가 보다 현실적인 환경 안에서 세워질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낸 셈이다. <진화의 시작>은 화석 같던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동시에 그 모든 이미지들을 새롭게 단장해낸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건 결국 <진화의 시작>이 그럴 만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작>은 과거의 시리즈에 대한 경험 유무와 관계 없이 저마다의 흥미를 얻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끝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 <진화의 시작>이 단순히 자신이 봤던 그 작품의 원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에 가깝다. <혹성탈출> 속에서 그려지는 인류의 처참한 상황은 <진화의 시작> 속의 침팬지가 처한 상황과 일 대 일로 조응한다. <진화의 시작>은 <혹성탈출>의 메타포가 된 현실을 영화에 담아내는 동시에 그 메타포를 영화적 모티프처럼 응용해낸다. <혹성탈출>이 인간과 유인원들의 역전된 관계를 그리며 오늘날의 인류가 유인원(, 그리고 여타의 동물들)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에서 메타포를 얻은 우화임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프리퀄의 서사를 통해서 그 세계관이 우화의 수준을 넘어서 현실적인 세계관으로 안착시킨다.
(<혹성탈출>을 아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진화의 시작>은 유인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인간의 몰락이 어디서 시작됐는가에 관한 영화다.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인해 우연 같은 필연으로 지능을 얻게 된 침팬지가 인류를 제압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인간에 의해서 의학적 실험 대상으로 유린 당하는 침팬지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 개발된 의학적 산물로 인해서 진화적인 사고를 얻게 되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과정을 논리적인 인과로서 설득해낸다. 동시에 진화한 유인원들이 인류의 주도권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세계를 건설해내는 과정이 생략된 덕분에 현실의 메타포로 머무르던 <혹성탈출>의 세계관에 완전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진화의 시작>은 단순히 침팬지들의 진화로 인한 세계의 전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능으로 인해서 스스로 몰락하게 되는 인류의 과정을 그린다. 단순히 시리즈의 서사적 빈칸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서 그 논리적인 공백을 메워버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프리퀄인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떠한 인물들보다도 매력적인 캐릭터 시저는 프로그래밍된 가상의 눈동자를 통해서 어느 인간보다도 진실된 감정을 전달해낸다. 탄탄한 서사가 <진화의 시작>을 이루는 육체라면, 앤디 서키스가 연기하는 디지털 캐릭터 침팬지 시저를 비롯한 유인원 캐릭터들은 영화를 밀고 나가는 심장이다. 노예 해방 운동에 가까운 계급적인 투쟁처럼 발전해나가는 침팬지들의 반인류적인 활약은 그것을 지켜보는 인간 관객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큼 뜨거운 감정을 전하는 동시에 흥분할만한 긴장감을 전한다. 민첩하고 유연한 움직임을 지닌 침팬지들이 주변의 환경을 이용해서 인간의 공격에 맞서고 되레 역습을 가하는 이미지는 탁월한 묘사력 자체만으로도 역설적인 경고인 셈이다. 특히 클라이맥스라 할만한 금문교 전투 신은 실로 압권이다. 카리스마가 대단한 리더로 진화한 시저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유인원들의 활약은 심장의 박동처럼 경쾌하고, 그 사이에서 희생을 결심하고 서로를 고무시키는 그들의 소통 방식은 그 자체로 마음을 달군다. 특히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객석마저 장악하는 시저의 포효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명장면이다.
<진화의 시작>은 유명 시리즈의 프리퀄 수준을 넘어서 동물적인 감각과 이성적인 사고를 배합해낸 진화적인 블록버스터다. 이미 그 이후를 알고 있음에도 흥미를 사로잡는 시작은 소름 돋는 전율로 다다라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도 발달된 CG기술의 남용을 전시하는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 광풍 속에서도 <진화의 시작>과 같은 작품은 그 기술적인 가치의 활용성을 설득시키고도 남는다. 그리고 <진화의 시작>을 통해서 <혹성탈출>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진화란 이런 것이다.
세 편의 시리즈와 한 편의 스핀오프에 이은 프리퀄. <엑스맨>시리즈는 확실히 동력이 다해가고 있는 낡은 모선과 같았다. 특히 근작인 울버린에 관한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심각한 수준은 브라이언 싱어의 두 전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얻었던 <엑스맨 3: 최후의 전쟁>조차도 우월해 보이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낡은 시리즈의 심장을 되살리는 할리우드의 심폐소생술 공식을 충실히 따른 결과물이다. 프랜차이즈화되어 질주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들이 끝내 전복하는 현상 속에서 할리우드가 새롭게 찾아낸 대안은 질주하던 시리즈의 출발선을 살피는 일, 즉 <스타워즈>시리즈가 일찍이 꾀했던 프리퀄의 제작이다. 그러나 어떠한 기획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작품은 시리즈의 갱생을 위한 성공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시리즈가 울버린(휴 잭맨)을 필두로 한 엑스맨 캐릭터들의 파티였다면 새롭게 메가폰을 잡고 이 시리즈의 원점을 응시한 매튜 본의 <엑스맨>은 당연히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서사에서 출발한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가 프로페서 X라는에릭(마이클 패스빈더)이 매그니토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만났으며 갈라서게 됐는가를 살피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이른바 <엑스맨>시리즈의 창세기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진전되는 서사는 다양한 돌연변이 캐릭터의 수식을 통해 보다 입체적인 감상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서사적으로 속편에 해당되는 지난 시리즈에 애정을 지니고 있었을 팬들에게는 ‘엑스맨’이라는 유닛이 어떻게 탄생하고 대립하게 됐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충실한 답변과 같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수많은 돌연변이 캐릭터보다도 그 돌연변이들을 조율하는 매튜 본일 것이다. 근작인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을 통해서 자신만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매튜 본은 그 이전부터 탄탄한 시나리오 집필력과 유연한 연출력을 갖춘 인물로 인정받고 있었다. 히어로물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은 <킥 애스>에 이어서 가장 유명한 히어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엑스맨>에서도 그의 녹록하지 않은 재능이 발견된다. ‘페이스오프’되거나 새롭게 업데이트된 돌연변이 캐릭터들의 활약상은 이 시리즈가 지닌 최상의 보폭이다. 지난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던 몇몇 캐릭터의 젊은 날을 연기하는 인물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상을 부른다는 점에서 특별한 재미를 부여한다. 무엇보다도 유머와 서스펜스, 드라마와 액션이 탁월하게 배합된 이 작품의 감각은 매튜 본이 브라이언 싱어 못지 않게 재능 있는 감독임을 다시 한번 설득시킨다. 그는 이 시리즈의 장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자신의 방식에 녹여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성과는 연식이 오래된 시리즈를 새롭게, 그리고 근사하게 리노베이션했다는 점에 있다. 어느 히어로물보다도 대단한 물량공세가 가능하며 제각각의 캐릭터가 지닌 특별한 능력들이 전시되는,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이르는 거대한 세계관의 묘미를 다시 한번 탁월하게 즐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이 시리즈가 다시 한번 날개를 펴고 부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마련만으로도 충분한 제 역할을 해낸 작품인 것이다. 지난 시리즈가 진행되는 사이, 언뜻언뜻 등장하던 몇 가지 단서들이 확실하게 공개되고, 이를 통해서 또 한번 새롭게 서사의 갱신이 가능해졌다. 브라이언 싱어가 처음으로 이 매력적인 돌연변이를 소개한 2000년 이후로 이제야 비로소 그들을 위한 단단한 뿌리가 생긴 셈이다.
세 편의 시리즈와 한 편의 스핀오프에 이은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낡은 시리즈의 심장을 되살리는 할리우드의 심폐소생술 공식을 충실히 따른 결과물이다. 하지만 어떠한 기획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작품은 시리즈의 갱생을 위한 성공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성장 과정, 그들의 만남, 그리고 결국 그들이 갈라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창세기적인 서사의 흥미만큼이나 ‘엑스맨’이라는 유닛의 개성과 이 시리즈의 장점이 어디 있는가를 잘 아는 작품이다. ‘페이스오프’되거나 업데이트된 돌연변이 캐릭터들의 신선한 활약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짜릿해진다. 유머와 서스펜스, 드라마와 액션이 탁월하게 배합된 이 영화의 감각은 매튜 본이 브라이언 싱어 못지 않게 재능 있는 연출가임을 설득시키고도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 매력적인 돌연변이들의 근원을 소개하는 근사한 기회가 마련됐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성과일 것이다. 시리즈를 위한 단단한 뿌리가 생긴 셈이다.
국내에서 방영됐던 TV시리즈 <스타트렉: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스타트렉>의 네임밸류는 분명 국내에서 ‘듣보잡’에 가깝다. 특히 <스타트렉>이 전세계적으로 ‘트레키(Trekkies)’라는 광신적인 팬덤까지 형성하며 성대한 지지를 얻은 시리즈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시리즈가 국내에서 얻은 대우는 가히 ‘안습’에 가깝다. 하지만 1966년에 제작된 진 로든베리의 오리지널 시리즈로부터 5번에 걸쳐 진전된 TV시리즈와 10편의 극장판까지 업데이트 된 <스타트렉>의 발자취는 국내 사정과 무관하게 무궁무진 그 자체다. J.J.에이브람스가 이 시리즈의 프리퀄(prequel)이라 소개된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하, <더 비기닝>)을 축조하기까지의 과정도 분명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스타트렉>은 분명 전설이다.
<더 비기닝>은 전설을 위해 마련한 또 다른 초석이다. 시작을 의미하는 부제처럼 시리즈의 시계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 같지만 실상 그 야심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더 비기닝>은 단순한 프리퀄이 아니다. 그저 앞선 시리즈가 묘사하지 못한 옛날 이야기 따위를 삽입하거나 발전된 그래픽기술을 통해 과거에 불가능했던 비주얼을 전시하는 부록의 기능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더 비기닝(The beginning)’이라는 부제는 그 위치를 알리는 지표가 아니라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되는 ‘리셋(reset)’도 아니고 지금까지 진행되던 모든 사연을 뒤엎고 새롭게 건축하는 ‘리부트(reboot)’도 아니다. 말 그래도 또 다른 시작에 가깝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원점을 그려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건 서사의 영역을 단선적 배치로부터 탈피시킨 상대성 원리다. 공간에 구멍이 뚫리고 그 공백을 통해 차원의 장벽이 무너질 때 시간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개념은 순간이동과 상대성 원리의 기초적 결합이며 이는 <더 비기닝>이란 프로젝트 자체를 가능케 하는 원리이자 규칙이 된다. 또한 <스타트렉>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이미 기본적인 물리적 원리를 동력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원리를 응용하는데도 무리가 없다. <스타트렉>은 영화 밖 현실에서 가설의 형태로 존재하는 물리적 법칙들이 이미 현실화된 하이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세계다. 그만큼 영화 밖 현실과 영화 안 현실의 괴리는 미래의 기술적 진보라는 테마 자체만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미래라는 서사적 허구는 현실적인 불확실성을 원리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판타지의 현실적 그릇으로 확보된다.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진다. 시대적 성취로 인정되는 다양한 가능성이 새로운 이야기의 동력원으로 확보된다.
<더 비기닝>은 이런 가능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서사의 형태를 전혀 다른 것으로 가공하거나 새롭게 포장만 바꾼 것이 아닌, 과거와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대체 현실(alternative reality)’을 창조해낸다. 마치 어떤 표면을 흐르는 카메라가 궁극적으로 우주선의 몸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더 비기닝>은 어떤 일부분의 노출을 통해 흥미를 자극하면서 거대한 결과물을 통해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시작은 이야기의 파편과 같다. 그 파편의 흔적을 추적하고 새로운 파편을 수집하며 이야기의 동선을 가늠할만한 단서가 되는 거대한 원리가 등장하는 중반부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롭다. 캐릭터의 탄생 시점을 비틀고 이를 통해 운명을 보존하되 새로운 필연을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캐릭터의 성향이 변화하고 새로운 변주가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스타트렉>시리즈의 전통적인 트레키나 새로운 트레키의 양자가 될 후보군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이다.
제임스 커크(크리스 파인)와 스팍(잭커리 퀸토)을 비롯해 우후라(조이 살디나)와 술루(존 조), 맥코이(칼 어번), 스콧(사이먼 페그)과 같이 새로운 얼굴로 대체된 전통적 캐릭터들은 오래된 추억과 교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위한 양자로서의 표정을 드러낸다. 또한 체코프(안톤 옐친)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이 시리즈가 과거와 다른 방향의 탐사를 펼칠 것임을 예고하기도 한다.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미래를 담보로 한 대부분의 SF영화들과 달리 다소 낙관적인 <스타트렉>시리즈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음과 동시에 과거보다 진보된 영상 기술을 통해 과감한 스펙터클을 전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쾌감을 장착한다.
이는 프리퀄도 아니고, 속편도 아니다. 시리즈의 0번째 위치를 선점한 동시에 11번째 자리마저 점유한다. 시리즈의 중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출발점에 섰다. 서사에 합류하기 보단 서사에 구멍을 내고 그 사이로 탈출해버렸다. 확실한 건 이 시리즈가 매력적인 탐사를 시작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더 비기닝>은 새로운 탐사에 앞서서 새로운 세대의 트레키를 끌어당길 거대한 떡밥 그 자체나 다름없다. <더 비기닝>은 이로서 추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이 펼쳐질 광활한 우주적 가능성을 품었다. 이는 새로운 대탐사 시대를 예언하는 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제임스 커크의 질문에 관객은 답해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바꾸는 거, 반칙이죠?”올드 트레키들은 “장수와 번영을! (Live long and prosper!)”그리고 새로운 트레키들은 ‘행운을! (Good luck!)’. 어떤 쪽이라도 황홀할 것이다.
앞선 시리즈에서 중요한 맥락으로 대우받던 울버린(휴 잭맨)의 감춰진 과거를 들춘다는 점에서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하, <울버린>)은 깊은 잠재력을 지닌 영화임에 틀림없다. 비범한 오프닝 시퀀스와 감각적인 타이틀 시퀀스는 그런 기대를 한껏 달아오르게 한다. 그러나 <울버린>은 흥미로운 사연의 형태를 전시하는 수순에서 멈춘다. 돌연변이들의 세계관을 통해 깊고 너른 메타포를 제시하던 브라이언 싱어의 성취를 기초로 한 기대 따위는 구겨버려야 한다. 이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돌연변이가 등장하는 가운데 원작 코믹스에서 중하게 다뤄지던 몇몇 캐릭터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반가움이 이를 대체한다.
블록버스터의 너비에 걸맞은 스케일과 스펙터클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오락영화로서의 야심은 인정할만하다. 그러나 액션과 캐릭터를 채우기 위한 그릇에 불과한 것처럼 손쉽게 굴러가는 스토리텔링은 캐릭터의 사연을 구경거리처럼 전시할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 이미 앞선 시리즈에서 ‘금문교’를 이동시키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 마당에 단순히 날고 뛰는 육박전을 전시하는 건 ‘엑스맨’이라는 브랜드의 네임밸류 아래 대단한 성과가 아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의 자질은 충분하지만 <울버린>이 끌어당겨 쓴 사연의 본래 잠재력을 기초로 손익을 계산해보자면 결과물은 분명 밑지는 장사에 가깝다. 그저 시리즈에 얹혀주는 부록의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여름용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연다는 의미가 적나라하게 나뒹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