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어머니의 과거를 명예롭게 여겼다. 어머니는 이스라엘의 첩보 조직 모사드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다. 레이첼(헬렌 미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에게 실험이란 미명 하에 잔혹한 학살을 주도했던 어느 박사를 처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녀의 한 쪽 볼을 가로지른, 깊은 창상이 짐작되는 긴 흉터는 일종의 훈장과 같다. 딸은 어머니의 애국적 활동을 기리고자 책을 집필했고 이를 헌정했다.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감격보다도 근심의 기운이 역력하다. 사라지지 않는 지난 날의 상흔처럼 레이첼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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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넘긴 여배우에게도 전성기가 찾아왔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변신이라는 단어로 수식될 수 있는 결과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헬렌 미렌은 지금 새로운 변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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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브루스 윌리스)는 퇴직연금 상담을 해주는 사라(메리 루이스 파커)와의 통화를 소일거리처럼 즐기는, 은퇴한 CIA요원이다. 그런 어느 날,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프랭크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모종의 위협을 감지하고 이를 퇴치한 뒤, 과거 자신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던, 함께 있을 때는 두려울 게 없었던, 일명 레드(RED)’라 불리는 동료들을 규합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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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맞고 사망한 부랑자 시신이 발견된 이튿날, 하원의원 스티븐 콜린스(벤 애플렉)의 여비서가 지하철역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 덕분에 스티븐과 여비서의 섹스 스캔들이 불거지고 무기회사를 상대로 한 청문회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던 스티븐의 발언권이 상실될 처지에 놓인다. 하루 차이로 발생한 두 죽음은 그저 동떨어진 두 개의 점처럼 접점이 없는 개별적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취재하던 보스톤 글로브의 기자이자 스티븐의 친구인 칼 매카프리(러셀 크로우)는 두 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를 발견한다.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실을 관통하는 진실이 직감된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이하, <플레이>)는 거대한 음모를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다.

 

뛰어난 취재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기자 칼 매카프리와 혈기왕성한 신예 여기자 델리 프라이(레이첼 맥아담스)는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사건의 취재를 밟아나간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크가 번번히 무산되거나 박대 당하는 와중에도 진실을 향해 접근해가는 취재과정이 호기롭게 묘사된다. 때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연출되며 스릴러적 긴장감을 더한다. <플레이>는 스릴러적 구조를 통해 긴장감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지적인 묘미를 더한다. 영화의 중추는 분명 거대한 집단의 이기에 대항하는 개인의 윤리적 저항을 곧잘 이야기하는 토니 길로이의 각본이다. 음모론에 갇힌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고 믿어지는 결말 직전, 영화는 진실의 맹점을 자각하고 왜곡된 진실의 남은 한 꺼풀마저 벗겨내며 논의를 한 차원 더 발전시킨다. 진실을 추구하는 건 정의를 위해서지만 정의에 대한 집념은 때로 진실을 향한 시야를 가린다. 기자는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송고하기 직전까지 진실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정의라고 믿어지는 부분조차도 의심해야 한다. <플레이>는 거대한 자본의 알력과 권력의 위협에 대항해 사선을 넘어서까지 결백한 진실을 얻어내려는 기자의 직업윤리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찌라시가 득세하고 가십이 넘쳐나는 시대에 완전한 진실을 향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기자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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