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된 인형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는 <공기인형>은 배두나의 ‘돌 플레잉’ 덕분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러나 <공기인형>에서 인형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관점을 대변하는 대리적 존재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만큼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겐 자신의 관점을 잘 이해하면서도 인간이 된 인형으로서의 기이한 매력을 잘 살려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원래 배두나의 팬이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배두나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하지만 배두나를 <공기인형>의 주인공으로 떠올리고 낙점할 수 있었던 건 “인형이 마음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만큼 언어가 어눌해도 상관없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공기인형>을 완성한 이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확신은 보다 굳건해졌다. “배두나가 아니었다면 이 역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중 GV가 있던 날, 딸의 작품을 보러 온 “배두나 어머니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해서 객석 반응에 신경 쓰지 못해” 아쉬움도 남았단다.
사실 <공기인형>은 “20페이지 분량의 원작만화”로부터 출발한 기획이었다. “찢어져서 구멍이 난 채 버려진 인형에게 인형이 좋아했던 사람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순간을 그린” 동화적 세계관의 원작으로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건져 올린 건 “인형의 눈에 자신의 시선을 오버랩시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발상”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보다 적나라하게 현실을 관통하길 원했다. <공기인형>은 ‘에어돌(air doll)’, 일명 ‘섹스돌’이라 불리는 성인용 섹스 인형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현실을 직설적으로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무덤덤한 감성이 시니컬하게 표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바라보는 건 “일상의 빛나는 순간”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 비극과 회의로 치장되기 쉬운 현실을 고스란히 발췌해 살필 뿐,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정적인 분위기로 영화를 지배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소란을 배치하며 묘한 활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한 순간의 출렁임을 통해 객석을 진동시켜 울림을 연출한다. 지극히 일본적인 사건과 배경을 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이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얻어온 것도 그런 보편적 감성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도쿄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그린 <아무도 모른다>를 본 미국 관객은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표했고, 감독 자신의 어머니를 영화화한 것이라 생각한 “<걸어도 걸어도>는 스페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라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마주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를 “참 신기한 일”이라며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이런 일련의 경험이 깨닫게 한 분명한 진리를 단호한 목소리로 전한다. “철저하게 국내적인 걸 파고드는 것이 결국 그 끝에 놓인 보편성과 통하는 게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작품이 일본을 벗어나 전세계인의 일상 속에 내재된 빛나는 순간과 소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