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계의 ‘암모나이트’ 혹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강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작가다. 한결 같은 이야기를, 한결 같은 믿음으로 쓰고 그린다. 재미있는 작품에 대한 순정으로.
<무빙> 연재 전에 SNS를 통해서 대단한 각오를 남겼다.
늘 그렇다. 각오는 항상 대단해(웃음)!
자신감일까, 긴장감일까?
긴장감이지. 사실 다른 작가들은 전혀 무섭지 않은데 독자들은 늘 무서워. 혹자는 창작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난 아니야. 독자랑 싸우는 거지. 독자를 재미있게 만들어서 굴복시켜야 돼. 독자가 재미없게 느끼면 지는 거야. 그러니 늘 긴장되지.
팩션물이었던 <26년>을 제외한 전작들은 ‘순정만화’와 ‘미스터리심리썰렁물’로 구분했다. 그런데 <무빙>은 ‘액션만화’라고 했더라.
후회하고 있다(웃음). 전반부는 순정물처럼 보이지만 후반은 아니거든. 그런데 미스터리물도 아니고, 대신 후반부에 액션이 조금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별거 안 해. 아니, 못해(웃음). 그러다가 막판에 빵 터트리고 끝날 거야. 전체 분량의 3/4정도까지 진행돼도 액션이 안 나와. 아마 욕 좀 먹겠지(웃음).
기다린 만큼 제대로 된 액션이 안 나오면 악플 좀 달리겠는데.
‘답답이’ 같았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쾌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정말 답답하고 짜증이 나야겠지. 우린 지금 그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거야.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뚱뚱한 봉석이를 보면서. 그래도 액션이라고 붙인 건 조금 후회된다(웃음).
그런데 왜 제목은 <무빙>일까?
만약 제목이 <액션>이었다면 비행 능력이 대단하고 큰 일을 해내는 히어로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씩 움직이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 캐릭터도, 이야기도. 사실 제목을 붙일 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야(웃음). 어쨌든 하늘을 나는 히어로물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현실에서 그럴듯한 히어로물을 해보고 싶었지.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는 미국에선 그럴 듯해 보여도 한국에선 능력이 과해 보이잖아. 그리고 시간능력자들이 등장했던 <타이밍>과 어감도 비슷해서 좋고.
그렇다면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사실 우리나라만큼 히어로를 이야기하기 좋은 환경도 없다. 지금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분단국가에 초능력자가 있다고 하면 남한이든, 북한이든 얼마나 많은 관심이 생기겠어.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란 영화가 있는데 실제로 초능력 부대를 만들려고 했던 미국 특수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야. 그런데 우리나라 안기부에서도 첩보전에 활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탐사전문기자인 주진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
정재승 박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던데.
뇌과학자니까 초능력에 대해 물어봤지. 재승이 형이 카이스트에 있을 때 이상한 사람들의 문의가 많이 왔대. 실제로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실험도 해봤는데 결론은 초능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왜 초능력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능력이었을까?
하늘을 나는 게 매력적이니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사람도 많잖아.
최근작으로 올수록 비현실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순정만화’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나 <마녀>조차 좀비나 오컬트라는 장르적 세계관에 담아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뻥을 치고 싶어진다. 만화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야. 현실적인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귀신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뻥 치기 좋아서다. 무슨 말을 해도 구라니까 창작할만한 여지가 많거든. 초능력도 마찬가지다. 마블의 초능력자들도 말이 안되잖아. 거미인간이라니, 완전 ‘개뻥’이지(웃음). 하지만 이야기가 그럴듯하니 재미있잖아. 나도 그런 만화를 해보고 싶었다. 허황된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하는 게 작가의 몫이라 생각하니까.
<26년> 이전엔 작품마다의 연재 간격이 2개월 수준이었는데 <26년>부터 반 년으로 벌어졌고, 이젠 1년에 한 작품 수준이다. 작년엔 아예 연재가 없었고.
이야기를 쓰는데 들어가는 공이 점점 커지는 탓이다. 사실 <26년> 이전 작품들을 연재할 때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그만큼 공을 들였을 거다. 하지만 그땐 연재를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니까 차기 연재를 빠르게 가져가야 했다. 지금은 그때보단 여유가 생겨서 작품을 다듬을 시간이 생겼지. 그런데 1년 넘게 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란?
집요한 거 봐라. 훌륭한 기자일세(웃음).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사전 작업 기간이 늘어났다는 건 작품에 대한 욕심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독자들이 남기는 댓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지루해졌다는 댓글이 몇 백 개 달리면 뒤에 있는 클라이맥스를 앞으로 끌어오고 싶어진다. 실제로 그런 짓을 하다 구조가 어그러져서 작품을 말아먹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니까 연재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나를 믿고 이야기를 밀고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만화가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 아니니까 이야기까지 밀리면 안 된다. 이야기가 내 무기라 생각하니 그에 들이는 공이 커지는 거다. 대사 하나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을 때 연재에 들어간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진 않나 보다.
몇 년 전만 해도 콤플렉스였다. 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릴까. 처음 일상툰 형식의 <일쌍다반사>를 연재할 땐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막대한 분량의 장편 서사 만화를 소화하면서 손이 느리고, 마음 먹은 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답답하더라. 그런데 그림과 만화는 다른 영역이란 걸 알게 됐다. 일러스트로 봤을 때 내 그림이 약한 건 사실인데 나는 만화는 잘 그린다. 내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콤플렉스가 없어졌다.
이야기가 자신의 무기라고 했는데 보다 정확하게는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품게 만드는 덕분에 캐릭터의 행위가 독자들의 지지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작품이 지루해지는 거다. 캐릭터 소개가 굉장히 길잖아. <무빙>도 6화까지 왔는데 아직 캐릭터 소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진행된 사건이랄 게 거의 없잖아. 하지만 이 과정이 내 작품의 궁극적인 재미를 보장한다. 이야기의 성패는 독자들이 주인공을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가에 달려있다. 독자들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활자로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캐릭터라고 소개하는 것보단 우유부단해 보이는 사연과 소극적으로 보이는 사연을 하나씩 보여주는 게 맞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공감대를 열어주거든. 캐릭터를 최대한 설명하고 이해시킨 뒤엔 이야기에 힘이 붙는다. 결국 이야기가 완결됐을 때를 보고 가야 된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이야기를 준비해서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두 커플 이상의 중심인물이 등장해서 얽히고 설키며 이야기가 굴러간다.
<프렌즈>란 시트콤을 좋아하는데 거기 여섯 인물이 등장하잖아. 40분 남짓한 시트콤에서 두 커플씩 엮어서 세 가지 사건을 진행한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내 작품에 다양한 커플이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이다. 미비한 존재들이 협력해서 거대한 선을 이루는 이야기가 좋다.
전작들과 달리 <무빙>은 봉석이와 희수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되는 인상이다.
후반부에 봉석이네 부모님과 희수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다. 그러니까 결국 세 커플의 이야기가 되겠지. 전후반을 책임지는 캐릭터를 나눈 건 처음이라 지루한 감도 있는 거 같다.
죽음을 주요한 감정적 매개로 활용하는 작품이 많다. 죽음에 예민한 사람이 아닐까 궁금했다.
김중혁 소설가도 비슷한 질문을 하더라. 조금 없어 보이는 대답인데, 이야기를 쓰다가 꽉 막힐 땐 의미 있는 인물 하나를 죽이면 뚫린다(웃음). 주변 인물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고 노력하면서 이야기가 살아나거든.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거 같다.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셔서 가끔씩 돌아가신 신도의 장례식장을 따라가는 일이 종종 생겼거든. 그땐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들어서 알았지. 긴긴밤을 보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죽음만큼 극단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것도 없지만 사람은 결국 자기 삶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고립의 정서가 느껴진다. 물리적인 고립이든, 정서적인 고립이든 결국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데 그 외로움에 귀 기울여 주거나 손을 내미는 이들의 존재의 등장을 통해 짠하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자아내는 방식이 일관되게 이어진다.
내 만화엔 유난히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잖아. 일찍이 가난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지. 그래서 좀 외롭기도 했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진 신나게 놀았던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리를 두게 됐다. 희한하게 애들이 고2때부터 돈을 가지고 놀더라. 친구 집에서 모이거나 농구를 하는 게 아니라 커피숍이나 피자집, 콜라텍에서. 그런데 나는 용돈도 없고, 버스 회수권만 들고 다녔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거든. 그러니까 불편해지더라.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잖아. 그러니까 점점 내가 애들을 밀어내더라. 친구끼리 어떠냐고 할 수도 있고, 그 마음도 알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상황의 외로움을 알 수 없다. 나를 배려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더라. 게다가 그땐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기도 했고. 그래도 학교에선 애들이랑 잘 어울렸다. 그리고 방과 후엔 혼자 도서관에 갔지.
놀 수 없으니 공부를 한 건가?
중2때부터 도서관에서 책 읽는 재미를 알았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다. 그리고 야한 이야기를 좋아했다(웃음). <여명의 눈동자>를 김성종 작가의 원작으로 읽어보면 엄청 야하다. 여옥이가 장난 아냐(웃음)! 그리고 추리소설 중엔 여자가 벌거벗고 죽은 채로 시작되는 게 많다. 대중적인 추리소설이나 통속소설을 좋아했는데 야한 재미로 무협소설을 보다가 김용의 <영웅문>을 읽고 감명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역사소설로 넘어가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고 감탄했다. 그렇게 도서관 책장 하나를 다 읽었다고 뿌듯해했으니까 얼마나 공부를 안 했겠어?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때 내가 엄청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을 거다(웃음).
그래도 작가로 살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의 복선 같은 시절이라 해도 좋겠다.
그런데 다독가라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말하기 부끄러워진다. 흔히 말하는 명작은 본 게 없으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제목만 들어도 멋있는 책 있잖아. 이상하게 한두 권짜리 책엔 흥미가 안 생겼다. 적어도 세 권 이상은 돼야 읽었지. 아무튼 참 외로운 시절이었는데 그런 환경에서 바르게 엇나갔던 거 같다.
항상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한다. 인간의 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착하다는 믿음이 있다. 악당조차도 길가의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면 달려가서 잡아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안 본다. 결국 내가 믿는 사람들과만 교류하다 보니 내 세계에 갇힌 셈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운 좋게도 착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온 덕분일지 모르고.
그런 믿음이 휴머니즘의 감동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으로 표백된 세계관을 보고 있다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잘 알겠지만 내 작품에서 악당은 둘 밖에 없었다. <26년>의 그 인간하고 <이웃사람>의 살인마. <26년>이야 원래 나쁜 놈을 반영한 거니까 그렇다 치면 <이웃사람>의 살인마가 내가 만든 유일한 악당인 셈이다. 사실 <이웃사람>의 시나리오엔 살인마의 외로움에 관한 2화 분량의 서사가 있었다. 그런데 연재 직전까지 의심이 거둘 수 없었다. 살인마에게도 사연을 부여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 걷어냈다. 정당성을 쥐어주면 안되겠더라. 그래서 알았다. 어떤 인물에 대해 이해하도록 만들면 그 사람을 결코 악당으로 여길 수 없다는 걸. 그러니 한 명씩 다 사연을 입혀주는 내 만화의 캐릭터들은 결코 악당이 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한때 고민하긴 했다. 내가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괜찮겠더라. 세상에 널린 게 만화인데 이런 만화가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착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일단 내가 재미를 느끼기 힘들 거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겠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외피를 씌우는 데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 뻥을 치고 싶은 이유가 거기 있다고 할까?
나는 지금 매너리즘과 스타일의 경계에 서있다고 본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재미있으면 그건 작가의 스타일이다. 재미가 없으면 매너리즘이고. 착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를 열한 편이나 했지만 앞으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러니 ‘강풀은 이제 뻔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재미있는 작품을 해야지. 그러니 매번 긴장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독자들이 무섭다. 독자들이 재미없다는데 이걸 내 스타일이라 우길 수는 없잖아. 우기면 비참재지는 일이고. 인터뷰도 그래서 잘 안하고 연재 후기도 안 남긴다. 작품을 독자에게 내보낼 때 이미 승부는 끝난 거다. 그러니 작가가 뒤늦게 자신의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일이 짚어주는 건 변명일 뿐이지.
사실 웹툰에 후기라는 포맷을 정착시키는데 일조한 장본인인데.
<순정만화>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사실 작화 과정을 공개하거나 연재를 끝낸 소감을 남기는 것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면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만큼 치열하게 연재하고, 끝나면 독자의 반응에 승복해야 한다. 본편보다 후기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면 이미 변명의 여지가 없이 실패한 작품이라는 거지.
가끔씩 작품에서 모든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솔직히 나도 이젠 <순정만화> 같은 건 오글거려서 못 본다. 그런데 가끔은 그렇게 해야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은 대사나 내레이션을 길게 썼다가 너무 설명하는 것 같아서 빼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걸 느낀다. 그렇게 해야 어린 애들은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좀 설명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은 확실히 초기작들에 비해 내레이션은 정말 많이 줄어든 거다.
심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인과를 펼쳐 보이는 내레이션은 다르다. 전자는 독자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 될 수 있는데 후자는 독자의 상상을 제한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가끔 상상을 제한해버린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상당히 많이 개입해버리는 편이긴 하지. 아무래도 그건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점점 작품보다 상품을 만들고 싶어진다. 말장난 같지만 걸작보단 명작을 만들고 싶다. 생각을 곱씹으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작품도 좋지만 많은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도 약간 헷갈린다. 내가 좀 더 덜어낼 수 있는 부분인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더 들어갈 때가 있으니까. <무빙>에서도 달리기 장면은 사실 한두 컷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그걸 열 컷 넘게 그렸다. 굳이 그렇게 개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 상황을 다 알아먹게 만들고 싶은 거다. 얘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걸. 결국 그 고생이 내 고생으로 연결되지만(웃음).
국문학과 출신인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을까?
없다. 소설가가 되기엔 문체가 떨어지고, 화가가 되기엔 그림체가 떨어지니까. 그런데 만화가 나를 구원했다. 두 능력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거기에 만화가 있는 거다. 그리고 만화라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나한테 맞는 거 같다.
0.5와 0.5였는데 둘을 더해서 1이 된 셈이랄까.
0.5을 0.7로 올려주면 안되나? 1이 아니라 1.4가 됐다고 하자(웃음).
작품 속 공간의 모티프가 되는 실제 공간을 치열하게 찾고 취재하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 공간에 가봐야 이야기가 잘 풀리기 때문이다. 내가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 가만히 앉아서도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 그래서 실제 공간을 많이 찾는다. 그러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무빙>의 배경이 되는 선사 고등학교엔 지금까지 스무 번 이상 갔다. 6화에 등장하는 달리기 장면 때문에 운동장에서 실제로 뛰어보기도 했다. 집착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선 가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공간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처럼 이야기가 풀릴 때가 많다.
인지도가 생겨서 취재 요청은 수월해지진 않았나?
아무튼 인지도라는 게 참 좋더라. 초창기만 해도 말도 못하게 퇴짜를 맞았는데 이젠 많이 수월해졌다. 내 만화를 보는 독자 연령층이 높다더라. 30대가 많대. 웹툰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부터 웹툰을 봤던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거다. 취재가 수월해진 건 인지도 덕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만화의 독자들도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됐기 때문인 거 같다.
아직 연재 초기인데 6화 마감 때 29시간 동안 철야를 했다고 들었다. 연재를 하다가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맨날, 회당 30번씩(웃음). 너무 힘들 땐 ‘다음’이 폭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웃음). 살짝 사고가 나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2~3주 안에 회복될 정도로 팔만 살짝(웃음).
그런 과정을 생각하면 연재 전부터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어떤 생활을 해야 되는지 안다는 거지. 매일 같이 18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살아야 된다는 거.
그만큼 연재를 완료했을 때의 쾌감도 상당하겠다.
<26년> 끝냈을 땐 진짜 울었다. 마지막으로 원고 송고를 위해 엔터키를 누르니까 눈물이 펑펑 나더라. 그땐 너무 힘들었거든.
최근 드라마 제안을 받았다던데.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깠어.
어떤 작품에 대한 제안이었나.
다 들어왔다. <미생>이 잘 돼서 그런 것 같다. 착각하는 거지. 그건 <미생>이니까 잘된 거거든. 가끔씩 콘텐츠 업자들의 얄팍함이 얄미울 때가 있다. 여러 번 영화화 과정을 지켜보니까 촉이 생겼거든. 이 사람들이 정말 작품을 만들려고 제안한 건지, 그저 판권을 확보하려고 이러는 건지, 다 보인다. 투자를 받으려고 판권만 확보하려는 회사도 많거든. 그래서 90% 이상 신뢰가 생기질 않으면 아예 계약하지 않는 게 내 신조다. 그래서 안 했지.
<조명가게> 시나리오는 탈고된 거 같던데.
그렇다는데 아직 못 봤다. 변영주 감독 말로는 원작에서 많이 바뀌었대. 맘대로 하라고 했지.
작품이 영화화됐을 때 감독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대신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거 같더라.
진짜! 대체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웃음). 항상 원작자로서의 소감을 물어보는데 아무래도 대답하기가 좀 그래. 말을 잘못하면 감독이 상처받을 거 아냐. 사실 모든 만족감을 충족해주는 작품은 드물었지만 원작자로선 항상 선물 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영화 현장에 가면 감동적이다. 나는 어시스턴트 서너 명과 작업하지만 영화 현장엔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잖아. 그런 광경이 멋있어. 게다가 원작자는 제작과정 처음부터 알게 되니까 그 과정의 고생을 아는 입장에선 냉정한 평가가 불가능하지. 그래서 항상 피해서 대답한다. 주관적으로 좋았습니다(웃음).
요즘 윤태호 작가는 단행본의 레이아웃에 맞춰 컷을 구성한 뒤 웹툰 형태로 떼어서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린다더라. 그래서 웹툰으로도, 단행본으로도 가독성이 좋다. 그런데 강풀 작가의 작품은 웹에서 볼 때보다 단행본의 가독성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태호 형의 작업 방식이 효율적이지. 컷으로 나눠서 재배치하는 거니까. 나는 출판 만화를 배운 게 아니라서 그런 기술이 없다. 그래서 책으로 볼 땐 가독성이 떨어지지. 그런데 나는 모니터나 액정으로 처음 보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다. 웹툰에서 자생한 탓인지 몰라도. 그래서 무조건 웹상에서 잘 보이도록 배경을 꽉 채운다.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그리는 거다. 성의 없는 그림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다. 못 그린 그림과 성의 없는 그림은 다르거든. 1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하니 보니 그런 것도 보인다.
포털사이트 중심이었던 웹툰의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다.
웹툰은 지금이 최고 절정기이고 여기서 더 커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웹툰을 보는 독자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시장이 너무 커진 감이 있다. 거품이 많이 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지만 언젠가 이 거품이 빠질 거다. 그때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길을 잃을까 걱정된다. 예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 시장이 팽창했다가 훅 꺼진 것처럼.
웹툰을 다른 컨텐츠로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도 이를 부채질하는 거 같다. 판권 계약만하고 영화화가 안 되는 웹툰도 많고
후배들이 영화 계약만 하면 다 영화가 되는 줄 아는데 내가 맨날 얘기한다. 웃기고 있네(웃음). 내가 여러 번 경험했잖아. 이름 있는 작가나 포털에서 상위권 작품이면 무조건 계약해서 판권을 확보하려 들지. 그러니까 신중하게 계약해야 된다.
강동구청에서 운영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주도했던데, 과정이 궁금하다.
강동구청에 강풀 만화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엔 거절했다. 민망하잖아(웃음). 그런데 문득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거야. 그래서 강풀 만화거리 만드는 거 수락할 테니 구청장님과 한 시간 독대권을 달라고 했지. 그 전에 강동구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을 만나서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구청장님을 만나서 설명했고, 그 아래 실무자들과 한 스무 번 정도 회의를 했지. 그래서 결국 진행이 결정됐고 구청에서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게 됐지. 그런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구민들 입장에선 세금을 왜 이렇게 쓰냐고 구청에 항의할 수 있잖아. 그래서 구청에 조건을 걸었지. 급식소 설치물과 1년치 사료를 내가 대겠다고.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을 텐데.
영화 <26년>이 흥행해서 개런티가 들어왔는데 절반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고 절반은 고양이 급식소 사업에 썼다. 급식소 50개를 설치하고 1년치 사료를 샀지. 왠지 <26년>으로 번 돈은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그리고 구청에서도 민원이 들어오면 기부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니 당당할 수 있잖아. 사실 구청에선 주민 중 절반만 반대해도 사업을 시행하는 게 힘들거든. 그러니 구청에서도 대단한 용기를 냈다고 생각해. 사료를 아예 구청에 보내주면 동회의가 있을 때 동장님들한테 배급하고, 알아서 배식하게 되는 거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원이지.
그 뒤로 1년이 지나지 않았나?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사실 이 아이디어는 캣맘들이 편하게 사료를 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사업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야. 1년간 잘 운영되면서 사료 회사에 기부 제안을 했어. 대신 내가 1년마다 홍보 만화를 그려주는 대가로. 사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나한테는 상당한 모험이었어. 고양이들이 1년간 안락하게 잘 먹다가 갑자기 폐지되면 죄책감에 시달릴 거 같았거든. 재작년엔 만화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게 그거였는데 정말 다행이지. 처음에는 하루에 10번씩 전화가 왔대. 고양이 잡아가라고. 그런데 요즘은 민원이 없대. 애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안 찢는 거야. 덕분에 고양이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의식이 바뀐 것 같아. 다행이지.
연재가 끝나면 뭘 할 건가?
애 낳고 나서 연재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집에 가고 싶어져서. 6화까진 그 일념으로 늦지 않고 제 시간에 업데이트를 했다. 집에 빨리 가려고(웃음). 가족들과 여행가고 싶다.
(ELLE KOREA APRIL 2015 NO.270 'ELLE 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