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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출생, 이를 지켜보는 소년. 산통 끝에 어미의 자궁으로부터 밀려나와 푸른 대지 위에서 버둥거리던 어린 말이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설 , 소년의 눈이 반짝인다. 영국의 아동문학가 마이클 모퍼고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 호스> 필의 말과 소년의 교감을 다룬 대서사시다. 가난한 소년 알버트(제레미 어바인) 자신이 눈여겨보던 말을 갖게 되고, 극진한 정성을 통해서 말을 길들이며 조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지만 가난과 전쟁으로 인해서 이별하게 말과 소년의 감동적인 교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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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마라톤 출전 선발전에서 1등을 한 조선인 준식(장동건)이 일본의 마라톤 유망주로 촉망 받던 하세가와(오다기리 조)를 제치고 결승 테이프를 끊는다. 하지만 1등으로 호명되는 건 하세가와였다. 분노한 조선인 관중들은 일본인과 뒤엉켜 싸우고 그 결과, 준식을 포함한 조선인들은 현장에서 체포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으로 징용된다. 그곳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준식은 새로운 부대장으로 임명된 하세가와를 마주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마라톤 금메달을 꿈꾸며 경쟁하던 준식과 하세가와의 인연이 전장에서 새로운 악연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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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단평

cinemania 2011. 12. 14. 11:05

<마이웨이>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독일군 포로로 잡힌 한국인에 관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된 소설을 영화화한 결과물이다. 눈길을 끄는 파편 하나를 중심에 두고 몸통을 그려 넣은 영화라는 말이다. 마라톤 금메달의 꿈을 품고 경쟁하던 일제 치하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터에 서게 되고, 결국 핏덩어리가 되어 뒹굴다가 몇 번에 걸쳐서 군복을 갈아입고, 노르망디 해안까지 다다르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태극기 휘날리며>로 전쟁신 촬영의 노하우를 익힌 강제규 감독의 야심을 담아내기 위해 마련된 그릇 같다. 전쟁영화의 스케일이 험난한 로드무비의 여정을 따라 전시되고, 끝내 두 남자의 멜로로 봉합된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우월한 전투신이 네 번 정도 마련되는데 저마다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다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것을 보고 있다는 감상 안에서 그 위력이 점차 무마된다. 그 간극마다 비극적인 시대성 안에서 탈이데올로기적 경험을 공유하는 두 남자의 멜로적인 우정, 페이소스를 자극하는 여정이 분명 효과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데, 그 물리적인 감정의 총합이 끝내 클라이맥스의 파고를 이루는 느낌은 아니다. 스펙터클의 풍경 안에 선 중심 캐릭터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합에서 구르는 탓에 좀처럼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스펙터클의 힘이 다할 무렵, 서사의 흥미도 예상 범위 안에서 딱 떨어진다. 거대한 스펙터클의 전시를 위해서 페이소스가 남발되는 양상이다. 150여 분에 다다르는 러닝타임을 이런 방식으로 견뎌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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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익혀도 과거에 응시할 수 없고, 무예를 익혀도 나라를 훔칠 수 없는 신분. 인조반정의 피바람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락한 자손으로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지만 시대는 그를 무기력하게 억누른다. 학문도 무예도 남이(박해일)에게는 덧없는 미망과 같다. 그래도 하나뿐인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아끼는 그에게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의 아들인 서군(김무열)이 결혼을 허락해달라 간청한다. 그리고 여동생의 결혼과 함께 먼 길을 떠나려던 그에게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밀려든 청의 대군 앞에서 성문은 손쉽게 열리고, 평화롭던 마을이 삽시간에 비극의 불길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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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단평

cinemania 2011. 7. 12. 01:40

<고지전>의 주제는 명확하다.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다. 그러니 살아남는 게 전쟁으로부터 이기는 거다. 전쟁이 승패가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거듭 환기시킨다. 물론 숱한 영화들이 해왔던 이야기다. 하지만 <고지전>은 사람 죽이는 전장의 비극을 넘어서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 알 길이 없는 전장에서 죽음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치들에 관한 분노와 서러움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의미심장하다. 땅따먹기에 열중하는 윗대가리들이 탁상공론에 열중하는 가운데 살기 위해서 죽이고 죽는 청년들의 모습은 단순히 전장이 아닌 이 사회에도 만연한 부조리 가운데 하나다. <고지전>은 전장을 통해서 이 땅의 부조리한 역사적 환기까지 나아가는 진보적인 전쟁영화다. 장훈은 확실히 스스로 물건임을 증명하고, 선배 배우들의 열연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신예 이제훈이 인상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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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방 안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는 그득한 불길함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현실로 박차고 나온다. 아내의 유산이 두 딸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는 것에 대한 의붓아버지의 분노는 학대적인 행위로 번진다. 그리고 폭력적인 그를 피하려던 소녀는 위기에 놓인 여동생을 보호하고자 총을 든다. 손가락 끝에 걸린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총구로 총알이 튕겨져 나온다. 하지만 의붓아버지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은 여동생을 관통한다. 여동생의 죽음과 함께 경찰에게 연행된 소녀는 의붓아버지의 동의 하에 정신병원에 인도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이비돌(에밀리 브라우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처참한 일상에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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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LA에서 벌어졌던 UFO대공습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는 <월드 인베이젼>은 보다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인디펜던스 데이>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사실적인 시가전 장면에서 발생하는 서스펜스가 쓸만한 수준을 자랑하는데 멀게는 <블랙 호크 다운>의 발전적 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조악한 캠버전 영상의 숏을 통해 현장감을 증폭시킨 <클로버필드> <디스트릭트 9>의 수법도 영리하게 동원됐다. 컷의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며 긴장감을 배속시키고 외계인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LA시가지의 재난 광경은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이루면서도 그 영토에 속한 이들의 공포를 영리하게 포착하며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딥 임팩트>도 아니고, 인류멸망의 이야기를 예상할 리 없는 관객들의 예감처럼 <월드 인베이젼>은 외계인의 대공세 속에서 무력화되다시피 하던 인류의 대반격을 그리는 SF전쟁영화다. 이렇게 빤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가 식상하지 않은 건 그 안에 놓인 캐릭터들의 드라마가 설득력 있는 감정을 자아내는 덕분이다. 구시대적인 팍스 아메리카나영웅주의의 잔상이 보인다고 손가락질 당할 수도 있겠으나 딱히 정색할 필요는 없겠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재난 속을 헤매는 사람들이 세계인을 표방할 필요도 없지 않나. 외계문명의 디자인은 마치 진화된 기계문명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때때로 초토화된 시가지의 모습은 <터미네이터>의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킨다. 한편으로는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 복수 버전 같기도 하고, 보다 상업적으로 다듬어진 <우주전쟁>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볼만하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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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으로 덮인 언덕 위로 상의가 벗겨진 곳곳에서 상흔이 발견되는 남자가 두 팔이 묶인 채 달리고 있다. 본래 그 남자는 용맹한 로마군의 백인대장이었다. 그의 두 다리가 박차고 밀어내는 땅은 로마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영국이다. 로마군은 영국 땅을 점령했지만 픽트족이라 불리는 현지 민족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며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로마 최강의 군단이라 불리던 제9군단은 그 저항을 누르려 하지만 픽트족은 결코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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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는 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행위의 근본적인 태반이다. 순수한 악의가 있듯 순수하다고 해서 선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모든 이의 믿음은 순수하다. 어린 아이가 순수한 얼굴로 당신의 머리에 망치를 내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순수한 본성에 어떤 믿음을 심어주느냐에 달린 것이다.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을 한 뒤에서야 그림을 되돌리기 어렵듯이 겹겹이 쌓이는 경험과 미장된 훈육으로 단단하게 건축된 인간의 믿음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뒤늦게 파괴적인 시도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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