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란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손쉽게 구분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들은 괴롭고 비루한 일상을 통해서도 이어지는 생을 그린다. 쉽게 꺾이지 않는 생의 가능성을 응시한다.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건 17세 무렵이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역선의 물류 창고에서 자고
바닥을 청소하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다른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남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대단했다. 어떤 모험심을 가진, 매우 어린 시절이었다. 수많은 이웃들을 소개해주는 친구가 생겼고, 끝내주는 경험을 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모임을 보면서 감탄했다. 탐험을
하는 내게 있어서 정말 쿨한 일이었다.” 직접적으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 <비우티풀>(2010)은 이
당시에 목격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양한 출신 성분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광경을 목격하고 체험했던 여정이야말로 그의 영화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이 세계의 너비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고향인 멕시코 시티를 배경으로 둔 이 영화는 각자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세 인물의 생을 세 개의 시점으로 나열하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의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찌든 때처럼
거리에 눌러 붙은 폭력성을 묘사하고 퍼즐 같은 서사 구조를 지닌 덕분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곤잘레스 이냐리투에게 폭력은 허구적인 소품이 아닌 현실의 언어였다. “나처럼 매일같이 거리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이 죽는 도시에서 산다면, 폭력과 죽음은 더 이상 재미있는 일이 아닐 거다. 폭력에는 그에 응당한 결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만약
당신이 폭력을 구사한다면, 그 폭력의 결과는 당신에게 돌아올 거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초기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2003), <바벨>(2006)은
서사적으로 유사한 형식성을 취하고 있다. 세 부류로 나뉜 개별적인 삶과 그 일상이 부득이한 이유로 타인의
삶과 충돌하고 끝내 이 세계를 에워싸는 사건으로 확장된다. 세 작품은 동일하게 서사를 파편처럼 나열하고
퍼즐 구조의 서사로 진전된다. 다중적인 시점을 통해 서사의 확대와 증축을 꾀하며 입체적 감상을 유도한다. 이처럼 유사한 서사적 형태를 지닌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우연과 필연을 통해 진전되는 관계의 층위와
현실적인 생의 너비를 체감하게 만드는 관성이다. 어느 개인의 경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이 세계라는 물리적 너비를 포괄할 수
있는 생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만든다.
<비우티풀>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라는 감독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중적인 시점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서사를 지닌 전작들과 달리 <비우티풀>은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정극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수미상관의 구조로 이뤄진 이 작품은 생과 죽음의 양면성을 유려한 슬픔과 환희로 승화시키며
시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감상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왜냐면 사실 <비우티풀>은
굉장히 참담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르셀로나의 빈민가에서 힘겹게 두 자식을
키워나가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둔 이 영화는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가는
이야기다. 가난과 고통 그리고 배신과 죽음이라는 어둡고 험난한 단어들로 점철된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말할 수 있는 건 죽음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생의 가치를 시적인 정서로 담아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말처럼, “<비우티풀>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영화다. 삶을 향한 찬가다.” 그
비극적인 생의 마감을 지켜보면서도 그토록 평화로운 감상을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생이 어떤 종착만은 아닐 것이란 믿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마치 영적인 기적을 목격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그 영화에 담겨있다.
사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는 하나 같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세계의 단면들을 수집해 오면서도 생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 마치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라고 외쳤던 니체의 격언처럼 그렇다. 다만 이 거대한 비극의 도가니 속으로 내몰리는 인간들의 군상이 어떤 구조 속에 놓여있는가를 통해서 이 삶을
비극으로 내모는 인과와 심리를 제시한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로부터 괴로운 심정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괴로운 서사의 끝에서 되레 감상적 치유를 길어 올릴 수 있는 건 결국
그의 영화가 서로의 통증을 분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이 세계에 대한 영적인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맨>(2014)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증언과도 같다.
대략 5년 전, 자신이 구상했던 어떤 이야기의 조연 캐릭터를 모티프로 개발된 <버드맨>은 한때 ’버드맨’이란 슈퍼히어로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어떤 배우의 재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버드맨>은 단순히 어떤 배우의 연기적 재기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다. 곤잘레스 이냐리투도 “솔직히 그런 주제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아가 우리를 끌어올려줄 수 있지만 순식간에 우리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에 힘을 내주고 휘둘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버드맨>은 한 퇴물 배우가 자신을
파괴하는 망상과 세간의 비웃음으로부터 삶을 회복해나가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은 때때로 우스꽝스럽다
못해 신랄한 블랙코미디 형태로 묘사되는데 이는 기존에 곤잘레스 이냐리투 영화와 이질적인 감상적 온도를 전달한다.
동시에 명배우들이 시종일관 장대비처럼 쏟아내는 대사량과 그 대사에 세찬 리듬감을 가미하는 드럼 솔로,
그리고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카메라 워크 등 전작들에 비해 보다 화려해진 테크닉들로 영화의 기교적인 밀도가 한층 높아진 인상이다.
무엇보다도 <버드맨>은 보기 드물게 유머러스하고 신랄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블랙코미디이지만 어느 생에 대한 경의를 품은, 그의 다섯 번째 찬가다. 어떠한 예측도 뛰어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타인들에 의해 손쉽게 실패라고 손가락질 받는 누군가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생의 철학으로 비상한다.
“내 영화들은 내 자신의 연장선이다. 일종의 내 생명과 직결된
경험의 증거들, 매우 드문 선행과 매우 많은 한계들과 함께.”비참한 삶의 형태 속에서도 결코 죽일 수 없는 생의 가능성.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건 결국 이 세계의 너머가 아닌 자기 자신과 우리 생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것이다.
<버드맨>의
결말에 대하여
아마도
<버드맨>을 보게 된다면 그 결말에 대해서 어떤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엠마 스톤의 ‘빅 아이즈’를
통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 결말은 원래 예정됐던 결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의 촬영이 중반에 다다랐을
즈음 그 결말이 정말 최악이라고 느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결국 각색가들과 함께 새로운 결말에 골몰했고,
결국 지금 형태의 결말을 완성했다. 그는 지금 형태의 결말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했고,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본래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낀다. “원래의 결말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을 거다. 매우 황당한 것이니까. 정말 나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결말
또한 황당하다고 느낄 관객은 존재할 거다. 이쯤 되면 어떤 결말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 보면 안다.
각본을 쓰고,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고, 편집도
한다. 그리고 불과 26세의 나이로 전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됐다. 자비에 돌란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최소한 높은 꿈을 꾼다면 바로 그 아래에라도 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진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배우이자 감독인 자비에
돌란은 만 19세의 나이로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를 연출했다. 이 작품은 칸국제영화제의 감독주간에
초청됐고, 신인감독상이라 일컬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이
이례적인 결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두 번째 연출작 <하트비트>(2010)와 세 번째 연출작 <로렌스 애니웨이>(2010)는 다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지난해에 공개된 <탐엣더팜>(2013)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탐엣더팜>은 연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한 남자가 아슬아슬한 폭로의 기로에 서며 겪게 되는 폭력성과 상실감으로부터 발전된 왜곡된 감정들을 그린 스릴러물이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보다 돋보이는, 보다 성숙해진 작가적인
역량을 드러낸 수작이다. 사실 종종 자비에 돌란에게 ‘스타일
과잉의 아류’라는 오명을 씌우는 비평가들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작품이 남기는 강렬한 인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낸다. 자비에 돌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비범한 스타일과 도발적인 메시지는 26세에 불과한 어린 감독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면서도 한편으론 그 나이에 걸맞은 도전적인 시도를 인정하게 만든다. 감각적인 영상과 적재적소에서 어울리는 음악으로 점철되는 <하트비트>와 <로렌스 애니웨이>의
공감각적인 묘미는 자비에 돌란을 스타일리시한 감독이라고 여겨지게 만들만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적인 제목의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가 어머니와의 의외로
순수한 울림을 지닌 성장드라마였던 것처럼 자비에 돌란의 영화들은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 자체로서의 힘을 지니고 있다. 지난 두 편의 전작 <하트비트>와 <로렌스 애니웨이>가
자비에 돌란의 감각을 총천연색으로 부각시킨 작품이었다면 <탐엣더팜>은 자비에 돌란이 지닌 무채색의 심연을 내보이는 작품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선 자비에 돌란의 신작 <마미>(2014)를
경쟁부문에 초청했다. <마미>는 역대 최연소 경쟁부문
출품작이다. 당신이 꼭 자비에 돌란에게 주목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당신도 잘 알듯이 누군가의 주목을 받는 데엔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비에 돌란도 마찬가지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린 나이에 배우로서 활동했다.
퀘벡의 TV쇼 프로덕션 매니저였던 이모는 아역 배우를 찾으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연기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치장하고, 노래하고, 춤추길 좋아했던 내가 이 일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 살에 연기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광고, 영화, TV 프로그램의 오디션에 참여했다.
그 당시가 기억날까?
세트가 신기했다. 그리고 촬영장 분위기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대여섯 살쯤에 촬영장에서 어른들의 욕이나 성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본능적으로 들어도 되는 것과 들어선 안될 것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촬영장을
경험한 건 잊을 수 없도록 엄청난 기억이었다. 열 살 땐 열여섯 살 정도가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직접 연기하는 것도, 연기를 지도하는 것도 모두 능숙해 보인다.
연기를 하면서 동시에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는 건 매우 어렵다. 나는 그들이 지닌 현재의 능력과 숨겨진 잠재력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지켜본다.
가끔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로렌스 애니웨이>를 찍을 땐 배우들의 작은 제스처를 확인했다. 직접적인 대사 대신 노래나 사소한 행위와 같은 디테일로도 장면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를 직접 편집하기
시작하면서 촬영 중에도 미리 결과를 그려낼 수 있게 됐다.
당신의 영화에서 주로 언급되는 건 스타일이다.
일단 캐릭터, 대사, 감정의
연결이 정말 중요하다. 이것들을 무시하면, 영화의 완성도가
흔들린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다. 스타일은 액세서리에
가깝다. 내가 미장센만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나는 스토리 위주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미장센을 같이 떠올린다. 그래서 내 영화에 대해서 스타일에만 치중한 분석을 보면 불쾌하다. 스타일리시한 시퀀스는 영화의 15% 정도인데 사람들은 그것만 기억하는
것 같다. 관객들은 때때로 더 중요한 것을 놓친다.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는 거라 생각하는지?
영화를 진지하게 본 건 16살 때부터였고, 18살에 처음 연출을 했다. 그 이후로 영화나 책은 볼 수 있는
만큼 많이 보고 있다. 특히 사진이나 그림에 대한 책이나 잡지를 보는 게 좋다. 뉴욕에 가면 항상 서점에 가는데 거의 파산할 정도로 책과 사진집, 화집을
산다. 이런 부분들이 내게 영향력을 끼치고 그렇게 형성된 분위기가 영화에 참고가 되는 것 같다. 때때로 영화는 잠재된 본능을 실현해주는 도구처럼 느껴진다.
데뷔작도 그렇고 당신의 영화는 부모님에
대해서 자주 말하곤 한다.
대중들은 때론 상어 떼와 같아서 영화를 던져주면 관대한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너덜너덜해지도록 물어뜯기도 한다. 결국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와 내 영화에
관해서도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관점이 생겨난다. 나는
세상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만 근본적으론 부모님께서 내 영화를 사랑해주실 때 정말 행복하다. 그럴 때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어린 나이가 주목을 끄는 면도 있다.
45세가 된다고 해서 영화를 만드는 재능이 생기는 건 아니다. 사람이 나아갈 방향을 나이가 결정해주진 못한다. 나는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엔 35세, 45세, 55세, 60세가
된 친구들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미 네 살 때 오럴 섹스를 알기도 했다. 아니, 여섯 살
때였던가(웃음)?
퀴어 영화의 영역에서 분석되기도 하는데.
<로렌스 애니웨이>로
퀴어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사실 나는 그 상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퀴어를 강조할수록 특정 집단의
영화라고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상”이나 “유대인상”은 없는데, 퀴어
상이 있다는 건 아주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나는 내 영화가 동성애를 그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예술가로서 내가 할 일은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당신의 영화가 무엇으로 남길 바라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팔짱을 끼고 연간 400편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다. 길을 걷던 나를 멈춰 세우고, “당신의
영화를 보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 영화를 보고 웃지도, 울지도 않는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다.
배우는 작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훌륭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이왕이면 훌륭한 작품을 선택하고 싶은 게 배우의 마음이다. 아니면 아예 스스로 만들어버리던가.
최근 국내에서도 배우 출신 감독들의 활동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꾸준히 단편 연출을 해오다 첫 장편 연출작 <마이 라띠마>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유지태와 최근 연출 데뷔작 촬영을 마친 하정우, 연출 데뷔작을 촬영 중인 박중훈 등이 그렇다. 일찍이 <오로라 공주>로 호평을 얻었고 <용의자 X>로 주목을 받았던 방은진이나 <요술>과 <복숭아나무>의 감독으로 화제를 모은 구혜선도 마찬가지다. 과연 한국에서도 배우 출신의 거장 감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왜 배우들은 감독을 꿈꾸는가? 이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영화는 감독이 꾸는 꿈이다. 물론 감독 혼자 꿈꾼다 하여 완성되는 것이 영화란 말은 아니다. 감독이 꿈꾸는 몽타주와 미장센에 숨을 불어넣고자 충실히 복무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존재할 때 그 꿈은 생명을 얻는다. 각각의 컷처럼 나뉜 스태프들의 재능을 하나의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출력이 바로 이런 재능이다. 감독의 할 일이란 그런 것이다. “어릴 때는 극 안에서 배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극의 청사진은 감독의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연출에 매력을 느꼈다.” 김지운 감독의 말이다.
스크린이 도화지라면 감독은 화가이고 배우는 붓이다. 배우는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여줘야 한다. 훌륭한 배우들은 자기 역할을 확실히 인식한다. 완벽하게 작품의 일부로서 투신하고, 때때로 작품의 빈틈마저 메워버린다. 작품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탁월하게 반응한다. 자신의 동선과 리액션을 물론이고 조명의 위치와 카메라의 움직임까지도 계산한다. 훌륭한 배우일수록 훌륭한 감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실제로 찰리 채플린부터 워렌 비티, 우디 앨런, 로버트 레드포드, 멜 깁슨 등, 훌륭한 배우가 훌륭한 감독으로 성장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런 명배우들이 감독의 자리를 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사실 배우 입장에선 자신보다 함량이 떨어지는 감독의 카메라 앞에 설 때만큼 곤욕스러운 일도 없을 거다. 그런 경우의 수가 늘어날수록 차라리 카메라 뒤에 서고 싶다는 욕망도 커질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있다. 80세가 넘은 지금도 작품 경력을 늘려나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젠 배우라기 보단 감독의 인장이 더욱 선명해 보인다. 그는 일찍이 웨스턴 무비의 아이콘이란 명예를 멍에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더 낡아서 그 권좌에서 나가떨어지기 전에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배우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였다.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감독들에 의해서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가 망가지는 꼴을 번번히 목격하게 된 그는 직접 제작사를 차리고 끝내 메가폰까지 잡았다. 그리고 히치콕을 연상시키는 스릴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0)와 함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사가 시작됐다.
한편 ‘제2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수식어를 얻은 벤 애플렉은 지난 2007년 스릴러 <가라, 아이야, 가라>로 감독 데뷔한 뒤 호평을 얻었고 주연까지 겸한 범죄물 <타운>(2010)을 통해서 호평뿐만 아니라 흥행까지 이끌어냈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둔 최근작 <아르고>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함으로써 대가의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말했다. “배우라는 커리어도 이어가고 싶다. 감독이란 연출 기회를 얻지 못하면 쉽게 잊혀지는 법이니까.” 한때 <굿 윌 헌팅>(1997)의 각본 작업을 하며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을 드러냈던 그에겐 졸작 액션 블록버스터에 연이어 출연하며 배우로서 바닥을 쳤던 시절이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어쩌면 벤 애플렉에게 감독으로서의 길은 스스로의 연기 경력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벤 애플렉이 <아르고>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그 뒤엔 조지 클루니가 서있었다. 그는 <아르고>의 제작자였다. 조지 클루니 역시 성공적인 배우 출신 감독이다. 폴리테이너로도 유명한 그답게도 근작인 <킹메이커>를 비롯해서 <굿 나잇 앤 굿럭> <컨페션> 등 시대적인 호흡이 돋보이는 정치적 소재의 작품들을 연출해왔고 좋은 평가를 얻어왔다. 결국 배우가 감독이 됐을 때 최고의 장점이란 최소한 자신보다 실력 없는 감독의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고, 배우로서의 경력을 확보할 기회 또한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명심할 건 성공적인 족적을 남긴 배우가 성공적인 족적을 남기는 감독으로 살아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사실. 물론 성공한 배우만이 꼭 성공한 감독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훌륭한 배우일수록 훌륭한 감독이 될 가능성이 보다 큰 건 사실이다. 산수를 잘하는 사람이 수학을 잘할 가능성이 보다 큰 것처럼.
미국에서 돌아온 감독 김지운이 드디어 한국에서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 그런데 제목부터 심상찮다. <사랑의 가위바위보>라니, 코오롱과 함께 하는 단편 프로젝트의 일환이라지만 두 눈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그를 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촬영 중간에 모니터를 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감독이더라. 피사체가 되는 기분은?
별로다(웃음). 사실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숨어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관음증의 속성이 있다. 그래서 거꾸로 객체가 돼버렸을 때의 당혹감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보듯이 나를 보겠구나, 싶은 어색함. 모니터를 보는 건 그저 감독으로서의 직업병이고(웃음).
연출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어릴 때 극 안에서 배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극의 청사진은 감독의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연출에 매력을 느꼈다.
배우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던데.
이번에 찍을 단편 <사랑의 가위바위보>(가제)에 관해서 말했다.
가제이지만 김지운의 영화 제목이 그렇다니 쇼킹하다(웃음).
2000년도 초반에 제작비 10만원을 받아서 영화를 찍는 ‘10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사랑의 가위바위보>가 그때 기획된 단편이었다. 남산에서 크랭크인하고자 모였는데 비가 억수 같이 왔다. 10만원 예산 영화의 날짜를 미룰 수 없으니 비가 오지 않는 경기도로 가서 <사랑의 힘>이란 단편을 찍었다. 문소리 주연에 카메오로 송강호도 나온다.
로맨스 장르는 처음인데.
그 동안 너무 남자 이야기만 해서 여자 중심의 영화를 찍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장편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마침 코오롱에서 단편 제의를 했고 묵혀둔 소재를 풀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실 로맨스물을 거의 보지 않은 편인데 내게 낯선 장르가 내 영화적 감수성이 충돌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사실 전면적으로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다는 건 모험이라서 이런 단편 작업은 점검의 동기가 된다. 브리지나 인큐베이팅의 역할도 되고.
도시, 자연, 사람이라는 테마에 자신의 개성을 녹여야 한다는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아직 흐릿한 상태지만, 아웃도어 룩이 도시적인 룩의 한 형태로 자리잡아간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도시도 자연의 큰 범주라고 본다면 아웃도어 룩을 입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담아낸다면 ‘Your Best Way to Nature’라는 코오롱의 슬로건과 내 주제가 자연스럽게 버무려질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연출작에서 공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계단의 이미지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 연인끼리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고 따라가는 과정엔 그 관계에 관한 상징성이 있다. 가위바위보라는 게임에 잠재된 승부욕이나 계단의 상승적인 이미지로 연상되는 실현욕구는 사랑과 유사한 감정이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방랑자처럼 보일 정도로.
항상 지금의 모순이나 괴로움에 대한 반대급부가 차기작에 대한 욕망으로 연결된다. <달콤한 인생>은 내면으로 침전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외향적인 영화가 떠올라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처럼 호쾌한 영화를 만들었다. 시각적인 스펙터클은 좋았지만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밀도가 빽빽한 <악마를 보았다>를 쥐어짜듯이 만들었다. 그런데 괴롭고 우울해서 B급 코드의 유머를 펼칠 수 있는 <라스트 스탠드>에 닿게 됐다. 내 안에 잠재된 호기심이나 벗어나고 싶거나 바꿔보고 싶은 욕망들이 결합되어 차기작에 반영되는 것 같다.
명확한 설계도를 그리고 작업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A부터 Z까지 딱 떨어지게 계획하면서 작업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통해서 점점 명확해진다. 배우가 들어오고, 의상이 들어오고, 공간이 생기고, 이야기가 점점 맞춰진다. 하루키의 말처럼 나는 프로그래머인 동시에 게이머인 셈이다. 어떤 결과를 프로그래밍하지만 게이머로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주제로 굳어가는 과정을 즐긴다.
아직 싱글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너무 바빴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나를 길게 봐야 되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한편으론 이 두 가지를 잘할 자신이 없고, 아직까진 자유로운 게 좋다. 그런데 <놈놈놈> 때 3개월 이상 외국에 나가야 되니까 짐을 싸는데 정말 혼자 싸기 싫어서 10시간 정도 짐을 싸다가 풀다가 반복했다. 와이프가 있다면 전화 한 통으로 필요한 걸 받을 수 있을 텐데 싶어서 그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했다(웃음). 이번에 뉴욕에서도 외롭더라.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1년 4개월씩 있으니까 외로워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더라. 한국에서의 외로움은 선택이었는데 외국에서의 외로움은 완전히 박탈인 거다(웃음). 한편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홍상수, 임상수, 이처럼 영화를 잘 만든다고 생각한 한국 감독들은 다 결혼했더라. 박찬욱 감독은 딸 얘기하고, 봉준호 감독은 아들 얘기, 류승완 감독은 분유 얘기하고(웃음). 난 사명감을 갖고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데, 일종의 사명감 같다. 어쩌면 가족에게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닐까. 일을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가족들에게서 벗어나는 거니까(웃음)
할리우드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초반엔 약간 현실성이 없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뿐만 아니라 흑인 배우 중에 몇 되지 않는 아카데미 수상자인 포레스트 휘태커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니까 되게 신기하더라(웃음). 처음엔 LA에서 미팅을 할 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사람이 어쩌다가 내 앞에 있지(웃음)? 게다가 자신이 직접 출연하고 싶다고 온 거라니.
이병헌에 관해 들은 바는 없나?
<지. 아이. 조 2> 촬영장에서 이병헌이 연기할 때 스태프들이 모니터에 모여서 구경한다더라. 브루스 윌리스가 나올 때도 그렇진 않다던데. 일단 뿌듯하다. 물론 내가 키운 배우는 아니지만(웃음), 나와 오래 작업한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니까. 심지어 <레드 2>에 나오는 명배우들도 다 이병헌을 좋아한다더라. 일하는 사람들은 일 잘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않나.
할리우드에서의 경험이 특별한 모티프가 되진 않을까?
할리우드에 대한 동경이나 욕망도 없었고 특별히 할리우드에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놈놈놈>과 <악마를 보았다>를 찍고 나니까 내게 영화 찍는 일이 즐겁지 않더라. 사실 <장화, 홍련>때부터 계속 제의가 왔었는데 새로운 공기가 필요했고 나를 다시 최악의 상태로 던져보자고 생각했다. 결국 <라스트 스탠드>는 가벼운 마음으로 했고, 그 목적은 할리우드 진출이라기 보단 한국에서 느꼈던 현장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차기작은 한국에서 할 건데, 할리우드에서도 <라스트 스탠드> 이후의 제안이 들어오곤 있다.
이건 단순한 영웅전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오늘날의 슈퍼히어로 무비들과 또 다른 전형이다. 혼돈과 절망을 건너 끝내 세상을 구원하는 배트맨의 여정은 여전히 당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장편 연출 데뷔작 <미행>(1998)은 단돈 6천불의 예산과 게릴라 슈팅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이는 미국 내 단 두 개의 상영관에서 개봉된 뒤 4만 8천여 불의 수익을 거뒀다. 최근 놀란이 지휘한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지극히 초라한 규모를 지닌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서다. <미행>의 파편적인 서사의 운용은 놀란을 세계적인 입지의 감독으로 승격시킨 <메멘토>(2000)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 의식은 <인셉션>(2010)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미행>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인셉션>의 코브와 동명인 또 다른 코브가 등장하는데 그는 도둑질이라는 행위가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어떤 의미로는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는 타인의 꿈에 침투해서 기억을 조작하고 개인의 삶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미행>의 도둑질이 곧 ‘인셉션’인 셈이다.
놀란이 죽어가던 <배트맨>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임명됐을 당시, 화두에 오른 건 문에 붙은 배트맨 로고가 등장하는 <미행>의 한 장면이었다. 그가 일찌감치 배트맨의 팬보이였다는 소문이 전파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배트맨에게 시행한 심폐소생술은 탁월했다. 팀 버튼이 연출한 <배트맨>(1989)이 할로윈의 코스튬 카니발이라면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2005)는 하이퍼리얼리즘의 테러를 주목하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팀 버튼의 그것이 철저하게 악몽 같은 코믹스의 세계관 안에서 복무하며 현실과 괴리된 존재들을 비추는 대신 놀란은 최대한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이 세계의 폭력 위를 누비는 영웅의 고단함을 추적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수트의 부품 하나하나의 근원과 기능까지 짚어나간다. 결과적으로 <배트맨 비긴즈>는 <다크 나이트>(2008)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위한 충실한 매뉴얼이다. 반도체의 단자들을 연결하듯 배트맨을 이루는 물리적, 정서적 인과관계에 크고 작은 디테일을 새겨 넣는 과정을 통해서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라는 이중적 자아가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장을 마련한다. 이는 단순히 놀란의 고집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인식이자 철저한 기준, 즉 그가 생각하는 영화적 가치를 대변한다. 스크린과 객석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고 일치시킴으로써 상영관을 벗어난 관객이 자신의 영화적 체험을 곱씹을 때, 영화 속 고담과 객석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일치시킴으로써 그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되고 이로서 완성된다.
<배트맨 비긴즈>가 놀란의 배트맨을 스크린에 세우는 작업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그 완성된 배트맨을 도구 삼아서 고담, 즉 이 세계의 곳곳을 비추고, 살피는 ‘놀란의 본격적인 시선’에 가깝다. 아이맥스 카메라까지 동원된, 전작에 비해서 광대해진 스케일은 <배트맨 비긴즈>에서 어루만진 디테일의 연결을 통해서 보다 손쉽게 확장된다. 물론 히스 레저의 목숨을 건 열연이 <다크 나이트>가 지닌 자질 이상의 성취를 더했다는 걸 간과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사회를 관통하는 시선과 영웅에 접근하는 방식은 주목할만하다. <다크 나이트>는 ‘이 사회의 대중이 진정한 영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인가?’라는 물음을 품었다. 고담을 유린하던 조커가 배트맨이 가면을 벗으면 자신도 자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시민들은 배트맨을 비난하고 자수를 촉구한다. 조커는 대중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 헤집는다. 이를 통해서 영웅을 끝내 궁지로 몰아넣는다.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 대단원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럼에도 이 사회에 영웅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다. <다크 나이트>에서 스스로 권위의 추락을 선택한 배트맨은 다시 한번 일어서서 고담을 구원할 흑기사가 된다. 배트맨에게 기생하듯 등을 맞댄 숙적 조커와 달리 베인은 철저하게 반체제의 선동가로서 배트맨을 마주보고 선다. 놀란은 말한다. “조커는 확실히 혼돈에 가까운 무정부주의자이자 사악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서 특별한 악당의 전형을 보여줬다. 내게 베인은 이 영화를 위한 밑천이었다. 이번 영화에선 새로운 무언가를 원했다.”조커가 고담을 흔드는 바람, 즉 혼돈 그 자체를 유희하는 악마였다면 베인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망의 화신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은 베인에게 뭇매를 맞고 나뒹굴던 배트맨이 끝내 허리가 꺾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광경에서 묘한 통증을 공유했을 것이다. 기댈 곳이 없다는 건 세상의 끝으로 몰린 절망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런 세상의 끝으로부터 되돌아오는 이야기다. 물론 이성적인 질서와 규범이 무법적인 폭력에 의해 와해되는 풍경을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만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역설적인 절망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비관적인 영화가 아니다. 배트맨이 구원한 고담에서 자라난 누군가는 정의로운 신념으로 영웅적인 채비를 차리고, 세계로 나아간다. 배트맨은 말한다. “모두가 영웅이야. 어린 아이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며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희망을 주는 남자도.” 배트맨의 탈을 쓴 브루스 웨인이 지키고자 했던 고담의 가치란, 이 세계의 정의란 그런 것이다. 결국 놀란은 이 세계를 좌우하는 건 배트맨도, 베인도 아닌, 객석의 개개인이라 말하고 있는 셈이다.
놀란의 영화는 항상 진실에 대한 물음을 품고 있다. 그 물음은 일종의 게임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진실을 마주하기까지의 고난과 목도했을 때의 충격을 중요하게 다룬다. <프레스티지>(2006)는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면일지도 모른다. 마술은 트릭이다. 눈속임이다. 진실을 알게 되면 시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훈련된 눈속임이 아니라 위장된 진실이라면? 최고의 마술을 꿈꾸던 두 마술사가 경쟁 끝에 도달하는 진실은 생각 이상으로 놀랍고 끔찍하다. <프레스티지>는 바로 놀란이 품은 진실게임이다. 놀란은 말한다. “자신만의 세계와 논리를 가진 영화들이 관객이 보는 이미지 이상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당신이 바라보는 영화적 세계가 스크린 너머의 허구일 때 우린 안전하지만 그것이 때때로 현실로 튕겨져 나올 때, 영화란 더없이 위험한 도구처럼 보인다. 최근 콜로라도 주의 소도시 오로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총기 사건도 영화의 잠재적 불안을 조커처럼 속삭이고 부추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이 세계를 망치지도, 구원하지도 않는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이다. 놀란이 전하는 진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우린 믿어야 한다. 당신이 지켜야 할 모든 가치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 스스로를.
(BOX)왜 아이맥스인가?
“아이맥스가 영화를 위한 최고의 포맷으로 발명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유다. 상업영화 최초의 사례였다. 심지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작의 두 배에 달하는 55분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 70mm 아이맥스 필름에 담긴 광대한 비주얼은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다. 하지만 놀란은 단순한 볼거리를 의식한 것이 아니다. “<인셉션>은 그 특이한 풍경을 포착하기보다 꿈의 리얼리티를 묘사하는 게 중요했기에 아이맥스 대신 핸드헬드 카메라의 현장감을 활용했다. 반면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아이맥스의 거대한 캔버스에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그 차이는 영화가 요구하는 방식에 의존한 결과였다.”놀란이 재발견한 아이맥스에 할리우드가 주목하고 있다.내년에 개봉될 <스타트렉: 더 비기닝 2>와 <헝거 게임: 캐칭 파이어>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됐으며 스티븐 스필버그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중이라니, 3D를 잇는 차세대 영화 플랫폼은 아이맥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우디 앨런과 함께 필름 뉴요커로 자리해온 마틴 스콜세지는 전세계 영화의 수호자다. 일흔에 다다른 나이에도 녹슬지 않는 열의와 애정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발굴한다. 언젠가 영화가 될 그 삶에 대하여.
“내 모든 삶은 영화와 종교에 머물러 있다. 어쩌겠나. 그뿐인걸.” 마틴 스콜세지의 유년시절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뉴욕 맨하튼 동부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스콜세지는 가톨릭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밀집한 그곳에서 언제나 죽음과 맞닿은 폭력을 목격하거나 내몰리며 자라났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란 스콜세지에게 일종의 동아줄이었다. 영화란 그 ‘비열한 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꿈이었고, 그는 그 꿈을 향해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할리우드의 6~70년대는 영화광들의 시대를 맞이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같은 흥행사들을 비롯해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등 작가주의적인 성향의 감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영화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영화학과 출신 세대들, 즉 아카데믹한 씨네필들이자 테크니션이었다.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스콜세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단편을 감독하며 연출자로서의 경력에 시동을 걸던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문 출신의 고백적인 작품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스콜세지의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는 여성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카톨릭계 이탈리아 이민자 청년의 잠재적 폭력과 이중적인 심리를 다룬 문제적 수작이다. 스콜세지에게는 시대적인 공기를 파악하고 현상의 근원을 살피는 능력이 있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강압적인 불평등 처우로 가난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무법자가 되어 벌이는 사건을 그린 <공황시대>(1972)를 비롯해서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좋은 친구들>(1990) <카지노>(1995)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2002)까지, 뉴욕의 이민자 출신 갱단들과 남루한 뒷골목 소시민들을 비춘 스콜세지의 카메라는 가난과 차별이라는 담보로 상환한 비극적 폭력성을 담아냈다. 무엇보다도 스콜세지는 그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나가기 위해서 폭력 그 자체를 유전자에 새긴 듯 살아가는 비열한 갱단들의 이미지를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포착한다. 그 특별한 방식의 삶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나가는 이 세계의 일부로서 편입시킨다.
스콜세지는 이주민들로 채워진 뉴욕에 깃든 폭력의 역사를 탐구해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뉴욕이라는 도시의 이면들을 발췌해온 진정한 필름 뉴요커다. 1920년대 뉴욕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그린 은밀한 삼각관계에 관한 <순수의 시대>(1993)는 시대극이란 점에서 이례적이나 유럽과 같은 뉴욕 사교계 문화의 풍경을 들춘다는 점에서 그답다. 무엇보다도 뉴욕 상류층의 향락을 살핀 이 작품은 미국의 근간을 이룬 그들 역시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의 이주민이란 사실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주요하다. 또한 스콜세지의 이례적인 작품 <특근>(1985)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불분명한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밀어붙인다.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끌려서 한밤중에 집을 나선 한 남자가 처음 마주한 뉴욕의 이방인 같은 여성들과 거듭 만나며 미궁과 같은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좀처럼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만큼 혼란한 도시의 현실 그 자체를 패닉에 가까운 과장된 스토리텔링으로 녹여낸다.
<쿤둔>(1997)과 <비상근무>(1999)로 쇠퇴의 기미를 지적 받던 스콜세지는 다시 한번 폭력의 역사로 들어선다. 혹독한 뉴욕 이민자들의 역사를 그린 <갱스 오브 뉴욕>은 괴물의 탄생을 그린 영화다.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안착한 갱단들의 비열한 정서를 그린 스콜세지의 초기작과 달리 폭력 속에서 생존을 터득하고자 본능적으로 체득해 나가는 폭력성, 즉 폭력의 계승을 그린다. 미국의 미스터리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전기물 <애비에이터>(2004)는 뉴욕의 이주민들이 꿈꾸던 환상, 아메리칸 드림에 근접한 어느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진취적인 도전을 거듭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뛰어난 수완을 거둔 남자는 끝내 스스로의 욕망으로 자신마저 불사른다.
스콜세지에게 비로소 생애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긴 <디파티드>(2006)는 홍콩의 <무간도>(2002)를 보스턴의 풍경으로 변환한 그의 탁월한 접근 방식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비정한 정서가 짙게 드리운 <무간도>와 달리 비열한 거리의 물리적 폭력이 체감되는 <디파티드>는 명분을 중시하던 <무간도>의 인물들과 달리 사적인 지배욕으로 팽배한 사내들의 생존 전장으로 변환된다. 무간지옥의 윤회 대신 비열한 거리 위에서의 구원을 행하는 사내들의 정조는 태평양을 건넌 리메이크작의 진수를 드러낸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영화화한 <셔터 아일랜드>(2010)는 <케이프 피어>(1991) 이후 처음 연출한 장르물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치 생존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스콜세지의 괴물들이 끝내 분열증과 망상증으로 내몰려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되묻는 과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물의 태도는 폭력을 관찰해온 스콜세지가 보다 적극적인 답변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보다 새롭다.
스콜세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녹을 닦아온 거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첫 가족영화이자 3D로 촬영된 작품인 <휴고>(2011)는 분명 의외의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휴고>는 가족을 위한 영화도, 3D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한 영화도 아니다. 뤼미에르가 촬영한 달리는 기차 이후로 움직이는 그림으로서 관람의 대상이 된 영화에 스토리텔링이라는 영혼을 불어넣은 영화의 진정한 창시자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내용이 담긴 원작은 스콜세지의 마음을 당길만한 것이었다. 특히 뤼미에르의 달리는 기차 영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무성영화의 레퍼런스들을 3D로 체험한다는 건 진귀한 체험에 가깝다. <휴고>는 움직이는 그림이 영화라는 예술이 되기까지, 무성영화가 오늘날의 디지털 3D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역사를 스크린에 집약시킨다. 영화 그 자체를 오마주한다.
스콜세지는 말한다. “영화는 역사다. 영화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문화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각자 서로와 자기 자신을 향한 연결고리를 잃게 된다.” 70세에 이른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는 스콜세지는 전세계 필름의 발굴과 복원 사업에 힘쓰며 끊어진 필름의 역사를 이어나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 그 자체를 스크린에 투영하며 대중을 영화라는 마술로 인도하고자 한다. 결코 녹슬지 않는 감각과 애정으로, 영화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영화와 함께 하는 그 삶이 언젠가 영화가 될 것이다.
유려하다가도 몰아치게, 고요하면서도 가열차게, 조 라이트는 특유의 감각적 재능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고 초월한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공감각적인 여정, 조 라이트의 길을 돌아본다.
1972년 런던에서 조 라이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65세였다. 그는 아들이 19세가 되던 해에 숨을 거뒀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은 라이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버지는 꼭두각시 인형극 극단을 설립하고 극장을 운영했다. 그 극장에서 본 인형들의 연기는 살아있는 라이트의 삶을 흔들었다. 사실 소년 라이트는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펴고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 될 수 없었다. 소년에게는 난독증이 있었다. 그럴수록 소년은 슈퍼 8미리 카메라로 세상을 비추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결국 예술학교에 진학한 라이트는 미술과 영화를 전공한 예술대학에서 첫 연출작인 단편영화 <크로코다일 스냅>(1997)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서 주목을 얻기 시작한다. “나는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 혹은 배우가 될 수 없었다. 내가 감독이 된 건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것들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평범한 삶에 어울리는 법을 잘 알 수 없었던 대신 촬영장에 나가서 영화를 찍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행운을 얻고 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 말이다.” 여기서 라이트가 말하는 행운은 2000년 무렵에 시작됐다. TV미니시리즈로 연출 경력을 쌓으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2003년 BBC에서 방영된 4부작 시대극 <찰스 2세>로 영국 아카데미 2관왕에 오르며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오만과 편견>(2005)이 바로 그것이었다. 유려한 문체로 시대를 풍자한 당대의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있어서 그는 어떤 구상을 지니고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내게 각본이 보내지기까지 그 책을 본 적이 없었다.”놀랍게도 그는 잘 모르는 제인 오스틴을 필사하는 대신 각본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했다. 라이트는 대학시절의 수업에 대해서 이처럼 말했다. “매우 이론적이고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를 만들길 원하는 것뿐이다.” 그는 이론 수업에 의지하기 보다 방과후와 주말마다 극장에서 펼쳐지는 현역 배우들의 강습에 참여하며 경험과 감각에 의지하는 법을 깨우쳐 왔다. 원작에 비해서 자립적인 현대의 여성성이 강하게 투영되고, 보다 로맨틱한 감수성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오만과 편견>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런 자질 덕분이다. 특히 서정적인 음악과 고풍스러운 영상의 결합은 로맨틱한 기운을 한껏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는 결국 원작의 유명세보다도 라이트의 이름을 눈여겨보게 만들었다.
성공적인 필름 데뷔 이후, 그의 두 번째 행보는 다시 한번 유명 원작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의 영화화 작업은 제인 오스틴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일이었다. 교과서에 등장할만한 고전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과 달리 명성이 자자한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건 “나는 내 심리의 등에서 뛰어다니는 피해망상을 얻었다”고 할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심리를 압박하듯 일정한 속도로 반복되는 타자기 소리, 발자국처럼 찍히는 활자의 행렬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해낸 오프닝 시퀀스의 리듬감에서 출발하는 <어톤먼트>(2007)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융화시키는 라이트만의 공감각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어톤먼트>의 오스카 음악상 수상의 공은 일차적으로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게 돌려야 마땅하겠지만 음악과 영상을 능수능란하게 접목시킨 라이트의 재능도 간과할 수 없다. 서정적인 운율의 클래식한 넘버 위가 흐르는 가운데 투명하게 떨어져 분산되는 자연광은 파국적인 로맨스에 깃든 처연함을 더욱 애잔한 여운으로 밀어 보낸다.
과거 시제의 두 작품을 통해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라이트는 <솔로이스트>(2009)를 통해서 현대극에 도전한다. 실화에 기반한 이 작품은 정신적 질환으로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한 거리의 악사 나다니엘을 발견한 <LA타임즈>의 인기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가 관찰자로서 그를 찾아가다가 끝내 그와 교감을 이루고 서로의 치유를 돕는 과정을 기술한 칼럼에서 비롯된 기획이다. 단조처럼 우울한 삶 속에서 무기력과 피로감을 느끼는 탓에 쉼표 같은 삶을 찾던 스티브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착란에서 헤어나올 마침표가 필요한 나다니엘, 이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 <솔로이스트>는 영화와 실화의 협연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사실 라이트의 비범한 전작에 비해서 <솔로이스트>는 상대적으로 범작에 가깝다. 하지만 콘트라베이스의 현 위에 떨어진 몇 줄기의 빛을 포착해낸 감각적인 클로즈업 샷과 결을 따라 흐르는 듯한 현악기의 유리 같은 선율, 베토벤 관현악을 듣는 나다니엘의 심상을 빛의 파동으로 표현해낸 환상적인 컬러는 라이트만의 진수를 드러낸다.
마치 경력의 전후를 가르듯 라이트는 연이어 현대적인 작품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톤먼트>로 데뷔한 시얼샤 로넌을 타이틀 롤로 앞세운 <한나>(2011)는 그의 전력을 염두에 둔다면 분명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한나>는 그의 지난 작품들에 비해서 다른 문법을 지닌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한나>는 서사적인 개연성보다는 공간의 변화와 이동을 통해서 극을 전개하고 진전시키는 양상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무엇보다도 원작 소설도, 실화적 모티프도 없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완성한 라이트의 첫 영화라는 점에서도 새롭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선택한 건 라이트가 아니었다. 바로 캐스팅이 확정된 로넌의 추천을 통해서 라이트가 보다 늦게 합류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적인 판본의 잔혹동화라 해도 좋을 <한나>에서 라이트는 자신이 지닌 공감각을 폭발시키듯 분출해낸다. 특히 노이즈와 전자음에 어울리는 만화경 비주얼은 사이키델릭 그 자체다. 현대적인 판본의 잔혹동화라 해도 좋을 <한나>는 라이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악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깬다는 것, 이는 가능성의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는 보기 드물게 시대성을 초월하는 공감각적 재능을 지닌 연출가다. 그리고 라이트는 말한다.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그것이 내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주고 있음을 느낀다.” 운명과도 같았던 영화는 여전히 그에게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다. 그의 공감각적 여정은 그렇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잭 스나이더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에 섰다. 최근 주춤한 행보를 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한번 스스로를 증명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저녁은 지옥에서 먹자!’고 외치던 근육질 스파르타 전사들의 결전을 그린 <300>(2007)으로 할리우드 흥행감독 대열에 들어선 잭 스나이더는 아드레날린의 갑옷을 입은 스파르타 마초들의 액션과 반대편에 선 페티쉬적인 취향의 여전사들의 액션을 그려냈다. 시공간을 초월한 걸파이터들의 액션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지는 <써커 펀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카타르시스의 이미지로 그득한 판타지 액션물이다. 블루스크린을 등지고 세트로 축조된 테르모필레 협곡 사이에 진을 치며 페르시아 적군을 상대하던 <300>의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써커 펀치>의 여배우들 역시 병풍처럼 둘러쳐진 블루스크린 앞에서 가상의 적들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뛰고 굴렀다. <300>이 불끈거리는 비장함으로 무장한 근육질 전사들의 액션이 오르가슴과 같은 쾌감을 부르는 작품이라면 <써커 펀치>는 막대사탕처럼 가늘고 길다란 소녀들의 몸놀림이 쿨하게 전시되는 환각의 약물과도 같다.
<새벽의 저주>(2004)부터 <가디언의 전설>(2010)까지, 잭 스나이더는 이름난 원작들을 자신의 감각이 담긴 프리즘에 비추어 스크린에 새롭게 투사해내는 작업을 거듭해왔다. <써커 펀치>(2011)가 그의 경력 안에서 특별하게 읽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스나이더가 연출한 장편 영화 필모그래피 중에서 유일하게 원작이 없는, 온전히 그의 머리 속에서 잉태된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써커 펀치>는 그가 연출한 실사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R등급을 받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자신의 각본으로 연출한, 다시 말하자면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펼쳐진 작품이 가장 대중친화적인 수준의 이미지로 연출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사실 스나이더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발군의 감각을 자랑하던 영상가였다. 칸 국제광고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 받는 CF감독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그는 와이드스크린을 이용한 영화적인 촬영방식과 역동적인 스타일, 속도감 있는 편집술, 서사적 완결성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이런 그의 경력들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그의 영화들을 위한 예고편과 같았다. 죠지 A. 로메로의 전설적인 고전 호러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79)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는 그런 연출적 감각을 증명하는 신호탄이었다. 숨을 조이듯 천천히 다가오는 로메로의 좀비들과 달리 총구에서 튀어 나오는 탄환처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오는 스나이더의 좀비들은 단도직입적인 서스펜스와 압도적인 스릴을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사회정치적인 메타포를 품은 원작의 메타포를 완전히 휘발시키고 롤러코스터적인 긴장감으로 점철된 호러물을 완성해낸 스나이더의 둔갑술은 주목할만하다.
스나이더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장기를 드러낸 건 두 편의 그래픽노블을 통해서였다. 미국 그래픽노블의 대가로 꼽히는 프랭크 밀러와 알란 무어의 걸작을 각각 영화화한 <300>(2007)과 <왓치맨>(2009)은 비주얼리스트로서 스나이더가 지닌 차별적인 스타일을 증명하고 선전하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은 카메라 스피드 램핑 기법을 활용하며 액션 시퀀스의 속도감을 조절하며 감상의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고 과잉된 스타일로 시각적인 현혹을 부른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가 연출한 이 두 작품에는 보다 근본적인 공통적 특성이 잠재돼있다. 무채색에 가깝게 톤다운된 채도를 입은 <300>의 풍광은 이를 통해 극의 현실적인 감각을 희석시킨다. 이런 비사실적인 색채 감각은 오래된 기록 역사를 기초로 구축된 신화적인 무용담에 보다 환상적인 에픽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반대로 실제적인 냉전시대의 세계사를 기초로 허구적인 창작력을 접목시킨 <왓치맨>은 대비적인 명암을 통해서 보다 과장된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대비적인 명암의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이는 사실적인 세계관을 밑그림 삼아 우울한 자조와 진보적인 관점을 채색한 픽션의 진지한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스나이더가 두 원작의 스타일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변이었다. 다만 알란 무어의 그것은 일반적인 코스튬 히어로들의 활약 대신 암담한 냉전시대의 분위기와 핵전쟁의 잠재적 공포를 절망적으로 투영해낸 결과물이었다. 스나이더는 이런 원작의 성향을 단순화시키기 보다 그 복잡한 시대적 메타포들을 보다 무게감 있게 완성하는데 주력했다. <왓치맨>에 드리운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를 필두로 전세계에 불어 닥친 3D영화 열풍 이후에 제작된 <가디언의 전설>은 그 유행의 열차에 올라탄 어떤 승객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3D입체에 기대어 롤러코스터적인 체험을 부여하는 작품의 수준에 멈추지 않았다. 판타지 장르 문학에 깃든 신비를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로 구현한 이 작품에서 3D영상의 입체감은 그 영상미를 돋보이게 만드는 수식의 장치로서 탁월하게 기능한다. 무엇보다도 육박전과 공중전이 난무하는 올빼미들의 전투는 <300>의 전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스나이더는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신의 인장을 확실하게 새겨 넣었다.
지금껏 스나이더의 작업 대부분은 어느 작가들이 상상력을 통해 그려낸 허구의 존재들을 스크린에 소환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써커 펀치>는 평단의 비아냥과 참담한 스코어를 봤을 때 그에게 있어서 최대의 재앙이었다. 과연 <써커 펀치>는 스나이더의 실패작인 것일까? 사실 <써커 펀치>는 <인셉션>(2010)과 비슷한 부류의 작품이다. ‘인셉션’과 ‘킥’을 반복하며 꿈의 층위적 구조를 설계하고 그 층마다 종류가 다른 액션 시퀀스들을 채워 넣는 <인셉션>의 전략과 같이 <써커 펀치> 역시 무의식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 파편적인 액션의 유희를 채워 넣는다. 다만 <써커 펀치>는 <인셉션>과 같은 논리적인 장치들로 관객을 설득시키지 않는다. 이는 서사적 실패라기 보단 고의적인 도발처럼 보인다. 어쩌면 <써커 펀치>는 스나이더의 세계관을 이루는 자질들이 총동원되어 나뒹구는 비주얼의 전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놀란 형제의 무한한 신뢰 속에서 <슈퍼맨>의 새로운 시리즈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작업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이 모이는 건 여전히 그의 재능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그러니 이제 다시 새로운 영광을 준비할 때다.
마치 내친 김에 달린다는 말처럼 박훈정은 시나리오 작가에서 연출자로 성큼 올라섰다. 김지운이 연출한 문제작 <악마를 보았다>와 현재 제작 중인 류승완의 차기작 <부당거래>의 원작자로서 유명세를 탄 박훈정의 <혈투>는 단순히 그 유명세의 상승곡선에 올라탄 기획이 아니다.
원래부터 제목이 <혈투>였나? 가제는 없었나?
원래 <북극의 변>이라는 가제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직관적인 제목으로 바꿔보자고 하더라. 결국 제작사에서 <혈투>가 어떠냐 하길래 나쁘지 않아서 그렇게 갔다.
시대극이지만 시대적 재현이 많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시대극으로서 고증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텐데.
글을 쓸 때는 필연적으로 자료조사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지만 촬영에서 고증이 요구되는 건 비주얼 때문이다. 복장부터 시작해서 객잔의 건축양식도 확인했다. 엄밀히 따지면 역사적인 고증과 틀린 부분들이 없진 않다. 의도한 부분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면서도 우리 미술팀에게 강조한 건 의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딱히 고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혈투>에서 나오는 객잔이란 공간의 위치가 만주로 설정됐지만 어떤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 무시하고 영화적 느낌을 살리기 위한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준다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광활한 곳에 놓인 버려진 공간처럼 느껴지길 원했다. 결론적으로 객잔이 세 인물의 무덤처럼 보였으면 좋겠더라. 역사적인 배경에 기대서 갈 뿐, 보이는 것까지 다 정확해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광해군 11년이라는 시대상이 명시되지만 병자호란 이후 북벌론이 대두되던 시대상을 반영한 팩션영화라고 해도 상관이 없겠더라. <혈투>에서의 시대적 배경은 세 인물의 갈등을 야기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처럼 보였다.
의도했던 바다.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시키는 게 아니라 단지 영화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정확하게 광해군 11년을 적시한 건 이야기의 설정과 가장 가까운 배경이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다. 광해군 7년 즈음에 대북과 소북의 대립으로 옥사사건도 일어났고, 이로 인해 집권층이 바뀌지 않았나. 광해군 11년에 명의 강압으로 인한 출병 사실도 있었으니 이 이야기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으로서 적합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배경 안에 놓인 세 인물의 사연이었다.
도입부와 결말부를 제외하면 객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영화의 8할이다. 한정된 공간이란 점에서 묘사의 한계가 발생하는 셈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저예산 사극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저예산으로 가려면 한정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적합하다. 문제는 이게 상업영화로 기획되니까 방금 지적한 것처럼 공간의 한계가 약점이 될 수 있겠더라. 한 공간만 비춰지면 관객들이 지루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공간을 바꿀 수는 없지 않나. 그건 <혈투>가 아닌 다른 영화겠지. (웃음) 결국 공간활용에 있어서 고민이 많아졌다.
대안은 어디서 찾았나?
다양한 해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비주얼을 구상했다. 어떻게든 그 한정된 공간에서 긴장감과 재미를 뽑아내고자 했다. 영화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이 됐을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는 조선도 있고, 명도 있고, 청도 있고, 심지어 벌판도 있다. 세 사람의 관계도 그 공간 안에 표현돼 있다. 세 사람의 자리를 보면 도영은 객잔 안쪽의 객실을 등진 채 앉아있고 헌명은 문과 창문 쪽에 앉아 있다. 그리고 두수가 앉아 있는 곳은 깊은 안쪽이다. 헌명은 어떻게든 객잔에서 나가서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라 문과 가깝게 자리하면서 자주 밖에 나가본다. 하지만 도영은 어차피 갈 곳도 없고 객잔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두수는 어느 쪽이나 붙을 수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장치적인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니까 사람들이 거기까진 신경 쓰지 않겠구나 싶더라. (웃음)
액션도 하나의 주요한 볼거리다. 하지만 어둡고 한정된 공간에서 액션이 촬영된다는 점도 하나의 과제였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봤으니 알겠지만 <혈투>에서 필요한 건 화려한 액션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럴싸했던 액션이 점점 찌질해진다. 머리 잡아당기고, 귀나 손 물어뜯고, 그런 싸움에서 비주얼은 필요가 없지. (웃음) 막판에 어두운 아래층에서 싸울 즈음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극까지 치닫지 않나. 나는 거기서 액션보단 사람의 감정이 주는 느낌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관객들이 화면을 통해서가 아닌 눈 앞에서 보는 느낌의 싸움을 묘사해야 한다고 느꼈다. 덕분에 촬영팀이 고생했지. 배우들이 연기하는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찍었으니까. (웃음) 조명의 조절도 중요했다. 처음에서 마지막 싸움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데 이는 공간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객잔에서, 객잔 지하로 들어가니까. 어차피 세 인물은 만주에 죽으라고 보내졌고, 만주 벌판은 거대한 관이다. 그 관에서 살겠다고 도망쳐서 객잔을 발견했지만 그 객잔에서 셋이 맞닥뜨렸을 때 그곳은 다시 보다 작은 관이 된다. 결국 지하에서 남은 두 사람이 부딪힐 때 그곳은 더 작은 관이 된다. 액션은 그런 공간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동선의 수단과도 같았다.
갈등의 축은 헌명과 도영이고, 두수는 그 갈등에 끼어드는 중간자다. 그런 의미에서 두수는 정말 중요한 인물이면서도 소모적으로 그려질 가능성도 있는 인물이다.
<혈투>는 세 인물의 밸런스가 깨지면 끝나는 영화다. 두수는 도영과 헌명의 확실한 대립 구도에 끼어드는 만큼 잘못하면 불필요한 인물처럼 보이거나 헌명과 도영의 균형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었다. 반면 도영과 헌명의 방향추 역할을 하거나 관계의 돌발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두수는 엄밀히 말하면 헌명과 도영이 속한 지배층 집단의 피해자다. 두수가 직접 말하는 것처럼 여기서 이 꼬락서니로 죽어가야 하는 이유는 결국 얘네 탓인 거다. 두수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므로 가장 중요한 건 생존과 귀향이다. 그런 부분에 집중하고자 했다. 동시에 두 사람의 긴장감으로 채워진 이야기에 약간의 위트를 가미하며 조금 숨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이다.
두수가 관객으로부터 가장 큰 연민을 얻을 것 같다.
덕분에 제작할 때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결말을) 바꾸면 안될까요?” (웃음) 사실 두수가 최고의 피해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적인 설정이기 전에 진짜 그런 상황 속에서 그것이 바로 두수의 현실인 셈이다. 그걸 뒤집으면 판타지가 되는 거고.
결국 계급적 갈등이 <혈투>의 본체인 것 같다.
계급투쟁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헌명, 도영이 지배층이라면 두수는 피지배층이다. 그리고 지배층 가운데서도 권력을 쥐고 있는 쪽과 권력을 쥐지 못한 쪽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눌 때, 헌명은 비주류다. 결국 주류였던 친구의 가문을 팔아서 새롭게 주류가 되는 쪽에 붙어보려 하는데 그쪽에서도 사실상 얘를 자기 식구라고 생각해준 적이 한번도 없는 거다. 사실 헌명은 자신에게 파병 가라고 할 때부터 인지했을 거다. 다녀 오면 자신에게 예조 자리를 봐주겠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예조 자리란 굉장한 노른자 자리인 탓에 예조정랑 자리를 놓고 권력을 쥔 자들이 치열하게 다투던 판인데 그 자리에 넣어주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꾀는 말인 거지. 헌명 정도 머리를 지닌 애라면 분명 자신이 팽 당한다고 느낄만한 사안이었을 거고. 다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후에 도영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확인을 받게 되니 폭주하게 되는 셈이다.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친구도 팔았는데 결국 다시 그 지경이니까. <혈투>를 보고 나서 이런 부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길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갈등을 직접 연기하는 배우들이 중요했을 것 같다. 배우들이 의도대로 그런 갈등들을 잘 연기해준 것 같나.
결과적으로 배우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솔직히 첫 촬영 때는 조금 당황했다. 왜냐면 지금까지 내가 써오고 그려왔던 게 있으니까. 하지만 연기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잡아온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더라.
그 첫 촬영에서 낯설었던 그 배우는 누구였을까. (웃음)
진구였다. (웃음) 크랭크인 이후 첫 신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점점 그 모습에 적응해가니까 되레 그것이 진구라는 배우에 어울리는 도영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촬영이 진행되면서 도영이라는 캐릭터를 수시로 손보게 됐다. 고창석 선배도 초반에는 너무 연극적이다 싶어서 고민을 했었는데 금방 도영이나 헌명의 분위기에 맞춰나가더라. 덕분에 지금도 어쩌면 이렇게 캐스팅이 잘 됐을까 생각한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진구가 도영 역에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에 진구 씨를 만날 때 배역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도영 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도영은 영화상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내뱉는 진폭이 가장 큰 역할이기에 젊어 보이는 친구지만 기본적으로 연기가 되는 배우이길 바랬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걸 염두에 두고 만났지만 배역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미팅이 끝나고 나가면서 진구 씨가 이런 말을 하더라. “저는 두수 역할도 좋습니다.” 그 순간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졌다. 물론 결과는 예정대로 갔지만.
헌명은 가장 입체적인 감정을 품은 인물이다. 그 감정을 잘 살리는 것이 <혈투>라는 영화의 성패나 다름없었을 거다.
이야기의 단초 자체가 헌명으로부터 출발하니까 중요할 수 밖에 없었지. 사실 헌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깊은 인물로 그려졌다. 덕분에 영화도 깊어진 것 같고. 사실 헌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걱정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봐도 알겠지만 헌명은 이미 다 드러난 인물이다. 그래서 전형적이고 단순하게 보여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희순 선배가 역시 잘하더라. (웃음) 헌명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했고, 이게 표현이 안되면 영화 자체가 애매해지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의문을 남기게 될 거라 걱정했다. 하지만 희순 선배가 연기하면서 되레 누가 봐도 헌명이 짠하게 느껴지도록 완성됐다. 사실 헌명을 하고 싶어하는 배우가 좀 있었는데 나는 희순 선배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잘 해주시더라. 하지만 희순 선배는 고생이 많았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안되니까 자꾸 누르고, 누르고, 그러니까 너무 힘들었을 거다. 그렇게 감정 잡기도 힘든데 액션은 개싸움이고, 또 눈에 피를 떡칠하고 다니니까 눈도 아프고, 나중에 그러더라. “이 영화는 액션도 힘들고! 액션 안 해도 힘들어!” (웃음) 내가 봐도 고생이 많았다.
이 영화의 일등공신이다. (웃음)
늘 우리 스태프들이나 배우들과 함께 있으면 하는 얘기지만 시나리오보다 콘티가 잘 나왔고, 콘티보다 영화가 훨씬 잘 나왔다. 배우들이 굉장히 큰 몫을 해준 덕분이다. 물론 촬영을 비롯한 나머지 부분도 다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준 만큼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거나 반대로 살을 붙인 부분은 없나.
애초에 약간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생각했었지만 조금 저예산영화 같은 느낌이 강해져서 그 요소를 걷어냈다. 그리고 걷어낸 부분에 살을 붙였지. 원래 서현이라는 캐릭터는 없었다. 원안에서는 철저하게 남자들만 나왔지. 제작사에서 디벨롭(develop)하면서 헌명이 지닌 신분상승과 출세의 욕망에 그 나이대 남자들의 욕망 중 하나인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포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부분이 포함되면서 헌명이라는 인물의 갈망이 더 살아났다고 본다.
촬영과정 중에는 그런 부분이 없었나?
현장에서 고친 건 없다. 거의 시나리오와 콘티대로 찍었다. 배우들이 직접 대사를 해보니까 입에 안 붙거나 씹혀서, 혹은 어떤 상황에서 맞지 않는 톤이란 판단이 들었을 때 즉석에서 대사를 고친 건 있지만 그 외에는 고쳐진 부분이 없다. 이건 우리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바인데 스태프들이 대본과 콘티를 보고 많은 준비를 해줬다. 적어도 준비가 안됐거나 뭔가 좋지 않아서 뜻하지 않게 고쳐야 했던 부분은 없었으니까. 물론 연출을 하다가 ‘이걸로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갔다가 나중에 톤이 튀어버린다거나 그러면 뒷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제대로 갔다. 촬영 전에 이 날 이 신을 찍겠다고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약속했는데 그걸 현장에서 필이 왔다고 바꿔버리는 건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짓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연출에 대한 감이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약속은 어지간하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입봉작이다 보니까 그런 바도 없진 않겠지. (웃음)
원래 연출을 희망했었나?
영화를 꿈꾸는 누구나 그렇듯 연출을 희망했다. 하지만 감독이 된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지 않나. 나는 심지어 전공이 그쪽도 아니었고. 우리 때만 해도 전문적으로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드물었다. 동숭아트센터 지하에 있는 ‘키노’라는 서점에서 시나리오 전집을 팔았는데 그걸 사서 보기도 했지. 결국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막연하게 언젠가 연출을 하자는 뜻을 품고 일단 시나리오 작가로 자리잡은 뒤 돈이나 많이 벌자 생각했다. 어이없는 생각이지. 돈 벌려면 다른 걸 했어야지. (웃음)
영화를 전공해볼 생각은 없었나?
중학교 때까지는 만화가가 꿈이었다. 만화를 곧잘 그렸지.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이 늘지 않아서 만화는 아닌가 보다 싶었고 다른 걸 생각했다. 내가 영화나 소설을 보고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말을 고쳐 쓰길 좋아했다. 그리고 사진이나 음악도 좋아했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할 수 있는 게 영화더라. 하지만 좀 막연했지. 연극영화과 시험도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웃음) 아무래도 어른들의 편견이 강한 시기이기도 했고, 내가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닌 덕에 부모님의 꿈이 크셨던 것 같다. (웃음)
최근 개봉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와 제작 중인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의 원작자로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왜 <혈투>를 연출작으로 선택한 건가.
사실 <혈투>는 2006년에 쓴 시나리오다. 오래 전에 썼지만 넘기지 않은 이유는 개인적인 애착이 많았던 작품이었던 탓이다. 이 작품을 원했던 제작사나 감독님들이 있었지만 그 분들이 만들고자 하는 방향이 나와 맞지 않더라. 그래서 이건 내가 갖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기회가 온 거다. ‘비단길’에서 시나리오를 몇 개 보여달라고 해서 <북극의 변>을 별생각 없이 보여줬는데 대표님이 다음날 보자고 하더라. 그리고 보자마자 그랬다. “연출 안 해볼래? 이거?” 이건 작가로서 쓴 시나리오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쓴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사실 그렇다고, 언젠가 직접 해보고 싶어서 쓴 거라고 답했다. 결국 그렇게 하게 된 거다. 물론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스러워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했지. 만류하는 사람도 좀 있었다. <악마를 보았다>나 <부당거래>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주가가 더 높아질 텐데 기다렸다가 나중에 해도 되지 않겠냐는 거였지.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일단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제작사에 대한 신뢰도 생겼다. 결국 하루도 안돼서 하겠다고 전화했지.
어떤 점에서 신뢰가 생긴 건가.
내가 작가로서 10년 동안 활동하며 여러 제작사를 겪어 보고 각색도 많이 해봤지만 정확하게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알고 제안하는 회사는 드물다. 올라가볼 수 있는 산이 10개면 10개를 다 올라가봐야 된다. 그러다 결국 다 아니면 다시 첫 번째 산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여긴 그게 아니었다. 너무 명확하게 제시하더라. 나는 제작자가 가장 정확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재미있지만 작품으로 만들 때 이 부분만 손보면 좋겠는데?” 이래서 내가 괜찮겠다고 하면 가는 거다. 반대로 내 생각이 다르면 그 간극을 좁히던지, 아니면 서로 다른 사람과 해야겠지. 그런데 내가 겪어본 제작사가 열이라면 그 중 일곱은 그게 흐리다. “이게 재미있긴 한데……이렇게 한번 해볼까요?” 이런 식이랄까. (웃음)
<악마를 보았다>는 김지운 감독이 처음으로 자신이 쓰지 않은 시나리오를 연출한 작품이면서도 굉장히 센 작품이다. 영화를 봤을 텐데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내가 쓴 시나리오였지만 이게 만들어지면 조용히 넘어갈 영화는 아닐 거라 생각은 했다. 어쨌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다 떠나서 작가로서 내 시나리오가 내 손을 떠나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는 주재료를 공급해주는 사람이다. 그 재료를 가지고 구워서 스테이크를 만들던, 회를 뜨던, 삶아먹던, 어떻게 만드는 건 순전히 요리사인 감독 몫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김지운 감독님 영화고,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님 영화인 거다.
예전에는 재료만 공급했지만 직접 요리까지 하게 됐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만족감은 묻지 않겠다. (웃음) 다만 이 경험이 당신에게 남긴 소회 정도는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재료로 내가 하고자 하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그리고 그 요리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직접 맛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그게 맛이 있던지 없던지, 내가 책임질 수 있고, 그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다만 작가로서 스토리만 만들고 글만 쓸 대는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하면 되니까 안 되는 게 없다. 하지만 직접 연출을 하고 촬영을 하면 안 되는 게 있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실제로 이렇게밖에 안 나온다면 결국 타협해야 한다. 게다가 내가 내 돈으로 내 영화를 찍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릴 수 있겠지만 남의 돈으로 영화를 찍었으니 최소한 손해는 끼치면 안 되겠지. 이런 상업영화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기본적인 뼈대는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살을 붙이고자 노력했다. 직접 요리를 하다 보니 이런 스트레스를 받더라. 그리고 내가 단순한 편이라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한다. <혈투>에 1년 정도 매달려 있다 보니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쓸 수가 없어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있었다.
당장 글부터 쓰고 싶겠지만 감독으로서의 욕심도 생겼을 것 같다.
일단 욕심은 난다. 그런데 내가 쓴 시나리오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라서 쓴 것이겠지만 그걸 잘 찍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 같다. 정말 자신 있다면 내가 직접 만들겠지만 내가 잘할 수 없는데 괜히 욕심 부리기 보단 다른 감독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성향이나 취향이 있으니까. 분명 나는 또 연출하고 싶고, 그렇게 하려 하겠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않으려 한다.
<악마를 보았다>나 <부당거래>, 그리고 <혈투>를 보면 공통적으로 복합적인 인물의 심리가 그려지고 이에서 비롯된 갈등이나 충돌이 복잡한 플롯의 사건을 만든다.
내가 원래 사건 중심 영화보다 캐릭터 중심 영화를 더 좋아하긴 한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벌어지더라고 결국 그 사건을 벌이는 건 사람이다.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왜, 우리가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도 눈으로 보이는 사건의 뒤에 있는 이야기지 않나. 원래 사람 관찰하는 게 우리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보면 결국 사건이 보인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싶다. 한두 시간 즐겁게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영화도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나와 어울리는 재주가 아닌 거 같다. 영화를 보고 상영관을 나가서 아무 말없이 집에 가서 씻고 누웠더니 자꾸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잔상을 남겨주고 싶다. 적어도 뭐든 하나 던져주고 싶다. 그런 걸 좋아하니까.
살바도르 달리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지칭했다. 그는 사회부적응자처럼 행동하면서도 자신을 천재라고 언급하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기괴한 행적은 다양한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스스로도 이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 천재로 인정받는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달리의 기괴한 행위만큼이나 기괴한 그의 그림들이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천재성을 대변한다. 그의 기괴한 행위는 그의 죽음과 함께 잊혀져 갔지만 그의 그림만큼은 여전히 현세에서 유효한 가치를 이어나간다.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이하, <리틀 애쉬>)는 살바도르 달리(로버트 패틴슨)에 관한 전기적 드라마이자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달리의 가려진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시대상과 실존인물을 재현하는 전기적 드라마의 성격이 기본적인 극의 자질을 이루는 동시에 퀴어 멜로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리틀 애쉬>는 살바도르 살리가 죽기 직전 고백했다는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하비에르 벨트란)와의 은밀한 로맨스를 서사의 줄기로 이어나간다. 독재와 혁명이라는 격동의 현대사를 지닌 스페인의 시대상 안에서 살아나가는 명사들의 삶을 지켜본다는 의미와 함께 그 삶의 가려진 단면을 발췌하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리틀 애쉬>의 기획적 목표는 뚜렷하다.
살바도르 달리보다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관계와 그들이 놓인 시대상을 곁들이듯 묘사하는 <리틀 애쉬>는 인물의 삶을 관통하기 보단 그 이색적인 관계의 지속을 곁눈질하듯 관찰한다. 동성애자였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호감을 느낀 후, 지속적인 관계를 이뤄 온 두 사람의 일대기가 서사의 줄기를 이룬다. 살바도르 달리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오가던 시점의 중심은 점차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게 할애되기 시작하며 점차적으로 <리틀 애쉬>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바라본 살바도르 달리의 이미지를 곁들이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일대기적 전기 성격을 띠게 된다. 그 서사적 진전엔 일관성이 부족하다. 인물의 관계와 시대적 상황을 오가며 어느 곳에 방점을 찍어내지 못하는 형상을 연출한다.
시대상에 대한 묘사나 해석은 탁월한 편이라 말하기 어렵고,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특별한 감상도 도모되기 어렵다. 단지 특이한 인물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캐릭터들의 인상에선 어떤 특별한 감흥을 얻어낼만한 지점이 드물다. 단지 그것이 그 인물에 대한 정통적인 관점을 배제한 관계 묘사에 치중한 결과라 할지라도 인물에 대한 인상적인 감상이 도모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전기영화로서 아쉬운 지점이다. 시대나 인물에 대한 묘사나 해석 어느 측면에서도 딱히 인상적인 면모를 발견하기 어렵다. <리틀 애쉬>는 수많은 실존인물들을 등장시킬 뿐, 그 인물들에 대한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전기영화인 셈이다. 마치 실존주의적 과거를 초현실주의적 스크린이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랄까.
스페인의 위대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훗날 히치콕의 추앙을 얻는 거장 루시스 브뉘엘(매튜 맥널피), 그리고 천재 화가로 꼽히는 살바도르 달리까지, 실존인물을 재현하는 작품 안에서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단연 눈에 띄는 볼거리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하이틴 이미지를 벗어 던진 로버트 패틴슨의 광기 어린 연기는 그 연기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이색적이다. 때때로 캐릭터의 흐름을 설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도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호연이라 평하긴 망설여지지만 열연으로서의 성과는 인정받을만하다. 동시에 배역만으로도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한 선택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보다 인상적이다. 때때로 흉내와 같은 기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상은 아쉽지만 그 시도는 인정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