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사로부터 선물 받은 포뇨 인형을 보는 최강희 씨에게) 이런 만화 캐릭터들을 좋아하나 봐요.
예. 이거 잠깐 보고 있어도 될까요? 어제 이거 봤거든요. ‘포뇨’.
어제요?
DVD 나왔길래 빌려봤어요.
애니메이션을 원래 좋아하시나 봐요.
이런 캐릭터 중에서 욕심나는 역할이 많아요. <벼랑 위의 포뇨>를 보면서는, 소스케 엄마 기억나세요? 막 차 거칠게 몰고. (웃음) 그런 엄마 캐릭터가 탐났고요. 옛날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나오는 주인공도 탐났는데 아무래도 제 나이도 그렇고, 아무도 그걸 안 만들어줘서……(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캐릭터가 끌리면 작품도 끌린다는 말을 했더군요.
지금도 그래요.
어떤 캐릭터가 주로 끌리세요?
일단 제가 봤을 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건데요. 그래서 제가 소수의 인물을 많이 연기한 거 같아요. 결핍이 있다던가, 그런 게 매력적으로 보이니까요. 사실 <애자>도 내용은 보편적이잖아요. 어쩌면 캐릭터에 끌렸다고 볼 수 있어요. 엄마 캐릭터나 제 캐릭터나 다 세잖아요. 그런 점이 많이 끌렸어요. 그러면서도 사람들한테 공감을 줄 수 있고. 그런데 <달콤한 나의 도시>에선 오은수가 끌리지 않았어요. 그건 그냥 제 나이를 연기해보고 싶어서 선택했죠. 제 나이대의 속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기해보고 싶어서.
<애자>에서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 자신의 나이와 비슷하게 다다를 정도로 성장해가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그만큼 학생시절에 어울리는 생기발랄함 같은 것들까지 표현이 되는 배우가 애자를 연기했어야 했겠죠. 아무래도 최강희 씨가 캐스팅된 건 그런 부분에서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일 테고요.
그렇겠죠. 그리고 그런 묘사는 가능하지만 사실 전 그렇게 생기발랄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묘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들어오는 선에 맞춰서 결정하고 따라가는 거고요.
사실 캐릭터로서의 최강희 씨는 상당히 생기발랄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객들도 최강희 씨에 대한 이미지를 그렇게 인식하는 경우가 적잖은 거 같고요. 그런데 정작 최강희 씨는 스스로가 생기발랄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시나 봐요.
못 느껴요. 사실 제가 가진 생기발랄함은 좀 거칠어요. 아직 제가 봐도 그렇고 남이 봐도 그렇고, 표현방법에 있어서 서투른 사람인 거 같아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래서 제 주변에서 저를 선택해준 사람도 있지만 아직 좀 거칠거나 서툴어서 오류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자신과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연기생활을 시작해서 사회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저는 보통 사람들을 연기해야 하니까 제 일부의 모습을 과장해서 막 하는 거죠. 착한 역을 맡으면 제 착한 모습을 과장시켜서 연기하고, 엉뚱한 캐릭터를 맡으면 엉뚱한 연기를 하고, <달콤, 살벌한 연인>같은 경우에서도 제 숨겨진 모습을 연기했고요. 그런 것 외에 나머지는 다 다르다고 느끼죠. 그래서 경험을 많이 해보려 해요. 책을 읽기도 하고, 한 5~6년 전에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고요.
아르바이트요?
예. <맹가네 전성시대>끝나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봤을 텐데요.
귀찮으면 그냥 아니라고 그러면 돼요. (웃음) “최강희 씨 아니세요?” 그래도 아니라고 그러면 “닮았네요.” 그러고, 그럼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고 말하고. (웃음) 이런 분도 있었어요. “최강희 씨 보다 예쁘네.” 그럼 감사하다고. (웃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스스로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전에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애자>보면서 느꼈어요. <애자>에는 제 모습을 과장시킬 게 없을 정도로 저와 많이 달랐으니까요. 과연 최강희가 가능할까, 스스로 자문하고 시작한 작품인데 결과를 딱 봤을 때 다르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애자>를 보고 집에 왔는데 <달콤한 나의 도시> 재방송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걸 보니까 두 사람이 다른 거에요. 얼굴은 똑같이 생겼잖아요. 머리 짧은 것도 비슷하고. 그런데 너무 달라서 그때는 스스로도 놀랐죠. ‘아, 그래도 내가 헛수고 하지 않았구나’ 생각했어요.
<애자>에서는 캐릭터의 생활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캐릭터와 다른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바는 없었나요?
이전까진 변화나 변신에 대한 계획은 없었어요.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걸 최대한 다 보여드리는 게 1번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렇게 보여드린 다음에 나에게 나올 게 없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이 일을 그만 해야지 그랬는데 <애자>로서 용기가 좀 생겼어요. 그러니까 <애자>가 첫 도전인 거에요. 옛날에는 저한테 있는 것 중에 지금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것만 선택했지만 이번엔 다른 걸 선택했잖아요. 덕분에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앞으로도 제게 있는 것만 나오는 게 아니라 저한테 없는 것도 선택해서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졌죠. 말 그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배우라고 했을 때 지금 제가 배우랑 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도전이라는 단어가 확고하게 들립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어울리지 않다고 느끼는 캐릭터를 선택하기까지의 각오가 와 닿은 단어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도전한 거 맞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때도 도전이었지만 <애자>는 제게 완벽히 없는 모습이니까요.
그에 앞서 말씀하신 자신감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가요, 아니면 영화를 끝내고 난 뒤에 얻어낸 감정인가요?
선택하는 데선 자신감이 있을 수 없죠. 용기가 필요하죠.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고, 멋진 역할이고, 제가 이렇게 표현하는 거 우리 엄마한테도 보여드리고 싶고, 이런 제 연기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거 같아서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그 수간 안 하면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질러놓고 본 거에요. 그 다음에 생각하자. 그래서 그 다음부턴 그냥 노력만 열심히 했어요. 사투리도 배우고, 주변에 애자 같은 사람들 있으면 그 캐릭터의 거친 행동이나 표정을 눈에 담아놓고.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했죠. 이걸 흉내 낸다고 되겠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일상을 전부 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분을 떠서 드러내는 거니까 세분화해서 표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재미도 느꼈고요.
사실 <애자>는 모녀 관계를 다룬 신파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하지만 일반적인 신파에 비해 웃음이 많이 동원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 웃음은 대부분 엄마와의 일상적인 대면 가운데 발생하고요. 어쩌면 실생활에서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많이 돌이켜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있었죠. 저도 엄마랑 툭탁툭탁 하니까요. 딸은 기본적으로 다 그래요. 아들은 덜 그러죠. 대신 아들보다 딸이 더 깊어요. 사사로운 정들, 미운 정, 고운 정,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쓸데 없이 말해서 싸우는 거. 불필요한 말 같은 거. 나가면서 괜히 궁시렁궁시렁. 애자도 그러잖아요. “절간에 돈 쳐다 바른다고 뭐 죽은 사람이 살아나길 해, 뭘 해?”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엄마 속을 건드려놓고 엄마가, “네 지금 뭐라 그랬노?” 화내면, “아무 말 안 했다.” 그러고. 그런 과정들이 남이 보기엔 웃기지만 누구나 일상적인 일이죠. 서로 사랑하기도 모자란 판에 굳이 서로를 자극한단 말이에요. 그게 우리나라식 모녀 관계의 특징 같아요. 자극해놓고 미안해하기. 알고 보면 서로 제일 많이 미안해하잖아요. 저도 많이 그러거든요. 엄마가 맨날 차 뒷좌석에 타요. 애자 엄마처럼. 아무렇지 않게 ‘음.’하시면서 뒤에 딱 앉아있어요. 사모님처럼. 그럼 전 기사고. (웃음) 친구처럼 타면 되잖아요. 그래서 “엄마는 옆에 타면 되지, 왜 맨날 뒤에 타?” 툭 던지죠. 사실 이것도 그냥 가면 되는 건데 꼭 그렇게 돼요. 부모님들은 항상 말해주지 않는 게 많으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긴 해요. 어쨌든 엄마는 아직도 항상 뒤에 타요. (웃음)
<애자>에서처럼 앞자리가 무서우셔서 그런 건 아니겠죠?
그렇진 않으세요. (웃음) 그리고 가만히 앉아계시면 괜찮은데 막 다 뒤지고, 쓰레기 정리하고, 이러면 진짜 또 막 신경 쓰이는 거에요. 난 그냥 이렇게 편한 게 좋다고, 내가 치울 거라고 해도 엄마는 다 치우고, 그렇게 치우고 나면 내가 뭔가 찾으려 보면 또 없어지고. 그렇게 투덜투덜하는 게 영화에서 좀 과장되게 나타나는 거죠. 사실 전 애자보다 착해요. (웃음) 그리고 저도 공감이 가는 그런 모습이 일반 사람들에겐 더 공감이 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약간 겸연쩍잖아요. 영화에서 엄마랑 딸 얘기 나올 때 너무 착한 딸 나오면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애자>는 보러 와도 일단 자신감이 생긴단 말이에요. 내가 쟤보단 나으니까. (웃음) 그러니까 좋을 거 같아요. 피부로 드러나는 감정들이 좋은 거 같고요. 진지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누나에게 엄마랑 같이 보라고 했더니 못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왜요? 쑥스럽다고?
찔릴 거 같대요.
아~~! (웃음) 엄마랑 딸이랑 보면 좀 그럴 거 같긴 하죠. 그런데 저희 엄마나 저희 엄마 또래 정도 되시는 배우 분들도 <애자>를 많이 보셨는데 다들 자기 엄마 생각난대요. 그래서 괜찮은 거 같아요. 그 연세에도 자기 엄마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성장기 시절의 엄마, 자기가 못해줬던 엄마, 이런 모습들.
밖에서는 다들 어른이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서 엄마 앞에 가면 다들 애가 되는 것 같아요. 엄마도 때때로 자식 앞에선 애처럼 투정 부리시는 거 같고요.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점잖게 있지만 집에 들어가면 정말 누가 볼까 봐 창피하잖아요. (웃음) 별거 아닌 걸로 막 싸우고. 그런 가족간의 비밀은 누구나 있는 거 같아요. 그만큼 가까운 관계니까.
이전까진 어머니께 방송에 나오는 것조차도 귀띔해드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애자>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라고 말씀하셨더군요.
대본 선택할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애자>를 통해 딸로서의 진심을 담아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맞아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요.
예. 예전에 돌아가셨죠.
그런 점에 있어서는 애자와 최강희 씨 사이에 닮은 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애자 역시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으니까요.
아, 그러네요?
그런 부분에서 캐릭터와 모종의 공감대를 이룬 적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초반에 애자가 엄마를 진짜 싫어하잖아요. 엄마도 애자가 보기도 싫다고 하고요. 그런데 엄마와 누워서 화해할 때가 많이 생각났죠. 제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찍기도 했지만 그 부분만큼은 저희 아빠가 많이 겹치는 유사 경험이 있거든요. 제가 청소년드라마 <나>를 찍던 스물한 살에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두 달 정도 아프셔서 아빠 곁을 지켜야 할 때가 있었죠. 영화에서 엄마랑 애자가 병원에서 탈출해서 회 먹으러 나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병원에서 몰래 아빠를 빼내서 바람 쐬고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면 안 됐는데. 사실 아빠랑 되게 어색한 사이였어요.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져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저한테 병원 침대에 올라와서 같이 자면 안되겠냐고 하시는 거에요. 전 너무 싫었죠. 지금 거기에서 병수발 드는 것도 싫었는데. 좋아하는 관계도 아니고, 아빠를 잘 알지도 못해서 어색한 상황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아빠랑 같이 자면서 처음으로 대화도 해보고 아빠가 미안해하는 만큼 저도 미안해하다 휠체어를 타고 같이 나왔어요. 그렇게 화해한 거죠. 그러면서 하루 동안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기억이 없었다면 아빠에 대한 기억도 달라졌겠죠.
부모자식은 아무리 미워도 끊을 수 없는 사이 같아요. 영화에서 엄마가 애자한테 사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만약 엄마가 심각하게 잘못해서 집안이 아주 큰일을 당했고 그걸로 인해서 엄마와 관계를 의절하겠다 결심하더라도 그런 결심은 한번에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지울 수 없는 관계인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우리엄마를 생각하고 대입시키면서 연기에 몰입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아빠를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대기하면서 눈물이 많이 났던 거 같아요. 우는 신이 아니었는데도 그냥.
지금은 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엄마로서의 입장도 더욱 잘 알게 되겠죠. 나이가 더 든다면 엄마를 연기할 날도 올 거고요. 막연한 질문이지만 한번이라도 엄마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자신에 대해서라도 생각해 본적 없나요?
없어요. 못할 거 같아요. 새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그건 제가 할 수 있을 때 할 거 같아요. 애자도 할 수 있을 때 한 거니까요. 상상도 안 되고.
도저히 가늠할 수 없나 보죠.
예. (웃음)
대부분 최강희 씨를 말할 때 4차원이라는 수사를 동원합니다. 본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한 말을 듣게 됐을 때 기분은 어떤가요?
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말을 듣나 싶어요. 오해할 수 있겠다 생각하죠. 그리고 나쁘게 부르는 건 아닌 거 같고, 귀엽게 봐주시는 거 같아서 다행이고요. 지금은 제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혼자 있을 땐 생각도 많아진다고 들었고요.
저는 혼자 있을 때 생각을 많이 하고 그만큼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우울한 감성을 좋아해서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요. 등 따시고 배부르면 아무 생각도 안 나잖아요. 그럼 약간 섭섭할 때도 있죠. 그래서 그런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앞으로 다시 또 못 올지도 모르는 순간이잖아요. 물론 힘들었던 때로 돌아가긴 싫죠. 하지만 그 순간은 그때뿐이고 그때에만 얻을 수 있는 감성들이 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빨리 누릴 수 있는 감성들은 미리 누려놓자고. 지금처럼 깨끗한 집이 아니라 옛날에 단칸방 같은 곳에 모여 살면서 다같이 잠자고 그럴 땐 좀 싫었죠. 그래도 그 때 맡았던 냄새나 온기는 잊을 수 없단 말이에요. 지나고 나면 다 소중한 거 같아요.
어려운 과거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니까요.
대신 돌아가긴 싫죠. 그러니 그것도 누려야 할 때 누려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이 많은 만큼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애착도 클 것 같습니다.
저 작업실 생겼어요. 친구 작업실에서 한 평만 빌려서 제가 꾸며놨거든요. 그 한 평에 텐트를 쳐 놓은 적도 있었고요. 지금은 TV를 갖다 놓고 DVD를 가득 쌓아놨어요. 제 공간이 생긴 거죠.
무엇을 위한 공간일까요?
(한참 생각하다가) 그러게. (웃음) 그냥 상징적으로 좋던데요. 제 공간이 있다는 게.
그냥 그 누구에게도 구애 받을 필요 없는 한 평짜리 자유군요. (웃음)
전 독립해서 살 생각이 추호도 없는 사람이에요. 엄마가 나가라 그래도 싫은 사람이거든요. (웃음) 그냥 엄마랑 계속 사는 게 좋고, 계속 살고 싶고, 그러면서도 개인공간은 갖고 싶잖아요. 그래서 그냥 내 공간이 있다는 게 좋아요. 그냥 갈 데가 있다는 거? 월세인데요, 한 평에 15만원. (웃음)
주변에 친한 분들이 몇 분 있잖아요. 몇 달 전에 압구정CGV에서 김숙 씨와 송은이 씨와 함께 있는 걸 우연히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누구와 같이 있는 걸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분들과 목격될 가능성이 커요.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최강희 씨는 편애하는 지인들도 정해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정하는 건 아닌데 편한 사람만 만나다 보니까 반복적이에요.
최강희 씨에게 편한 분들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희 언니들하고 만나면 진지한 대화를 아예 안 해요. 속 얘기를 잘 안 하죠. 그냥 만나서 노는 거에요. 그게 너무 좋아요. 속마음 물어보고 안 그래요. 제 힘든 얘기하면 개 무시당하고 막 놀려대거든요.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그래서 좋아요.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면 답답해지진 않나요?
사실 잘 털어놓기도 했고, 예전에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어요. 언니들은 놀려서 안 하고. (웃음) 그런데 점점 못하겠어요. 자꾸 털어놓다 보면 말이 다른 데서 자꾸 이상하게 변하니까요. 추측이 많은 사람들은 제가 말을 안 했겠거니 생각하시는지 제가 하지도 않은 행동조차 앞서서 고민해주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게 조금 걸려서요. 그래서 요즘은 잘 얘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미니홈피를 많이 좋아해요. 알듯 모를 듯 음악으로 대신 얘기할 때도 있고 그래요.
고민을 직접적으로 공유하기 보단 간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덜어내는 게 편한가 봅니다. 우울한 감수성이 짙은 음악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직접적인 대화보단 그런 매체에 감정을 담아서 흘려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해소가 돼요. 나름대로 공유도 되는 것 같고. 그리고 종교.
종교요?
기독교를 믿는데요. 요즘 자꾸 통일교라는 사람이 많아서, 4차원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최강희 통일교가 검색어에 뜨는 거에요. (웃음) 그런데 기독교고요. 매주 교회에 가요. 저는 원래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친구들하고 그런 진지한 얘기도 잘 안 하고요. 그런데 교회 가서 한번씩 비워내는 거 같아요. 욕심도 비우고, 화내보기도 하고. 만약 그런 신앙이라도 없었으면 꽤 갑갑했을 거 같아요.
교회는 언제부터 다녔나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같이 다니는 사람이 많아져서 더 열심히 다녀요.
원래부터 독실했던 건가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종교를 통해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느낀 건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항상 제가 어느 곳에서 무얼 하든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어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 공익광고를 봤는데 리와인드로 진행되는 광고였어요. 자전거가 점점 뒤로 가다가 갑자기 여자가 교복을 입고, 어느 순간 더 어려져서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되더니 어느 순간 뒤를 딱 보면 엄마가 손을 잡고 있는 거에요. 항상 뒤에 있었다는 거죠. 전 제 엄마랑 보이지 않는 신이 제게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우울하지 않았던 거 같고. 제가 어떻게 살아도 나쁘지 않게 사람 흉내를 내면서 살 수 있는 건 엄마가 저를 위해 기도해준 탓이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긴 경력을 유지하며 배우로 살아오고 있어요. 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요?
좋아요. 제 성격에 해소도 많이 되고요. 그러니까 해소라 하는 건, 사실 제가 그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연기로 이 사람을 웃기면 이 사람이 웃기로 되어있고, 울고 싶은 적은 없어도 울어야 하는 연기가 있다면 속을 끄집어내서 한번 울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해소되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당장 잘할 수 있는 게 연기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굴러오다 보니까 아직 여기 있는데 사실 <애자>하면서 연기를 때려 칠까 했던 적도 있었어요.
왜요?
잘 안 되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고민했죠. 내소사 신에서, 엄마랑 싸우는 장면 찍을 때 아침에 찍고, 해질 때 즈음에 다시 찍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동안 쉬어야 되는데 쉬면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거에요.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앞에 부분에서 잘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싶은 거에요. ‘내가 이걸 잘 표현하고 있는 건가’ 싶고, ‘이건 너무 어려운 직업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끝나고 다른 걸 알아볼까, 내가 뭘 잘하나’ 생각해봤는데 잘 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거에요. 보니까 그나마 제가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연기를 제일 잘 해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열심히 찍었죠.
예전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나요?
한번도 없었죠. 아니, <달콤한 나의 도시>때 한번. <달콤한 나의 도시>때부터 전 사춘기였던 거 같아요. 제 나이 때 역을 맡으니까 오히려 되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거에요. 제가 어디 속해있는지도 모르겠고. 연예인인지, 배우인지, 어른인지, 중간인지, 다 헷갈렸어요. 연기도 기술인지, 순수함인지, 다 섞여버려서 혼란스러웠죠. 그래서 그때 한번 욱해서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을 거에요. 당장 때려 칠까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그런데 지금부터 하는 건 제 선택이에요. 이게 참 좋은 직업이구나 깨달았으니까요. 좀 더 얘기하자면 주변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다들 고민이 많더라고요. 다른 걸 하고 싶어도 현실상 모아둔 돈이 없으니까 다른 걸 할 수 없고,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 해도 회사원이니까 섣불리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래서 나는 참 좋은 직업을 갖고 있구나 싶어졌어요. 할 줄 아는 걸 좋아서 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죠.
98년도에 <여고괴담>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셨죠. 그 전에 95년도부터 청소년드라마로 연기를 시작했고요. 그 당시에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더 좋아요. 더 맘에 들어요! (웃음) 연기는 좀 못했는데요. 잘했던 건 지금보다 더 잘했어요. 아무 것도 없는 순수한 진정성 같은 거, 그런 건 다시 하래도 못할 걸요. 그건 그때만 가능한 거 같아서 지금도 저는 그것들이 너무나 소중해요. 지금도 분명 지금뿐일 거에요. 나중에 연기를 더 잘한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달고 살 순 없을 거에요.
예전 생각은 자주 하시나요?
저는 작년에도 데뷔작을 다시 봤어요. 저는 작품을 모으는 타입이 아니라서 하나도 가진 게 없어요. 그래서 제가 자료를 가진 게 없어서 팬들한테 동냥해서 봤지만 볼 때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빛난 시절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저한테 되게 소중한 것이라 의심치 않고요.
큰 욕심은 없어도 작은 집착이 커 보입니다.
집착이 너무 크죠. (웃음)
언젠가 <애자>를 다시 보게 될 날도 오겠죠.
그럴 거 같아요. 사실 전 엄마보다는 제가 빨리 죽었으면, 아니, 같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저보다 먼저 가실 거 아니에요? 그런 생각하면 겁나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가끔씩 전 그래요.
아무래도 엄마가 최강희 씨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되는 만큼 애착도 대단하겠죠.
집착해요. (웃음) 지금 <애자>얘기 하시니까 느끼는 건데 나중에 <애자>를 다시 보게 되면 되게 슬플 거 같아요. 지금부터 잘 해야겠어요.
<애자>를 지난 최강희 씨에게 남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용기가 좀 생긴 거? 자신감이 좀 생긴 거? 그리고 엄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많아진 거. 그리고 관객 분들도 이런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애자>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는 거 같거든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기회가 있을 때 해야 된다는 거?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