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할만한 어른을 찾기가 힘들다. 어른의 얼굴로, 어른의 목소리로 산다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다.
언젠가부터 주말이면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촛불을 켜고 광장에 모인다. 광장에는
자유발언대라는 단상이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이들이 단상에 올라 자신의 생각을 외친다. 한번은 어린 초등학생이 단상에 올라왔다.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글을
읽겠다고 씩씩하게 말하던 초등학생의 말은 이랬다. "촛불집회에 와보면 학생 언니, 오빠들이 많이 보입니다. 언니, 오빠들이
공부를 팽개치고 이곳에 오는 이유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돈 있고, 권력 있는 부모를 이길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어른이 돼서 그나마 좋은 직장을 얻어도 박근혜 일당과 같은 사람들 밑에서 아부해야
하는 걸 잘 아니까 그걸 바꾸려고 이곳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목에 걸리는 환호였다. 부끄러웠다. 왜 우린, 이
나라의 어른들은 초등학생도 알게 된 사실을 미리 몰랐을까. 왜 이런 사태를 방관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가혹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필연적으로 책임감을 등에 업고 살아가야 한다. 개인의
삶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도 점점 무거워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책임감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서서히 망가지는 세상과 자신의 일상을 분리하며 살아간다. 가끔씩은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라 합리화하기도 한다. 세상을 망친
주범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망치는데 일조한 공범이라 여기진 않는다. 무능한 정치에
무심하고, 개인의 비극을 관망하는 제도와 공권력 앞에서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별히 반성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종종 되레 그런 목소리
앞에서 역정을 낸다. 불합리에 저항하고자 하는 목소리나 일방적인 제도권에 맞서는 태도를 유별나다고 규정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졌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엄격한 규율로 유명한 명문학교
웰튼고등학교의 특별한 사제지간을 그린 영화다. 웰튼고등학교 출신의 신임 영어교사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은 파격적인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 공식 같은 규칙에 대입해 시를 평가하도록 명시한 교과서의 도입부를 찢어버리라 명한다. 망설이던 학생들은 점차 과감하게 책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시를 음미하라고
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즐기라
권한다. 주체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안목을 키워 세상을 재단하길 권한다. 그러자 그를 추종하는 학생들도 생겨난다. 그리고 키팅이 웰튼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비밀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추종자들은 키팅이 참여했다던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재결성한다.
비밀 조직이라 하니 무법적인 일탈이라도 도모할 것 같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의 정수를 발견하고자 하는 모임이었다. 한밤
중에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학교 인근의 동굴에 모인 어린 학생들은 시를 읊으며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낭만에 취했다. 교과서가 인정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운율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시를 탐닉하며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논했다. 그것만으로도 소년들에겐 대단한 일탈이었다. 이를 통해 어떤 소년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자신들이 포기하려 했던 삶을 다시 꿈꿀 수 있는 용기마저 얻게
된다. 특히 누구보다도 키팅을 따르는 닐(로버트 숀 레오나드)은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억누르고 있던 꿈을 되살린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다시 불사른다. 그리고 아버지 몰래 극단에 가입하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학교를 찾아와 아들에게 무대에 오르지 말라 명한다. 하지만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속이고 무대에 오른다. 훌륭한 연기로 객석을 매료시킨다. 아버지 역시 객석에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길, 내심
기대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끔찍한 명령을 내린다. 지금의
학교에서 나와 보다 엄격한 사관학교로 입학하라고. 결국 절망한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니까 결국 아버지의 꿈이 아들의 꿈과 숨을 모두 끊었다. 아버지는
이 모든 사태가 아들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은 키팅의 탓이라 여기고 학교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학교는
일방적인 조사 끝에 키팅에게 책임을 묻고 그를 해임한다. 그리고 키팅이 학교를 떠나는 날, 이런 조치에 침묵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학생들은 교실을 떠나는 그를 향해 외치며 책상 위로 일어선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른 학생들도 따라 책상 위로 올라선다. 교장은 격분해 처벌하겠다 협박하지만 학생들의 마음엔 불이 붙었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키팅은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서서 세상을 내려다 보라며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어른들의 권위에
탑승해 학생들을 지배하는 손쉬운 방식을 선택하는 대신,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가치관과 주체적인 시각을 갖길 권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여전히 감동적인 작품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어느 시대에나
어른들은 권위를 앞세워 젊은 세대를 훈육하려 들고, 가만히 있으라 명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망가지는 것에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비겁하게 방관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은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모든 관객이 키팅의 책상 위에 올라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바보처럼 보이는 시도를 통해서라도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어른의 용기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번은 광장의 자유발언대에 한 할머니가 올라왔다. 충청도에서 올라왔다는
그 할머니는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서 광장에 나왔다"고, "우리 늙은이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주변에는 대통령이 뭘 잘못했냐고 하는 늙은이들이 있어요. 우리
늙은이들이 정신 차려야 됩니다!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할머니가 외칠 때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할머니!'를
연호했다. 올해 목격한, 가장 뜨거운 순간 중 하나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역시나 가혹한 일이다. 어른이라 불리는 순간, 필연적으로 책임감을 등에 업게 된다. 개인적인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존재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책임감을 느끼는 어른은 결국 반성하게 돼있다.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은 되레 시대를 탓하고, 젊은이들을 탓하며 고약하게 늙어간다.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랜 토리노>는
반성하는 어른이 남긴 숭고한 유산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제목인 '그랜
토리노'는 1972년에 포드사에서 제조한 고급형 자동차의
이름이다.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철저하게 관리해온 덕분에 새 차처럼 완벽한 그랜 토리노를 통해 지난 일생을 되새긴다. 그래서 그는 젊은 세대에게 관대해지기 힘들다. 지금껏 자신이 일구고
쌓아온 전통과 역사를 그들이 무너뜨리는 것만 같다. 이웃에 사는, 이름을
발음하기도 힘든 동양인들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거기서 그는 의외의 희망을 발견한다. 우연한 계기로 옆집의 동양인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한 소년을 주목하게 된다. 타오(비 방)라는 소년은
착한 품성과 성실한 기질을 갖고 있지만 가난한 이방인인 탓에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기 어렵다. 게다가
갱단에 가입하라는 협박까지 받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월트는 소년의 사정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월트는 타오가 정직한 일을 통해 미래를 건설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자신을
고약한 늙은이로 여기는 아들 내외보다도 더욱 아들 같은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타오에게 가해지는 갱단의
협박과 폭력이 날로 만만찮다. 그래서 월트는 결심한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살육을 저질렀고, 목격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육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 가운데서 자신이 절망하던 세상에 일말의 빛이 되고 소금
같은 존재가 될 소년을 만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확신한 희망을 보존하기 위해 이미 더럽혀진 영혼을
지닌 스스로를 제물 삼아 절망의 뿌리를 뽑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지킬만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기꺼이 내놓는다. 그럼으로써 월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회개한다. 그리고 그토록 아끼던 그랜 토리노를 타오에게 남김으로써 빛나는 전통에 새로운 세대를
태우고 시대를 나아가도록 만든다. 진정한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린 요즘 매일 같이 어른들의 탈을 쓴 얼굴을 마주했다. 국정 농단에 관한 국회 청문회장에서 질문을 받는 정재계 인사들은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발음을 반복하지만 성실한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진 않았다. 대한민국의 권력을 쥐고 있다는 어른들의 민낯이 이토록 부끄러운 건 그들도, 우리도, 반성하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이 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잊어선 안 된다. 그 부끄러운 얼굴들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없다는, 이 치욕적인 시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을 메우는 어린 세대들의 낭랑한 외침에서 희망을 본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깨달아야 한다. 어른의 목소리로 반성하고, 어른의 얼굴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최소한 부끄럽다는 것을 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그러니까 <죽여주는 여자>는 감탄사로 쓰이는 '죽여준다'와 동사로 쓰이는 '죽여준다'는 의미로 수식되는 여자의 삶을 그린 영화다. 먹고살기 위해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늙은 여성은 과거 자신과 거래한 전적이 있는 남성들이 갈망하는 죽음을 돕는다. 죽여준다던 그 여자가 정말 죽여주는 여자가 된 건 결국 남루한 노인들의 삶이 방치되고 외면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모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되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버겁게 현실을 버티거나 버거운 내일을 지운다.
물론 <죽여주는 여자>를 목격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목도한 건 우울하고 괴로운 노년의 초상만은 아닐 것이다. 유쾌한 활기와 따뜻한 정감이 공존하는 영화 속 풍경에는 한국 사회의 여느 구석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표정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 다양한 생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군상들도 하나 같이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은 결국 죽음으로 수렴되는 여정이다. 다만 죽음이 다다를 때까지 살아간다는 것과 죽음을 향해 찾아간다는 것 사이에는 우주만 한 괴리가 있다. 결국 <죽여주는 여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역설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전작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이에 관한 영화였는데, 신작인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늙다'와 '죽다'라는 동사가 두 작품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출을 마음먹기 전에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대중에게 늙어가는 삶을 노출하며 산다는 건 배우의 숙명이지만 여배우가 늙어간다는 건 남자 배우가 늙어가는 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투자자를 구하던 중에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출 의뢰를 받았고, 대중적인 영화를 연출한 경력이 차기작을 제작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수락했다. 게다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내 관심사와 연결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런데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로 여배우에 관한 영화 대신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었다. 여배우에 관한 영화로 돌아가려던 차에 박카스 할머니를 다룬, 노인 성매매에 관한 기사를 접했는데 거기에 좀 경도됐다. 사실에 기반한 현실을 다룰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보다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가는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여배우였을까, 늙어간다는 것이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하려면 더 앞선 시점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웃음) 2007년에 <귀향>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실향민 노인이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자신의 고향인 원산까지 걸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부지한 아내 때문에 딸이 시집을 못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아내의 생명을 끊고 딸을 시집보낸 뒤 자신도 신변 정리를 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꽃보다 할배>처럼 남자 노인들이 어울려 다니며 낄낄거리는 모습도 묘사되는데 실제로 이순재 선생님을 캐스팅했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나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런 주제를 자꾸 건드리는 것 같다.
<귀향>은 영화로 제작하지 못한 건가? 제작 단계 직전에 금강산 관광이 백지화되면서 촬영이 무산됐다. 그런데 지금도 영화가 엎어졌다고 말하진 않는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죽여주는 여자>의 시나리오를 착안한 건 언제였을까? <두근두근 내 인생>을 끝낸 뒤 2014년 여름쯤 착안했고, 가을쯤 시놉시스를 구상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반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해 겨울, 윤여정 씨에게 원래 제안했던 나이 든 여배우 이야기보단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윤여정 씨는 생각을 좀 해보더니 자신이 여배우라서인지 사람들이 여배우 얘기를 얼마나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는 사회성도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배우 이야기가 더 대중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죽여주는 여자>는 소재만으로도 대중영화라 받아들여지기 힘든 지점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무겁다'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소재이긴 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고 싶었다. '더 늦기 전'이란 의미는 시사성 있는 소재를 다룬 만큼 빨리 공론화해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먼저 구상했던 여배우 이야기는 다른 이가 생각할 만한 시나리오는 아닐 테니까. 어쨌든 실제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 건 2개월 남짓한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작년 3월쯤에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후다닥 썼다.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과 죽음 외에도 다양한 시사적 화두를 건드리는 영화다. 지난 필모그래피를 돌아봤을 때 현실과 밀착한 시사성을 다룬 작품은 <죽여주는 여자>가 처음인 것 같다. <귀향>이 영화화됐다면 처음은 아니었을 텐데. 남북문제와 실향민 문제 그리고 노인 문제까지 다룬, 시사성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사실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 땐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 여건이나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종종 농담처럼 누가 돈만 대주면 평생 이런 영화만 찍으면서 살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2년에 영화 한 편씩 만드는 일개 감독일 뿐이고, 세월은 제한적이다 보니 쉽진 않은 거 같다.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를 의미하는 코피노와 트랜스젠더, 장애인 그리고 노인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대상들이 이태원의 한 집에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존재감이 피력된다. 어떤 면에선 종합 선물세트처럼 나열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늘 영화를 구상하면서 스크랩해오던 소재들이었고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녹여보고 싶었다. 이태원은 <귀향>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이태원 복덕방을 운영한다는 설정을 두면서 이미 관심을 갖고 있던 동네였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서울 안에 자리한 작은 국제도시 같기도 하고 골목마다 정겨운 구석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영화라는 게 역사적 기록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미군 부대 주변에서 생업을 이어나간 경력이 있는 소영(윤여정)의 입장에선 이태원에 머문다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저마다 만만찮은 사연이 있을 법한 인물들이지만 소영을 제외한 인물들의 과거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되지 않는다. 처음 시나리오상에선 도훈(윤계상)의 개인사를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날라리처럼 지냈는데 친구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건데 결국 친구는 즉사했고 자신은 다리를 잃어서 죽을 생각까지 했다가 어느 날 문득 그냥 '살아가야지'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역경을 극복했다는 사연이다. 결국 시나리오를 각색하며 정리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삶이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도 주인공일 순 없다. 티나(안아주)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연과 시련을 겪었겠나.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연을 알고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얘기를 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흔히 비참한 인생일 것이라 여겨지는 소외 계층의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묘사되는 덕분에 영화가 선택한 소재의 무게감이 버겁게 다가오진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걸 달가워하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 내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을 뿐이지, 사람들을 계도하고 싶진 않다. 어떤 주의나 의식을 웅변하고 자각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다. 물론 그들의 삶에 비참한 단면이 있을 거다. 하지만 매일을 지옥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을 만들어내고, 작은 온기에서도 삶의 동력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박카스 할머니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상당히 디테일한 설정들도 묘사되니까. 박카스 할머니를 직접 대면하고 조사하진 않았다. 이미 내 머리 속에 그런 세계가 어느 정도 구축돼 있었고, 윤여정이란 배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인물이 있었으니까. TV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을 참고하기도 했다. '연애하고 갈래요?'라는 대사도 거기서 알게 됐고. 그런데 이미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구체화된 상황이라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바빠져서 그럴 여유도 없었고.
실제로 만나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던가? 종로를 오가면서 간접적으로 관찰하긴 했다. 처음에는 구분을 못하겠더라. 그냥 마실 나와서 할아버지들과 노닥거리는 할머니 같기도 하고, 매춘하는 할머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보니까 알겠더라. 어딘가 지친 기색이 있고 얼굴에서 빛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러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도 되는 것인지, 혹시 내게 오해는 없는 건지 검증받고 조언을 들어보고자 박카스 할머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님을 만나서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직접 취재하고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라고 하니 놀라더라. 그래서 안심했다. 실제로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보면 다들 명랑하다고 하더라. '집에 남편 재워두고 나왔잖아'란 식으로 자기 얘기도 서슴없이 하고.(웃음) 사실 자기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야기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지 않나. 그럼 사는 게 진짜 지옥이 되는 거니까. 다만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구실을 찾아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극한으로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상에서 소영이 한 여자를 찾아가 돈을 주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하는데 그 전후 과정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없어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오해를 조금 산 것 같다. 원래 소영이 목돈을 빌렸다가 나눠서 갚는 장면이었는데 포주에게 돈을 바치는 것 같다는 추측까지 나오는 걸 보니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면 일수 개념으로 빌린 돈을 보름에 한 번씩 갚는 장면인데 영화 상에서 그녀의 모습이 너무 여유롭게만 보일 것 같아서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실제로는 갚아야 할 돈도 있고, 집세도 내야 하고, 그런 삶을 견디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소영은 유일하게 영화상에서 과거사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소영이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할 때 'So young'이라는 영어를 음역한 것이란 사실은 우연히 만난 옛 동료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데 그녀의 과거사가 넋두리처럼 들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다큐멘터리 촬영용 인터뷰를 빌미로 줄줄이 설명하는 장면도 있지만 구구절절 말할 수 없으니 극 사이사이에 잘 배치하는 게 관건이었다. 아마 결말부를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무연고자 납골당 신에서 소영의 본명인 양미숙의 생년월일이 1950년 6월 19일로 적혀 있다는 걸 확인했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6.25 발발 일주일 전에 태어났다는 걸 알았을 거다. 실제로 중반부에 '3.8 따라지'라 말하기도 하고. 어쨌든 고아원을 거쳐 식모살이, 공순이, 동두천 양공주까지,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겪을 수 있는 비극을 죄다 경험한 한 여자의 일생으로 점철된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전쟁이 한 여자의 인생을 이렇게 짓밟아놓을 수도 있다는 걸 기저에 깔아놓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이란 남자들이 벌일 수 있는 최상위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여자들은 희생자가 된다. 사실 우리가 양공주라 부르는 여성들은 엄밀히 말하면 미군 위안부다. 국가적으로 성매매를 금지해놓고 기지촌에서만 허용한다는 건 사실상 국가가 미군에게 성매매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니까. 결과적으론 그녀들을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여겼고.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미군한테 다리 벌린 여자 취급을 당하며 손가락질만 당했다. 결국 그녀들에겐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던 거다.
몰염치하거나 무책임한 한국 남자들의 군상을 인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코피노 문제도 그렇고. 영화에서 코피노 소년 민호의 아빠로 추정되는 의사도 결국 애만 싸질러 놓고 도망친 셈인데 그걸 보고 간호사가 한마디 하지 않나. "한국 남자들은 다 개새끼야." 물론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여성을 다루다 보면 결국 약자로서의 여성성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 모양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남자의 시각으로 씌워놓은 관념들이 워낙 많다. 이를 테면 모성 같은 것? 그래서 자기 죽음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그들을 죽여주는 소영이 여성성의 화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이 감내해온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걸 목격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그녀가 꿋꿋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이지 않나. 게다가 그녀가 성을 파는 건 살아남기 위해 폐지나 빈 병을 줍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선택한 방식일 뿐이다.
사실 죽음을 사주하는 남자 중 재우(전무송)도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여자의 여생을 망쳐버린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마치 자신의 평온한 죽음을 위해 여자의 삶을 산 제물처럼 바쳐버린 느낌이랄까. 맞다.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솔직히 영화적 설정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 주길 바라는 요량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소영은 첫 번째 노인의 부탁을 들어준 뒤 재우에게 그런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고백한다. 그분이 너무 원해서, 차라리 그렇게 사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서 했다고. 그만큼 소영에겐 공감능력이 있는 거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으니 자신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의 측은지심이 재우의 결심을 도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건 약자가 약자를 돕고, 노인이 노인을 죽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상처를 입어야만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느낌이랄까.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 때 부담이 컸던 건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 영화가 인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대로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쳐서 이를 실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일종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결국 그런 걱정을 다잡게 만든 건 이런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그들을 방치해선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사회안전망에 관한 문제들이 공론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잘 죽는다는 건 무엇일지, 이런 성찰도 공유하고 싶었고.
삶보다 죽음을 갈망하는 남자들의 입장에 타당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죽음을 그리는 게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개연성이 생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어떤 상황일 때 죽고 싶을지 고민해봤다. 첫 번째 남자 같은 경우엔 사는 게 창피하다고 하지 않나. 평소 댄디하게 차려 입고 부족함 없이 돈을 써가며 멋지게 살아왔던 사람이 한순간에 제 몸도 못 가누고 침대에 누워 여생을 보내야 된다면 정말 죽고 싶겠더라. 그리고 치매에 걸린 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떠돌면서 남에게 폐를 끼칠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마지막으로 의지할 가족들이 모두 떠나갔을 때 무슨 낙으로 살아갈 것인지 막막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노인 자살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유형 세 가지라는 걸 알게 됐다. 정확하게는 거기에 빈곤이 겹쳤을 때라더라.
소영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세 노인 중 두 명은 실내에서 죽지만 한 명은 산에 올라가 벼랑으로 떠밀려서 죽음을 맞이한다. 목격자가 발생할 수 있는 산에 올라가서 자살을 위장한다는 건 합리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먼 발상처럼 보이는데, 굳이 산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소영이 도훈한테 어떻게 죽으면 고통이 덜할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떨어져 죽으면 가장 짧게 고통을 느낄 거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는데 그 장면을 다 걷어냈다. 어떤 의미에선 산에서 죽는 게 낭만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 비참할 거 같고. 덕분에 내 영화 특유의 이상한 농담도 넣게 됐는데 이를테면 산으로 올라가면서 "야, 힘들어 죽겠다. 잠깐만 쉬자"라고 하는 대사 같은 것. 죽으려고 올라가는데 힘들어 죽겠다니, 웃기지 않나. 결국 그런 게 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공간성을 다양하게 고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런 바도 있다. 방, 산, 호텔, 이렇게 다양한 장소들을 확보하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주로 도심을 배경으로 둔 영화라 한 번쯤은 확 트인 곳에서 한 템포를 쉬어가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영화적 배경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데 촬영시기와 영화 속 풍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인상이었다. 어쩌다 보니 우연과 필연이 잘 겹쳐졌다. 원래 가을에 찍어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긴 했다. 늦여름에서 시작해 가을로 물들어가는 남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시기에 맞게 투자가 완료됐고, 그때 빨리 촬영을 끝내야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촬영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잘 맞아떨어졌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종로는 실제 박카스 할머니들의 터인데 장충단이나 남산 산책로는 의외의 선택지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곳에서도 그런 성매매가 이뤄지는 걸까? 그렇진 않다. 다만 가끔 남산을 산책하다 보면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한국의 발전을 대변하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그래서 꼭 그 장소를 넣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근의 장충단 공원으로 무대를 옮긴 거다. 남산의 한적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소영이 홀로 쓸쓸히 배회하는 모습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풍경 안에서는 유령 같은 존재처럼 보이니까.
영화상에서 경쾌하면서도 쓸쓸한 선율의 연주음악이 몇 차례 들려지는데 장영규 음악감독에게 물어보니 공간성과 오래된 정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더라. 장영규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오랜 친분이 있다.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음악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 일단 그냥 맡겨도 될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죽여주는 여자>에선 명확히 떠오르는 음악이 없었다. 그래서 편집본을 보여주면서 떠오르는 걸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 같은 느낌이 떠올랐다고, 그런데 약간 뽕끼가 있어야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가 보낸 샘플 중에서 두 가지 음악을 골랐다.
촬영 면에서 핸드헬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단 한번도 흔들지 않더라. 흔들 수 없는 영화였다. 3D 영화 제작 지원금으로 만든 영화였으니까.
3D 영화 제작 지원금을 받아서 제작했다면 두 대의 카메라를 리그(Rig)로 연결한 3D촬영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 맞다. '카파(KAFA)'에서 마련한 3D 영화발전기금을 지원 받은 세 번째 영화다. 김태용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가 첫 지원작이었고, <죽여주는 여자>는 <방 안의 코끼리>에 이은 세 번째 지원작이다.
아무래도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은데.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카메라가 한번 이동하는 데에만 20분씩 소모됐다. 카메라가 일반적인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3배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산에 끌고 올라가야 하는 건데 산에 올라갈 땐 정말 쉽지 않았다. 게다가 좁은 방 안에서 촬영할 땐 카메라가 너무 크다 보니 화각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평소 촬영 현장보다 스태프 수도 15% 가까이 늘었고, 촬영 시간도 더 많이 필요했고 3D 영상 컨버팅부터 색보정 작업, CG 작업 등의 후반작업도 더 복잡했다. 난제가 많았다.
트랜스젠더인 티나 역에 진짜 트랜스젠더를 섭외했다. 일단 아마추어 배우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가 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보니 남자배우들은 다들 클리셰 같은 연기를 하더라.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던 황마담처럼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느낌으로. 그래서 결국 수소문 끝에 티나를 찾았다. 처음으로 연기한다지만 30년 가까이 무대 생활을 많이 한 덕분인지 끼가 상당했고, 그래서 선택했다.
윤여정 씨와는 <여배우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에 이어 세 번째 작업이지만 극영화로 만난 건 처음이다. 지난 두 작품에선 항상 윤여정으로 나왔지만 처음으로 극 안에서 역할을 준 작품인데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양미숙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윤여정으로 연기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처음부터 윤여정 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는데, 그만큼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로 들린다. 사실 어떤 소재를 떠올리고 어느 배우랑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시나리오를 쓴 건 처음이다. 그만큼 내겐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 윤여정 씨가 평소에 냉소적인 농담을 잘하고 나 역시 그런 농담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농담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됐는데 그 의미를 물어볼 필요 없이 알아서 다 소화해냈다. 이를 테면 "계산 도와드릴게요"라는 종업원의 말에 "계산해줄 것도 아니면서 도와주긴 뭘 도와줘?"라고 혼잣말을 하는 장면처럼 내가 의도한 뉘앙스를 잘 파악하고 소화해버린다.
어떤 의미에선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통해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윤여정이라는 배우는 모든 역할을 윤여정스럽게 연기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는 배우도 있지만 윤여정은 항상 윤여정으로서 소화하는 것 같다. 그런데 <죽여주는 여자>를 하면서 힘들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런 처지에 놓인 이들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런 감정에 이입하게 되면서 우울해하고 힘들어했다. 그 당시 윤여정 씨 어머니께서도 좀 편찮으셨던 것도 본인에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고.
구강성교 신 같은 경우는 배우 입장에서는 고역스러운 촬영이었을 것 같다. 원래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자는 시나리오상에서 하의만 벗은 상태로 묘사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남자 배우에게 전신 탈의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는데 윤여정 씨 입장에선 그런 남자가 눈 앞에 떡 하니 앉아있으니까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서 그 신을 촬영하면서 테이크를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의 윤여정 씨는 지금까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화가 나 보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의 표정을 보면 정말 질색하는 표정이 현실감 있게 와 닿는데 그게 단순히 연기적인 표현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사를 놓을 때 주사기에 공기를 빼는 디테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테이크를 다시 간 뒤, 주사를 놓은 뒤 서비스를 할 때 살짝 위를 올려다봤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 테이크를 가겠다고 했다가 지금까지 들었던 윤여정 씨의 음성 가운데 가장 강렬한 소리를 들었다. "왜 이걸 다시 해야 하는데!"하면서 비명을 지르는데 정말 이를 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잔뜩 독기가 올라 있는 상황이라 정말 실제처럼 느껴지는 연기가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론 정말 미안했지만 결과적으로 감독으로선 '와, 이거 건졌다'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소영이 남자에게 놓는 그 주사의 정체는 대체 뭔가? 주사기로 성기의 정맥에 주사를 놔서 발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발기제 같은 건데 할아버지들이 실제로 맞는 거라더라. 실제로 남자 배우의 성기에 붕대를 감아놓고 주사를 가져다 대는 부분에 십자가를 그려놓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자살을 꿈꾸는 사람은 다 남자다. 반대로 소영은 마지막까지 살아서 여생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상대적으로 죽음을 갈구하는 남성들에 비해 더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다. 실제로 남편이 죽은 여자들보다 부인이 죽은 남자들의 삶이 더 빨리 무너지고 더 일찍 생을 마감한다더라. 아무래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공감대가 크고 연대의식이 있어서 함께 모여 생활하는데 능하지만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 아니면 잘 연대하지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가 된다. 생리학적으로도 여자들이 더 오래 산다. 평균 수명도 더 길고.
결말부에 등장하는 죽은 소영의 얼굴에선 종교적인 평온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렇게 얘기하는 분이 많더라. 굉장히 성스럽다고. 그녀가 일종의 천사 같고, 성녀 같고, 보살 같다고. 실제로 중국에서 관음보살은 자비의 신이기도 하지만 창녀들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계사에서 소영이 합장할 때 의도한 게 아니지만 그 뒤로 관음상 벽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홍콩영화제에서 <죽여주는 여자>가 상영될 때 중국어로 변환된 제목이 우리말로 <선녀관음>이었다. 그들이 소영은 관음보살 같은 여자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결말부의 교도소 신 이전에 이태원에서 소영이 연행되는 과정으로 영화를 끝냈다 해도 무리가 없는 느낌인데 그랬다면 영화에 대한 감상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다. 시나리오 초고에선 교도소 신이 없었다. 이태원에서 연행되면서 영화가 끝나는 거였지. 그런데 너무 쿨해 보이더라. 남루하게 살던 사람의 인생을 너무 쿨하게 다루는 거 같았고,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사족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의 유골이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인들과 함께 살아왔지만 원래부터 무연고자였고, 마지막에도 결국 혼자 남게 됐으니까. 그렇게 홀로 밥을 깨작깨작 먹어가며 여생을 살아가다 자연사한 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만을 남긴 그녀가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그녀의 죽음을 통해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는 개인의 자유와 죽음을 방조한다는 사회적 윤리 사이에서 물음이 남는 셈인데, 어쩌면 답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물음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서구에서는 일찌감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장례식 방식을 넘어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까지. 결국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도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 한다. 미리 수의 해놓는 것은 물론 영정사진 찍어놓는 것마저 불길한 짓으로 취급하고. 결국 의식 있는 사람들이 미리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면서 후손들의 고민을 덜어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어려운 문제다. 죽음 자체는 너무 두려운 일이니까. 사형수들도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 신발을 슬쩍 벗는다고 하더라. 신발을 다시 신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 몇 초라도 더 살아보려고, 그런 게 생인가 보더라.
고인이 된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서 의식을 잃었다는 뉴스 장면이 등장하고, 경찰 조사를 피해 조계사에 머물던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씨에 관한 플래카드와 경찰들도 영화상에서 목격된다. 시대가 하 수상하다 보니 심상찮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일단 조계사에서 촬영이 가능한 날짜는 단 하루였는데 그날 경찰들이 대치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도 촬영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영화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백남기 씨 뉴스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날짜가 2015년 11월경이었고, 그 당시 가장 이슈가 된 뉴스를 찾아보니 그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분위기를 가장 명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사건을 선택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라는 것이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타임캡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런 상황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인데, 어쨌든 이게 2015년 11월 14일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현실감을 주고 싶었다.
<인페르노>는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을 앞세운,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세 번째 탐정물이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의 로버트 랭던이 기호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중세부터 이어져 오던
종교집단들의 은밀한 광기를 추적해 나간 것과 달리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현대문명을 관통하는 인구과잉문제와 연관된 테러리즘에 맞선다. 어떤 의미에서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그가 아니어도 될만한 일까지
떠맡은 셈인데 그의 역할을 만들어주기 위해 동원된 건 단테라는 모티브를 통해 구상한 기호학적인 퍼즐이다. 그러니까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가 로버트 랭던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인페르노>에선 인위적인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의문의 사나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억상실증 상태로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가 품은 의문과 관객의 의문은 똑같이 제시된다. 결국 그가 기억을 회복하며 단테의 지옥도에 담긴
의미를 쫓아 피렌체와 베니스, 이스탄불을 누비는 과정에 동참하는 관객의 흥미는 그가 왜 이 사건에 휘말렸는가라는
물음표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인페르노>는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처럼 로버트 랭던을 탐정처럼 앞세운 지적인
추리극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미스터리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초반에 제시하는
물음표의 흥미는 중후반부에 다다라 싱거워지는데 아무래도 각본의 내러티브가 완급조절에 실패한 인상이다.
전반부가 정체불명의 물음표로 가득한 호기심을 잉태하는 장이었다면 후반부는 그 물음표의 장막을 벗긴 실체의 위압감을
증명해야 하는 장이다. 문제는 로버트 랭던이 고도의 지적 추리를 통해 추적한 적의 실체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영화를 지탱하던 의문들이 손쉽게 자기 손을 들어서 정체를 드러내듯 미스터리의
동력이 손쉽게 소진된다. 게다가 극의 향방을 전환시키는 결정적 존재가 자기 정체를 드러낸 직후 그 인물과
관련된 과거사를 제시하는데 그 순간 이 영화가 멜로를 지향했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감상적이라 영화의 지향점에 의문이 생길 정도다. 덕분에 영화의 서스펜스를 지탱하던 물음표의 패가 모두 다 열린 극 후반부에선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완전히 증발돼버린
듯해서 클라이맥스의 존재감 자체가 부재한 인상마저 준다.
한편 <인페르노>에서
탁월한 병풍 역할을 하는 피렌체와 베니스, 이스탄불의 풍경들은 아이맥스 카메라의 광대한 시선을 등에
업고 관광영화의 묘미를 극대화시킨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두오모돔과 조토의 종루 그리고 베키오
궁전과 우피치 미술관을 아우르는 피렌체부터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그리고 이스탄불의 하기스 소피아 성당과 예레바탄 지하궁전까지, 세계적인 유산이라 할만한 풍경이 아이맥스 카메라의 광대한 시선을 통해 중계되는 건 영화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그럴 듯한 볼거리를 이룬다. 물론 충분한 기회비용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월요일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건조대에 널어놓은 옷가지를 걷고 제 자리로 돌려보낸다. 그 말인즉슨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세탁기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생의 감각이란 대단한 업적보다도 평범한 일상의 반복을 통해서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빨래 같은 것. 그렇다. 내게 있어서 빨래란 정말 중요한 의식이다. 물론 양 팔의 힘줄이 드러나도록 빨래판으로 세탁물을 박박 문질러 빨아내는 의식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21세기이므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답게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여야지.
항상 토요일엔 빨래를 언제 돌려야 할지 생각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엔 세탁기가 적어도 두 번은 돌아가야 하므로. 수건은 소량 삶기로 한번. 여타의 옷들은 일반세탁으로 한번. 소량 삶기는 건조까지 포함해 적어도 2시간 반, 일반 세탁은 건조까지 포함해 대략 1시간 반. 가끔씩은 시간을 계산해 세탁기를 돌리고 외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외출해 돌아온 시간에 세탁기를 돌린다. 어쩌다 밖에서 보낼 시간이 늘어지게 되면 세탁기 속의 젖은 옷가지들이 상할 수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시간들, 이를 테면 외출하고 돌아와 씻고, 머리를 말리고, 이래저래 무언가를 정리하고 처리하는 집안에서의 시간을 보낼 때 세탁기가 따로 제 일을 하도록 시간을 배려해줘야 한다. 그저 돌아가는 세탁기를 지키며 눈치를 보고 싶진 않으므로. 번거롭지만 중요한 일이다. 치밀해질 필요는 없지만 정확한 타이밍을 놓치면 치명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빨래란 생을 다짐하는 의식과도 같다. 지난 일주일을 지워내고 다가올 한 주를 받아들인다는 마음의 준비 같은 것. 수영장에 뛰어들기 전의 준비운동 같은 것. 그리고 그렇게 빨래를 널고 나면 드디어 비로소 한 주가 끝났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생긴다. 그리고 바짝 마른 빨래를 개어 제 자리로 돌려보내면 드디어 비로소 한 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기분이 든다. 어쨌든 올해의 첫 빨래를 했고, 마른 옷가지를 정리했다.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됐다는 기분이 든다. 올해도 잘 빨고, 잘 널어 말려서 한 주 한 주를 잘 돌려볼 참이다. 그렇게 잘 살아볼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을지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자연스럽게 낡아가면서도 풍화되지 않는 활기를 지켜왔다. 그
활기에 새로운 감각이 수혈되고 있다. 을지로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굉음과 마찰음, 비좁은 골목을 민첩하게 누비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이른 아침 을지로의
시간은 피가 도는 혈관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흐른다. 6.25 전쟁 이후, 목재, 철물, 공구, 미싱, 타일도기, 조명
등 갖은 분야의 제조업자들이 자리를 잡고 반세기 동안 뿌리를 내린 을지로는 고목처럼 자리한 가게들의 숲과 같다.
모세혈관처럼 어지럽게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마다 손으로 직접 쓴 간판들이 이어진다. 그 간판
아래로 부지런히 오가는 발걸음과 바삐 움직이는 손놀림을 통해 을지로는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고, 구하지 못할 것도 없는 곳’이 됐다.
그런 을지로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작가들이
을지로에 둥지를 트고 작업을 개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유입으로 색이 바랜 거리에
새로운 활기가 채색되고 있다. 그런데 작가들은 왜 을지로를 찾았을까.
“작업실을 옮길 시기가 됐고, 더 큰 공간이 필요해서 찾다가 을지로로 오게 됐어요. 사실 을지로는 재료를 사러 자주 오던 곳인데 이곳에 작업실을 두게 되니 운송도 용이해졌죠. 따로 용달을 부를 필요도 없고 리어카만 끌고 가면 되니까요.” 지난
해에 이태원에서 을지로로 이전한 ‘길종상가’의 대표 박길종의
말처럼 을지로는 장르를 망라한 예술가들이 작품의 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 곳이다. 설치 작품이나
가구 제작 등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길종상가가 을지로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것도 그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인 염승일이 디자인 스튜디오 ‘플랫플래그(Flat Flag)’를 을지로에 연 이유도 동일하다. “원래 문래동과
이태원에서 작업실을 열었다가 을지로3가의 공동작업실에 들어간 뒤 재료 공급과 공정 작업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알게 됐고 개인 스튜디오를 열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았습니다. 공업지대가 가까운 곳에선 일반적인
사무실을 열긴 어렵지만 작품을 만드는 작가에게 터프한 환경은 문제가 안 되죠.”
재료와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은 새로운 영감을 부여하는, 창작의
기회비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다양한 재료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잘 모르던 재료를 알게 될 때고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생기는 거 같아요.” 박길종 대표의 말이다. 아트디렉터 염승일도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재료나 도구를 바로
수급할 수 있는 환경에 머무를 수 있으니 적용이 가능할 것 같은 소재를 접할 때마다 시도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그만큼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크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됐으니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이는 창작열을 한 뼘 더 늘리는 기회로
호환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을지로에서 거리감이란 그 자체로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이 된다.
을지로가 주는 거리감의 장점은 단순히 을지로 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서울의
중심지에 자리한 을지로는 어디서든 가깝게 올 수 있고, 어디나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인쇄소인 코우너스는 지난 해 소공동에서 을지로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실에서 디자인과 인쇄를 하지만 재단, 제본, 기타 커팅 등의 후가공은 거의 충무로에 있는 인쇄골목에서 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소공동에 있을 땐 충무로까지 택시를 타고 오갔지만 을지로에선 상대적으로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죠. 게다가 종이를 배송할 때도 가까운 지역은 퀵비를 받지 않고요. 여러
모로 비용이 절감된 셈이죠.” 코우너스의 공동대표 조효준의 말이다. 또
다른 공동대표 김대웅이 말을 보탰다. “아무래도 충무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찾아가는데 부담이
덜한 거 같아요. 그래서 후가공의 종류가 다양하니 작업에 어울릴만한 업체를 찾기 위해 예전보다 많이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플랫플래그의 염승일도 비슷한 장점을 느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레이저 커팅이나 3D 프린팅을 활용하고 있는데
을지로와 가깝기 때문에 여러 모로 좋습니다.” 결국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중심에서 오늘날까지 다양한 산업을
품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켜온 을지로라는 거점 자체가 예술가들을 위한 보고가 된 셈이다.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
개인적으로 을지로를 개척한 작가들도 있지만 공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을지로에 정착한 작가들도 있다. 지나 2014년 서울특별시 중구청의 시장경제과에선 을지로의 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던 중 을지로의 공가를 조사했다. 그리고 이런 공가들의 활용방안을 구상한 뒤 업무계획수립을
세운 것이 2015년의 일이었다. 중구청의 지원을 통해 비어있는
건물을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파악된 공가의 건물주들과의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자신의 공간을
얻지 못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개인의 창작열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작업실을 제공하고 이를 지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로 모색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몇몇 건물주가 이에 호응했다. 중구청에선 건물주를
설득해 절반으로 조정한 월세의 10%만을 작가에게 부담했다. 보증금과
나머지 90%의 월세는 중구청에서 보장하는 방식으로 2년
계약을 보장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다.
그런데 중구청에선 왜 을지로의 공가를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생각을 했을까? “을지로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재료나 기술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이라 그들이 선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 이런 풍경이 사라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그래서 예술과 연계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가 용이한 부분이 있으니 예술가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이라 판단했어요.” 중구청 시장경제과 이하숙의 설명처럼 을지로에 예술적인 숨을
불어넣고 새로운 활기를 일으키겠다는 취지에서 추진된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리고 2015년 7월, 프로젝트의 1기 멤버의 입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현재 2기 멤버까지 입주하며 다섯 개의 공간을 확보했다.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예술활동을 전시하는 예술창작공간 ‘슬로우 슬로우 퀵 퀵’을
비롯해 교육대학원에서 만난 미술학부 전공자 7인이 함께 뜻을 모아 감상 교육이나 체험프로그램을 통한
공동체 중심의 미술사업을 개진하는 ‘R3028’ 그리고 가구와 생활용품 제작 스튜디오인 ‘산림조형’과 을지생산이라는 브랜드를 육성하고자 하는 금속공예 스튜디오
‘서클활동’ 등 다양한 결을 지닌 젊은 작가들이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라는 지붕 아래에 자리를 폈다.
가구와 생활용품을 디자인하는 산림조형의 소동호 작가는 이 프로젝트의 1기
멤버로서 어느덧 을지로에서 1년을 보냈다. 학생 때부터 찾았던
을지로에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려던 찰나에 때마침 프로젝트 공고를 알게 됐고 지원하게 됐다는 그는 을지로를 찾은 여타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접근의 용이함과 재료 수급의 수월함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다양한 기술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습니다. 바로
옆에 흔히 시보리라고 말하는, 냉면기와 같은 원형판의 형태를 찍어내는 사출 공정을 하는 집이 있는데
요즘의 대량생산 방식과 다른 수공업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기술을 활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아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기회에 숙련된 기술자의 도움을 얻어 보다 효율적인 작업방식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서울 안에서 금속공예 재료 수급이 유일하게 가능한 곳인 을지로를 학생시절부터 자주 찾아서 잘 안다는 ‘서클활동’의 조민정 작가 또한 을지로의 전통적인 기술자들과의 협업
구조를 큰 장점으로 꼽는다. “금속 공예 특성상 기술자와 함께 가성비를 살릴 수 있는 협업이 가능할
거란 판단을 했어요. 그리고 작은 스튜디오에선 큰 공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제품 제작이 쉽지 않은데
주변에 큰 공정이 가능한 제조사들이 있으니 시제품 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죠.” 오랜 역사와 함께
기술을 연마해온 숙련공들이 즐비한 을지로는 젊은 작가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창작열을 완성도 있게 구현해줄 원숙한 파트너와의 협업을 기대할 수 있는
이상향인 것이다. 물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오랫동안 생업의
터전을 지켜온 기술자들을 설득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과정이 단박에 이뤄질 리 없다. 그리고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서클활동의 이건희 작가 또한 그렇다.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협업을 해봐야 가능성이 확대될 것 같아요. 한편으론
숙련된 기술자들의 작업 방식을 관찰하는 과정이 현장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중구청에선 매년 을지로 일대의 조명 업체들과 연계한 ‘을지로 라이트웨이’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에도
11월에 어김없이 열리는데 을지로 디자인 아트 프로젝트에 입주한 작가들도 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의무감에 짓눌리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웠지만 작가들은 오히려 이를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보다 적극적이었다. “처음에는 의무감이 들었지만 점점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찾게 되는 것도 같아요.” 실제로 소동호 작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을지로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을지로 버스 정류장에 타일 도기 특화정류장 디자인에 참여했고, 을지로 투어 프로그램인 ‘을지유람’의
지도 디자인 작업을 도맡기도 했다. 소동호 작가와 함께 을지3호를
공유하는 이지성 작가는 더 큰 그림을 기대하고 있다. “을지로 기반의 창작자가 늘어난 만큼 그들을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올해 라이트웨이에서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문분야가 각자 다른 만큼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활동을 조금씩 해나가야죠.”
을지로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활동해온 정원석 작가가 국내로
들어와 스튜디오 ‘메이커원(Makerwon)’의 자리를 을지로로
낙점한 것도 접근성 때문이었다. “금속과 전자 관련해서 재료 수급이 용이한 동시에 매뉴팩처링이 가능한
곳은 을지로뿐이었어요. 영국에도 이런 곳은 없어요. 서울처럼
고도로 발달한 도시 한가운데에 매뉴팩처링이 가능한 지역은 전세계적으로 이곳뿐일 거예요.” 그의 말처럼
을지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풍경이다. 언뜻 보면 낡고 황폐해진 슬럼가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성을 지닌 영토를 기반으로 켜켜이 쌓여온 기술의 집합소. 창작적인 영감을 부추기는 이야기와 창작을 구체화시키는 노하우가 자리한, 완벽한
유산이다. “일본 요꼬하마 시의 상점가인 모토마치는 장인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에요. 모토마치에서 만든 제품들은 도쿄의 유명한 상점가인 긴자로 유통되는데 그만큼 오리지널이라 인정 받는 브랜드가
된 셈이죠. 을지로로 그렇게 지역을 대변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하숙 씨의 바람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와 같은 꿈을
꾸는 예술가들이 이미 을지로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라는 이름으로, 가능한 미래다.
(MorningCalm 09 SEPTEMBER 2016 'Contemporary Korea')
말을 하다 보니 노래를 하게 됐다는 이랑은 그림도 그리고, 연출도
하고, 글도 쓴다. 낭랑한 목소리에 담긴 범상치 않은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부서졌다. 유쾌했다.
내일 해외에 나간다면서요?
일본에 가요. 앨범이
나오거든요. 1집 <욘욘슨>과 2집 <신의
놀이>가 한꺼번에 9월에 발매돼서 현지 레이블과 디자인
상의하고, 인터뷰도 해요. 여행도 갈 거고요.
<신의 놀이>는 4년만의 신보에요. 초판
1천장이 다 매진됐다던데.
아마 지금 인쇄 중일 거예요.
그런데 CD 대신 다운로드 코드번호만 있더군요.
앨범을 제작한 음반사 ‘소모임’ 대표가 밴드도 하는데 1집 앨범을 내면서 패키지에 공을 많이 들였대요. 그런데 막상 아무도 CD를 안 듣더란 거에요. 그래서 제 신보는 그냥 CD 없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음원서비스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열심히 만든 책이 너무 예쁘니 다들 책을 사서 만져봤으면
하는 마음에 미뤘죠. 음원을 다운 받으면 음반을 사지 않을 테니까 책 자체가 있는지도 모를 거라서.
아무래도 음반보다는 책을 한 권 산 기분이에요.
1집처럼 손 글씨로 가사집을 써볼까 했는데 그러기엔 가사가 길었어요.
그래서 타이핑하고 보니까 글을 더 붙이고 싶어졌고, 가사에 어울리는 글을 구성하다 보니
책처럼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인 데이비드 실즈의 양장본 원서와 커트 보네거트의 얇은
에세이를 제시하면서 이런 걸 만들고 싶다고 하니 대표님도 동의하면서 그렇게 결정됐어요.
작곡가들은 악상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악곡보단 가사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군요.
원래 악상 같은 걸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웃음). 항상 일기를 고르는 걸로 노래 만들기를 시작해요. 노래를 처음 부를 땐 음이 거의 없어요. 혼잣말하면서 기타를 치는
식이죠.
구어체 가사의 말맛이 느껴져서 장기하의 여자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반야심경 같기도 하고(웃음). 말 자체에 있는 음악적 리듬이 중요하죠. 노래를 한다기 보단 말을
좀 더 크게 하는 느낌이랄까요? 창법 자체를 생각해본 적도 없고.
처음 음반을 낸 계기가 궁금하네요.
집에서 만든 데모 음원을 싸이월드에 올렸더니 제 친구가
소모임 음반사 대표님께 소개시켜줘서 미팅을 했는데 제 음반을 내고 싶어 했어요. 사실 소속 뮤지션 하나
없는 곳이라 음반을 낼 수 있다는 근거가 없었는데 보는 눈이 있더라고요. 노래에 재미있는 구석이 있지만
이건 웃긴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슬픈 사람의 노래라고. 사실 제가 슬플 때만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신의 놀이>에선 신과 죽음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마치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 느껴지기도 하고.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남들 위에 서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싶나 봐요. 심지어 제 자신도 관전하듯 보거든요. 스스로를
이랑이라는 캐릭터로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이랑이란 캐릭터를 관찰하는 동시에 이랑이란 캐릭터로서
고민도 하고.
1번 트랙인 ‘신의 놀이’에는 ‘어쩌면
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는 지도 몰라’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감독으로서의 철학이 느껴졌어요.
한예종에서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 수업을 들었는데 카메라
앞에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은 연출이라며, 그게 신의 연출이라 하셨어요. 결국 감독은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조종해 자연스럽게 조작하는 역할이잖아요. 남보다 위에 올라서 있는 느낌인데 저는 이런 느낌을 즐기는 거 같아요. 이번에
웹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들>을 4회 정도 연출하면서 ‘신브레이크다운’이란 걸 처음 해봤는데 파트별로 20여명의 사람들이 제가 쓴 대본을
두고 둘러앉아 질문하는 거에요. 소품의 형태나 음악 등 준비할 것들을 물어보고 제가 대답만 하면 다들
알아서 준비해요. 배우들은 연기하고, 소품팀은 소품 챙기고, 연출부는 연출과정을 일일이 짚어주고, 촬영팀은 콘티까지 다 짜서
촬영하고, 끝나면 편집기사님이 편집하고, 믹싱기사님이 믹싱하고, 솔직히 제가 할 일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 작품으로 나가잖아요. 결국 이 모든 걸 제가 컨트롤하는 셈이니 신기한 위치인 거죠.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의 에피소드 연출을 제안했던 윤성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게임회사
여직원들> 연출에도 참여했다던데 윤성호 감독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한예종에 와서 수업을 했어요. 친해질 기회가 생겼죠. 짧은 콩트를 찍는데 도와달라 그래서 대본
외우고 연기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제 졸업작품이 재미있다고 칭찬하더니 <출출한 여자>를 같이 하자고 해서 참여했고, <게임회사 여직원들>도 하게 됐죠.
아무래도 주변에서 뭔가를 제안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많은 걸 보여주고 말해주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지금 이걸 이렇게 할 거야’란 식으로. 조금 더 발전되면 또 얘기하고. 노래 만들기 시작했을 때도 매일
학교 식당 앞에서 불렀어요. 당시에 학교 작업실에서 살 때였는데 방에서 부르면 심심하니까 앰프 갖고
나가서 부른 건데 애들도 좋아해 주니까. 그렇게 공짜로 많이 풀었어요.
7번 트랙인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처럼 느껴지는데 그 위로의
대상엔 본인도 들어갈까요?
첫 앨범을 내고 인터뷰를 한 덕분에 몇몇 매체나 브랜드랑
친분이 생기면서 공짜 선물을 받거나 행사에 초대받는 경험을 했는데 그게 무서웠어요. 쉴새 없이 선물을
받고, 매일 같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무감각하게 받고, 쓰고, 자랑하면서 그게 이상하다는 걸 잊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노숙자도 무섭거든요. 표정이 없잖아요. 질문하는 걸 까먹은 사람 같아요.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고, 수치심조차 없어진 사람. 결국 그런 두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남들과의 차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가 위로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인 거죠.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지?’라며 누군가와의 차이를 생각한다는 건 최소한 자기 위치에 대한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는 사람이니까,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아서 스스로를 연민하는 그런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거에요.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나 봐요.
맞아요. 한번은
파티에 초대됐는데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무섭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언젠가 써먹을 수 있는 장면이라며 스스로를 관전하고 있고(웃음). 어쨌든 그런 걸 즐기다가 그런 기회가 사라졌을 때의 우울감을 예측하니까 정신차리는 거죠. 본연의 모습도 아닌데 본래 갖고 있던 아름다움마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게 싫어요. 결국 그런 상실감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처지를 비난하다 자살할 수도 있잖아요.
유명세가 오히려 결핍이 된다면 아이러니하겠네요.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제 친구한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좋아요’ 같은 거 더 받으려고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지금 할만한 일을 하라고. 저는 유명해지고 싶어한다는 그런 마음이 제일 무섭게 느껴져요. 아마 유명한 상태가 되면 유명하다는 느낌조차 무감각해질 거에요. 돌이켜보면
지금이 제일 유명한 때일 수 있잖아요. 가장 유명한 때인데 정작 유명한 걸 즐길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평범한 사람’에서
등장하는 멋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조금 유치할 수 있는데 제가 모델 김원중을 좋아하거든요. 김원중 사진을 보다가 김원중은 거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생각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도 멋있을 거 같고, 자기 전에도 멋있을 거 같고(웃음).
8번 트랙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제목 자체가 비참하면서도
결연하게 들려요. 경험이 반영된 노래일까요?
경험에서 가져온 것도 있죠. 제가 겪은 미움이라던지, 가족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 등 제 경험을
확장한 부분들이죠. 그걸 노래로 하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져서 생기는 사건은 제대로 설명해도 왜곡되고 가십으로 소비되지만 쓰고 부르는 건 이야기로 불리니까 나한테 생긴 일을 일일이 알진 못해도
그런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 받는 것보다도
노래를 해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일 같아요.
음악적인
평가에 대해서 신경 쓰이진 않나요?
보긴 하지만
솔직히 신경 쓰이진 않아요. 저는 결과보단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편이기도 하고요. 책도, 만화도, 대본도
막 끝냈을 때 혼자 기뻐서 울고 난리가 나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된 거 같아서 셀카도 찍고(웃음). 그런 과정이 결과물을 보는 것보다 재미있어요. 그래서 완성된 곡을 다시 부르는 것도 솔직히 재미가 없어요. 오늘 <게임회사 여직원들>도
마지막화까지 공개됐는데 역시나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그래서 신경
쓰이진 않나 봐요. 그나마 <신의 놀이>는 책을 읽으면 노래만 듣는 것보단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런 평가가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진 않나요?
2년 전부터 지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찍어왔는데 일본에 사는 친구 어머니가 베틀 짜는 모습도 찍었어요. 그리고 며칠 전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베틀을 짜는 모습을 마임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했어요. 다양한 직업군의 행위를 촬영한 것을 바탕으로
무용을 만들었죠. 그래서 베틀을 짜던 친구 어머니에게 그 뮤직비디오를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덕분에 이런 걸 만들었다고. 그럼 기뻐하실 거 같거든요. 그런 게 제겐 재미있는 일이에요. 수만 명이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보다도.
(ELLE KOREA SEPTEMBER 2016 NO.287 'ELLE INTERVIEW')
김지운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다룬 영화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조금은 의아했고, 한편으론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지운 감독이 아픈 역사를 헤집으며 뜨거운 공분을 부를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마음을 식히고 바라볼 수만은 없을 듯한 시대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김지운 감독의 작품 가운데 이례적인 한 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궁금했다. 그리고 <밀정>이 공개됐다. 아마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온도로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다. 어쩌면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다단하고 모호한 심리를 품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다. 섞이지 않는 냉기와 온기가 등을 맞대고 한 몸을 이룬 듯한, <밀정>은 그런 영화다.
개봉 첫 주에만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압도적인 흥행세인데 아무래도 대자본이 투자된 작품이니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뭔가를 과시하고자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투자된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된다는 건 중요하다. 물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겠다는 욕심으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지만 차기작을 연출할 기회를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상업적 성과는 거두길 바란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자격을 인정 받기 위해선 대중과의 접점을 계속 증명해야 하니까.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나 배우들의 헌신과 열정을 봐온 입장에선 그들에게도 성과로 여겨질 만한 결과를 책임지는 감독이 되고 싶다. 결국 상업적인 성공이 그들을 위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어느 정도 흥행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3년 전의 인터뷰에서 "항상 지금의 모순이나 괴로움에 대한 반대급부가 차기작에 대한 욕망으로 연결된다"라고 말했다. <밀정>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또 하나의 결과물일 텐데. 전작의 모순과 욕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언제나 현재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진전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인다. 다만 영화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해명의 강도가 높아지니 해당 작품이 완전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아직도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항상 아직 대표작이 없다고 말해왔는데 <밀정> 역시 대표작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 거 아닌가?(웃음) 쉽게 얘기해서 내 역량이 내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차이를 보는 게 생각보다 괴롭다. 그래서 내 영화를 편하게 보기도 힘들다. 결국 내 역량과 내 눈높이의 차이를 최대한 좁혀나가고 일치시켜서 내 영화를 남의 영화처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경지까지만 갈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든 의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밀정>의 장르가 '콜드 누아르'라고 직접 언급했는데 '누아르'라는 장르명을 '콜드'라는 단어로 수식하는 의도가 보다 중요해 보인다. 일단 비정하고 냉혹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바탕에 둔 영화라는 점에서 '콜드'라는 단어의 온도가 적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누아르 세계관 특유의 명암에는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데 <밀정>은 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누아르이길 바랬다. 그래서 의상을 비롯한 전반적인 미장센에 블랙이나 블루 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가운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다.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감추거나 눌렀기 때문에 영화의 감정 또한 차갑게 느껴질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의열단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서사에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뜨거움이 발생하더라.
<밀정>은 <악마를 보았다> 이후로 각본가가 아닌 각색가로 이름을 올린 두 번째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까닭이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의열단을 중심으로 읽게 됐다. 그래서 <암살>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스파이물의 느낌이 보다 강한 정도? 그런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정출(송강호)이 크게 들어왔다. 그래서 <암살>의 동어반복이 아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정출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나?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이라는, 이미 정체성부터 복잡한 인물이다. 그 시대의 모순이 집약된 인물이라 느꼈고, 이정출을 이야기하는 건 결국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사실 이정출의 심경 변화가 개연성이 없다는 평을 보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인물 자체가 시대적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색주의자 특유의 모호함이 개연성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선 대사나 상황을 비롯한 플롯으로 이정출의 선택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황옥 경부 폭탄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실존인물이 언급되거나 등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팩션이라 할 수 있지만 허구라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이야기다. 의열단은 3.1 운동 이후인 1919년도에 창립됐고, 1920년 초반에는 가장 전위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중반부터 세력이 약화됐다. 일제가 무서워했던 단체였던 만큼 집중적으로 와해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정>은 1923년도를 배경에 두고 있지만 정확한 시간 연대에 일치시켜 영화를 만들면 영화적 소재가 무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192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큰 덩어리 삼아 시간을 해체하고 재조합했다. 그래서 사실 각색 과정에서 "와해된 의열단을 재조직하는 걸 보면 정채산(이병헌)이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히가시(츠루미 신고)가의 대사가 있었는데 꼭 필요할 거 같진 않아서 삭제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정출이 김장옥(박희순)에게 자수를 권유할 때 그가 공적을 쌓기 위해 회유한다기보단 진심을 다해 살아남으라고 호소하는 인상이라 이정출의 진짜 감정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진심인 거 같지만 그것이 김장옥의 편에 선 진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를 적으로 만나 눈 앞에서 자결하는 모습을 본 뒤 그의 인명부를 들여다 보는 이정출의 표정에선 복잡한 감정이 읽힌다. 그것만으로도 이정출의 감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고, 거기서부터 이정출의 내면에 겹겹이 쌓인 층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히가시를 통해서 김장옥과의 친구 관계가 환기되고, 의열단에 침투하기 위해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했는데 거기서도 김장옥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이정출이 의열단을 돕게 되는 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모순과 혼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회색주의자로서의 경계는 여전한 거다. 그러니까 생존에 대한 철학을 진심으로 피력하지만 결국 변절자의 회유일 수밖에 없는, 이중성에 갇히는 셈이다. 결국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정출을 보자면 그가 면죄부를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이정출은 결국 의열단의 조력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그가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원처럼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극 초반에 이정출은 김장옥에게 "너는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냐?"고 묻는다. 그리고 극 말미에 김황섭(남문철)에게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소?"라고 묻는다. 결국 이정출은 끝까지 회색주의자로, 허무주의자로 남아있는 거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변화시킨 사람과의 약속을 완수하는 것뿐이지. 어떤 경험을 통해 마음을 편하게 둘 수 있는 쪽을 선택했고,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릴지 결정한 거다. 그렇게 정채산의 말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게 가장 무서운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신의 감정에 손상을 입힌 히가시에 대한 복수극이기도 하다. 그래서 폭탄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제의적인 의미를 지닌 음악인 'Bolero'를 사용했다. 대의적인 임무를 수행한다기보단 스스로를 위해 축배를 드는 이정출의 심리를 음악으로서 설명해주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의 단호한 신념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희생이 상대적으로 숭고해지는 인상이기도 하고. 사실 희망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내던져서 희망을 찾고 세상을 전진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 자신부터 조국을 되찾겠다고 목숨을 던지고, 모진 고문을 견딜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더라. 결국 뒤늦게야 이 사람들이 굉장한 로맨티스트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에 스스로까지 내던질 수 있는 불나방인 거다. 그러니 결국 뜨거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밀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무래도 이정출과 김우진과 정채산의 삼자대면 신이었다. 적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란 게 진심을 바탕에 둔 호소라는 점은 어떤 의미로는 너무 뜻밖이라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정채산이 김우진과 이정출의 이야기를 몰래 귀담아 듣다가 이정출을 사람으로서 만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 판단한 셈이다. 그리고 술은 남자들의 세계를 잇는 최선의 매개니까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다. 그런 선택을 본 관객 입장에선 정채산이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내가 신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송강호와 이병헌의 카리스마와 그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는 공유의 존재감이 삼위일체를 이루니 인물들의 관계 변화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다.
동시에 긴장감이 폭발할 법한 상황에서 오히려 가장 극적인 유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처음으로 이정출을 의열단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신이란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굉장히 과감한 연출 방식을 선택했다고 평할 수 있다. 그 신의 목표는 세 사람 사이에 형성된 냉기가 급속도로 해빙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고도의 수싸움을 펼치는 장면이란 점을 이해시키고 그런 관계를 설득력 있게 납득시켜야 하지만 논리적인 방식으로 보단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세 사람이 자리한 그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이병헌은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두 주연배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밀정>에서 마지막에 캐스팅된 배우가 이병헌이었다. 심지어 상해에서 촬영을 시작했을 때까지도 캐스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웃음) 불안하지 않았나? 굉장히 불안했다. 그래도 믿음이 있어서 기다렸는데 결국 그 믿음이 중요했던 것 같다. 정채산도 결국 이정출을 믿어서 성공하지 않았나.(웃음) 나 역시 믿고 기다린 덕분에 그 효력을 봤다.
하시모토(엄태구)가 처음 등장해 일본어로 말을 할 땐 당연히 일본인 경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출과 조선말로 대사를 하는 걸 보고 창씨개명을 한 조선인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영화상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실 편집 과정에서 히가시와 하시모토의 대화 장면이 하나 삭제됐다. 히가시가 하시모토에게 이정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서 "아, 자네도 조선인 출신이지?"라고 긁으니까 하시모토가 자신의 출신성분을 부정하는 답변을 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의주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고, 자신은 완벽한 일본인이라는 식으로. 아무래도 그 장면이 삭제돼서 그의 출신 성분을 명확히 대변하는 신이 사라진 셈이다.
하시모토의 출신 성분을 아는 게 꼭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그가 조선인 출신의 일본 경찰이라면 상대적으로 동일한 신분인 이정출이 친일파로서 정체성조차 얼마나 얕은가를 대비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시모토를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로 설정했다. 같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임에도 성질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의지와 신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차이가 이정출을 밀어내는 동력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하시모토 역을 맡은 배우 엄태구는 <밀정>의 발견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주로 과묵한 역할을 맡아온 배우였는데 <밀정>에서의 하시모토는 대사량이 상당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를 캐스팅한 배경이 궁금했다. 사실 엄태구는 내가 생각했던 하시모토의 이미지에 가까운 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봤을 때 나를 전율시키는 에너지가 있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온전한 기운 덩어리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 기운이 하시모토에게 더 적합해 보여서 결국 엄태구를 선택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이 있더라. 한번은 촬영장 스튜디오 구석에서 감정에 몰입하면서 의식을 치르듯이 혼자 대사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배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엄태구를 만나기 이전에 구상했던 하시모토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건장한 육체와 말끔한 인상을 가진 인물을 떠올렸는데 기존 배우로 예를 들자면 주지훈 같은 이미지였다. 상대적으로 엄태구는 마르고 빈약한 느낌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이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예상하기 힘든 악질의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내가 연상했던 기존의 이미지는 너무 전형적인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더라.
<밀정>은 배우 송강호와 함께한 네 번째 영화다. 연출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과 두 번째 연출작인 <반칙왕>에 출연했다는 점에서 감독 김지운과 배우 송강호는 함께 성장한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영화가 활발해질 무렵에 함께 머리가 컸으니까. 사실 내가 연출한 전작들을 자주 보진 않지만 간혹 볼 기회가 생기면 저럴 때도 있었구나 싶긴 하다. 아무래도 그때는 눈높이와 역량의 차이가 더욱 컸기 때문에 훨씬 더 절망적이었을 거다.(웃음)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송강호라는 배우는 일관성 있는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결 같다. 프로로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은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제 역량을 가장 잘 드러낸 여자 캐릭터란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밀정>은 기본적으로 두 남자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한 남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연계순은 두 남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로 봤다. 처음에는 신인 배우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확장되면서 신뢰감을 줄만한 배우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밀정>에서 압권이라 여기는 부분은 연계순의 기차역 액션 신이다. 기차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연계순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모습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이 전해지지만 흔들리지 않는 위엄이 느껴지는 동시에 맵시도 산다. 결국 그 장면에서의 연계순이 의열단 그 자체를 보여준다. 내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여성 캐릭터로서 대상화되고 있다는 인상이 남기도 했다. 사실 뒤늦게 반성한 지점이 있다. 기차에서 하시모토를 발견한 연계순이 옷을 풀어헤쳐 가슴골을 드러내고 담배를 피우는 건 약국에서 하시모토를 마주쳤을 때의 단정한 차림새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해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장르적 클리셰인데 뒤늦게 그것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힌 설정이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성찰 없는 인용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반성하게 됐다.
<밀정>의 의열단 단원들은 자기 신념을 뜨겁게 발화하고 웅변하는 인물들이다. 사실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들의 인물들은 명확한 신념을 따르는 인물들이라기보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 방침을 정하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밀정>은 김지운이라는 감독의 영화 안에서 새로운 태도를 발견하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밀정> 이전까지 내가 영화를 대하던 태도는 '세상이 이렇게 흉측하고 힘들고 어두운데 뭐가 저렇게 밝고 즐겁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어둡고, 끔찍하다 보니 영화에서까지 실패한 역사를 말하고 다루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다루는 인물의 태도까지 크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실패한 역사라 해도 그걸 딛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밀정>과 관련은 없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게 되는 현실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전진해 왔다고 믿었던 세대로서 처음으로 시대가 퇴보한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의 충격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클로즈업 신이 상당히 많다.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이 <밀정>의 주요한 미장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표정의 서사로 읽혀지길 바란 영화였던 만큼 인물을 타이트하게 촬영한 신들이 많다. 인물의 표정을 통해 극의 무드가 전달되지 않으면 서사도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은 모니터로 볼 때는 완급조절이 잘 되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 힘들어서 후반작업으로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좀 더 뒤로 빼서 거리를 두고 찍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과정에서 컷의 사이즈를 조절해 표정을 좀 더 채운 부분들도 있다. 다행히도 배우들의 표정이 좋아서 의도를 잘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경찰에 의해 의열단원들이 하나씩 척살당하는 신이야말로 <밀정>에서 가장 뜨겁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인데 그 순간에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 'When You're Smiling'이 흐르면서 찬물을 쫙 끼얹듯 감정의 온도를 확 가라앉히는 느낌이었다. 극후반부의 'Bolero' 역시 극적인 상황과 역설적인 감상을 준다는 점에서 유사한 장치적 역할을 하는 느낌이고. 일종의 온도 조절기 같은 역할이었다. 사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사진과 음악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 편인데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 'When You're Smiling'을 비롯해 <밀정>에서 등장하는 음악들은 모두 영화를 제작하면서 수집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리고 모두 다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음악들이었다. 슬라브 무곡은 1900년도에 유행하던 음악이었고, 'Bolero'도 1920년대 초에 발표됐고, 스윙재즈도 192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193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감미로운 스윙재즈 넘버가 동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식민지배를 받는 이들에겐 향유할 수 없는 박탈감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의열단이 척살당하는 신에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를 얹었을 때 비극성이 더욱 명징해진다고 느껴졌다. 이정출의 고문 신에서부터 넘버가 흐르기 시작해 경성에 잠입한 의열단이 소탕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만약 그 넘버가 없었다면 감정이 넘쳐서 신파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거다.
대부분의 스코어 넘버들은 짧고 간결한 음을 초시계처럼 빠르고 일정하게 반복함으로써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한다. 반면 컷의 호흡에는 대체로 여유가 있어서 컷 전환의 속도는 스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한 인상이라 역설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컷의 긴박감보단 공기의 긴박감을 통해 감상을 조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스몰 액팅'을 요구했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다른 속셈을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표정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주앉은 상대방이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포착하고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 받는 시선 처리 등을 보여주기 위해 컷의 호흡을 최대한 안배했다. 대신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내는 성질의 악기들을 활용한, 인더스트리얼한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외부에서 유입된 소음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주듯이, 그런 성질의 음악이 영화적 상황을 보다 몰입하도록 만들 테니까.
타이틀 시퀀스와 극의 최후반부를 제외하면 페이드 아웃을 통해 신을 전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디졸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신을 전환할 때조차 프레임 공백을 없애고자 애쓴 느낌마저 든다. 전통적으로 디졸브를 활용할 땐 이전 신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밀정>에서는 앞선 신의 긴장감을 다음 신까지 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옵티컬 디졸브보다 CG 디졸브를 많이 썼다. 예를 들면 김우진의 얼굴에서 정채산의 뒷모습으로 카메라가 패닝할 때 그 위로 이정출이 탄 기차 이미지가 밀고 들어오고, 이정출이 하시모토와 하일수가 나간 방 안의 창문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상념에 잠길 때 그 뒤로 자동차 불빛이 쭉 들어온다. 이게 다 CG로 작업한 디졸브인데 이렇게 그림들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긴장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전적인 느낌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성취감도 있었다.
열차 신은 <밀정>에서 최상의 스펙터클과 최고조의 긴장감을 제공하는 신이다. 그런데 원래 시나리오에선 없는 장면이었다고 들었다. 각색 전 시나리오에서의 열차는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싣고 가는 운송수단에 불과하다. 의열단원들은 압록강을 건넌 뒤 열차에서 내려 기생으로 변장해 인력거로 옮겨 탄다. 신의주의 부유층들이 기생들을 불러 연회를 열곤 해서 기생으로 변장하면 검문을 통과하는 게 용이했다고 한다. 실제로 독립단체가 국내에 잠입할 때 활용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 지점에서 영화적 긴장감이 뚝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열차를 운송수단 이상의 극적인 무대로 만들고 싶었고 각색을 통해 지금의 열차 신을 만들었다.
비좁은 열차의 제한된 동선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전개되는 신을 설계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잘하는 부분 중 하나라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인물의 동선이 제한되는 열차에 모든 상황을 때려 부어서 두 인물의 감정선을 극대화시켰다. 김우진과 이정출을 부조리한 상황으로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내달리는 열차가 예측하기 힘든 시대성을 대변하는 공간이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상 영화의 하이라이트도, 주제도 다 거기 있다. 그 모든 것을 부어 넣고 가열시켜서 끓는 점이 됐을 때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형태를 통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열차 신으로 촬영된 분량은 40여분이지만 신의 절반 정도를 편집해 지금의 분량이 남았다.
그렇다면 감독판을 추가 개봉해도 좋겠다. 그러기엔 편집할 시간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인랑>을 미뤄왔는데 이젠 정말 빨리 해야만 한다.
오래 전부터 연출작으로 언급됐던 <인랑>이 드디어 <밀정>의 차기작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하는 건 처음일 텐데 워낙 유명한 원작이니 부담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너무 안 풀려서 힘들다.(웃음) <인랑>은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공유한 허무주의적인 정서로 점철된 세계관이라 원작의 무드를 최대한 살려서 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원작을 대변하는 주요한 요소들만 남기고 완전히 뒤집어볼까 고민 중이다.
<인랑>에서 보존하고자 하는 주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강화복의 형태나 인랑이라는 비밀 스파이들의 암투 그리고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성 같은 것이다. 정말 뻔뻔하게 이것만 가지고 가볼까라는 고민도 있다. 사실 너무 오래 끌어온 프로젝트인데 이젠 정말 해야 한다. 지금 생각으론 내년 3~4월쯤 크랭크인에 들어갈 것 같다.
<덕혜옹주>라는 제목과 허진호라는 이름을 한 줄에 넣고 보니 어딘가 낯설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멜로라는 장르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던 그가 롤타이틀 영화를, 실화를 바탕에 둔 시대극을, 그리고 멜로가 아닌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덕혜옹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허진호 감독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를 매단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는 긴 시절의 고민을 건너온 영화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사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행복>(2007) 이후로 중국에서 <호우시절>(2009)과 <위험한 관계>(2012)을 만든 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와 4년 만에 <덕혜옹주>를 발표했다. 오랜만에 한국영화를 촬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별한 소회가 있었을까?
디지털로 찍은 건 <덕혜옹주>가 처음이다. 중국에서 <위험한 관계>를 촬영할 때만 해도 대작은 필름으로 찍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디지털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현장에서 나름대로 적응하긴 했지만 확실히 낯설었다. 그리고 항상 현장은 낯설게 느껴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프닝 시퀀스에선 정통사극 톤인데, 타이틀 시퀀스 이후부터 일본을 배경으로 근대화된 이미지가 펼쳐지니 전후가 분리된 영화처럼 보인다. 사실 사극 톤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간성의 차이가 두드러지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말투나, 복장도 그렇고.
솔직히 <덕혜옹주>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허진호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라 자꾸 감독 이름을 까먹게 되는 것 같았다. (웃음) 롤타이틀 영화는 처음인데 그만큼 인물 자체에 중점을 둔 작품이 처음이란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덕혜옹주라는 인물에게 끌린 이유가 궁금하다. 7~8년 전쯤에 TV에서 덕혜옹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때 마음이 움직였다. 영국 황실에서 공주가 태어나면 전세계가 주목하듯이 그 당시 덕혜옹주를 둘러싼 분위기도 그랬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에 낳은 딸이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인지라 조선의 희망이고, 보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 시절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마치 아이돌 스타에 관한 사생활을 다룬 기사가 나오듯이 덕혜옹주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기사도 많이 실렸다고 한다. 굉장히 암울한 시대였지만 큰 사랑을 받고 자란 만큼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는데 아버지인 고종이 독살을 당했다는 설을 믿으며 충격을 받았고, 열네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뒤로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고 한다. 결국 타국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 강제로 결혼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당하고, 딸까지 자살하고, 정말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이유는? 다큐멘터리에서 덕혜옹주가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광경이 나왔는데 '아기씨'라 부르며 덕혜옹주를 마중하는 상궁들의 모습이 깊게 각인됐다. 당시 50대 중반에 다다르는 할머니가 된 상궁들이 과거 궁에서 입던 옷을 차려 입고 덕혜옹주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 장면이 특별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다. 나도 잘 몰랐는데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결국 다시 만나거나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과정이 등장한다. 결국 <덕혜옹주>를 통해 세월을 두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결국 영화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영화였는데 영화화하기 힘든 소재라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후에 <덕혜옹주>라는 소설이 나와서 읽어봤더니 (김)장한이랑 복순이라는 캐릭터를 극화시켜서 픽션을 만들었더라. 그리고 덕혜옹주의 내면을 많이 투영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출판계에서도 이례적인 사건이라 했다. 아무래도 주류소설이 아니었으니까. 당시에 화제를 모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죽이기 위해 삼성에서 사재기를 했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어쨌든 소설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이 정도까진 각색을 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영화화를 반대하는 의견은 대체로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래도 덕혜옹주가 잘 알려진 위인도 아니고,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여겨질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다가 여자 주인공이라 투자자들에게 강한 물음표가 생겼던 거 같고, 그런 물음표를 지우는 게 쉽진 않았다.
연출작 가운데 첫 번째 12세 관람가 영화다. 그런가? <8월의 크리스마스>가 12세 관람가 아니었나?
아니더라. 아무래도 그 당시에 일부러 15세 관람가로 넘겼나 보다. (웃음)
아무래도 이 작품이 멜로물이 아니란 것도 12세 관람가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수위 높은 애정신 자체가 등장할 가능성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데 사실 멜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소재였던 것 같은데 자제한 인상이었다. 사실 멜로로서의 가능성이 다분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고민하긴 했다. (김)장한이 일본에서 덕혜옹주를 데려오는 이유가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초점을 맞추면 멜로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바탕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데려오는 이유가 그렇게 보여선 안될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장한이 지닐 법한 역사적인 책임감을 존중하고 관객도 그런 책임감을 크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멜로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멜로처럼 느껴질 만한 부분은 걷어내 버렸다.
멜로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다. 덕혜옹주를 극화시키는 정당성이라고 할까. 멜로로 가져간다면 그 선을 넘어갈 것 같았다. 지나치게 극화된 느낌도 들고. 사실 박해일이 한번은 덕혜옹주와 김장한이 동침을 해야 말이 되는 게 아니냐고, 그래야 정한이 덕혜옹주를 한국에 데려오려고 애쓰는 걸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함께 겪었던 고난만으로도 충분히 재회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덕혜옹주가 해방된 지 17년이 지난 1962년에 귀국한 것이니 3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건데 이건 결국 민족적인 자존심의 문제에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 김장한에겐 덕혜옹주를 데려와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거다.
김장한은 실존인물이었지만 영화 속 김장한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 속의 김장한은 소설에서 가져온 인물이긴 했지만 실제로 그는 고종이 덕혜옹주와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남자이기도 했다. 고종이 덕혜옹주의 짝을 빨리 점지해주고 싶어했다는데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 백지화된 셈이다. 그런데 덕혜옹주와 결혼을 시키려 했던 김장한에겐 김을한이란 형이 있었는데 신문기자였고, 김을한의 아내가 덕혜옹주와 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김장한을 완성하기 위해 그의 주변인물들을 끌어온 부분들이 있었다.
사실 실화를 바탕에 둔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도 처음이다. 소설을 허구의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만큼이나 사실에 대한 고증 문제도 중요했을 거 같다. 사실 김장한이란 인물을 언급한다는 건 실화에 기반을 둔 부분이지만 그가 정혼자로서 덕혜옹주를 찾아간다는 건 소설에서 빌려온, 명백한 허구다. 그리고 영친왕의 망명 사건을 다룬 부분은 완벽한 허구인데 실제 역사에선 영친왕과 관련된 극적인 망명 사건은 없었지만 그도 망명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임시정부에선 영친왕이 상해를 여행 중일 때 망명을 권했다는데 영화에서처럼 폭파 작전과 연계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 속 시대가 이봉창 열사가 일왕 암살을 시도했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해서 덧붙여 각색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친왕의 망명 시도는 실제로 어땠는지 궁금하다. 영친왕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영친왕도 고위직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영친왕이 망명을 고민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당시 영친왕의 상해 여행 시점에 맞춰 망명을 도모했던 상해임시정부에선 영친왕이 일본인 아내와 이혼하길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영친왕은 일본인 아내를 데려가길 원했고 결국 망명을 거부했다고 하더라.
영화상에서 영친왕의 이미지는 유약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영친왕이란 인물은 열한 살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실제로 일본사람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양아버지로 생각하고 따를 정도였고, 그의 제사에도 참석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영친왕의 처인 이방자 여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럼에도 영친왕 스스로가 조선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마지막 인간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친일을 했다기 보단 한 나라의 왕으로서 독립 이후의 국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영화상에서 그린 망명 작전 신은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덕혜옹주는 영친왕에 비해 강인하게 묘사된 거 같다. 아무래도 영화와 실화 사이의 줄다리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강제 노역 중인 조선인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극화된 장면인데 사실 친일을 옹호하는 버전의 신도 촬영했었다. 한택수(윤제문)에게서 어머니인 양귀인(박주미)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친일 연설을 하면 조선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제안한 뒤 덕혜옹주가 친일 연설을 하고 나니 한택수가 그제서야 사실 어머니가 죽었다고 전하는 시퀀스도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의 결과를 선택한 걸까? 최소한 덕혜옹주에게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사실 영화상에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래서 '어쩌면 한 번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 아무래도 영화를 찍는 동안 극화된 인물이나 장면의 정당성과 개연성을 잘 설득하고 있는지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잘못하면 왜곡시켜버린 것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를 살피는 과정이 힘들었다.
모든 연출작을 통틀어서 액션신을 볼 수 있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아저씨>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촬영감독인 이태윤이 <덕혜옹주>의 촬영감독을 맡았는데 내가 <외출>을 찍을 당시 촬영감독 조수였던 인연이 있었다. 아무래도 액션 연출에서는 기술적인 면이 중요한데 솔직히 이번 촬영을 통해 촬영감독과 미술감독에게 많이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말이 되느냐'의 문제인데 액션 신에선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가 있더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음,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긴 한데.(웃음) 예를 들어 김장한이 배에 총을 맞고도 나중에 막 뛰어다니는데 '총을 맞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웃음)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저거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리고 한택수가 배 위에서 총을 쏘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출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웃음) 아무튼 말이 되는 기준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납득하는 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정상훈이나 라미란처럼 희극에 능한 배우들 덕분에 코미디물로서의 인상도 종종 느껴지는데 과거 인터뷰에서 코미디를 연출해 보고 싶단 말을 한 적이 있더라. 사실 웃음만큼 확실한 반응은 없다.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찍은 거 같다는 확신을 주는 반응이란.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만든 모든 작품에 웃음을 주는 요소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영화에 유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외출>로 함께했던 손예진과 11년 만에 재회했다. 그녀에게 예민하고 치열한 캐릭터를 입혀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외출>을 촬영할 때 감정에 깊게 빠져들어야 하는 신이 더러 있었는데 그때 힘이 있는 배우라고 느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더욱 놀랍게 다가왔다. 집중력이라 할 수도 있고, 몰입도라고 할 수도 있는데 연기적으로 강한 힘이 있는 배우라는 걸 알았다. 정말 그 인물이 돼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실제로 신기가 있는 거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덕혜옹주가 고국에 돌아가려다 실패하고 항구에 드러누워 미쳐버리는 장면을 찍을 때가 새벽이었고 굉장히 피곤한 순간이었다. '몹 신(Mob scene)'인데다가 촬영 여건도 좋지 않았고 당시 촬영을 강행하던 시점이라 배우 본인을 비롯해 스태프들도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었는데 그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서 연기적인 집중력을 보여주니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덕혜옹주가 감정의 파고를 형성하는 역할이라면 김장한은 그 파고를 담고 견디는 둑 같은 느낌이다. 감독으로서 손예진이란 배우에게선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면 박해일이란 배우가 감정적인 중심을 잡아주길 기대했을 거 같은데, 그만큼 박해일과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일단 (박)해일 씨와는 친하다. 막걸리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해일 씨도 좋아하고(웃음). <덕혜옹주>를 함께 하기로 결정한 뒤로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는데 그때 인사동에 있는 단골 막걸리집에 함께 자주 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본인 스스로 김장한이란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서로 툭툭 던지듯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인물을 매만졌던 것 같다. 결국 촬영을 시작하니까 박해일이란 배우 스스로 김장한을 만들어놓았더라. 매 촬영마다 미세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게 보여서 정말 좋았다. 사실 감정을 표출해서 소진하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훌륭하게 해내더라.
특별출연 배우가 많은데 고수 같은 경우엔 극적인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대부분 고수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이우 왕자는 실제 사진으로 봤을 때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었고, 멋쟁이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민족의식도 상당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이우를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고수 씨가 이우와 닮았다. 그런데 고수 씨가 하게 돼서 개인적으론 참 좋았지.(웃음)
작년부터 일제강점기 시절을 배경에 둔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덕혜옹주>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에 대한 특별한 관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웃음) 그냥 <덕혜옹주>만 두고 말해보자면, 사실 전작인 <위험한 관계>도 1930년대 상하이가 배경이니 <덕혜옹주>와 비슷한 시기를 배경에 둔 작품인 셈이다. 그 영화를 하면서 이 시대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영화의 주무대가 일본이기도 하고. 게다가 내가 <덕혜옹주>를 선택한 건 시대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 시대상황이 묘사돼야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려진 것뿐이다.
혹시 막연하게라도 차기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새로운 장르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액션이나 코미디, 아니면 스릴러? 장르적인 작품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아니면 예전처럼 일상적인 영화를 다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덕혜옹주>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사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덕혜옹주>도 내가 해왔던 영화와 다른 느낌이니까 이젠 아예 완전히 다른 걸 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연상호라는 이름을 부지런히 쫓아온 이들에게도, 연상호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이들에게도,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 장르의 대가로 꼽히는 감독이자 사회파 작가로도 분류되는 연상호의 <부산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오락물이면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좀비를 위시한 한국형 장르물이자 한국사회를 정통으로 가로지르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봉 첫 주말에 이미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으로 단숨에 내달린 시점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고, 그를 만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800만 명의 관객이 <부산행>을 봤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첫 실사영화로, 어쩌면 올해 가장 뜨겁게 기억될지도 모를 작품을 만든 연상호 감독에게선 그 열기와는 거리가 있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연출한 실사영화가 100억이 넘는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개봉 첫 주에만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작들을 꾸준히 봐온 입장에선 벼락부자를 보는 느낌이다. (웃음) 아무래도 의아하게 생각한 분들이 많았을 거다. <부산행>을 연출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이런 대작을 맡겨도 되냐는 의견도 있었던 걸로 안다. 심지어 기존에 내 작품을 좋아했던 관계자 분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니까.
구체적으로 제안을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투자배급사인 '뉴(New)'에서 <사이비>를 제작했는데 뉴의 장경익 대표가 <사이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사영화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00억대 예산의 영화를 맡길 수도 있다고. 그 당시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기도 했고, 솔직히 나름대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이 크게 당기진 않았다. 어쨌든 그때 워낙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정작 <부산행>에 들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실사영화 연출 제안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나? 그전에도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실사영화를 연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실사영화를 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연출과는 다른 일인데, 두렵진 않았나? 사실 애니메이션 연출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경우가 드물고, 산업도 체계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즐기며 작업해왔다. 하지만 <부산행>을 만들면서 느낀 건 역시 실사영화 제작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보단 확실히 편했다. 프로들이 모여 있고, 분업화도 잘돼있고. 애니메이션은 산업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땐 혼자서 다양한 영역을 도맡아야 했던 걸로 안다. 아무래도 예산이 없으니까. (웃음)
그런 면에서 다양한 스태프와 상의하며 협업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했을 텐데, 낯설진 않았을까?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옛날에 외주 일을 많이 해봐서 스태프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지점을 잘 안다. 감독의 방향성이 없으면 정말 피곤하다.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덕분에 다들 죽어나가는 거지. (웃음) 그런 걸 아는 덕분인지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건 편했다.
KTX의 홍보효과가 상당할 것 같은데 코레일로부터 도움을 받진 않았나? 사실 KTX 설계도를 받고 싶었는데 관련 보안이 철저했다. 그래서 받지 못했다. KTX 열차칸을 똑같이 구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미술팀이 KTX를 타고 다니면서 일일이 열차칸의 치수를 쟀다. KTX 열차의 의자와 비슷한 의자를 구하기 위해 발품도 많이 팔았다. 폐차된 무궁화호 한 칸 정도의 의자를 수거해 와서 천갈이를 하는 식이었다. 스크린으로 봤을 땐 크게 티가 나지 않았겠지만 실물에선 차이가 많았다. 예를 들면 KTX는 선반을 앞으로 펼 수 있는데 우리 세트에선 불가능했다. 실제로 KTX에서 쓰는 의자가 아니라서 선반은 형태만 흉내 낸 모형이었으니까. 정말 미술팀에서 고생이 많았다. 순제작비가 80억 정도이니 큰 예산이지만 마냥 넉넉한 예산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부산행>을 이 정도 예산으로 찍었다는 건 효율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2시간 여의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아무래도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더욱 절실했는데 촬영감독님과 미술팀이 잘 해결해 줬다. 보통 현장에선 '덴깡'이라고 하는, 세트를 분리하거나 연장하는 작업이 용이하게 이뤄졌고,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영화적으로 다양한 앵글을 구현했다.
공간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편집의 리듬감도 중요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어느 정도 리듬감을 설계했고, 그렇게 설계된 리듬에 맞춰 촬영과 편집을 감행했다. 사실 후반 편집보단 현장 편집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현장에서 촬영본을 바로 확인하면서 호흡이 떨어지는 신을 수정하고, 경우에 따라 신을 날리기도 했다.
현장편집을 치열하게 가져간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제일 빠르게 확인하려면 그때마다 완성된 신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면에선 현장편집본을 디테일하게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장편집본과 최종편집본의 분량 차이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한 3~4분 정도?
최종 편집은 편했겠다. 거의 이틀 정도? 별로 할 게 없었다.
<부산행>에서 가장 끔찍한 역할을 하는 건 결국 좀비보다 사람들이다. 좀비에게 고립된 일행을 구해 생존자들과 합류한 이들을 감염자로 몰고 윽박지르는 사람들로부터 약자의 치졸함 같은 것이 드러난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작품과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신이기도 한데, 결국 가장 '연상호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시나리오 개발 중에 용석이한테 권총이라도 하나 쥐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용석에게 동조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런데 나는 용석이가 권총을 갖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악마성 같은 기질이 관성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처연함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방금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보통 사람들이란 우리가 평소에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순간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권총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용석 자체가 권총이다. 그가 장전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그리고 그렇게 가혹하게 캐릭터를 죽일 수 있는 단호함이란 결국 감독의 의지일 테고.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건 감독 본인이란 말인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많은 인물을 주저하지 않고 죽이다니, 정말 가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음) 블라인드 시사회를 비롯한 여타의 시사회에서의 설문조사나 감상평을 보고 재미있게 느꼈던 부분이 있다. 용석이로 인해 여러 사람이 죽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 숱한 죽음에서 가장 큰 충격을 느끼는 건 10대 커플인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의 죽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감상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10대 커플은 장난스럽고 철없게 보인다. 예를 들면 둘이 울면서 통화하는 장면에선 슬퍼 보인다기 보단 장난스럽게 보일 정도로 철부지 애들이란 거다. 사실 용석이 승무원인 기철(장혁진)의 등을 떠밀 때에는 관객들이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우습게 생각했던 아이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더라.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방심한 탓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던 애들이 생각지도 못한 폭력에 내몰렸을 때 느껴지는 충격 같은 거랄까. 그때는 용석이란 인물이 끝까지 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기도 한데 그 이후부터는 그가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선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았다. (김)의성 선배나 소희나 우식이나.
사실 10대 커플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란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한데, 용석의 비열함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인 죽음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낭비적으로 느껴지는 죽음이기도 하다. 결국 관객이 예상치 못한 순간이 돼서 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길 바랐다. 철없고 한심해 보이는 어린 세대들이 내가 속한 세대에게 가혹하게 짓밟히는 꼴을 봤을 때의 참담함을 느꼈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죽인 셈이랄까. 아이러니하다. (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으니까. (웃음)
석우의 죽음은 그의 원죄를 생각한다면 명분이 있다. 다만 주인공을 죽인다는 점에서 망설임은 없었을까? 석우를 죽이는 건 시작부터 정해져 있던 거라. (웃음) 사실 용석과 석우는 그 세대를 책임지는 인물이란 점에서 이미 어떤 식으로든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공멸 혹은 자멸하는 운명이랄까. 다만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거고.
그래도 캐릭터들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선 허투루 동원된 느낌은 아니다. 감독의 입으로 이런 얘길 하긴 조금 민망할 순 있지만 <부산행>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었다. 보통 아포칼립스 영화들은 세대론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산행> 역시 캐릭터의 세대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데올로기가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두 노인 여성을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 분들의 시대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시대였으니까. 그 다음 세대는 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자랐으니 석우와 용석 같은 캐릭터가 떠올랐고, 그 다음 세대인 10대는 일종의 희생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안이나 성경(정유미)이 임신한 아이는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쥐어야 할 당위에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둘 다 쏴죽이는 게 연상호다운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당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위가 뻔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만 당위는 항상 뻔한 거니까.
마지막에 수안이가 부르는 '알로하 오에(Aloha Oe)'라는 노래는 이별과 재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마지막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고민했는데 <송곳> 작가인 만화가 최규석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일단 가사 자체가 감성적이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괜찮았다. 원곡이 하와이 왕조가 무너졌을 때 마지막 여왕이 만든 민요라는데 그런 사연이 마음에 들었다. <부산행>이란 아포칼립스 영화를 개인의 감정에 실어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 의도와도 맞아떨어졌다. 한 나라가 망해갈 때 재회를 약속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상황을 다루는 이 영화의 엔딩톤과 어울리게 들렸다.
수안이가 아빠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결국 아빠가 죽으니까 부르게 된다는 점에서 페이소스가 형성된다. 개인적으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에 클로즈업된 수안의 표정이 힘있고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씩씩하게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힘있는 표정을 보여주길 바랬다.
유사 좀비를 다룬 장르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좀비에게 물린 부위에 따라 좀비가 되는 시간차가 있더라. 목을 물린 사람이 팔이나 다리를 물린 사람보단 확실히 빨리 변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절대 목을 물리지 않는다. (웃음)
하지만 주인공에겐 우대 쿠폰을 준 느낌도 든다. 특히 석우는 인저리 타임이 긴 느낌이기도 하고. (웃음) 그런데 석우는 고속촬영 부분이라 길게 느껴지는 거다. 실제론 되게 짧은 시간이다. (웃음)
사실 좀비는 나올 만큼 나와서 좀비를 묘사할 때 어떤 시도를 해도 참신하다는 말을 듣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부산행>은 차별적인 좀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보단 일반적인 좀비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사실 요새는 별의별 좀비가 다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는 좀비도 있고, 뱀파이어와 좀비가 더해진 타입까지 나왔는데 나는 좀비물이 너무 많이 변형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되레 클래식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조지 로메로가 만든 좀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순한 좀비 말이다. 물론 뛰느냐, 걷느냐, 라는 이슈가 있기도 했는데 뛰는 좀비도 이미 익숙한 편이다. 대신 어두울 때 앞이 잘 안 보인다는 설정은 아마 <부산행>을 통해 처음 가미된 부분일 거다.
구제역 사태를 언급하는 오프닝 시퀀스나 근래의 시위 진압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방송 장면 등이 요즘 세태와 직결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벨소리로 들려지는 '오 필승 코리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리얼리티를 위한 의도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낯선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관객이 느끼는 진짜 사회와 영화 속의 사회가 다르다고 느끼면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뉘앙스를 뿌린 셈인데 생각보다 그런 부분을 크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그런 인상이 영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오는 8월 18일엔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개봉한다.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심은경 씨가 <부산행>의 첫 번째 좀비로 등장하는데 이걸 복선이라고 봐도 될까?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잘 연결된다고 느끼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별개의 캐릭터라고 여기기엔 비슷한 점도 많을 거다.
미끼를 던지는 건가. 그렇다. (웃음)
<서울역>은 본래의 장기인 애니메이션인데 <부산행>이 흥행한 만큼 <서울역>으로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 많아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15세 관람가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조금 기대는 되지만 아직 개봉일자가 많이 남아서 특별히 별다른 기분이 들진 않는다. 다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미리 상영하는 게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이유는? 스포일러라고 여겨질 만한 요소가 굉장히 세다. 사실 <부산행>은 스포일러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역>은 <식스센스>처럼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란 식으로 말해 버리면 김이 샐 수도 있는 작품이라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잘 모르겠다. 사실 올해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청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이동화 PD가 상영관에 가서 반응을 봤는데 관객들이 경악한다고 하더라. 나도 영화제 폐막식에 가서 반응을 보려 한다.
길게 흐트러진 머리와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커다란 눈에 가득한 애수. 고독한 한 마리 늑대처럼 나타나 전세계적인 팬심을 자극한 세바스찬 스탠은
우직하면서도 유연한 남자다.
마블 유니버스는 21세기 배경의 신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유럽의 신마저 뉴욕을 밟게 만든 이 맹랑한 세계관은 실제 도시를 배경에 두고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감상에 활력을 더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를 통해 마블 유니버스로 확실하게 착륙한 세바스찬 스탠 역시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코믹북에 기반을 둔 영화는 신화이지만 어떤 면에선 사람들이 논의하길 바라는 지점보다 더
많은 부분이 현실적으로 반영돼 있다.” 그렇다. 그에게 있어서 마블 유니버스는 진짜는 아니되 진짜를 겨냥하는 세계다. “많은 재향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모른다. 사회는 더 이상 기존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이번 작품에서 이
캐릭터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그는 그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나갈까?” 여기서 ‘이번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를
의미하고 ‘이 캐릭터’는 당연히 스탠이 연기한 버키다. 그리고 그가 남긴 물음표에 대한 답은 마블 유니버스의 차기 라인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겸손함이 느껴지지만 스탠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알게 된다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버키는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처음 등장한다. 사실 세바스찬 스탠은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콘스탄차에서
태어난 루마니아 출신 배우다. 하지만 그는 여덟 살의 나이에 루마니아를 떠나 오스가십트리아의 빈으로 건너갔고, 열두 살이 되던 해엔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시절의 스탠에겐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스탠의 내면을 강인하게 다듬어주는 계기가 됐다. “우리 가족이 세 나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어디로
다다를 수 있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내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지든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여겼다. 믿음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스탠이 처음으로
연기에 발을 들인 건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당도한 빈에서였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오디션장에서
첫 역할을 얻었다. 루마니아의 노숙자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이
경험을 통해 어린 스탠은 배우라는 길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한다면 근사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전철 안에서 촬영한 단편이었는데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다. 세트장
안에서 긴시간 동안 기다린다는 건너무
지루했다.”그리고 두 번째로 국경을 넘어 정착한 미국 뉴욕에서 그가 배우를
꿈꾸게 됐다는 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근사한 계기가 찾아온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첫 해에서야
연기를 좋아하게 됐다. 청력 장애가 있었음에도 학교 연극을 모두 책임지던 친구가 있었다. 장애에도 좌절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사실상 나를 도전하게 만들었다.”그렇게 고등학생 시절부터 배우라는 꿈을 품고 오디션에 참가하며
청사진을 그려온 스탠은 뉴저지의 예술학교에 진학하고, 1년간 영국에 있는 극단을 찾아가 연기를 수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선 긴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스탠은 수많은 오디션장을
전전하면서 수없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오디션장에서 마셔왔던 숱한 고배 끝에 맛본
성취가 자신을 키운 자양분이 됐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일들을
돌아보면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럽고, 마음 상하는 일이었지만
거기엔 놀라운 것도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한 캐스팅 감독 앞에서 10번이 넘는 오디션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비로소 그 캐스팅 감독에게서 합격 통보를 받아냈다.
“한 번도 붙지 못했지만, 그 캐스팅 감독님과 연결될 수 있을 때마다 오디션을 봤다. 그랬더니 다음 번엔 나를 기억하더라." 어쩌면 이런 근성이야말로 스탠이 지닌 진짜 재능일지도 모른다.
스탠은 TV시리즈 <가십걸>과 <킹스>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조금씩 얻어나갔고
조나단 드미가 연출한 <레이첼, 결혼하다>(2008)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2010)과 같은 준수한 영화에도 이름을 올리며 경력을 확장했으며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통해 대중적인 얼굴로 거듭났다. 그런데 전작인 <퍼스트 어벤져>(2011)를 통해 마블 유니버스의 궤도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되레 뒤늦게 주목을 얻었다. 당연한 일이다.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 연약한 청년이었던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를 돕는 버키 반즈는 캡틴의 전우이자
스티브의 절친으로 거듭나지만 영화의 결말부에 다다라 죽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채 등장하는 윈터 솔져의 정체는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진 철저히 봉인된 상태였다. 물론
원작을 충실히 따라잡은 코믹북의 팬이라면 그의 전사를 명확히 짚고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관객 입장에선 윈터 솔져가 버키일 것이란 예감을 쥐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속편에서 테러 집단의 세뇌를 받고 캡틴 아메리카를 공격하는 빌런 ‘윈터 솔져’로 부활한 버키는 캡틴 아메리카가 던진 비브라늄 방패를
맨 손으로 잡아내는 장면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를 통해 마블 유니버스는 새로운 동력을 확보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을 그린다는 점에서
강력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그 이벤트를 폭발시키는 버튼은 바로 버키다.
세계적인 기대감을 모으는 볼거리에서 가장 강력한 갈등을 유발하는, 그야말로 시리즈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존재감을 과시한 덕분에 세바스찬 스탠의 인지도는 만월처럼 차 올랐다.
그러나 스탠은 대학시절의 은사이자 멘토로 꼽는 래리 모스의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배역을 얻고 인물에 공들이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데서 시작해라'라고
말했다. 결과보다 경험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경험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리들리
스콧의 <마션>(2015)에 출연했던 스탠은 <더 브론즈>(2016)라는 코미디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또한 J.K.시몬스와 맨디 무어가 출연하는
또 다른 코미디물 <아임 낫 히어>(2017)의
출연 계약을 마쳤고, 평소 흠모하는 배우로 꼽던 짐 캐리가 제작하는
TV시리즈에서도 등장할 예정이다. 버키의 여정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세바스찬 스탠 역시 현재진행형의 배우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좌우명을 따라 걸어왔다. "만약 이 일이 잘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보겠다.” 다행히도
이 좌우명은 스탠에게 잘못된 길을 가리키진 않은 것 같다. 그러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보다 즐겁게, 더욱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