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배우답게 또박또박한 발음이 인상적인
펠리시티 존스는 유년시절부터 배우가 되길 꿈꿨고, 꿈을 이뤘다. 그리고
이젠 세계가 사랑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커다란 미소만큼이나 큰 재능과
매력으로.
“레이저 블래스터는 대단히 신나는 경험이었어요. 스톰트루퍼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스톰트루퍼는 정말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지만 말이죠!” 테마파크에 다녀온 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어린 소년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사실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 안에서 최초로 기획된 스핀오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의 촬영을 마친 펠리시티 존스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그녀는 최근 미국 ABC채널의 나이트쇼인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해
<로그 원>에서 연기한 진 어소의 레고 피규어가 나왔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럴만한 일이다.
올해 12월말에 공개될 예정인
<로그 원>에서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진
어소(Jyn Erso)'는 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독재적인 권력을 장악한 제국군에 대항하는 반란군
특공대에 가담해 제국군이 건설 중인 전투용 인공행성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진 어소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라왔고, 신체적으로도 작고 왜소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의 동료에게 힘을
불어넣고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큰 용기를 갖게 만든다."
펠리시티 존스의 말처럼 진 어소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신분을 갖고 있지만 강인한 믿음을 통해 악에 맞서고 선의에 힘을 불어넣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인물이다. 흥미로운 건 작년 12월에 공개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마찬가지로 <로그 원>에서도 세상을 구할 새로운 영웅상으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스타워즈> 세계관에서의 여성이란 여왕 혹은 공주로서 타고난 신분을 견뎌야 하는 숙명에 갇혀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둘
때 이는 가히 세계관의 진화에 가깝다. 그러니까 펠리시티 존스는
<스타워즈>라는 전설적인 시리즈를 현재진행형의 우주로 띄워 올리는 핵심 동력인
셈이다.
<로그 원>을
연출한 감독 가렛 에드워즈는 펠리시티 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인함, 부드러움 혹은 풍부한 감수성, 대부분의 배우들은 이중 한 가지 요소만을
지니고 있지만 펠리시티 존스는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지는, 매우 친근한 매력을 갖고 있다." 대단한 찬사다. 그리고 펠리시티 존스에 관해 이토록 대단한 찬사를 남긴 건 가렛 에드워즈만이 아니다. 2011년 선댄스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멜로드라마 <라이크
크레이지>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역시 펠리시티 존스에 대한 특별한 첫인상을 언급한
바 있다.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보니 그 동안 캐릭터가 겪어왔을 것이라 짐작되는 온갖 슬픔이 그
얼굴에 담겨있었다. 우린 다같이 ‘오 마이 갓, 바로 그녀야!’라 말했다."
펠리시티 존스가 출연한 최근작 중 하나인 <인페르노>의
감독 론 하워드 역시 마찬가지다. "펠리시티 존즈는 지적인 반짝임으로 가득한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근하면서도 편안하게 인상으로 다가온다."
2014년에 공개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브 호킹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었다. 제인 와일드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인문학과에 진학해 물리학도였던 스티브 호킹을 만나 연인이 됐고, 그가 루게릭병을 앓으며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음에도 모두의 만류를 무릅쓰고 결혼을 선택한 여인이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제인 와일드가 쓴 동명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제인 와일드를 연기한 펠리시티 존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루게릭병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스티브 호킹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만큼이나 그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
제인 와일드의 서사가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제인 호킹 역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는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얻었다. "제인 호킹을 만난다는 건 굉장히 흥분되고
초조한 일이었다. 항상 그녀를 존경해왔는데, 밝은 성격과
뛰어난 결단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관대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제인과 스티븐은 용기 있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전환시켜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펠리시티 존스가 말하는 제인 와일드가 앞서서 감독들이
말한 펠리시티 존스와 유사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지적이면서도 편안한 인상으로 풍부한 감정을 연기한다는
펠리시티 존스와 밝고 관대하면서도 뛰어난 결단력을 지닌 제인 와일드 사이에는 거리감이 없어 보인다.
아마 펠리시티 존스가 지적인 느낌을 주는 건 실제로 그녀가 지성을 겸비한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드럽고 세련된 옥스퍼드 액센트를 구사하는 펠리시티 존스는 옥스퍼드대학의 단과대학 중 하나인 워드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차석으로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 그녀가 배우로서의 꿈을 갖게 된 건 그녀
어머니 덕분이었다. 영화와 연극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영화와 연극을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리고
유년 시절부터 연기 수업을 받으며 12살 무렵부터는 TV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시작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20여 년의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주목 받지 못했던 시절에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들을 알게 됐다는 것도.” 그리고
이제 만인이 주목하는 배우가 된 그녀는 자신이 경험하는 그리고 더욱 크게 경험하게 될 유명세에 대해서도 단단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책임감을 갖는 방식이니까.”
아마 올해 12월에 <로그
원>이 공개된 이후로 펠리시티 존스의 입지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스타워즈>라는 신화적 세계관의 아이콘이 되어 전세계를 누비게 될 그녀는 훌륭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에서 전세계가 사랑하는 배우로 거듭날 것이다. 게다가 시고니 위버와 함께 출연한 신작
판타지물 <몬스터 콜>, 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출연한 액션 스릴러물 <아우토반>까지 그녀의 다채로운
매력을 다양하게 제시할 작품들이 연이어 줄을 서있다. 그리고 그녀의 미래가 보다 기대되는 건 그녀가
이 모든 과정을 진지하면서도 성실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산다는
게 특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일이란 없다. 영화란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늘 쉽게 선택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내가 선택한 작품에 대한 해법을 스스로 고민하며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녀는 이미 자신만의 공식을 찾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한 걸음씩, 정직하게.
<인페르노>는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을 앞세운,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세 번째 탐정물이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의 로버트 랭던이 기호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중세부터 이어져 오던
종교집단들의 은밀한 광기를 추적해 나간 것과 달리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현대문명을 관통하는 인구과잉문제와 연관된 테러리즘에 맞선다. 어떤 의미에서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그가 아니어도 될만한 일까지
떠맡은 셈인데 그의 역할을 만들어주기 위해 동원된 건 단테라는 모티브를 통해 구상한 기호학적인 퍼즐이다. 그러니까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가 로버트 랭던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인페르노>에선 인위적인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의문의 사나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억상실증 상태로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가 품은 의문과 관객의 의문은 똑같이 제시된다. 결국 그가 기억을 회복하며 단테의 지옥도에 담긴
의미를 쫓아 피렌체와 베니스, 이스탄불을 누비는 과정에 동참하는 관객의 흥미는 그가 왜 이 사건에 휘말렸는가라는
물음표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인페르노>는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처럼 로버트 랭던을 탐정처럼 앞세운 지적인
추리극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미스터리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초반에 제시하는
물음표의 흥미는 중후반부에 다다라 싱거워지는데 아무래도 각본의 내러티브가 완급조절에 실패한 인상이다.
전반부가 정체불명의 물음표로 가득한 호기심을 잉태하는 장이었다면 후반부는 그 물음표의 장막을 벗긴 실체의 위압감을
증명해야 하는 장이다. 문제는 로버트 랭던이 고도의 지적 추리를 통해 추적한 적의 실체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영화를 지탱하던 의문들이 손쉽게 자기 손을 들어서 정체를 드러내듯 미스터리의
동력이 손쉽게 소진된다. 게다가 극의 향방을 전환시키는 결정적 존재가 자기 정체를 드러낸 직후 그 인물과
관련된 과거사를 제시하는데 그 순간 이 영화가 멜로를 지향했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감상적이라 영화의 지향점에 의문이 생길 정도다. 덕분에 영화의 서스펜스를 지탱하던 물음표의 패가 모두 다 열린 극 후반부에선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완전히 증발돼버린
듯해서 클라이맥스의 존재감 자체가 부재한 인상마저 준다.
한편 <인페르노>에서
탁월한 병풍 역할을 하는 피렌체와 베니스, 이스탄불의 풍경들은 아이맥스 카메라의 광대한 시선을 등에
업고 관광영화의 묘미를 극대화시킨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두오모돔과 조토의 종루 그리고 베키오
궁전과 우피치 미술관을 아우르는 피렌체부터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그리고 이스탄불의 하기스 소피아 성당과 예레바탄 지하궁전까지, 세계적인 유산이라 할만한 풍경이 아이맥스 카메라의 광대한 시선을 통해 중계되는 건 영화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그럴 듯한 볼거리를 이룬다. 물론 충분한 기회비용이 되기는 어렵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