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라는 이름이 익숙해진 건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클라라라는 발음하는 것 너머의 클라라는 아직 낯선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클라라가 대답했다.
본명이 이성민인가? 사실 클라라가 본명에 가깝다. 내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썼던 이름이고, 가족들도 클라라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성민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보다 클라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심적으로도 편할 거 같다. 맞다. 그냥 나 자신으로 활동하고 싶어서 선택한 이름이 클라라였다. 사실 8년간의 무명 시절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억누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표출해보자는 의미에서 2012년부터 이성민 대신 클라라로 활동했다. 그런데 클라라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클라라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일단 이성민이란 이름 자체를 아무도 못 외우더라. 얼굴과 매칭도 안 된다고(웃음). 오디션에서 감독님들로부터 이름 바꾸란 말도 많이 들었다. 아이돌 이름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래서 이성민으로 활동했다. <워킹걸>의 크레딧엔 어떤 이름이 올라갔나? 클라라. 이성민은 이제 없다(웃음). <워킹걸>에서 섹스용품점 사장을 연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어울린다. 어떤 면에서? 섹스어필한 이미지 자체만으로. 감사합니다(웃음). 일단 여자로서 칭찬으로 들린다. 그런 매력이 있는 건 장점이니까. 캐릭터와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 게 배우 입장에서도 좋고. 물론 연기력도 좋단 이야길 듣게 되면 더 좋겠지.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선 부담스럽진 않나? 어차피 선입견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을 텐데. 괜찮다. 그런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절반이라면 반대로 생각하는 분들도 그만큼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소위 말하는 ‘멘탈갑’이다. 완전 갑이지(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보다 정확하겐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형성된 계기가 있을까?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 도쿄 호텔에 있었다. 혼자 여행을 갔는데 호텔이 무너지는 줄 알았고,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그 뒤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 시간도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모든 게 소중해지더라. 그 이후론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편인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싫다. 얼굴 찡그리고, 기운 없어지고, 신경질 내고, 결국 자기 손해잖아.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나부터 편해지고 남에게도 나쁜 인상을 보일 필요가 없어진다. 작년에 했던 프로야구 시구가 경력의 발판이 됐다.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까? 시구를 하면 보통 ‘실검(실시간 검색어)’에 뜬다. 그래서 나를 알릴 순 있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공도 잘 던지고,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의상도 준비해야겠다고. 관중석에선 내가 손가락보다 작게 보일 텐데 어떻게 입어야 눈에 띌까 고민했다. 게다가 옷에 따라 던지는 폼도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하지만 레깅스 덕분에 나름 잘 던진 시구가 묻혔다. 조금 서운하긴 했다(웃음). 사실 경기 3일 전에 갑자기 대타로 섭외된 거라 준비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연습하면 될지 물어보니까 다들 한 시간 전에 경기장에 가면 선수가 가르쳐줄 거라고만 하더라. 평생 공을 던져본 적 없는데 한 시간만 배워서 어떻게 해. 수소문 끝에 선수 한 명을 섭외해서 배웠는데 지금까지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가? 운동은 좋아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좋다.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그런 게 재미있다. 승부욕은?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보단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한가지 일을 두고도 다방면으로 생각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인데 튀려고 애쓴다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을 거 같다. 그 시구 이후로 1년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그 뒤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해주는 팬이 생겼다.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니까 진심이 통한 거 같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적성에 맞나? 예전엔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렇다. 요즘은 일이 많고 피곤함에도 재미있게 느끼는 걸 보면 확실히 적성에 맞다. 배우가 되려고 생각한 계기는? 우리 엄마. 미국에 있는 동안 한인 축제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SM과 JYP 관계자에게 명함을 받았다. 이를 엄마에게 말하니까 이 참에 한국에 가서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엄마는 원래부터 내가 배우로 활동하길 바랐다. 어릴 때부터 끼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조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때 엄마를 따라 다시 한국에 왔다.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고. 스위스에서 태어났다고. 맞다. 두세 살 무렵 한국에 왔다. 당시 아빠는 ‘코리아나’ 활동으로 바빴고 엄마는 아빠 내조로 바빴다. 그래서 부모님과 산 기억은 별로 없다. 친가, 외가를 전전하면서 자랐으니까.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처음으로 같이 살았는데 6학년 때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무래도 그 덕분에 자립심이 생겼나 보다. TV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안 좋아진다면서 우는 모습을 봤다. 그냥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인 거 같다. 사춘기 시절의 서운함, 외로움, 허전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 손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동딸이라 혼자 자란 탓인지 애도 많이 낳고 싶다. <패션왕 코리아 2>에 최범석 디자이너와 함께 조를 이뤄서 출연했는데. 1등한 것 좀 써달라. 소문이 너무 안 났다(웃음). 시작부터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정말 우승했다. 그 동안 워스트 패션으로 많이 선정됐다. 그런데 <패션왕 코리아>에서 우승한 거니 패션킹이 된 거 아닌가. 그 자체가 뿌듯하다. 미국에서 패션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은 못했더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선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공부는 언제든 하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지만 연예계에서의 기회는 늙으면 없어진다고, 한창 예쁠 나이에 데뷔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인생에서 큰 문을 열어준 셈이다. 무명 생활을 하면서 후회되지 않던가. 후회됐지. 졸업하고 와도 스물세 살이었으니까 늦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런데 처음엔 운이 좋았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 시계 브랜드의 얼짱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해서 CF모델로 활동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작품도 하고 계속 바빴다. 그래서 후회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데뷔한지 5년이 지나갈 때도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만큼 쌓아온 것마저 잊혀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다가 8년이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10년 채우자고 마음 먹은 뒤 이름도 클라라로 바꿨다. 올해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서고 싶다고 했는데, 꿈을 이뤘다. 말은 계속 내뱉어야 하나 보더라. 스스로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일부로 소문을 내고 다녔다. 불러달라고(웃음). 아무래도 <워킹걸>이 있으니까 가능했겠지. 사실 2013년에 <라이크 어 버진>이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레드카펫을 구경했는데 ‘내년엔 꼭 서야지’라고 다짐했다. 정말 꿈이 이뤄지니 너무 좋았지. 배우로서 배우들을 구경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닐까? 눈치를 안 보는 편이다. 눈치 보면 하고 싶은 걸 많이 못하게 되고 그럼 인생이 재미없어진다. 하고 싶은 건 해야 된다. 그래도 용기가 필요한 일 같다. 어떤 면에선 슬픈 일이지. 그런데 직접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 더욱 레드카펫에 서고 싶다는 생각? 혹시 조언은 잘 듣는 편인가? 좋아한다.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새길 건 새기고, 거를 건 거르고, 이건 다 내 몫이다. 악플도 다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욕만 빼고(웃음). 하지만 욕도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노출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다. 배우로서 제대로 증명한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증명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질 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킹걸>이 중요해 보인다. 일단 난희라는 캐릭터는 겉으론 프로이지만 허당에 가까운 쑥맥녀다. 섹스용품점 사장 역할을 선뜻 선택한 게 의아하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난희는 내면을 보면 매력 있는 캐릭터다. 겉으론 과감해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사랑도 못해봤고, 가족에 대한 아픔을 지닌 여자다. 섹스용품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었을 텐데. 그냥 구경 정도? 익숙해지고 잘 어우러질 정도로(웃음)? 어떻게 어우러진 건지 궁금하다(웃음). 영화를 보면 안다(웃음). 항상 웃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사람 마음이 항상 그럴 수만은 없다. 그런 괴리를 느낄 때는 없나? 당연히 있다. 로봇이 된 기분이나 기계처럼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보는 사람도 행복하고, 그래야 나도 대중들에게서 행복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 ‘Fear’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그전에 ‘하우스룰즈’와 ‘Invitation’이란 노래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는데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팬미팅을 준비하면서 분위기를 업 시켜줄 DJ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하우스룰즈의 서로 씨가 왔더라. 팬미팅이 끝나고 인사하면서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곧 하우스룰즈의 신곡이 나오니까 피처링을 해달라는 거다.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좋다더라. 그래서 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런데 음악프로그램에서 출연 섭외가 왔고,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수락했다. 무대에 서니까 떨린다기 보단 너무 즐거웠다. 시구할 때도 그랬다. 나는 즉각적인 호응에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 것 같다. 이번에 발표한 ‘Fear’는 미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뮤지션의 제안으로 하게 됐는데 힙합이라 좀 고민했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게 좋아서 결정했다. 그런데 중국 뮤직비디오 차트에서 12위를 했다고 해서 좀 놀랐다. 중국에 알려질 계기가 있었을까? 중국에서 <응급남녀>의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 최근에 중국에 다녀왔는데 다들 내 이름도 알더라. 너무 신기했다. (송)지효 언니와 최진혁 씨가 팬미팅을 다녀왔단 이야긴 들었지만 나는 모를 거라 생각했으니까. 기회가 되면 중국 활동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새로운 계획은? 1월 중엔 홍콩에서 영화를 찍는다. 단편인데 홍콩필름페스티벌 초청작이다. 처음으로 영어 연기를 한다. 1월 중엔 미국에서도 미팅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액션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다. 일찍이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일본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해외 활동 기회가 심심찮게 찾아온다. 여러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 아빠가 유럽에서 활동했던 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놀라운 경험을 하나씩 하게 되면서 꿈도 갖게 되고 더욱 열심히 살게 된다. 목표가 점점 커진다. 어떤 결과에 대해 기대하게 되는 건가? 항상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결과에 연연하면 선뜻 나설 수 없으니까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 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 뭐든 시도할만하다. 나라는 콘텐츠를 쌓는 거다. 다양한 매력이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지 않으면 대중들은 모르는 거니까.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 모습을 찾아가는데 흥미를 느낀다. (ELLE KOREA JANUARY 2015 NO.267 'ELL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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