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를 원한다. 여자도 남자를 원한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깨는 상대는 원하지 않는다. 존중 받길 원한다. 그 남자, 그 여자가 만난 깨는 여자, 깨는 남자.
WHAT
MEN WANT
솔직히 남자가 여자한테 매너라는 걸 기대하진 않지. 남자가 바라는
게 얼마나 있나? 그런데 정말 항상 일관되게 별로다 싶은 지점은 있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왜 여자들은 항상 늦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집에 시계가 없나? 아니면 시계 보는 법을 안 배웠나? 10분 정도, 그래, 괜찮아. 20분? 그래, 뭐 괜찮아. 30분? 좀 열 받지. 그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를 처음 만날 때 좀 늦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아니, 늦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남자보다 일찍 오면 조금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래.
그래서 처음 여자를 만날 땐 이미 어련히 알아서 늦겠지 생각하고 있어.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라 10명 중에 7명은 그러니까. 이해가 된다기 보단 면역이 된 거지.
사실 밥값 내고, 차값 내고, 술값
내고, 영화비 내고, 아깝진 않아. 다만 성의의 문제지. 가격이 아니라 횟수의 문제라고. 최소한 초면에 여자한테 밥값 내라고 할 남자가 어디 있어. 그리고
처음 만났는데 밥 먹고 나서 헤어져? 그거 뭐냐. 요즘 유행한다는
소셜 다이닝이야? 아무튼 커피라도 한 잔 하지. 대부분 그때
좀 깨지. 전혀 계산할 생각이 없다라는 게 딱 보이거든. 지갑에
손도 안대. 지문 인식 지갑이라 손 대면 결제되나? 아무튼
내는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은데 얘는 이미 얻어먹을 준비가 돼 있는 거야. 나도 사람인데, 최소한 물질적으로 착취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건 별로잖아. 내 카드랑
만나려고 나왔어? 그냥 두 가지 생각이 들지. 얘는 정말
개념이 없거나 나한테 마음이 없거나.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일 수가 없지. 아무리 예뻐도 매너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 내가 그나마
주선자 얼굴 봐서 예의를 차리는 거지.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너와 나의 연결고리 때문이라고. 돈이 아까운 게 아니야. 까놓고 커피값 정말 비싸다고 해도 2만원 안팎이지. 성의가 없잖아.
그리고 그런 거 있잖아. 왜 말을 애매모호하게 하는 거야. ‘어디 갈까?’ 물어보면 다 괜찮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재. 그런데 막상 어디 가자고 말하면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이유는 항상 있어. 그럼 차라리 자기가 정하던가. 아니면 신돈을 만나던가. 관심법이라도 써야 되는 건가? 최소한 자기가 싫어하는 거라도 말해주던가. 아니면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까 군소리를 하질 말던가. 뭔가 항상
불명확해. 사귀다가도 뭔가 어긋나서 화를 내서 이것 때문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래. 아니, 무슨 인터스텔라야. 웜홀이라도
넘어가야 이유가 있을 거 같다니까. 섭섭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던가. 왜 꼭 쌓아뒀다가 옛날 일까지 다 끌어내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가끔씩 그런 애들 있지. 전 여자친구는 어땠어? 대체 왜
물어봐? 말해주면 빡칠 거면서. 쿨한 척해봤자 결국 다른
식으로 화낸다고. 그리고 자기는 솔직하게 다 말한대. 전
남자친구가 어쩌고 저쩌고. 내가 그 얘기를 왜 듣니. 나한테
소개팅해줄려고? 아니면 셋이서?
아, 그리고 진짜 제일 심한 비매너.
왜 사진이랑 얼굴이 그렇게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야지.
얼굴이 두 개야? 교체형인가? 그럼 그 얼굴을
달고 나왔어야지 왜 잘못 달고 나왔어. 그래서 가끔씩 자기 얼굴 제대로 달고 나온 여자가 나오면 정말
매너모드지. 커피값? 에이,
됐어. 내가 내면 되지. 이미 완벽한 매너모드인데.
WHAT
WOMEN WANT
처음 만났는데 ‘어디로 갈까요?’라고
물어보는 것까진 괜찮아. 그러면 좀 무난한 곳을 가던가. 전에
처음 만난 남자애가 나를 데리고 불족발을 먹으러 가는데, 정말 열불이 났지. 내가 불알친구야?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어디 가자고 꼬치꼬치 말하면
좀 그렇잖아. 너무 까다로운 사람 같고. 그럼 좀 알아서
무난한 곳으로 가주면 안돼? 아무데나 가자고 했더니 불족발이 뭐니? 불족발이. 이 남자랑 만나면 안 봐도 훤하다. 속 터지겠지.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신경 안 썼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애들 있지.
그러니까 옷을 잘 입고, 못 입고, 그런 센스를
말하는 게 아냐. 자기 방에서 뒹굴다가 그렇게 약속장소까지 굴러서 나온 것 같은 애들이 있다니까. 여기가 카페냐, 네 방이냐 싶을 정도로. 그럼 다시 굴려서 집에 보내고 싶지. 나름 소개팅이라고 신경 쓰고
나왔는데 왜 이런 꼴을 보고 있어야 되나 싶고. 성의가 없어. 성의가. 아,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어. 이해해. 하지만 내가 계속 이해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한번 이해해줬으면 됐지.
어쨌든 밥값은 관례적으로 남자가 내잖아. 그러니까 커피든, 맥주든, 이 다음에 가는 곳에선 내가 계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가끔씩 ‘다음 차례는 그쪽이 사세요’ 이런 애들 있어. 어린 시절에
TV 보다가 ‘이것만 보고 공부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너 공부 안 하니!’ 이러면 공부할
마음이 싹 사라지잖아. 정말 다음 차례가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사줄 마음이 사라지지. 친해진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나서 그러면 깨지. ‘나한테 밥 사준
게 그렇게 아까웠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밥 먹듯이 전 여자친구 이야기하는 애들 있잖아. ‘전 여자친구는
안 그랬는데’ 이런 애들. 진짜 생각보다 많아. 무슨 알람처럼 뱉는다니까. 그럼 걔한테 다시 가서 잘 하던가. 그나마 그건 양반이다. 난데없이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친구 욕하는
애들 있거든. ‘전 여자친구는 정말 멍청했어’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그러면 내가 ‘아, 그 여자는 정말
멍청했구나’ 할까? 얘는 나중에 나도 이렇게 말하겠구나 생각하지. 그리고 왜 꼭 내 얘긴 안 듣고 지 얘기만 해? 모든 이야기가 다
자기중심적이야. 이게 무슨 그래비티야? 내 앞에서 자기 인생을
구구절절 말하는데 입으로 ‘자소서’ 써? 내가 면접관이야? 재미라도 있던가.
그나마 위트 있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서 듣고 있다가 나도 관심 있는 소재를 말하길래 한 마디 했어. 그럼 좀 들어야지. ‘아, 그래요’하고 다시 또 지 얘기만 해. 전생에 묵언수행하다 죽었나 봐. 그냥 내 귀만 놔둬도 될걸? 자웅동체도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좋으면 여자는 왜 만나니? 아, 여자 귀를 좋아하나?
사실 남자가 여자보단 돈에 민감하겠지. 책임감도 들고. 하지만 ‘오늘 영화 보러 갈까?’하면
영화 얘기를 해야지. ‘어? 그래? 그럼 밥도 먹고…’ 얘 뭐니? 누가
너 혼자 내래?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값, 밥값, 커피값,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런 게 보인다니까. 그리고 영화를 선택할 때도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면 그러려니 해. 그런데 네가 보고 싶은 영화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훨씬 대단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가 훨씬 우월한 선택을 한다고 설득하는 애들 있잖아. 좀 재수없지. 아, 물론
재수없는 것 중에 최고는 말 놓는 애들 있잖아. ‘어? 내가
오빠네?’ 이러면서. 이게 쿨한 줄 아나 봐? 거기다가 가끔씩 능글능글하게 어영부영 손 잡거나 어깨에 손 올리는 애들도 있어. 팔이 불편하면 깁스를 하던가.
그리고 포르노 보고 성교육 잘못한 남자애들 많잖아. 섹스도 사실 둘이서 함께 교감하려고 하는 건데, 나한테 무슨 서비스
받으러 왔어? 욕구는 넘치는데 무드는 없고. ‘입으로 해줘’ 이런 말하는 애들 정말 입으로 해주고 싶지. 욕을. 얘는 정말 어떻게든 나랑 한번 해볼라고 만난 건가 싶을 정도로, 옷도
벗고, 체면도 다 벗는 애들 있잖아. 완전 깨지. 침대에서 내려오면 나랑 헤어질 거야? 남자는 그게 결승선인 줄 아는데
여자는 거기가 출발점이라고. 몰라도 그렇게 모를까.
언제부턴가 니콜라스 홀트의 영화에서 니콜라스
홀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듯이 그랬다. 그가 바라보는 거울엔 자신의 얼굴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니콜라스 홀트는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다. 배우로서 재능도 있지만 그의 유머 감각을 보면 <어바웃 어 보이> 시절의 소년이라곤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다가도 필요할 때라면 언제라도 연약한 인상의 휴 그랜트처럼 돌변한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연출한 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말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 4>)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샤를리즈 테론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니콜라스 홀트는 중심이 잘 잡힌 배우다. 그의 전작들을 보기도 했지만 직접 보니 그 재능에 탄복하게 되더라. 직접 스턴트를 감행할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체계적이고 안전한 연기를 추구하고 확실히 몰입한다. 정말 보여줄 게 많은 친구 같다. 앞으로 분명 영화계에 큰 기여를 할만한 재목이다.” 그렇다. 지금 니콜라스 홀트를 말할 때, 굳이 <어바웃 어 보이>의 귀여운 소년까지 기억을 더듬는 이는 드물다. 과거형보다 현재진행형의 시제가 어울리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고, 키만 큰 게 아니었다.
<매드맥스 4>는 무법천지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매드맥스> 시리즈의 속편이다.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심지어 그의 데뷔작이었던, 무려 1980년에 처음으로 제작된 <매드맥스> 말이다. <매드맥스 4>는 1985년에 발표된 세 번째 속편 이후로 무려 30년 만에 발표되는 네 번째 속편이기도 하다. 1989년생인 니콜라스 홀트에게 있어선 생소한 과거형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매드맥스 4>는 그에겐 지금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장에서 내가 연기할 눅스라는 캐릭터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세심한 디자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우!’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외모로 변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세계관과 이 캐릭터는 굉장히 색다르군.’ 나는 언제나 그런 부분에 욕심이 난다.”
니콜라스 홀트는 자신의 잘난 외모를 망가뜨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걸 즐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웜 바디스>에선 기꺼이 좀비 분장을 했고, 두 편의 <엑스맨> 신작에선 새파란 털복숭이 돌연변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특별한 부연설명을 듣지 못했던 관객이라면 ‘저 캐릭터가 니콜라스 홀트라고?’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매드맥스 4> 예고편에 등장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특이하게 개조된 범퍼카를 운전하면서 “오늘 일진 끝내주는데!”라고 외치는, 해골 바가지 같은 얼굴로 하얗게 떡칠한 상체까지 훤히 내놓은 ‘워보이’가 니콜라스 홀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건, 뒤늦게 알게 됐건 두 눈이 휘둥그래질 거다. 이는 그의 정교한 특수분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 분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그의 탁월한 노력 덕분일지도 모른다. “처음 읽은 대본은 대본이라 할 수 없었다. 마치 두꺼운 코믹스북처럼 대사가 듬성듬성 들어있는 이미지뿐이었으니까. 게다가 대사도 낯설었다. 줄넘기를 하면서 대사를 읊으면서 그 리듬감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사실 <매드맥스 4>는 그 세계관의 외형만큼이나 거칠고 험하게 다뤄진 작품이다. 요즘의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블루 스크린에서의 안전한 액션신이 보장된 작품이 아니었다. “진짜 자동차가 있는데 왜 CG로 만들어야 하나?”라고 묻는 감독의 발언만으로도 확실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정말 위험한 신들을 위한 스턴트팀이 준비하고 있었지만 배우들 역시 아찔한 순간을 종종 맞이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홀트가 이런 험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즐긴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세상에 한 대씩밖에 없는 차들이 폭주하는 나미비아 사막에서 촬영을 하는데 8기통 혹은 12기통 엔진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덕분에 감독님의 ‘액션’ 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아서 가끔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다행인 건 결국 괜찮았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정말 끝내주는 세상을 창조했다.”
사실 니콜라스 홀트는 좀처럼 평범한 역할에 안주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특이한 역할에만 주목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은 배우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단순히 변신이나 도전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와 캐릭터의 공통점이 적을수록 연기하긴 더 쉬운 것 같다. 영국식 발음으로 연기할 때가 미국식 발음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되레 어렵다. 미국인 행세를 하면 어디선가 스위치가 작동해서 나 자신과 손쉽게 멀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매드맥스 4>에서의 특수분장도 그런 것이었다. 거울 너머에 있는, 삭발한 머리에서 이어지는 흉터와 상처로 점철된 얼굴을 보고 앉아 있으면 ‘그래. 확실히 나랑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괴상한 분장으로 점철된 그의 얼굴을 보고 헌신이나 희생이란 단어를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에게 특수분장은 날개와 같은 것이었다.
<싱글맨>에 캐스팅됐을 당시 니콜라스 홀트는 한 인터뷰에서 동성애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묻자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캐릭터였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잠재적으로 동성애자처럼 보일 수 있는 역할이란 이유로 거절한다면 그게 멍청한 거지.” 그가 자신이 분할 캐릭터를 향해 던지는 물음표란 ‘니콜라스 홀트로서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기 보단 ‘니콜라스 홀트가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일지도 모르겠다. “열두 살 무렵의 내가 어떤 소년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중요한 건 결국 현재다. 자신의 현재 시제에 놓인 영화에 충실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 니콜라스 홀트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
살짝 날이 선듯한 뾰족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조목조목 말했다. 조금 진지했지만
무겁진 않았다. 유쾌한 여운이 남았다.
피곤해 보인다.
스튜디오로 오는 길에 졸았더니(웃음).
스케줄이 많나 보다.
작품이나 방송 촬영이 있는 건 아닌데 항상 스케줄이 있더라.
이전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유독 ‘생각보다 진지하다’는 말이 많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인터뷰에선
고민해서 말하다 보니 더 그렇게 보이는 거 같고.
원래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한데, 그런 선입견을 경험하는 기분이 궁금하다.
특별히 좋고, 싫은 건 없다. 그냥
‘내가 방송에서 그렇게 보이나?’라는 생각 정도? 아무래도 방송에서도 이렇게 조용하게 말할 순 없으니까(웃음). 나름 밝게 보이려 노력하는 부분은 있다.
<스타일
로그>에선 의외로 무뚝뚝해 보일 때가 있더라.
그때 민호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친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나나는
처음 만났기 때문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던 거 같다. 그래도 점점 친해지면서 후반부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던
거 같다.
낯을 가리는 편인가.
낯가림이 심해서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일 경우엔 더
심하다.
<위험한
상견례 2>에서 도둑 가문의 아들로 나온다. 혹시 남의
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아주 어렸을 땐 있었다. 장난감이나 축구화 같은 거. 물론 남의 것을 빼앗고 싶다기 보단 그냥 순수하게 갖고 싶다는 생각.
특별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순간이동?
이유는?
영화 <점퍼>의
주인공이 순간이동으로 스핑크스 위에서 햄버거를 먹기도 하는데 부럽더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몇 초
만에 갈 수 있다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살면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여행만한 경험도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순간이동이란 능력을 갖고 싶다.
여행 좋아하나?
늘 가고 싶지
가장 인상적인 해외여행지는?
사실 해외를 나간 경험은 별로 없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중학교 시절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으니까.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워본 적도 있는데 대부분 나 때문에 취소하게 되더라. 갑자기 촬영이 잡힐 때가 있어서. 게다가 어릴 땐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웃음).
그래도 친구들이 잘 이해해주는 편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친구들이니까.
최근에 한 브랜드 행사에서 풋살경기를 선보였다. 친구들과 축구를 자주 한다던데.
예전엔 주기적으로 자주 뛰었다. 최근엔 친구들이 팀까지 만들어서 일요일
아침마다 공을 차는데 나는 일요일 아침엔 <인기가요> 생방송
준비를 해야 해서 못한지 한참 됐다.
생방송 진행은 긴장되지 않나?
예전에 <와이드 연예 뉴스>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꽤 오래 진행했지만 오랜만에 해보니 긴장되더라. 그만큼 저절로 집중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게 되니까 끝나도 후회는 안 생긴다. 생방송만의 매력이 있는 거 같다.
아직 배우로서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이
없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그만큼 클 때다.
당연히 욕심이 생긴다. 배우로서 대표작을 갖는다는 건 많은 분들께
사랑 받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니까.
솔직히
<위험한 상견례 2>가 대표작이 될만한 작품일지 모르겠다. 다만 배우로서 디딤판이 될만한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감독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 영화가 너에게 대박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네가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줄게”라고.
코미디물은 처음 아닌가.
시트콤 정도는 했는데 코미디물은 처음이지. 그래서 걱정도 많았지만
기대도 있었다. 예전부터 코미디물은 한번 해보고 싶었으니까.
도둑 집안의 가풍에 반항하는 아들을 연기했는데
본인은 실제로 어떤 아들이었을까.
나름 착한 아들이었다. 특별히 반항을 하거나 크게 말썽을 부린 기억은
없으니까. 부모님께서도 크게 혼내신 적이 없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모님께서 워낙 혼내시는 편이 아니라서 작은 말썽을 부렸을 땐 내가 되레 더 반성했던 거 같다. 그런
면에선 다른 친구들보단 성숙한 편이었던 거 같다(웃음).
그렇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면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는 건 고역 아니었을까?
처음엔 고사하려고 했다. 내 성격은 이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을 거
같고, 프로그램도 재미없어질 거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출연하게 됐다.
할만했나?
힘들었다(웃음). 그래도
억지로 밝은 척, 친한 척하지 않고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점차적으로 친밀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모두에게 다 좋아 보일 순 없는 거니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해볼만한 일이었던 거 같나?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는 거 같다. 그래도 얻은 게 더 크다.
무엇을 잃었다고 생각하나.
오해를 산 부분이 생긴 거 같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걸 보고 어떤 분들은 상대 파트너인 유라에 비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 같더라. 말도
별로 없고, 가만히 있고. 사실 할말이 많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도 말하기 보단 들어주는 편이다. 게다가 유라는
밝고 발랄한 편이고,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나는 거기 최대한 맞춰주려는 입장이었다. 그걸 오해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긴 거 같지만 나라는 사람을 많은 분들에게 알려준 건 확실히 얻은 부분이다.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나?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가볍게 생각하면 결혼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 같다. 약간의 책임감은 생기겠지만 재미있을 것도 같고. 지금 내 나이에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연애하듯이 결혼생활을 할 거 같다. 남편, 아내, 이런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친구처럼.
사실 결혼보단 연애가 더 현실적인 때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일까?
적극적으로 대시한다기 보단 알 정도로는 표현하는 거 같다. 나는 관심이
없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안하는 타입이라 내가 표현하는 것 자체가 정말 엄청난 표현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거 같고(웃음).
<위험한
상견례 2>는 양가의 부모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당사자들이 밀어붙이는 이야기다. 본인도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밀어붙일 수 있을 거 같나.
그럴 거 같다. 아무래도 부모님을 생각해보니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란
걸 잘 알아서인 거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설득시킬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게 뻔하니까.
원하는 걸 관철시키고자 노력하는 편일까?
어릴 때부터 남들이 다 쓸데 없는 짓이라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편이었다. 고집이 셌지. 물론 너무 터무니 없는 걸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건 또 아니니까.
모델 활동을 하다 자연스럽게 배우로 넘어왔는데
원래 모델이 되고 싶었나?
어릴 땐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중학교 때 외모와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모델이란 직업이 멋있어 보였다. 그땐 키가 작았는데 중3때 키가 확 커져서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 하고 싶은 건 빨리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찾아갔다.
무작정 찾아간 건가? 나름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사실 찾아가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모델에 관한 정보가 담긴 책자를
많이 봤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걸 보시더니 모델을 하고 싶으면 빨리 하라고 하셨다. 뭘 그리 오래
고민하냐고. 그래서 ‘알겠어요’라고 바로 찾아갔다. 정말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가능했지. 그래도 정말 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찾아간 걸 보니까.
하고 싶다고 다 받아주는 건 아닐 텐데, 나름 끼가 있었나 보다.
잘 모르겠지만 수업 한번 받아보고 이야기하자더니 두 달 뒤에 수업이 끝나니까 정말 해보자고 하더라. 그때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고 싶단 이야기도 했고, 같이 준비하게
됐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 중에서 대학로 연극을 연출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덕분에 연극을 보게 됐다. 처음 연극을 보는데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고 빠져들었다. 연기하는
기분은 어떨까 정말 많이 궁금하더라. 그래서 애초에 모델과 배우 둘 다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갔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했는데 만인의 주목을
받는 건 괜찮았나?
처음 촬영하고, 처음 컬렉션 런웨이에 서고, 그때마다 너무 긴장했다. 그래서 너무 어색했던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흥분되고 즐겁더라. 기분 좋은 긴장감이랄까? 그래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무대에서 수많은 시선을 즐길 수 있는 편이었을지도. 모델로서 런웨이를 하고 주목을 받는 것도 있지마 배우 역시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 편이다. 연기할 때 그런 게 의식되진 않던가?
많이 의식됐죠.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 다 신경 쓰일 정도였는데
그런 걸 하나하나 이겨내는 과정이 있었고, 지금은 많이 편해졌죠.
연기 데뷔작은 <쌍화점>인가.
<쌍화점>에
처음 캐스팅됐는데 김종관 감독님이 연출한 단편영화 <헤이, 톰>을 먼저 찍었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던 기억은?
긴장돼서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움직이지? 어떤 표정을 짓지? 화면엔 어떻게 나올까? 지금 표정은 괜찮나? 얼어 보이진 않을까? 계속 이런 생각만 났다.
화면 너머의 자신을 보는 건 익숙한가?
아직도 좀 낯설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보면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잘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지만 기대도
되고.
모델과 배우 중에 더 하고 싶었던 일은?
둘 다 하고 싶었다. 다만 어린 나이에 모델 활동을 먼저 하고 20대 중반부터 배우 활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연기를 빨리 시작하게 됐다.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모델로서 괜찮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서 조금 아쉽더라.
자신의 생각보다 빨랐던 만큼 예기치 못한
부담감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부담감이 생겼다. 그나마 처음엔 큰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을 덜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마 좀
더 중요하고 큰 역할이었다면 힘들었을 거다.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방송 관계자들도 상당히 주목했던 작품으로
알고 있다. 본인을 비롯해서 김우빈, 이수혁, 성준, 김영광과 같은 모델 출신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고.
맞다. 그 작품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꽤 많다. 지금도 인터뷰할 때마다 한번씩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해보면 감독님
입장에선 모험이었을 거다. 경험이 거의 없는 모델 친구들을 데리고 작품을 끌어갔다니 정말 대단한 결단이었지. 촬영 내내 재미있었다. 그 멤버가 다시 모여서 촬영할 기회를 얻기도
힘들겠지.
그 당시만 해도 그 작품이 이렇게 회자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텐데.
소재가 특이하니까 마니아층은 생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 방영이 끝나고 더 많은 인기를 끈 거 같다. 방송사에서 DVD를
출시했는데 그때까지 발매했던 DVD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가 이뤄졌다고 하더라.
때론 기대 밖의 결과로 돌아오는 경험이
있다. <위험한 상견례 2>도 그런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일단 코미디라는 장르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작품이자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니까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작품이 끝나면 ‘아, 진짜
추웠다’란 식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데 아마 <위험한
상견례 2>는 ‘정말 많이 웃었다’란 식으로 기억날 거 같다.
누구 덕분에 많이 웃었을까?
신정근 선배님이나 전수경 선배님, 김응수 선배님께서 워낙 잘 하셔서
같이 촬영하면 항상 많이 웃었다. 그 탓에 NG도 많이 나서
죄송했지만 웃긴 걸 어떡해(웃음).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온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진 않았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저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것도 대단한데
항상 내 생각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시니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세 분 다 항상 잘
대해주셨다. 나도 나중에 어린 후배가 생기면 따뜻하게 잘 대해줘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신 거 같다.
혹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은 없나?
최근엔 코미디를 해봐서인지 몰라도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더라. 좀 더 나이가 들면 남성적인 장르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해보지 못한 캐릭터가 많아서 한번씩은 다 해보고 싶다. 지금까진
나름 잘해온 거 같은데 올해엔 어떤 작품이 됐든 정말 뿌듯하게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힙합을 몰라도 아는 그 이름 타이거 JK와 윤미래 그리고 실력파 래퍼 비지(Bizzy)가 모였다. 이름하여 MFBTY. 당장 입에 붙지 않아도 괜찮다. 조만간 누구보다도 열광하게 될 테니까.
MFBTY는 ‘내 팬들이
너희 팬들보다 낫다’는 의미인 ‘My Fans (are) Better
Than Yours’의 약자, 그러니까 ‘스웩(Swag)’ 그 자체다. 이 생소한 이름에 담긴 자신감이 허세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힙합은 몰라도 타이거 JK와 윤미래는
알 거다. 그리고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에 꾸준히 참여해온 실력파 래퍼 비지(BIZZY)까지, 이 세 사람이 뭉친 프로젝트 유닛이 MFBTY다. 이미 2013년
초에 MFBTY라는 이름으로 싱글앨범을 발매했고 같은 해 말에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정규 앨범 <살자(The Cure)>가 발매된 바 있다. 리허설은 끝났다. 이제 진짜 무대에 오를 시간이다. MFBTY의 <Wondaland(원다랜드)>는 타이거 JK이자 윤미래이자 비지이면서도, 타이거 JK도 윤미래도 비지도 아니다. “R&B나 소울, 힙합에 빠져 있던 세 사람이 함께 작업하니까
대단한 힙합 프로젝트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 음반 판매처의 예약 판매에 게시된 걸 보니 장르가 힙합으로
돼있어서 댄스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타이거 JK의 말이다. 그러니까 힙합계의 <어벤져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타이거 JK와 윤미래가 모인, 게다가 실력파
래퍼인 비지까지 가세한 이 앨범이 힙합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타이거 JK가 다시 말했다. “각자 하기 힘들었던 음악을 이렇게 모여서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록부터 팝, 댄스, 어쿠스틱까지 다 있다. 대중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 누구의 팬보다도 나은 그들의 팬들이라면 당연히 열광할 준비가 돼 있겠지만.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MFBTY의 앨범에 대한 힌트는 그 앨범의
지주인 세 사람 외에도 피처링 참여로 이름을 올린 수많은 뮤지션들의 이름에 있다. 전인권,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 비스트의 용준형, 도끼(Dok2), 윈디시티의 김반장, 유희열 그리고 이현준과 이윤정의 EE 등 나이와 장르를 초월한 다채로운
음악적 대가들이 MFBTY의 앨범에 기꺼이 참여했다. 언어
그대로 기꺼이. “이메일로 조심스럽게 참여를 요청했는데 예상치 못한 게스트들이 우리가 사는 의정부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우리끼린 ‘어렵겠지?’ 하면서도 던져본 셈이었는데 다들 직접 찾아온 거다. 정말 기대하지
못했던 터라 너무 고마웠다.” 유희열은 한밤 중에 의정부까지 달려와 밤을 지새우며 피아노 곡 작업을
선사했다. 타이거 JK 앞에 5년 만에 나타난 김반장이 자신의 밴드와 함께 연주해준 곡에 전인권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랩몬스터는 피처링뿐만 아니라 MFBTY의 곡을 모니터링해줬고, 뮤직비디오 현장까지 찾아와 카메오 출연을 자청했다. 게다가 누군가
새하얀 벤츠를 그들의 작업실 앞에 세우더니 도끼와 더 콰이엇이 내렸다고. “그 외에도 참여 의사를 밝혀주신
분들이 많았지만 시간상 불가능해져서 어렵게 고사할 수밖에 없는 분들도 있었다. 정말 신비한 일이었다.”
타이거 JK와 윤미래는 국내 음악계에서 대체불가능한 래퍼이자 뮤지션이다. 그들이 함께 제대로 놀아보겠다는데 최소한 음악 좀 가지고 논다는 이라면 그 판에 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타이거 JK, 윤미래 그리고 비지 이
세 사람의 음악적 열정과 호기심이 그 판을 깔았다는 사실이 더욱 주요했다. “우리도 각자 음악을 오래
하다 보니까 자기들만의 틀이 생겼다. 그런 틀에서 벗어난 음악을 해보려고 했지만 오래 음악을 하다 보면
계산하지 않아도 관성이란 게 생긴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셋이 뭉치니까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볼 수 있겠더라. 그래서
셋이 뭉치니 새로운 곡이 늘어났고, 각자의 솔로로 할 수 없는 음악들을 MFBTY로 해보기로 했다.” 물론 세 사람의 여정이 마냥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마음은 서로 잘 맞지만 각자 캐릭터가 다르고 서로의 색깔이 뚜렷하다 보니 서로 융화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본래 싱글 앨범 발매 계획은 정규 앨범으로 확대됐다. 서로 좋아하는 취향을 하나의 틀로 규격화해서 반죽하기 보단 나열해서 수집하기로 했다. 그 결과 16곡이 전혀 다른
MFBTY의 <Wondaland>가 탄생했다.
앨범의 타이틀인 <Wondaland>는 그들이 추구하는
‘원더랜드(Wonderland)’ 그러니까 그들이 꿈꾸는
멋진 이상향의 ‘얼터에고’라 해도 좋을 신세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타이거 JK와 윤미래,
비지가 자신들을 둘러싼 음악적 자의식을 버리고 나아간 새로운 음악적 영토인 셈이다. 하나보단
둘, 둘보단 셋이 어울리는 음악을 통해서 자신들이 꿈꾸던 순수한 음악적 사랑이 깃든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음악적 활동에 대한 열망에서 잉태된 산물이다.
무엇보다도 MFBTY의 음악에서 키가 되는 건 윤미래다.
“(윤)미래의 훅이나 코러스로부터 탄생한 곡이 많다.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줄거리를 쓰고, 비지와 같이 살을 붙이는데 코러스 라인이나 멜로디에서 영감을 얻게 되니까.” 한편 비지는 타이거 JK와 윤미래에 비해 알려지진 않았지만 드렁큰
타이거의 5집 앨범부터 참여해온 실력파 래퍼다. 즉 MFBTY의 히든 카드인 셈. “비지가 아니라 해도 친한 동생은 많다.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음악을 함께 한다면 그건 오해”라는 타이거 JK의 말은 그의 존재감에 기대감을 입힌다. 그리고 타이거 JK, 설명이 필요한가?
지난 2013년 세 사람은 이미 한 차례 정규앨범을 발매한 적 있다. 세 사람 각자의 이름이 들어간 그 앨범의 타이틀은 <살자>였다. 1년 전 세상을 등진 타이거 JK의 아버지 고 서병후의 투병을 정신적으로 응원하고자 만든 앨범이었다. 1년여 전 인터뷰에서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선 기사상에서 숨겨주길 바랬던 타이거 JK는 이제 허심탄회해하게 고백했다. “사실 아버지께선 알고 계셨다. 오히려 우리에게 숨기고 계셨지. 그래서 나랑 미래, 비지, 매니저들까지 모두를 위한 조언이 담긴 노트를 남기고 가셨다. 우리에게 사랑에 관한 곡을 많이 쓰라고 부탁하고 가셨다.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라 말 그대로 큰 사랑 말이다.” 그래서 지난 해 12월에 타이거 JK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남긴 1억 원의 재산을 아버지의 명의로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남자들은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 남자가 된다더라.” 타이거 JK 또한 아버지다. 자신의 아들인 서조단은 MFBTY의 새 앨범 중 ‘방귀 댄스’라는 음악에 작곡과 노래로 참여했다. 그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기 보단 고통을 통해서 재능을 갈고 닦길 고대한다. 호랑이가 새끼를 키우듯 쉽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타이거 JK는 <엘르>와 함께 한
2013년 10월호 화보 덕분에 미국에서 영화 캐스팅 제안이 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화보가 잘 나온 덕분에 포트폴리오처럼 전해진 거 같더라. 지금은
내가 뛰어들 자리가 아닌 거 같아 일단 고사했다.” 그리고 이미 3년
전 타이거 JK가 출연했던 영화 <세계일주>가 드디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이들의
모험담을 그린 이 영화에서 타이거 JK는 길거리의 방랑 악사로 등장하며 아이들을 위기로부터 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아동학대방지 홍보대사를 했던 시절이었고, 그런
좋은 취지와 부합하는 영화라고 하니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타만 들고 앉아있으면 되는 카메오라더니
점점 분량이 늘어났다.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보였는지 감독님께서 계속 부르시더라. 좋은 경험이었다. 언젠가 영화에 또 도전해보고 싶다.” 언젠가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MFBTY의 활동이 보다 중요하다. “진짜 이번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 방송도 많이 하고, 뮤직비디오도 다섯 개 이상 찍을
거다. 그래서 우리가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MFBTY라는 생소한 이름 아래 모인 타이거 JK, 윤미래 그리고 비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음악적 열망으로 자신들이 서있어야 할 무대, 진정한 원더랜드를 염원한다.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그 어떤 팬들보다도 나은 그들의 팬들 역시 손을 머리 위로. 기다림은
끝났다.
웹툰 계의 ‘암모나이트’ 혹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강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작가다. 한결
같은 이야기를, 한결 같은 믿음으로 쓰고 그린다. 재미있는
작품에 대한 순정으로.
<무빙> 연재 전에 SNS를 통해서 대단한 각오를 남겼다.
늘 그렇다. 각오는 항상 대단해(웃음)!
자신감일까,긴장감일까?
긴장감이지. 사실 다른 작가들은 전혀 무섭지 않은데 독자들은 늘 무서워. 혹자는 창작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난 아니야. 독자랑 싸우는
거지. 독자를 재미있게 만들어서 굴복시켜야 돼. 독자가 재미없게
느끼면 지는 거야. 그러니 늘 긴장되지.
팩션물이었던 <26년>을 제외한 전작들은 ‘순정만화’와 ‘미스터리심리썰렁물’로 구분했다. 그런데 <무빙>은 ‘액션만화’라고
했더라.
후회하고 있다(웃음). 전반부는
순정물처럼 보이지만 후반은 아니거든. 그런데 미스터리물도 아니고, 대신
후반부에 액션이 조금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별거 안 해. 아니, 못해(웃음). 그러다가
막판에 빵 터트리고 끝날 거야. 전체 분량의 3/4정도까지
진행돼도 액션이 안 나와. 아마 욕 좀 먹겠지(웃음).
기다린 만큼 제대로 된 액션이 안 나오면
악플 좀 달리겠는데.
‘답답이’ 같았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쾌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정말 답답하고
짜증이 나야겠지. 우린 지금 그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거야.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뚱뚱한 봉석이를 보면서. 그래도 액션이라고 붙인 건 조금 후회된다(웃음).
그런데 왜 제목은 <무빙>일까?
만약 제목이 <액션>이었다면
비행 능력이 대단하고 큰 일을 해내는 히어로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씩 움직이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 캐릭터도, 이야기도. 사실 제목을 붙일 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야(웃음). 어쨌든 하늘을 나는 히어로물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현실에서 그럴듯한 히어로물을 해보고 싶었지.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는 미국에선 그럴 듯해 보여도 한국에선 능력이 과해 보이잖아. 그리고 시간능력자들이 등장했던 <타이밍>과 어감도 비슷해서 좋고.
그렇다면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사실 우리나라만큼 히어로를 이야기하기 좋은 환경도 없다. 지금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분단국가에 초능력자가 있다고 하면 남한이든, 북한이든 얼마나 많은 관심이 생기겠어.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란 영화가 있는데 실제로 초능력
부대를 만들려고 했던 미국 특수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야. 그런데 우리나라 안기부에서도 첩보전에
활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탐사전문기자인 주진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
정재승 박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던데.
뇌과학자니까 초능력에 대해 물어봤지. 재승이 형이 카이스트에 있을
때 이상한 사람들의 문의가 많이 왔대. 실제로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실험도 해봤는데
결론은 초능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왜 초능력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능력이었을까?
하늘을 나는 게 매력적이니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사람도 많잖아.
최근작으로 올수록 비현실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순정만화’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나
<마녀>조차 좀비나 오컬트라는 장르적 세계관에 담아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뻥을 치고 싶어진다. 만화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야. 현실적인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귀신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뻥 치기 좋아서다. 무슨 말을 해도 구라니까 창작할만한 여지가 많거든. 초능력도 마찬가지다. 마블의 초능력자들도 말이 안되잖아. 거미인간이라니, 완전 ‘개뻥’이지(웃음). 하지만 이야기가
그럴듯하니 재미있잖아. 나도 그런 만화를 해보고 싶었다. 허황된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하는 게 작가의 몫이라 생각하니까.
<26년> 이전엔 작품마다의 연재 간격이 2개월 수준이었는데 <26년>부터 반 년으로 벌어졌고, 이젠 1년에 한 작품 수준이다. 작년엔
아예 연재가 없었고.
이야기를 쓰는데 들어가는 공이 점점 커지는 탓이다. 사실 <26년> 이전 작품들을 연재할 때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그만큼 공을 들였을 거다. 하지만 그땐 연재를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니까 차기 연재를 빠르게
가져가야 했다. 지금은 그때보단 여유가 생겨서 작품을 다듬을 시간이 생겼지. 그런데 1년 넘게 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란?
집요한 거 봐라. 훌륭한 기자일세(웃음).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사전 작업 기간이 늘어났다는 건 작품에
대한 욕심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독자들이 남기는 댓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지루해졌다는 댓글이 몇 백 개 달리면 뒤에 있는 클라이맥스를 앞으로 끌어오고 싶어진다. 실제로 그런 짓을 하다 구조가 어그러져서 작품을 말아먹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니까
연재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나를 믿고 이야기를 밀고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만화가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 아니니까 이야기까지 밀리면 안 된다. 이야기가 내 무기라 생각하니 그에 들이는 공이 커지는 거다. 대사
하나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을 때 연재에 들어간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진 않나 보다.
몇 년 전만 해도 콤플렉스였다. 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릴까. 처음 일상툰 형식의 <일쌍다반사>를 연재할 땐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막대한 분량의 장편 서사 만화를 소화하면서 손이 느리고, 마음 먹은 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답답하더라. 그런데 그림과 만화는
다른 영역이란 걸 알게 됐다. 일러스트로 봤을 때 내 그림이 약한 건 사실인데 나는 만화는 잘 그린다. 내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콤플렉스가 없어졌다.
이야기가 자신의 무기라고 했는데 보다 정확하게는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품게 만드는 덕분에 캐릭터의 행위가
독자들의 지지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작품이 지루해지는 거다. 캐릭터 소개가 굉장히 길잖아. <무빙>도 6화까지
왔는데 아직 캐릭터 소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진행된 사건이랄 게 거의 없잖아. 하지만 이 과정이 내 작품의 궁극적인 재미를 보장한다. 이야기의
성패는 독자들이 주인공을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가에 달려있다. 독자들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활자로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캐릭터라고
소개하는 것보단 우유부단해 보이는 사연과 소극적으로 보이는 사연을 하나씩 보여주는 게 맞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공감대를 열어주거든. 캐릭터를 최대한 설명하고 이해시킨 뒤엔 이야기에 힘이
붙는다. 결국 이야기가 완결됐을 때를 보고 가야 된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이야기를 준비해서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두 커플 이상의 중심인물이
등장해서 얽히고 설키며 이야기가 굴러간다.
<프렌즈>란
시트콤을 좋아하는데 거기 여섯 인물이 등장하잖아. 40분 남짓한 시트콤에서 두 커플씩 엮어서 세 가지
사건을 진행한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내 작품에 다양한
커플이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이다. 미비한 존재들이 협력해서 거대한 선을 이루는 이야기가 좋다.
전작들과 달리 <무빙>은 봉석이와 희수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되는 인상이다.
후반부에 봉석이네 부모님과 희수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다. 그러니까
결국 세 커플의 이야기가 되겠지. 전후반을 책임지는 캐릭터를 나눈 건 처음이라 지루한 감도 있는 거
같다.
죽음을 주요한 감정적 매개로 활용하는 작품이
많다. 죽음에 예민한 사람이 아닐까 궁금했다.
김중혁 소설가도 비슷한 질문을 하더라. 조금 없어 보이는 대답인데, 이야기를 쓰다가 꽉 막힐 땐 의미 있는 인물 하나를 죽이면 뚫린다(웃음). 주변 인물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고 노력하면서 이야기가 살아나거든.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거 같다.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셔서 가끔씩 돌아가신 신도의 장례식장을
따라가는 일이 종종 생겼거든. 그땐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들어서 알았지. 긴긴밤을 보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죽음만큼 극단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것도 없지만 사람은 결국 자기 삶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고립의 정서가 느껴진다. 물리적인 고립이든, 정서적인 고립이든 결국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데 그 외로움에 귀 기울여 주거나 손을 내미는 이들의 존재의 등장을 통해 짠하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자아내는 방식이 일관되게 이어진다.
내 만화엔 유난히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잖아. 일찍이 가난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지. 그래서 좀 외롭기도 했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진 신나게 놀았던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리를 두게 됐다.
희한하게 애들이 고2때부터 돈을 가지고 놀더라. 친구
집에서 모이거나 농구를 하는 게 아니라 커피숍이나 피자집, 콜라텍에서.
그런데 나는 용돈도 없고, 버스 회수권만 들고 다녔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거든. 그러니까 불편해지더라.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잖아. 그러니까 점점 내가 애들을 밀어내더라. 친구끼리
어떠냐고 할 수도 있고, 그 마음도 알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상황의 외로움을 알 수 없다. 나를 배려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더라. 게다가 그땐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기도 했고. 그래도 학교에선 애들이랑 잘 어울렸다. 그리고
방과 후엔 혼자 도서관에 갔지.
놀 수 없으니 공부를 한 건가?
중2때부터 도서관에서 책 읽는 재미를 알았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다. 그리고 야한 이야기를 좋아했다(웃음). <여명의 눈동자>를
김성종 작가의 원작으로 읽어보면 엄청 야하다. 여옥이가 장난 아냐(웃음)! 그리고 추리소설 중엔 여자가 벌거벗고 죽은 채로 시작되는 게 많다. 대중적인
추리소설이나 통속소설을 좋아했는데 야한 재미로 무협소설을 보다가 김용의 <영웅문>을 읽고 감명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역사소설로 넘어가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고 감탄했다. 그렇게 도서관 책장 하나를 다 읽었다고 뿌듯해했으니까 얼마나 공부를 안 했겠어?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때 내가 엄청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을 거다(웃음).
그래도 작가로 살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의 복선 같은 시절이라 해도 좋겠다.
그런데 다독가라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말하기 부끄러워진다. 흔히 말하는
명작은 본 게 없으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제목만 들어도 멋있는 책 있잖아. 이상하게 한두 권짜리 책엔 흥미가
안 생겼다. 적어도 세 권 이상은 돼야 읽었지. 아무튼 참
외로운 시절이었는데 그런 환경에서 바르게 엇나갔던 거 같다.
항상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한다.인간의 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착하다는 믿음이 있다. 악당조차도 길가의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면 달려가서 잡아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안 본다. 결국 내가 믿는 사람들과만 교류하다 보니 내 세계에 갇힌 셈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운 좋게도 착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온 덕분일지 모르고.
그런 믿음이 휴머니즘의 감동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으로 표백된 세계관을 보고 있다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잘 알겠지만 내 작품에서 악당은 둘 밖에 없었다. <26년>의 그 인간하고 <이웃사람>의 살인마. <26년>이야
원래 나쁜 놈을 반영한 거니까 그렇다 치면 <이웃사람>의
살인마가 내가 만든 유일한 악당인 셈이다. 사실 <이웃사람>의 시나리오엔 살인마의 외로움에 관한 2화 분량의 서사가 있었다. 그런데 연재 직전까지 의심이 거둘 수 없었다. 살인마에게도 사연을
부여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 걷어냈다. 정당성을 쥐어주면
안되겠더라. 그래서 알았다. 어떤 인물에 대해 이해하도록
만들면 그 사람을 결코 악당으로 여길 수 없다는 걸. 그러니 한 명씩 다 사연을 입혀주는 내 만화의
캐릭터들은 결코 악당이 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한때 고민하긴 했다.
내가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괜찮겠더라. 세상에 널린 게 만화인데 이런 만화가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착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일단 내가 재미를 느끼기
힘들 거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겠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외피를 씌우는 데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 뻥을 치고 싶은 이유가 거기 있다고 할까?
나는 지금 매너리즘과 스타일의 경계에 서있다고 본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재미있으면 그건 작가의 스타일이다. 재미가 없으면 매너리즘이고. 착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를 열한 편이나 했지만 앞으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러니 ‘강풀은 이제 뻔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재미있는 작품을 해야지. 그러니 매번 긴장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독자들이 무섭다. 독자들이 재미없다는데 이걸 내 스타일이라
우길 수는 없잖아. 우기면 비참재지는 일이고. 인터뷰도 그래서
잘 안하고 연재 후기도 안 남긴다. 작품을 독자에게 내보낼 때 이미 승부는 끝난 거다. 그러니 작가가 뒤늦게 자신의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일이 짚어주는 건 변명일 뿐이지.
사실 웹툰에 후기라는 포맷을 정착시키는데
일조한 장본인인데.
<순정만화>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사실 작화 과정을 공개하거나 연재를 끝낸 소감을 남기는 것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면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만큼 치열하게 연재하고, 끝나면 독자의 반응에 승복해야 한다. 본편보다 후기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면 이미 변명의 여지가 없이 실패한 작품이라는 거지.
가끔씩 작품에서 모든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솔직히 나도 이젠 <순정만화>
같은 건 오글거려서 못 본다. 그런데 가끔은 그렇게 해야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은 대사나 내레이션을 길게 썼다가 너무 설명하는 것 같아서 빼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걸 느낀다. 그렇게 해야 어린 애들은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좀 설명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은 확실히 초기작들에 비해 내레이션은 정말 많이 줄어든 거다.
심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인과를 펼쳐
보이는 내레이션은 다르다. 전자는 독자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 될 수 있는데 후자는 독자의 상상을 제한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가끔 상상을 제한해버린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상당히 많이 개입해버리는 편이긴 하지. 아무래도 그건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점점 작품보다 상품을 만들고 싶어진다. 말장난
같지만 걸작보단 명작을 만들고 싶다. 생각을 곱씹으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작품도 좋지만 많은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도 약간 헷갈린다.
내가 좀 더 덜어낼 수 있는 부분인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더 들어갈 때가 있으니까. <무빙>에서도 달리기 장면은 사실 한두 컷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그걸
열 컷 넘게 그렸다. 굳이 그렇게 개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 상황을 다 알아먹게 만들고 싶은
거다. 얘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걸. 결국 그 고생이
내 고생으로 연결되지만(웃음).
국문학과 출신인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을까?
없다. 소설가가 되기엔 문체가 떨어지고, 화가가 되기엔 그림체가 떨어지니까. 그런데 만화가 나를 구원했다. 두 능력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거기에 만화가 있는 거다. 그리고
만화라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나한테 맞는 거 같다.
0.5와 0.5였는데 둘을 더해서 1이 된 셈이랄까.
0.5을 0.7로 올려주면
안되나? 1이 아니라 1.4가 됐다고 하자(웃음).
작품 속 공간의 모티프가 되는 실제 공간을
치열하게 찾고 취재하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 공간에 가봐야 이야기가 잘 풀리기 때문이다. 내가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 가만히 앉아서도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 그래서 실제 공간을 많이 찾는다. 그러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무빙>의 배경이 되는 선사 고등학교엔 지금까지 스무
번 이상 갔다. 6화에 등장하는 달리기 장면 때문에 운동장에서 실제로 뛰어보기도 했다. 집착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선 가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공간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처럼 이야기가 풀릴 때가 많다.
인지도가 생겨서 취재 요청은 수월해지진
않았나?
아무튼 인지도라는 게 참 좋더라. 초창기만 해도 말도 못하게 퇴짜를
맞았는데 이젠 많이 수월해졌다. 내 만화를 보는 독자 연령층이 높다더라. 30대가 많대. 웹툰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부터 웹툰을 봤던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거다. 취재가 수월해진
건 인지도 덕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만화의 독자들도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됐기 때문인 거 같다.
아직 연재 초기인데 6화 마감 때 29시간 동안 철야를 했다고 들었다. 연재를 하다가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맨날, 회당 30번씩(웃음). 너무 힘들 땐 ‘다음’이 폭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웃음). 살짝 사고가 나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2~3주 안에 회복될 정도로 팔만 살짝(웃음).
그런 과정을 생각하면 연재 전부터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어떤 생활을 해야 되는지 안다는 거지. 매일 같이 18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살아야 된다는 거.
그만큼 연재를 완료했을 때의 쾌감도 상당하겠다.
<26년> 끝냈을
땐 진짜 울었다. 마지막으로 원고 송고를 위해 엔터키를 누르니까 눈물이 펑펑 나더라. 그땐 너무 힘들었거든.
최근 드라마 제안을 받았다던데.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깠어.
어떤 작품에 대한 제안이었나.
다 들어왔다. <미생>이
잘 돼서 그런 것 같다. 착각하는 거지. 그건 <미생>이니까 잘된 거거든. 가끔씩 콘텐츠 업자들의 얄팍함이 얄미울 때가 있다. 여러 번 영화화
과정을 지켜보니까 촉이 생겼거든. 이 사람들이 정말 작품을 만들려고 제안한 건지, 그저 판권을 확보하려고 이러는 건지, 다 보인다. 투자를 받으려고 판권만 확보하려는 회사도 많거든. 그래서 90% 이상 신뢰가 생기질 않으면 아예 계약하지 않는 게 내 신조다. 그래서
안 했지.
<조명가게> 시나리오는 탈고된 거 같던데.
그렇다는데 아직 못 봤다. 변영주 감독 말로는 원작에서 많이 바뀌었대. 맘대로 하라고 했지.
작품이 영화화됐을 때 감독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대신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거 같더라.
진짜! 대체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웃음). 항상 원작자로서의 소감을 물어보는데 아무래도 대답하기가 좀
그래. 말을 잘못하면 감독이 상처받을 거 아냐. 사실 모든
만족감을 충족해주는 작품은 드물었지만 원작자로선 항상 선물 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영화 현장에 가면
감동적이다. 나는 어시스턴트 서너 명과 작업하지만 영화 현장엔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잖아. 그런 광경이 멋있어. 게다가 원작자는 제작과정 처음부터 알게 되니까
그 과정의 고생을 아는 입장에선 냉정한 평가가 불가능하지. 그래서 항상 피해서 대답한다. 주관적으로 좋았습니다(웃음).
요즘 윤태호 작가는 단행본의 레이아웃에
맞춰 컷을 구성한 뒤 웹툰 형태로 떼어서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린다더라. 그래서 웹툰으로도, 단행본으로도 가독성이 좋다. 그런데 강풀 작가의 작품은 웹에서 볼
때보다 단행본의 가독성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태호 형의 작업 방식이 효율적이지. 컷으로 나눠서 재배치하는
거니까. 나는 출판 만화를 배운 게 아니라서 그런 기술이 없다. 그래서
책으로 볼 땐 가독성이 떨어지지. 그런데 나는 모니터나 액정으로 처음 보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다. 웹툰에서 자생한 탓인지 몰라도. 그래서 무조건 웹상에서 잘 보이도록
배경을 꽉 채운다.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그리는 거다. 성의
없는 그림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다. 못 그린 그림과 성의 없는 그림은 다르거든. 1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하니 보니 그런 것도 보인다.
포털사이트 중심이었던 웹툰의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다.
웹툰은 지금이 최고 절정기이고 여기서 더 커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웹툰을 보는 독자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시장이 너무 커진 감이 있다. 거품이 많이 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지만 언젠가 이 거품이 빠질 거다. 그때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길을 잃을까 걱정된다. 예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 시장이 팽창했다가 훅 꺼진 것처럼.
웹툰을 다른 컨텐츠로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도 이를 부채질하는 거 같다. 판권 계약만하고 영화화가 안 되는 웹툰도 많고
후배들이 영화 계약만 하면 다 영화가 되는 줄 아는데 내가 맨날 얘기한다. 웃기고
있네(웃음). 내가 여러 번 경험했잖아. 이름 있는 작가나 포털에서 상위권 작품이면 무조건 계약해서 판권을 확보하려 들지. 그러니까 신중하게 계약해야 된다.
강동구청에서 운영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주도했던데, 과정이 궁금하다.
강동구청에 강풀 만화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엔 거절했다. 민망하잖아(웃음). 그런데
문득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거야. 그래서 강풀 만화거리 만드는 거 수락할 테니 구청장님과
한 시간 독대권을 달라고 했지. 그 전에 강동구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을 만나서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구청장님을 만나서 설명했고, 그 아래 실무자들과 한 스무 번 정도
회의를 했지. 그래서 결국 진행이 결정됐고 구청에서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게 됐지. 그런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구민들 입장에선 세금을 왜 이렇게 쓰냐고 구청에 항의할 수 있잖아. 그래서 구청에 조건을 걸었지. 급식소 설치물과 1년치 사료를 내가 대겠다고.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을 텐데.
영화 <26년>이
흥행해서 개런티가 들어왔는데 절반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고 절반은 고양이 급식소 사업에 썼다. 급식소 50개를 설치하고 1년치 사료를 샀지. 왠지 <26년>으로
번 돈은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그리고 구청에서도 민원이 들어오면 기부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니 당당할 수 있잖아. 사실 구청에선 주민 중 절반만 반대해도 사업을 시행하는 게
힘들거든. 그러니 구청에서도 대단한 용기를 냈다고 생각해. 사료를
아예 구청에 보내주면 동회의가 있을 때 동장님들한테 배급하고, 알아서 배식하게 되는 거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원이지.
그 뒤로
1년이 지나지 않았나?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사실 이 아이디어는 캣맘들이 편하게 사료를 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사업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야. 1년간 잘 운영되면서 사료 회사에 기부 제안을 했어. 대신
내가 1년마다 홍보 만화를 그려주는 대가로. 사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나한테는 상당한 모험이었어. 고양이들이 1년간 안락하게
잘 먹다가 갑자기 폐지되면 죄책감에 시달릴 거 같았거든. 재작년엔 만화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게
그거였는데 정말 다행이지. 처음에는 하루에 10번씩 전화가
왔대. 고양이 잡아가라고. 그런데 요즘은 민원이 없대. 애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안 찢는 거야. 덕분에
고양이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의식이 바뀐 것 같아. 다행이지.
연재가 끝나면 뭘 할 건가?
애 낳고 나서 연재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집에 가고 싶어져서. 6화까진 그 일념으로 늦지 않고 제 시간에
업데이트를 했다. 집에 빨리 가려고(웃음). 가족들과 여행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