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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새벽에 종각으로 나갔습니다.
쓰던 원고를 접고 택시를 타고 나갔죠.
가슴이 뛰었습니다. 긴장감이 엄습했습니다.
현장 부근에 도착해서 택시를 내리는데 멀리서 전경들의 이상한 구호가 들렸습니다. 초조했습니다. 나 지금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그건 분명 두려움이었습니다. 어쩄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보니 현장은 생각보다 치열하진 않았습니다. 마치 한번 정도 정리가 된 느낌이기도 했고요. 양 도로를 전경들이 막아서고 인도로 통하는 좁은 차도에서 시민들은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전경들이 방패를 두드리고 악다구니를 썼습니다.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으면서도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그 공간엔 분노와 공포가 함께 구르고 있었습니다. 종종 대치상황에서 엉켜붙어 연행되거나 충돌하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몇번 정도 그 안에 몸을 섞어서 밀고 당기기도 하고, 나가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방송 카메라들은 악착같이 달라붙었습니다. 아팠습니다.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또 한번 두려움이 맺혔습니다.
전경의 얼굴을 바라봐도 시민의 얼굴들을 바라봐도 하나같이 처연했습니다. 그 안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이란 하나같이 약하고 여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종 조소를 담은 표정의 전경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무표정했습니다. 그 너머로 어떤 피곤함이 밀려왔습니다. 억울함도 아닌, 어떤 무기력함이 그 안에도 존재했습니다. 의무적인 체제 아래서 견뎌나가야 할 폭력의 체증이 그 안에서 군말없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악다구니를 쓰는 전경들의 얼굴에는 그렇게 젊은 시절의 청량감이 사라진 채 살아남기 위한 각오만이 존재했습니다.
시민들이 밀어내고자 하는 이도, 시민들을 밀어내는 이란 누군가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전 문득 두려워졌습니다. 그들은 내부에서 훈육된 증오로 시민들을 진압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건 권력의 수혜자들인데 그들은 그 너머에서 자신들이 길들인 서민의 자식들을 방패로 삼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들과 맞서 싸우자니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었습니다. 내가 외치는 구호가 전해져야 할 곳은 그들이 아님을 알면서도 구호를 외치는 동안, 또 다른 분노와 무기력이 동시에 양산됐습니다.
그러던 와중, 거리는 진압되고 시민들은 인도로 몰렸습니다. 그 와중에 전경들이 길을 막아서곤 했지만 다들 부지런히 청계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그보다 조금 앞서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 와중에 호프집 마당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이들도,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취객들도 만났습니다. 하나의 공간을 넘어서자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뭔가 초현실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을 미워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거리에 나선 이들의 목적은 그 자리를 지키지 않은 자를 손가락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런 자유를 보호하고 싶어서 모인 겁니다. 다만 불과 몇 발자국 너머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방금 전의 상황에 지나치게 달라서 적응이 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맞붙은 공간은 그렇게 서로에게 등을 돌리듯 너무나도 이질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청계광장에 다시 모인 이들은 촛불을 하나씩 켜더니 옹기종기 앉아 자유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전 그런 모습들이 하나같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습니다. 마치 패잔병들처럼 옹기종기 앉아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것처럼 처연했습니다. 그러다 무기력함이 밀려왔습니다.
그 거리에서 우리가 얻은 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내 아찔해졌습니다. 전 여전히 제 안에 공포가 잔존함을 느꼈습니다. 한번쯤 전경들에 밀려보니 그 무게를 함부로 견딜만한 것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그 방패에 가격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몸이 움츠려듬을 느꼈습니다. 그 와중에 청계광장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일곤 했습니다. 그 곳에 사람들은 희망을 말하고 있었고 전 그 희망에 맺힌 처연함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침울해진 기분으로 그 곳을 떠나 거리를 걷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그토록 고요했습니다. 꿈을 꾸듯 현실이 아련하게 밀려왔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중에 날이 밝았습니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역시 동네는 고요했습니다. 그곳은 평화로웠고, 하나같이 차분했습니다. 집으로 들어서서 문을 밀고 들어가니 강아지가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줬습니다. 너와 난 이리도 평온한데 그 거리에서 우리는 왜 그리 치열해야 할까, 왜 이리 살기가 힘들까, 그리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차분한 여명 너머로 밀려온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그 밤의 구호가 아침에 밀려 아득한 꿈으로 흩어지는 것 같아서 전 조금 슬펐나봅니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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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 시간 즈음되면 미친 듯이 마음이 요동친다.
하루 종일 해놓은 것 하나 없이 방에 쳐 박혀서 모니터만 보다 하루가 지났다.
휴일날, 날씨는 좋았고, 방은 어두웠다. 발가락을 핥는 어린 강아지가 발로 차고 싶을 만큼 심술이 밀려온다. 물론 발로 차지 않았다. 난 생각보다 마음이 약하다.
헛소리는 넘기고, 뭔가 써야 할 것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려고 앉아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아니 안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집어삼켰다.
이런 빌어먹을. 욕 나온다.
요즘은 이 시간 즈음되면 미친 듯이 좌절감이 밀려온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나를 필자랍시고 받아준 나와바리가 가련할 정도로 난 매일같이 절망감에서 허덕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문장은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뭔가 지껄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배 뒤집고 헥헥거리는 어린 강아지마냥 귀엽게 볼 수도 없는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띈다. 부끄럽다. 그 때마다 코 박을 접시 물이라도 찾아야 될 심정이다. 물론 접시물에 코 박아봐야 죽지 않을 것을 아니까 하는 말이다. 난 솔직히 삶을 포기할만한 용기를 가진 위인은 아니다. 이런 빌어먹을, 또 욕 나온다.
의외지만 때때로 예기치 않게 칭찬이 들려올 때도 있다. 그들은 내가 잘 아는 지인이 될 때도 있고, 내가 전혀 모르는 3자일 때도 있다. 양심을 걸고 맹세하자면 난 그때마다 자격지심을 느낀다. 이건 결코 금슬 좋은 척하던 연예인 부부가 그 다음날 이혼 발표를 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매일같이 사투를 벌이듯 커서와 싸우다 보니 지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은 궁금하다. 아니,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 거야. 이런 생각이 종종 전두엽을 강타할 때면 난 홀로 아득해진다. 물론 그 사람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쓸 수도 있겠지. 문제는 같이 쥐어뜯으며 써도 실물대비 격차가 지나치다는 거다. 그 간극은 나에겐 넘사벽과 같은 열등감으로 광속처럼 되돌아온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힘들다고 하는 건, 결코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다. 마치 그건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내가 지녔던 온전한 감상들이 시간에 밀려 풍화되길 거부하는 의도적 행위에 가깝다. 그것이 유일하게 짧은 기억에 대항하는 순수한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스크린을 응시하는 순간, 마치 숏과 컷처럼 분열되는 발상과 관념, 생각들이 문장으로 온전히 치환되지 못하고 뒤편의 프레임처럼 아득해질 때, 난 지독하게 괴롭다. 한때는 모 선배의 말처럼 영화를 보며 기록하는 방법을 열심히 실행했으나 그 때마다 지독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떤 방식으로든 온전히 상념을 보존할 수 있는 비결 따위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요즘은 오락가락이다. 그랬다가 말았다가, 그런 와중에 길을 잃었다. 전기가 나갔다. 반짝이는 것이 사라졌다.
밑천이 얕은 탓이다. 요즘 들어 날 괴롭히는 상념은 우물의 깊이다. 채워 넣어야 할 것은 많은데 난 그 반대의 행위를 하고 있다. 악순환이다. 들어오는 건 없는데 나가는 건 많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우겨서 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건 지독한 열등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표본으로서 드러나는 바다. 얕은 지식에 대한 한계를 내가 알아버렸다. 좁은 시야를 가리던 자신감들이 증발했다. 내가 할 짓이 아니다. 하루에도 백만번은 느낀다. 지독한 자괴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뭔가 결심해야 한다. 이 글을 써놓고도 난 또 다른 글을 쓸 것이다. 부끄럽지만 아직 내 삶은 아직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이젠 제자리에서 돌 때는 아닌 거 같다. 다시 공전주기를 찾아가야 한다. 이 글은 그 시기에 대한 막연한 다짐과도 같다. 동시에 부질없는 현실에 대한 일말의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