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아바타-아앙의 전설 Avatar: The Last Airbender>를 영화화한 <라스트 에어벤더>는 물, 불, 흙, 공기로 세상이 이뤄졌다는 플라톤의 4원소설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라스트 에어벤더>의 세계관은 사실 현대 문명에 대한 우화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자행되는 자연의 파괴, 그리고 제국주의의 정복적인 역사관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물의 왕국, 불의 제국, 흙의 부족, 공기의 유목민으로 이뤄진 <라스트 에어벤더>의 세계는 제국주의적인 야심으로 가득한 불의 제국과 대항하는 타부족인들의 저항을 그리는 영화다. 균형을 이루던 4개의 세계는 100년 전, 막강한 힘을 발판으로 전쟁을 일으킨 불의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되고 억압에 억눌린 타부족인들은 물, 불, 흙, 공기를 모두 다스릴 수 있다는 에어벤더, 즉 아바타(Avatar)의 재림을 꿈꾼다. 그리고 어느 날, 남극의 빙하에서 한 소년이 발견된다. 아앙(노아 링어)이란 이름을 지닌 이 소년은 스스로가 아바타임을 밝히고 자신을 사로잡으려는 불의 제국 왕자 주코(데브 파텔)로부터 달아나며 모든 요소를 다루기 위한 수련에 매진한다.
M. 나이트 샤말란은 일찍이 초자연적인 신비에 대한 취향을 자신의 영화적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왔다. 그가 <라스트 에어벤더>에 흥미를 느낀 것도 그 취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관적으로 미스터리 장르에 가까운 필모그래피를 축적하던 샤말란이 <라스트 에어벤더>에 흥미를 느낀 건 아무래도 장르적 도전에 의미를 두고 있다기 보단 자연적인 요소를 기초로 둔 초자연적인 판타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라스트 에어벤더>는 샤말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례적인 동시에 이질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없다.
<라스트 에어벤더>에서 두드러지는 건 단연 볼거리일 것이다. 물과 불, 흙, 공기를 이용한, 즉 ‘벤딩 액션’이라고 부르는 <라스트 에어벤더>의 액션신은 CG를 이용해서 완성한 비주얼을 통해 시각적 재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라스트 에어벤더>는 지나치게 안이한 스토리텔링을 방관하듯 만들어진 영화다. 캐릭터의 등장부터 캐릭터간의 관계를 이루는 과정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모든 서사가 온전히 쉽고 편하게 진전된다. 간단한 설명만으로 진전되는 모든 인과관계의 흐름에는 정서적인 동의를 얻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결여됐다. 이는 곧 감상자로 하여금 영화에 감정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조차 없도록 완벽하게 영화로부터 괴리시켜 버리는 과오나 다름없다.
물론 국내 개봉 전에 이미 북미에서 <라스트 에어벤더>에 대한 기록적인 혹평이 쏟아진 것에 비하면 이 영화의 만듦새는 꽤나 양호한 편으로 분류할만하다. 이는 샤말란이라는 작가적 감독에 대한 비아냥으로 읽힌다. 그의 필모그래피의 흐름과 함께 하락했던 평가의 관성들이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일종의 묘한 경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만큼 샤말란이 여전히 주목 받고 있는 감독이란 사실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외부적 분위기와 무관하게 <라스트 에어벤더>는 완전한 범작 혹은 그 이하다. 3부작을 완성하겠다는 샤말란의 야심 또한 백일몽에 불과하다 느껴질 정도로, 딱히 인상적인 성과도, 샤말란의 아이덴티티라는 인장도 발견되지 않는다. 작가주의적인 면에서도, 상업주의적인 면에서도, 온전한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