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살아났다. 물론 충혈된 눈을 마저 풀기 위해선 당장 자야 한다. 어느 정도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할 일이 있다. 어쨌든 기분 좋은 술자리였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 한 모금까지 질량보존의 법칙을 증명하듯 식도를 통해 역류되는 상황을 4~5번 반복하다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옥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용산CGV에서 <보트> <마더>를 연이어 보고 곧바로 충무아트홀로 날아가서 뮤지컬 <삼총사>를 봐야 했다. 지하철 타고 서서 갈 자신도 없고, 택시를 타고 달렸다. 심지어 극장에 도착해서 또 한번 역류현상을 경험했다. 목이 마름에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 타는 목마름으로 입이 논두렁처럼 갈라질 것만 같았다. 자빠져서 앓는 소리를 할 판에 극장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게 기이했다. <보트>를 볼 땐 정말 죽을 맛이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러니 더 아쉽더라. 멀쩡한 정신으로 봤다면 이보다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정말이지 졸도하고 싶었다. 물론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내가 봐도 대단한 인내력이었다고 자평한다. 게다가 영화를 보던 중 갑자기 복통에 가까운 배고픔까지 밀려왔다. 어느 정도 위의 기능이 정상화가 됐나 보더라. 덕분에 이젠 기아 체험이 됐다. 아침 점심 한끼도 못 먹은 상황이었다. <보트>를 보고 나와서 갈증부터 해결했다. 넘어가는 물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배는 못 채웠다. 시간도 없었고, 일단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그래도 <마더>는 어느 정도 안정감 있게 봤다. 영화가 대단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니까 <보트>를 볼 때 그랬던 건 영화 탓처럼 들리지만 어느 정도 시간의 경과를 간과할 수 없지. 어쨌든 시사회 시간이 홍보팀의 삽질 덕분에 대략 40분 가까이 지연되는 바람에 저녁도 못 먹고 뮤지컬을 봤다. 다행히도 뮤지컬이 상당히 재미있더라. <삼총사>볼만하다. 세트도 대단하고 조명을 이용한 효과가 상당히 탁월하다. 연출도 괜찮고, 위트도 먹힌다. 어쨌든 힘든 하루였다. 방금 막 라면을 끓여먹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요즘 들어 소주를 좀 먹었다 하면 그 다음날 사망신고 직전까지 간다. 술도 끊어야 하나. 간이 약해진 건가. 아니면 이런 게 바로 노화? 그런 거야? 어쨌든 당분간 알코올경계령을 선포한다. 나는 소중하니까.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  (0) 2009.06.01
연애  (0) 2009.05.31
5월 12일  (4) 2009.05.13
<박쥐> 예고 홈런  (0) 2009.05.04
아직도 CD사는 인간  (2) 2009.04.29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