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더>

도화지 2009. 6. 2. 08:29

엄마가 <마더>를 봤다. 같이 보고 온 누나는 기분이 더럽다고 했다. 괜히 봤다고 했다. 궁금한 건 엄마 쪽이었다. 밥을 먹다가 물었다. 엄마는 영화에서 그 엄마가 이해돼?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고개를 돌리더니 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게다가 아들이 좀 모자라잖아. 물론 알고 보니까 아들이 완전히 멍청한 건 아니더라만. 결말이 좀 기분 나쁘게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약간 벙졌다. , 역시 그렇더란 말이냐. 물론 그렇다고 유치하게 그럼 내가 그러면 엄마도 그럴 거야, 따위의 간지러운 대사는 날리지 않았다. 어쨌든 까놓고 말해서 영화를 보고 뭔가 그럴 싸한 소릴 지껄였지만 정작 내가 어미의 심정을 어찌 알겠냐.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 없는 수컷에게 모성이란 일종의 판타지고 영원히 알 수 없는 안드로메다의 정서다. 부성과 모성은 천지간의 차이를 둔 다른 세계관이란 말이지. 엄마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더라. ,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다. 과연 <마더>를 만든 봉준호는 알고 만든 거냐. 물론 <마더>는 봉준호라는 수컷의 한계도 분명 포함된 세계겠지. 어쨌든 엄마의 답변이 놀라웠다. 영화가 놀라운 게 아니라 그런 어미들의 본능이 놀라웠다. 그니까 그만큼 우리 엄마들이 끔찍한 보호 본능을 짊어진 탓에 자기 삶을 뭉개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싶어서 숭고한 심정까지 들더라. 진짜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헌신적인 세계관을 품고 아무렇지 않게 제 새끼 먹일 밥을 지어가며 살고 있는 거다. 밥을 꾸역꾸역 넣고 있는 와중에 이 밥알에 깃든 모성을 씹어 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누나도 나중에 제 새끼를 낳으면 <마더>가 이해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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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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