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멈추는 날>은 시대적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50년대 냉전시대의 갈등은 21세기 환경문제로 치환된다. 구작과 신작의 공통분모는 인류다. 인류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 지구를 우리의 것이라 여겼던 인류는 외계인의 전지전능한 능력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지구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인간이 죽으면 지구는 산다. 의미심장한 멘트까지 등장한다. 경이적이고 파괴적인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징벌적인 이미지는 위협적 설득에 가깝다. 분명 현시대에 유용한 문제의식을 야기한다. 문제는 문장이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흥미로운 주제에 비해 문장력이 떨어진다. 50년대보다 발전한 이미지를 과시할 뿐, 반 세기 이전만도 못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려는 환경주의적 메시지가 얄팍하다 못해 오만하다. 영화 속 외계인을 설득하는 사연이 되려 객석을 심드렁하게 만든다. 외계인도 알겠다는 변화의 가능성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지구가 멈추기 전에 두뇌가 멈추는 기분이다. 이래서야 인간을 변화시키고 지구를 살릴 수 있겠나. 거대한 이미지의 파괴적 협박 뒤에 남는 건 그저 지루한 단상뿐이다.

 

(프리미어 'Movie 4人4色')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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