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그래서 장모님을 뵙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윤보선 전대통령의 생가이자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윤보선가 고택에서 묵으셔서 겸사겸사 구경도 할 수 있게 됐다. 가는 길에 경복궁역에 즐비한 경찰을 보았다. 역 안까지 이미 경찰이 들이 차있었다. 경찰차들은 절묘한 주차술로 인도와 차도 사이를 빈틈 없이 막아서고 있었다. 안국역에서도 경찰을 보았다. 역 안에서도, 역 밖에서도. 정말 많았다. 대부분 어려 보였다. 팔할이 의경들일 것이다. 어린 청년들이 국가의 방패 노릇을 하는 풍경을 가로질러 내 갈 길을 갔다. 그 풍경을 뒤에 두고 나의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에 화가 난다. 내 일상이란 것이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치욕적인 국가다. 사회다. 정부다. 진저리가 난다. 삼청동에서, 잠실에서 광화문을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2. 아침 일찍 파리의 테러 소식을 들었다. 파리와 테러라니, 좀처럼 링크가 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간극이 사라진 풍경이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자리에 머문 이후의 참혹한 결과를 타전하는 수많은 메시지를 보며 문득 절망감이란 것은 멀고 아득한 방식으로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 삶이 당장 무너지지 않았지만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선명한 절망감 같은 것이 지워지지 않을 얼룩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테러의 소행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테러가 세계의 양분화와 공포의 전염 그리고 당장의 시리아 난민 사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괴롭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세계의 커다란 아픔과 증오 앞에서 개개인의 위로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불이 꺼진 에펠탑으로부터 전해지는 선명한 상념 앞에서 화도 나고, 슬프다가도 무력해지는 개인을 보게 된다. 어찌될지 모르겠다. 세계는, 우리는.

 

3. 당장 내년 2월에 파리에 가기로 했다. 항공 예약은 완료했고, 필립 스탁의 마마 쉘터에 묵기로 해서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섭다. 그때 설마 별일이야 있겠냐는 낙천적인 생각의 좌우로 무심결에 공포가 따라 붙는다. 어제 파리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없었을 거다. 폭력의 결과란 이렇다. 세상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폭력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든 이해될 수 없다는 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폭력을 통해 낭만을 주검으로 만드는 건 한 순간이다. 끔찍하다. 실로. 고로 이러한 폭력을 이겨내기 위한 세계의 위로란 실로 중요하다. 응징을 다짐하는 오바마의 지지 선언만큼이나 파리의 테러현장 앞에서 존 레논의 ‘Imagine’을 연주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얻는 용기가 만만치 않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절실하다.

 

4. 폭력은 지구 반대편의 파리에서만 선명한 것이 아니었다. 광화문에도 폭력이 있었다. 집회 중인 시민 한 명이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타를 당해서 뇌손상이 있었다고 했다. 동영상이 돈다. 플레이를 눌렀다. 욕지기가 나왔다. 경찰의 물대포는 카운터 같은 것이었다. 복싱에서도 쓰러진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진 않는다. 경찰은 쓰러진 사람을 확인하고도 물을 쏘고 있었다. 그를 구하러 간 사람에게도 물을 쏘고 있었다. 쓰러진 사람을 싣고 병원에 가기 위해 대기 중인 구급차에도 물을 쏘고 있었다. 재미있었을까. 흡사 게임처럼, 시민을 맞추면 점수를 주는 룰이라도 존재했던 것일까. 그 속을 알 수가 없지만 그 속을 어떤 식으로든 참혹한 내면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어떤 인간의 참혹한 속을 짐작해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인간이란 것이 이토록 참혹한 존재였던가라는 절망감. 폭력이 인간을 파괴하는 방식은 이렇다. 되갚고 싶게 만든다. 인간적이지 않은 상대를 통해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자아의 상실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시대에서 산다는 것은.

 

5.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주변의 고성을 들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며 입구를 좁게 막아선 경찰들을 보았다. 올라가는 쪽도, 내려가는 쪽도 불편해 보였고, 불편했다. 격렬하게 항의하는 이의 목소리가 지하철역 안으로 울려 퍼졌다. 경찰은 미동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끝으로 올라서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마주쳤다. 사람은 둘인데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였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른데 갈 수 있는 방향은 하나였다. 그때 앞에 서있던 경찰이 말했다. “내려가는 분 먼저 보내겠습니다.” 어린 친구였다. 의경이겠지. 한참을 서서 내려가는 사람을 보내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어서 틈을 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욕본다. 건강해라.” 그 청년은 나의 적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욕보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억울함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너의 좆 같음이 내가 아니라 너를 방패로 세우려 하는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까지 서있는 경찰을 보면서 욕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오늘 보고 느꼈던 즐거움을 생각했다. 그렇게 일단 오늘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게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 애쓰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이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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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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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유산과도 같았던 <로보캅> 21세기에 리메이크됐다. 다행히도 구식은 아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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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연쇄아동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청을 방문해서 범인 검거를 독려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덕분에 경찰 조직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총력을 기울이던 중,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 현장에서 경찰의 오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게 전전긍긍하던 수뇌부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한다. 진범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진범이라 위장시킬 만한 대체자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 사건의 연출자로 낙점된 건 광역수사대 에이스로 꼽히는 철기 반장(황정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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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직장에 간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 그 어느 곳에서도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실종신고를 하니 경찰이 퉁명스럽게 답한다. 24시간 이후에 현장 방문이 가능하다. 24시간이 지났다. 5달이 지났다.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는 집으로부터 먼 외딴 곳에서 발견된 아이가 돌아온다는 기차역으로 발을 구른다. 그리고 모자는 상봉한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에 어머니의 표정이 굳는다. 우리 아이가 아니에요. 이를 지켜본 경찰의 표정이 굳더니 입을 연다. 당신이 잘못 본 거에요. 생전 아이를 본 적도 없는 경찰이 평생 아이를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의 기억이 잘못 됐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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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물밀듯이 쏟아지는 조폭코미디가 한국영화계를 장악하던 호시절이 있었다.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등 희화화된 조폭 캐릭터를 통해 코믹한 설정을 이어가던 조폭코미디는 흥행가도를 달렸다. 그 뒤로 시리즈가 양산되면서 설정의 질적 묘미보단 가공된 웃음의 양적 팽창이 극대화됐고 그만큼 관객은 점점 식상해 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프랜차이즈를 유지하던 조폭코미디는 끝내 한동안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관객은 조폭코미디를 소비하면서도 때때로 그것을 충무로 영화를 비난하는 질적 표준으로 손가락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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