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촌스럽다. 웃기고 울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찰나가 그런 정황 속으로 끼어들어가도 될 거라 판단한 연출적 감이 기가 막힌다. 말 그대로 그냥 웃기고 울리는 순간을 나열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촌스러움이 <타워>를 붕괴시키는 한방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완성도 높은 CG가 이런 단점을 상쇄시킨다. 거대한 주상복합주택의 화재 안전성은 현재에도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는 문제라 CG의 완성도로 인해서 보다 현실적인 공포로 치환된다. 고의적인 악역의 설정도 눈에 빤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마주치는 파렴치한들의 수준이 그만한 것이라 딱히 뭐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쨌든 인재에서 비롯된 거대한 재난의 수순은 인정할만하다. 재난의 이미지는 완벽하고 그 안의 끔찍한 그림도 여럿이라 붕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결말부까지의 참혹함은 진짜처럼 와 닿는다. 다만 한강 너머에서 바라보이는 여의도의 타워 스카이는 사실 누가 봐도 9.11의 유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아서 남의 비극을 상업의 도구로 활용한 것 같다는 일말의 거부감도 든다. 그 이미지를 권유할 마음도 없지만 말릴 마음도 없다.
제주도 남단 7광구에 위치한 석유시추선 이클립스 호의 시추 대원들은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심해의 밑바닥을 긁고 파 들어갔다. 하지만 1년 여간의 노력 끝에도 석유는 나오지 않고,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는 사업인 만큼 본사의 압박도 심해진다. 결국 철수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7광구에 대한 애착이 강한 차해준(하지원)은 이에 반발한다. 그리고 철수를 지휘할 새로운 캡틴으로 7광구에 온 안정만(안성기)은 대원들에게 석유 시추를 위한 유예 시간을 끌어보자고 제의한다. 안정만과 함께 철수를 보류한 여덟 명의 대원들은 다시 한번 석유 시추를 계획하지만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어두운 심해는 미지의 우주 공간이 전하는 고립감을,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자리한 섬과 같은 석유시추선은 우주에 떠있는 우주선의 폐쇄적 공포를 연상시킨다. <7광구>는 분명 <에이리언>을 위시한 여타의 괴물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지원이 연기하는 차해준은 <에이리언>에서 시고니 위버가 연기하는 리플리의 아바타와 같다. 맞다. 짝퉁이라면 짝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여전사가 등장해서 괴물과 맞서는 액션 영화 하나 즈음 있으면 어떤가. 심해 속에서 나타난 미지의 괴물이라는 설정은 대부분의 괴물 영화들이 지니고 있는 클리셰다. 봉준호의 <괴물>도 그러했듯이 <7광구>가 빤한 게 아니라 원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기시감이 선명하다. 중요한 건 이를 특별하게 수식할 논리적인 디테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7광구>의 모든 서사는 완벽하게 낭비적이다. 괴물이 등장하기까지 30여 분의 러닝타임이 흘러가는데, 이 시간이 이 영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는 것인지가 또렷하지 않다. 아니, 아무 것도 못한다. 누가 뭐래도 <7광구>의 주연은 괴물이(어야 한)다. 복선 노릇을 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 본 서사가 시작되고 30여 분간 이어져 나가는 도입부의 서사는 마치 주연배우가 등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보겠다며 무대로 떠밀어낸 조연 배우들의 난장과 같다. 여덟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관계도가 그려진다. 그게 끝이다. 물론 영화는 나름의 인과와 복선을 준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저 괴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버틸 뿐이다. 갈등은 존재하나 이유는 알 수 없고,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민폐거나 생각이 없다.
심해괴물이 등장했다. 때때로 그럴 듯하다. 완벽한 퀄리티로 구현된 결과물이라고 칭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봐줄 만한 상황은 된다 할 수 있을 만한 이미지는 나온다. 심해괴물이 날뛰는 동안 사람들은 괴물의 흔적을 수색하거나 맞닥뜨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혹은 죽거나, 당연한 수순을 건넌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아남는다.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당연한 것 외에 어떠한 특별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괴물이 나온다. 그리고 싸운다. 혹은 도망친다. 그러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서 끝내 괴물을 물리친다. 딱히 독창적이라 말할 수 없는 크리처의 디자인은 둘째치고, 괴물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노동처럼 피곤해 보인다. <7광구>에는 클라이맥스가 없다. 그저 널뛰기하듯, 죽고 살아나는 괴물로 인한 시퀀스와 시퀀스의 접합만이 끊임없이 이어질 뿐이다.
중구난방으로 머리를 든 캐릭터들의 부조화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낭비적인 드라마, 그리고 과잉된 액션 연출과 날뛰는 괴물보다도 정신 사나운 내러티브의 무절제. <7광구>는 흡사 LA빌딩을 감싸고 올라가는 이무기가 근사해 보일 거라는 어떤 영화와 같이 단발적인 아이디어로부터 대책 없이 확장과 확대만을 거듭해온 허풍선 같은 영화다. 심해에서 올라온 괴물로 인해 석유시추선의 대원들이 사투를 벌인다. 이 한 문장의 시놉시스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 특별할 것 없는 이미지와 안이한 스토리로 피와 살을 이룬 허약한 영화 앞에서 남는 건 무기력한 감상뿐이다. 한국 최초의 ‘3D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민망하다. <7광구>의 3D는 입체영상이 아니라 노동의 그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시도는 그만한 비판을 견딜 때 비로소 성과가 된다. 원숙함과 단단함을 요구하는 비판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시도의 순기능이기도 하다. 그리고 <7광구>는 지금 그러한 비판을 견뎌내야 할 시점의 영화인 것 같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기시감은 대부분 <에일리언>의 그것이다. 미지의 우주가 심해로, 폐쇄적 공포를 야기시키는 우주선을 해양 한가운데의 섬과 같은 석유 시추 기지로, 심지어 시고니 위버는 하지원으로. 우리도 여전사가 등장하는 그럴싸한 괴수물 하나 있으면 어떤가. 문제는 역시 완성도다. 나름대로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를 지향했겠지만 현실은 LA빌딩을 감싸고 올라가던 이무기 등장하던 어떤 영화와 그 영화 감독의 야심이 떠올랐다. 즐길만한 서스펜스가 발견되는 몇몇 시퀀스는 존재하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낭비적인 드라마, 중구난방으로 머리를 든 캐릭터들의 부조화까지, <7광구>에서는 날뛰는 괴물보다도 정신 사나운 내러티브의 무절제가 성가시게 눈에 띈다. 심지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나, 날뛰다가 공격을 받고 죽을 듯 살아나서 또 날뛰는 과정을 반복하는 괴물이나, 노동하듯 피곤해 보인다. <7광구>의 3D는 입체영상이 아니라 노동의 3D를 의미하는 것이었던가. 비꼬는 말이 아니다. 보는 내내 이상했다. 안경은 왜 준걸까. 분명 3D영화라 했는데, 안경 없이도 대부분의 장면을 볼 수 있는 3D영화라니. 안경을 끼는 수고스러움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더냐. 시도는 필요한 일이다. 그 가치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여기서 시도가 인정받는다는 것은 단지 그 시도를 고무시키기 위한 칭찬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도 그 자체의 순기능으로서 인정받는다는 건 보다 나은 원숙함과 단단함을 요구하는 비판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7광구>는 지금 칭찬보다 비판을 견뎌내야 할 시점의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