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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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따져 묻지 않는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항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공명정대하고 명확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따져 물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로잡겠다고 나설 때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어쨌든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자란 말은 있어도 무정부인, 비국가인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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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영화, 한국영화계에서 임권택 감독의 위치는 숫자만으로도 명확해진다. 하지만 능선처럼 굽이진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돌아온 구도자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영화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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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연쇄아동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청을 방문해서 범인 검거를 독려할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덕분에 경찰 조직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총력을 기울이던 중,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 현장에서 경찰의 오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게 전전긍긍하던 수뇌부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한다. 진범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진범이라 위장시킬 만한 대체자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 사건의 연출자로 낙점된 건 광역수사대 에이스로 꼽히는 철기 반장(황정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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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서 (개인적인 처신까지도) 국민적 동의와 수반적 회의를 거쳐야 하거든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일면 의미심장하다. 국민의 손과 발이 되겠다던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자 전국민적 동의를 등에 업고 대표성의 권위를 등에 업은 권력자다. 그만큼 대통령은 어느 개인으로서의 삶을 전면에 내걸 수 없는 대의적 존재로서 의무를 지닐 때 그만큼의 권력을 함께 보장받는다. 그리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국민적 동의를 통해 절대적 권력을 얻었다는, 그 대통령에 관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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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어쩌면 볼 수 없는 세 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명백한 판타지다. 장동건과 같은 오로라적 외모를 지닌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가설만으로도 이미 명백한 판타지지만 전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격려하는 그 세상은 이미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거다. 그렇다고 그것을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다. 때로 영화란, 혹은 예술은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혹은 보고 싶어하는 것을 묘사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렇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우리가 꿈꿀만한 거짓을 현실처럼 위장한 영화다. 특히 올 한 해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잃은 우리에게 뼈에 사무칠만한 감상을 부를 정도로 ‘인간적’인 대통령을 그리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분명 우리가 보고자 하는, 혹은 봤으면 싶은 이상적인 지도자들을 나열한다. 그 판타지가 때때로 과잉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지나치게 전형적인 타입의 이상을 그려나감에도 감히 그것이 잘못 됐다 말하기 힘든 건 그 때문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서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분명 어느 정도 위안이 될만한 손길로서 기능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다만 <굿모닝 프레지던트>장동건의 코믹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 이전에 장진이라는 네임밸류를 걸고 나온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전형적인 예상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수순으로 나아가는 소동극의 양상은 장진 영화라고 부르기에 지나치게 평범하다. 물론 현실정치에 던지는 발언이 미묘하게 감지되는 가운데 대중적 공감대를 이룰만한 코미디 연출은 무난한 웃음을 부를만한 것이다. 그러나 재기발랄함이건, 치기어림이건, 취향적인 호불호를 감안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감각적으로 낡은 영화다. 세 대통령의 임기 중 굵직한 세 사건을 각각 나열하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마치 인터미션이 없는 연극 세 막을 연달아보는 것과 같은 옴니버스적 장편영화다. 매 에피소드마다 나름의 클라이막스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나름의 특이성을 확보하지만 그 순간마다 과잉된 음악으로 감정적 공감대를 자극하려는 영화의 태도는 오히려 소재로부터 발생하는 기본적 흥미를 반감시킨다. ‘인간적인 대통령’이라 제시되는 세 인물의 성격 또한 지나치게 보편적이다. 주제나 소재의 압박에 작가적 취향을 양보한 인상이다. 때때로 절묘한 소동극을 자아내긴 하지만 해피엔딩을 직조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 경직된 스토리는 대통령 훈화를 듣는 것만큼이나 식상하다. 지나치게 공익적 의무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랄까. 무엇보다도 대중적 평준화를 지향하는 장진 영화는 호불호의 기준을 떠나 분명 심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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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는 말은 정말 그것이 어찌할 수 없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찌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말이기도 하다. 다수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때때로 전체적인 관습처럼 오용되어 개인의 특수한 취향을 제한하고 보편적 권리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강압으로 작동한다. <날아라 펭귄>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폭력들을 드라마투르기로 엮어낸 작품이다. 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4번째 영화 <날아라 펭귄>은 다양한 감독들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시선 시리즈들과 달리 순례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한 첫 번째 장편 인권위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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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강, 도약, 비행, 착지로 이뤄지는 스키점프의 과정은 기승전결의 과정이다. 높은 스키점프 대를 신속하게 미끄러져 내려온 뒤, 하늘로 붕 떠올라 멀리까지 날아가서 사뿐히 내려앉는 스키점프는 그 짧은 과정만으로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국가대표>는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실화로부터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추출하는 영화다. 동계올림픽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서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일궈낸 현실을 발판으로 삼아 허구를 도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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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올림픽에서 10개 이상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순위권을 자랑하는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현실은 실상 생존 레이스 위에서 착취당하는 열악한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킹콩을 들다>는 대한민국이라는 좀스러운 현실을 담보로 둔 신파 기획물이다. 주연은 스포츠, 조연은 대한민국. 소박한 시골 소녀들의 표정을 통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로서의 구색이 명확하기도 하지만 촌스러운 한국적 배경을 활용하는 능력이 그만큼 효과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사냥에 실패한 역도 동메달리스트 이지봉(이범수)에게 동메달은 애증에 가깝다. 결과가 과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이지봉은 역기를 잡을 수 없는 몸으로 방황하다 보성의 역도부 선생으로 정착하곤 영자(조안)를 비롯한 소녀들을 만나 역도를 가르친다. 타인에게 멸시당하거나 자신감을 상실해버린 존재들이 만나 이루는 신파의 앙상블은 그것이 지독하게 닳고 닳은 스토리건 플롯이건 따져 묻는 입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효율적인 웃음과 눈물의 재료가 된다. <킹콩을 들다>는 눈물과 웃음을 다져 넣고 팔팔 끓인 뒤 비극을 첨가하고 희망이란 그릇에 담아 관객 앞에 내놓는, 먹히는 신파다. 신파는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신파를 불순하게 만드는 환경이 나쁘다. 시대착오적인 건 영화가 아니라 여전한 세상이다. <킹콩을 들다>는 그 열악한 환경을 영화적 감정으로 치환했을 뿐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그 현실을 담보로 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팔리고 또 팔릴 만한 신파의 재료로서 유효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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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제자들에게 말한다. 이 길을 선택하는 순간, 너희는 많은 것을 잃게 돼. 각오와 경고가 한 몸에 담긴 언어가 필사적인 절박함을 드러낸다. 영광보단 고난을 명확히 관통하는 스승의 언질 앞에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피땀 흘린 노력의 과정이란 성공이란 방파제를 쌓지 않고서야 쉽게 허물어질 모래성 같은 영예나 다름없다. <킹콩을 들다>는 역도선수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과 금메달에 도전했다 동메달에 머무르고 부상까지 얻은 비운의 역도선수의 삶을 사제라는 관계에 뒤엉켜 넣은 신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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