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란 말은 부질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뒤집어 가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첨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 안에서 가정이란 유효한 착상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의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꾼들에게 가정이란 발칙한 야바위이자 무궁무진한 떡밥이니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픽션으로 디자인된 논픽션의 세상, 다시 말하자면 영화로 이입된 현실의 역사를 전복시키고 깔깔거리는 유희다. 어쩌면 메가폰을 쥔 당사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란 사실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에게 <바스터즈>는 싹이 노란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바스터즈>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피칠갑의 난장 속에서도 과장과 비유를 뒤흔들어 능수능란한 유머로 발화시키는 타란티노적 시네마천국이다.

Posted by 민용준
,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은행을 털고 유유히 FBI를 따돌리던 갱단의 리더 존 딜린저(조니 뎁)가 검거됐다. 존 딜린저를 구치소로 이송하는 차량 주변에 수많은 군중이 몰려 환호를 지른다. 존 딜린저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의 환호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열광에 가까운 것이다. 존 딜린저가 수감될 예정인 미네소타 구치소에 몰려든 취재진의 열기도 뜨겁다. 은행 하나를 터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나요? 1 40초 정도면 가능하지. 기자가 던진 가벼운 질문이 농담으로 튕겨져 돌아온다. 악명 높은 범죄자를 목전에 둔 긴장감 따위란 없다. 마치 유명인을 눈 앞에서 두고 본다는 들뜬 기분이 현장을 장악한다. 그 사이에서 여유로운 미소로 현장을 장악한 존 딜린저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그 표정 너머의 시대를 관찰하기 보단 그 표정을 통해 시대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발견하는 영화다.

Posted by 민용준
,

엄숙한 장례미사가 진행 중인 성당을 메운 하객들 가운데 홀로 서있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이다. 짧은 백발과 뚜렷한 주름의 굴곡은 그의 세월을 짐작하게 만드는 나이테와 같다. 부인에 대한 애도로 굳은 표정이 일그러진다. 엄숙함이 지배하는 장례미사 가운데 그의 심기를 거슬리는 일들이 눈 앞에 가득하다. 장난을 치며 히죽거리는 손자들과 피어싱이 눈에 띄는 손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바쁘다. 그의 입술 한 쪽이 일그러진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온 그는 옆집에 이사온 동양인들을 보게 된다. 그의 입술 한 쪽이 또 한번 일그러진다. 그가 사는 동네엔 동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늘어만 간다.

Posted by 민용준
,

1972 6 17 오전 2시반, 워싱턴 민주당사를 도청하려던 5명의 용의자가 검거됐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두 기자는 그 배후를 추적했고, 그 끝자락에 닉슨 대통령이 관련됐음이 기사를 통해 폭로됐다. 차기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던 닉슨 대통령의 불명예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닉슨은 이를 적극 부인했지만 결국 여론의 압박이 대단했다. 결국 1974 8, 국회의 탄핵의결을 거쳐 대통령직을 사임하며 닉슨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이다. 여기서 워터게이트는 워싱턴 민주당사가 있던 건물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대부분의 정치 스캔들 명칭에 게이트(gate)란 어미가 붙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어쨌든 닉슨 대통령은 대단한 정치적 영향력을 남긴 셈이다.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