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지도층 공주로 태어났지만 마법의 금발을 타고난 덕분에 기구한 운명 속에서 성장한 소녀 라푼젤, 그녀는 자신을 유괴한 탐욕스런 여인 고델을 어머니로 알고 그녀의 반협박적인 모성애 연기에 속아 높은 탑 속에서 갇히듯 자라났다. 덕분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긴 금발만큼 자라난 라푼젤의 성에 수배를 피해 달아나던 도적 플린이 침입하고 우연히 그를 붙잡게 된 라푼젤은 그가 지닌 보물을 숨긴 뒤, 자신의 소원과 맞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그림형제의 고전동화 <라푼젤>을 각색한 디즈니의 50번째 애니메이션 <라푼젤>은 묵은 영광 속에서 고성처럼 낡아가던 ‘디즈니 캐슬’의 새로운 리노베이션을 선언하는 작품과 같다. 지난 2009년, 그림형제의 <개구리 왕자>를 각색한 <공주와 개구리>로 셀애니메이션 명가의 저력을 21세기에 증명한 바 있는 디즈니는 <라푼젤>을 통해서 CG애니메이션에서도 디즈니가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물론 <라푼젤>은 디즈니가 처음으로 시도한 CG애니메이션이 아니며 <볼트>를 통해 이미 자신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라푼젤>은 고전동화의 현대적 각색이라는, 디즈니의 전통적인 스토리 양식을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기법 안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픽사의 수장 존 라세터는 디즈니의 전통적인 양식에 새로운 감각을 수혈해내며 디즈니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냈다.
고전동화의 텍스트를 밑그림 삼아 다채로운 캐릭터를 세워 넣고, 위트 있는 활기로 덧칠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활기는 <라푼젤>에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러브스토리와 권선징악이라는 두 개의 요소는 여전하되, 새롭게 각색된 고전동화의 현대적인 운용이 돋보인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마련은 아기자기한 위트와 어드벤처로서의 활기를 더하는 탁월한 수단이다. 캐릭터의 매력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열쇠임을 생각한다면 <라푼젤>의 캐릭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의 성과를 증명하는 단서나 다름없다.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 같이 <라푼젤> 역시 다양한 노래와 춤으로 극적인 감정들을 고조시키며 흥겨운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라푼젤>은 분명 디즈니라는 타이틀 안에서 빤히 읽혀지는 것들을 품은, 전형적인 디즈니 클리셰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날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상투성과 전형성 안에서 줄타기를 한다. <라푼젤>은 후자에 가깝다.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라는 이해를 넘어서는 건 누구나 알지만 바라고픈 이야기라는 감동이다. <라푼젤>은 픽사와 드림웍스의 시대에서도 빤하다 못해 낡아 버린 듯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가치가 여전히 지속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불식시키는 답변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디즈니의 인장이 뚜렷한 <라푼젤>은 바로 그 이름에 걸린 기대에 어울리는, 최상품의 감동으로 채워진 디즈니의 새로운 고전이다. 누구나 바라는 그 감동, 그것이 바로 디즈니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가치이며 <라푼젤>에 바로 그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