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가혹한 고통을 딛고 서야 완성되는 예술이다. 온 몸을 지탱하는 발가락 끝에서 전해져 오는 첨예한 고통을 지우고 자신이 두 발을 디디고 선 무대 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할 때, 비로소 한 명의 발레리나가 태어난다. 하지만 뉴욕의 발레리나들에게 이는 단지 입문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우수한 발레 유전자를 지닌 인재들이 모여드는 뉴욕의 발레 계에서 무대에 설 자격을 지닌 단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쩌면 가혹한 일이다. <블랙 스완>(2010)은 바로 그 우아한 세계 뒤편에 자리한 치열한 경쟁과 은밀한 암투를 주목한다.

Posted by 민용준
,

전작 <폭력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관객을 폭력의 현장에 무덤덤하게 노출시키며 이야기를 꺼내 든다. 날이 선 면도칼은 사람의 목을 갈라 피를 쏟아내고, 약국에 들어와 도움을 청하던 임산부는 발 아래로 하혈하다 쓰러진다. 시작부터 피가 흥건하다. 그 거리엔 피가 흐른다. 포도주를 따르듯 피를 부르는 무리들이 조용히 살아간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피의 거래로 거리를 장악한 이들의 살벌한 언약에 발을 담게 된 자의 이야기다. 폭력에 가담한 그 손아귀에서 달아날 수 없다.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침전된 삶에 발목을 잡힌다.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