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하게 빛나는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통해서 마리온 코티아르도 ‘장밋빛 인생’으로 피어났다.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행보를 거듭해나가는 그녀의 삶은 여전히 활짝 피어 오른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나리오 앞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탐나는 역할이었다. 비련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대신해서 무대에 오른다는 건 일종의 영광과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독이 든 성배와도 같은 자리였다. 피아프의 노래처럼 ‘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녀는 피아프를 잘 아는 두 사람을 찾아갔다. 조르주 무스타키는 피아프가 부른 ‘Milord’의 작사가이자 연인이었다. 기뉴 리셰는 피아프와 진심을 나눴던 15년 지기 친구였다. 그들은 그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용기를 얻었다. 결국 무대에 올랐다.
2008년 LA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마리온 코티아르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진실로 이 자리에 올 수 있길 고대했다. 프랑스 여자에게 이는 매우 특별한 일이니까.” <라비앙 로즈>(2007)로 에디트 피아프를 재현한 코티아르는 골든글로브와 오스카 트로피를 차례로 손에 쥐었다. 프랑스 배우가 오스카 후보로 이름을 올린다는 건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영어 대사가 아닌 자국어로 연기한 비영어권 배우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두 여인>(1960)의 소피아 로렌 이후 코티아르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수상은 이례적인 성공담인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코티아르는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나름의 경력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라비앙 로즈>는 꽃봉오리처럼 피어 오르던 그녀의 재능이 활짝 만개하는, ‘장밋빛 인생’의 서막이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코티아르는 루아레의 오를레앙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부모는 배우이자 스승이었다. 코티아르는 말했다. “어떻게 연기하는지 그 방법을 배울 수는 없다. 감정과 느낌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던 거다.” 코티아르의 부모는 그녀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감정들을 찾아내서 이를 연기로 승화시키는 법을 깨닫게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해.”어린 코티아르의 갈망은 대단했다. 부모의 무대를 보고 종종 그 위에 오르며 꿈을 키운 코티아르가 다시 파리에 발을 들인 건 16살 무렵이었다. 배우로서 보다 폭넓은 기회를 얻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성공한 배우들의 빤한 소회처럼, 코티아르 역시 절치부심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에게도 갖은 오디션을 거쳐 제작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 뤽 베송이 제작한 <택시>(1998)를 통해서 그녀의 경력은 서서히 엑셀레이터를 밟기 시작한다. 코티아르는 이후 제작된 세 편의 시리즈에서 꾸준히 드라이브를 이어나갔다. 그 사이, 주연 자리를 꿰차기 시작한 그녀의 이름이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팀 버튼의 <빅 피쉬>(2003)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뉴욕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일종의 모험이자 계기였다. 영어 대사와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과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택시>시리즈의 대단한 흥행은 한편으로 코티아르에게 압박을 가하는 사건이었다. “비상업적인 영화에서 진지한 연기가 가능함을 증명해야 한다.” 코티아르에게 <빅 피쉬>는 일종의 피난처와 같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녀의 할리우드 정착을 위한 밑거름 같은 시간이었다.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뉴욕 맨하탄의 한 아파트에 입주해서 영어를 익히는 한편, 프랑스와 다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성공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상업적인 영화를 혹평한다. 그들은 그저 약자 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성공을 환영한다.” 코티아르의 열정과 야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자질은 이미 그녀에게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코티아르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로맨스물 <러브 미 이프 유 대어>(2003)로 <아멜리에>(2001)의 귀여운 여인 오드리 토투와 비교되기도 했다. 하지만 코티아르는 체질적으로 발랄하거나 유쾌한 캐릭터가 될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 <라비앙 로즈>의 에디트 피아프 이후로 코티아르의 필모그래피가 가련한 여인들로 채워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퍼블릭 에너미>(2009)의 빌리와 <나인>(2009)의 루이자 그리고 <인셉션>(2010)의 맬까지, 이 여인들을 관통하는 건 바로 비극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 결실을 맺지 못하거나, 배신당하고 버려지거나, 파국적인 종말을 맞이하거나, <라비앙 로즈>로 시작된 이어지는 코티아르의 비련은 <인셉션>까지 이어졌다. <라비앙 로즈>로 주가를 한껏 올린 코티아르가 이런 캐릭터들을 거듭해서 연기한다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항상 희극보다 비극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비극을 연기할 때, 나는 즐겁다. 그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매우 거대한 공간이다.”
앞서 나열된 비련의 여인들이 지닌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매혹적인 뮤즈로 통한다는 것이다. 뭇 남성들과 사랑을 주고 받았던 에디트 피아프와 1930년대 미국 경제 공황기 시대의 전설적인 은행강도 존 딜린저의 연인이었던 빌리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의 필름 거장 귀도의 아내 루이사와 코마와 유사한 림보를 무릅쓰고 인셉션을 행하는 코브의 아내 맬까지, 코티아르를 통해서 그 매혹을 설명하고 있다. 가련하면서도 강인한 양면성, 코티아르는 우아한 프랑스 배우의 기품과 함께 남미 대륙의 열정적인 매혹이 공존하는 배우다. 가늘게 이어진 턱선이 연약하게 감정을 자극하지만 그 위로 굳게 다문 입이 결연하다. 커다란 눈동자는 갖가지 감정들을 담아내는 호수와 같다.
우디 알렌의 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2011)는 문화적 향취로 그윽한 1920년대 파리로 안내하는 마술 같은 영화다. 이 영화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간 코티아르는 전작들보다 한결 밝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만인의 사랑을 얻는 뮤즈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다크나이트>(2008)의 속편에 참여하고 있다. 코티아르는 안다. “나는 동시에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다작을 할 수 없기에 매 순간의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그녀는 이 역시 안다. “지금 내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영원히 시들지 않는 피아프의 노래처럼, 코티아르의 ‘장밋빛 인생’도 영원을 향해 피어 오른다.
“그녀는 작은 검정 드레스를 입고 환상적인 목소리로 노래 불렀다. 나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라비앙 로즈>(2007)에 출연하기 전까지 마리온 코티아르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서너곡 정도를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피아프와의 만남은 코티아르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그녀 앞에 줄을 서듯 모였다. 미를 뽐내는 여신의 경연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나인>(2009)에서도 코티아르는 빛을 잃지 않는다. 되레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한 아우라를 드러낸다. 감정의 강약을 유지하면서도 강렬한 악센트를 찍어내듯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우아하고 단아한 프랑스 여인의 기품에 가려져 있던 뜨거운 정열이 세상 밖으로 뜨겁게 드러났다. 그 뜨거운 열기로, 그녀는 ‘장밋빛 인생’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