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무엇이 맞고 틀리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맞고' '틀리다'보단 '지금' '그때'가 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두 개의 지금 혹은 두 개의 그때. 결국 지금이라서 맞고, 그때라서 틀린 것. 이것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옳고 그른 것으로 판명해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언제나 지금은 맞지만 언젠가 그때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마술적 흐름에 관한, 굉장히 사소한 발견의 깊이.

완전히 분절된 데칼코마니 형태의 출발점에서 제각각 시작되는 두 개의 이야기. 홍상수 감독 특유의 대구 구조를 개별화시킨 두 영화는 하나의 시작을 품었으나 두 개의 우주로 분리된다. 아마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전형으로 구별될만한 작품일지도. 개인적으론 <옥희의 영화> 이후로 또 한번의 전환점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시점으로 분리시킨 두 가지 삶의 체험. 정말 놀라운 영화적 경험. 사소한 일상의 톤으로 길어 올린 마술적 리얼리즘. 나는 이 영화에 어떤 찬사도 아끼고 싶지 않다. 놀랍다는 말도 부족하다.

정재영은 두 사람 몫을 하며 영화의 너비를 확장하고, 김민희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의 경계를 만든다. 두 개의 정재영과 하나의 김민희가 이 영화의 대구를 완성한다. 두 방향으로서 완전한 하나의 영화.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영화라는 체험이 삶을 어떻게 예언하는가, 삶을 어떻게 반추하는가,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두 가지 질문에 합당한 답을 모두 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현재는 언제나 옳게 합리화되고, 과거는 언젠가 틀려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인간이다. 부끄럽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그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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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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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단평

cinemania 2011. 8. 23. 11:48

얌전하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서울을 통과할 거다. 그리고 집으로.” 하지만 알 사람은 안다. 그 작자가 결코 얌전하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서울을 통과하지 않을 것을. 홍상수의 열두 번째 장편 <북촌방향>은 어느 영화감독의 서울상경기를 그리는, 여전히 찌질한 굴레를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남자의 궁색한 일상을 그리는 또 한번의 수기다. 도돌이표처럼 되돌아가는 동선 속에서 메트로놈의 리듬처럼 반복되는 일상, 홍상수 감독은 비슷하지만 명확히 다른 대구의 거울을 통해서 거듭되는 우연의 체감을 통해서 의미를 얻어나가는 생활의 발견을 또 한번 이룬다. 하지만 <옥희의 영화>에서부터 느껴지던 싸늘한 냉소가 <북촌방향>에서도 예사롭지 않게 감지된다. 여전히 제 버릇 개 못 주듯 자신의 다짐이 무색하게 일상에 치근덕거리는 남자의 일상적인 소비는 더 이상 연민이나 추억으로 언급될 수 없는 싸늘한 한기로 둘러쳐진다.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은 홍상수의 겨울영화다. 계절이 겨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고드름처럼 얼어붙은 냉소가 선명한, 북서풍 고기압성 결말, 더 이상 희희낙락하게 방관할 수 없는 그 남자들의 겨울이 예사롭지 않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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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고수하며 싸움에 승리한 남자에게 남은 건 영광이라 부르기조차 넌더리나는 상처 뿐이었다. 가정은 무너졌고, 직장은 사라졌다. 만신창이처럼 너덜해진 삶 속에서 무기력을 체감한 남자는 덧없는 교훈 하나를 짊어진 채 관계를 단절시키듯 살아왔던 아버지의 시신이 놓인 지방의 마을로 떠난다.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굴 속으로들어가듯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키기 위해 서울을 떠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 싸늘한 기운을 느낀 남자는더러운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다시 마음에 지펴오르는 의심을 좇아 그 실체의 조각들을 수집하고 점차 완성돼 나가는 거대한 비밀과 마주서다 이에 맞서나가기 시작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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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음절의 경쾌한 제목처럼 홍상수의 <하하하>는 경쾌한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잰 체하는 예술인과 지식인들의 속물적 근성을 벗겨내는 ‘생활의 발견’을 그려내는 홍상수의 ‘극장전’은 <하하하>에서도 거듭된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영화평론가, 감독, 작가들은 평론이나 연출, 창작을 한다고 할뿐, 그에 어울리는 행위를 보여준 적이 없다. 언제나 술을 마시고, 여자를 탐하며, 제 삶을 변명하거나 위장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일탈적 행위가 하나 같이 인간적이란 변명으로 통용될 수 있는 까닭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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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인터뷰

interview 2009. 6. 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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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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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신분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동네 주민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 단면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무능력한 마초이즘은 때때로 자신의 영토를 침입한 이방인들에 대한 공격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로니를 찾아서>는 어느 치졸한 마초의 체험을 통해 적나라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극적 재미를 진전시키는 영화다. 인호(유준상)가 뚜힌(로빈 쉐이크)과 함께 로니(마붑 알엄 펄럽)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버디무비와 로드무비의 조합을 이룬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사회적 시선을 견지한 극적 연출이 인상적이다. 다만 문제의식을 발견할 뿐 어떤 결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남자의 변화를 관찰할 뿐이다. 인호의 변화는 결국 한국남자들, 더 넓게는 한국사람들의 가능한 변화를 설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정치적 주장보다도 설득력 있는 사연이 귀엽고 즐겁게 전달된다. 물론 인호가 로니를 찾아가는 여정은 일면 무모한 희망처럼 보이고 목적성도 흐릿하다. 하지만 그 여정을 지켜본다는 건 그 무모한 희망에 동참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로니를 찾아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동시에 한국어에 유창한 불법체류자 외국인들의 모습은 기이한 구경거리처럼 보인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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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려는 거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한 장면. 영화학도를 자처하는 학생은 감독인 구경남(김태우)에게 묻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에 대해서 설명해보자면 마치 이 대사는 그냥 구경남을 위해 마련된 대사만은 아닌 것만 같다. 어쩌면 이 질문은 홍상수 감독 스스로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자승자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에 나올 대답이 중요하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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