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거대한 포화로 폐허가 된 전장에서도, 어느 집 골방의 남녀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들이 자라나 저마다의 상흔을 남긴다. 소통의 불가해, 가치관의 차이, 수많은 부조리와 편견의 그늘 아래서 숱하게 자라난 폭력들은 각각의 세계에 흠집을 낸다. 그 상흔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그 폭력의 뿌리이자 근원인 인간이다. <인 어 베러 월드>는 자신들에게 가해진, 혹은 자신들이 가한 폭력의 역사에 화해를 처방하고, 치유를 행하는 인간들의 행위를 그린 휴머니즘 드라마다.
영화는 두 공간을 응시한다. 두 공간을 잇는 건 의사 안톤(미카엘 페레스브란트)이다. 덴마크에 거주하는 그는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를 찾아가서 그곳에 거주하는 난민들의 상처를 돌보고 통증을 다스린다. 하지만 힘없는 이들에게 거친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의 테러 앞에서 그는 무기력하다. 그리고 아픈 이들을 돌보고자 먼 이국으로 향한 의사는 그러한 무기력을 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곳에는 어린 아들 엘리아스(마쿠스 리가르드)가 있다. 그는 아들을 사랑한다. 아들도 아버지를 따른다. 하지만 아들은 학교에서 어린 학우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중이다. 안톤 역시 부인 마리안느(트리네 뒤르홀름)과 별거 중이다. 그런 엘리아스 곁에 크리스티안(윌리엄 요크 닐센)이 나타난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크리스티안은 엘리아스를 괴롭히는 무리들을 폭력적으로 응징한다. 크리스티안은 폭력적 불의에 폭력적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 크리스티안의 아버지 클라우스(율리히 톰센)는 아들을 사랑하며 또 걱정한다. 하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증오가 깊어지는 만큼 폭력적인 복수에 대한 믿음은 광기로 웃자라나간다.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무질서한 폭력과 평화로운 덴마크 속에서 살아가는 한 소년의 폭력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폭력은 타인에게 폭력을 전이시키고, 상처를 입힘으로써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한다는 동일한 현상 안에 놓여있다. 수잔 비에르는 두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간극을 평등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평행하게 배치함으로써 현상을 야기시킨 본질을 발췌해낸다. 인권에 대한 의식이 전무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야만적인 테러 행위나 발전된 문명 속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서방의 한 국가에서 자라난 한 소년의 원초적인 복수 의식은 분명 다른 기질의 본질에서 출발하는 폭력이며 그 폭력의 양태도 전혀 다르다.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두 세계 속에서 발전해나가는 폭력의 현상을 관찰하게 되는 한 인물의 동일한 시선을 통해서 그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 어 베러 월드>는 폭력의 근본적 문제를 진단하기 보단 그 폭력에 대응하는 인간의 방식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폭력에 맞서는 폭력은 당장의 폭력적 사태에 있어서 강력한 제어력을 발휘하지만 결국 새로운 폭력의 전이로 나아간다는데 있어서 결국 폭력에 대한 패배나 다름없다. <인 어 베러 월드>는 어째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명제에 관한 정해진 답변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순수한 이상으로 점철된 답변을 내놓기 보다는 그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적 복수의 되돌이표적인 현상이 어찌하여 방관될 수 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에 관한 충실한 답변이기도 하다. 비폭력적인 대응, 화해와 용서에 관한 주장을 펼치면서도 그것을 무기력하게 주장하기 보단 그것의 현명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만연하는 폭력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세계와 잠재적인 폭력의 씨앗이 방치되는 세계, 극명한 문명 이기의 발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세계 속에 자리한 폭력은 결국 동일한 상흔을 남기고 파괴를 부른다.
중요한 건 결국 그 폭력에 맞서는 이들의 의지와 헌신에 달렸다. <인 어 베러 월드>는 제목 그대로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방식에 관한 강인한 답변이다. 폭력에 맞서는 가장 큰 복수가 더 큰 폭력이 아닌 그 폭력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인내와 의지임을, 그리고 주먹에 맞서는 화해의 손과 포옹의 체온이 결국 이 세계를 그 폭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궁극의 수단임을 이 영화는 뚜렷한 응시로서 주장하고 있다. 저마다의 인물이 짊어진 갖은 감정의 굴레를 드라마틱한 내러티브로 직조해낸 수잔 비에르의 화술은 직설적인 주장 대신 설득력 있는 예시로서 보다 유용하다. 또한 그 예시 속에서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배우들의 공헌도 뛰어나다. <인 어 베러 월드>는 좋은 의도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좋은 언어를 동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만든다. 더 나은 오늘은 끔찍한 어제를 여러 번 거친 뒤에야 이뤄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험난한 세계를 거쳐왔다. 중요한 건 결국 그 믿음을 향한 헌신인 것이다. <인 어 베러 월드>는 바로 그 믿음과 헌신을 통해 이룬 사랑과 용서, 포용을 설득해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폭력에 관한 가장 강력한 복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