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지배하는 세계에 불시착한 사람들. 그 세계에서의 탈출을 고대하며 행동에 옮기던 그들은 자신이 발 디딘 땅의 정체를 알아버린 뒤, 자신의 안식을 위해줄 영토가 없음을 절실하게 체감한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블의 원작을 영화화한 <혹성탈출>의 충격적인 결말은 인간사와 지구사를 동일시해온 인류에게 있어서 경종을 울릴만한 사건이었다. 1968, <혹성탈출>이 첫 작품의 상영 이후로 여섯 편에 달하는 시리즈로 진전된 것도 그런 반향이 만들어낸 추진력 덕분이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시초가 된 첫 작품 이후로 팀 버튼의 리메이크작을 포함한 어떤 것도 그 이상의 흥미를 자아낸 것은 아니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진화의 시작>)에 대한 흥미와 의심의 눈길이 모이는 것도 그런 전례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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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진화 속도는 나날이 빨라진다. 그와 함께 과거엔 공상과학의 소재가 되던 이미지들이 현재에선 일상적 산물이 된다.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레 인터페이스도 변한다. 이미지의 변화는 중요하다. 화상전화나 터치스크린 따위가 더 이상 생소한 허구가 아니라는 건 구시대에서 SF적 이미지로 활용되던 산물들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단지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의 등장만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시대는 지났다. LA도심에 뒤엉켜 나뒹구는 변신 로봇의 시대에서 터미네이터의 존재는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남았다는 사실이다. 우려먹든, 개조하든, 프랜차이즈의 수명이 유효하다고 판단될 때 한번이라도 시도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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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은 경계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은 지구상의 인간들에겐 위협적인 불청객이다. 물론 E.T처럼 선량한 눈빛으로 감동을 선사하고 떠나는 훈훈한 이방인의 사례도 존재하나 그 밖에 지구를 찾아온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무시무시한 행패를 부리며 인류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우주에서 날아와 뉴욕 센트럴파크에 착륙한 정체불명의 스피어, 그리고 그로부터 내려온 외계인 클라투(키아누 리브스) 역시 정체불명의 위협적 존재다. 그를 따라 내린 거대한 로봇은 더더욱 수상하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지구에 시련을 선사하는 또 하나의 외계인을 그린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지구정복을 꿈꾸는 불한당은 아니다. 지구를 찾아온 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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